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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뜨거움
  • 조수민 편집국장
  • 승인 2024.03.18 08:00
  • 호수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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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사랑받으면서 의심받는 단어가 바로 ‘안온’, ‘다정’, ‘무해’일 것이다. 이러한 머리글자만 따온 ‘안다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다정한 정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너무 각박하고 살기 어려워졌다며, 시민 사회가 동료 시민에게 서로 다정해질 것을, 혹여 인간과 인간이 아닌 무언가와 접촉하게 된다 해도 다정함, 안온함, 무해함을 지켜내자는 주장을 펼친다. 이를 의심하는 쪽은 인간이 진정으로 타인에게 무해할 수 있는지, 또 동료 인간에게 한없이 무해하기만 하거나 다정하기만 할 수 있는지 등의 주장을 펼친다. 필자는 이 중에서 어느 쪽의 주장을 지지하거나 공격할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 사회에 부족한 것이 다정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전 세대에서는 다정함이 충분했을까? 그렇다면 갑자기 우리 세대에서 다정함이 부족했던 원인이 뭘까? 과거에 좋은것은 형체도 갖추지 못하고 사라지고,나쁜 점만 남는 그런 흑백의 시대는 없다. 시대는 설설 기기도, 달음박질하기도, 뒤를 돌아보기도 하며 결국엔 전진한다. 실제로 이웃 간에 사이가 가깝고 마을 전체가 한 아이를 볼 수 있었던 전근대 시대에는 심각한 식량난과 영양실조가 있었고,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냈던 근대에는 독재와 여아낙태라는 끔찍한 그늘이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과 해방을 바래왔으며, 그 결과로 우리는 빛의 속도로 지구촌의 소식을 받고 풍족한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그러니 우리에게 ‘다정’이 부족해졌다고 가정하지 말아보자. 발전과 인류해방의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는 서로에게 다정해지지 못해 안달이 난 종족이다. 그러면 우리에게 현재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뜨거움이다. 여기서 정의할 수 있는 뜨거움이란 무엇에 가까이 자신을 바치거나 헌신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모든 것에 손익을 따진다. 하물며 ‘우정’이라는 말이 굳건히 지지하던 친구마저 ‘자신이우러러 볼 수 있는 사람만 친구로 사귀어라’는 미명 아래 계산기 위에 놓인다. 우리 머릿속에는 슈퍼컴퓨터 못지않은 계산 기능이 탑재됐다.
동아리 활동도, 연애도, 대학도, 즐거워 스스로 했던 문화생활도 모두 혹여 나중에 나의 인격적 성장이나 취업이 도움이 될까 열심히 머리를 쓰는 상황을 생각하다보면 문득 허무해진다.
그러나 비옥한 땅을 위해 불을 지르는 화전(火田)이나, 잔뜩 끓어야만 익는 계란처럼 뜨거워야만, 잔뜩 데이고 어느 정도 손해를 봐야만 생생히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내게 상처를 남기고 괴로움을 선사하지만 동시에 앞으로 닥쳐올 적당한 역경이나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릴 수 있는 내성을 준다. 인간은 살면서 딱 한 번 뜨거워질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모두 뜨거워져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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