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적 궂은 노동일 하는 아빠와 함께 방이 달랑 하나 달린 집에 살았었다.

그 집은 술에 취해 귀가하는 아저씨의 콧노래소리, 동네 양아치들이 가래를 뱉는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릴 만큼 방음이 안 되었으며, 여름에는 찜질방만치 더웠고 겨울에는 집의 의미가 있나 싶을 만큼 바람이 새어 들어오고 추웠다.

나는 그런 집에 산다는 것이 부끄러워 행여 등굣길에 같은 동네의 아파트 친구들과 마주칠까 이른 시간부터 서둘러 집을 나서곤 했다.

보통 아이들은 새 학기가 되면 친한 친구와 같은 반 배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였겠지만 걱정했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3월 마다 매번 빠짐없이 제출하는 종이 한 장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하였다. 주소를 작성하며 거지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을 내 손으로 직접 쓰는 것이 싫었고, 아빠의 직업을 당당하게 쓸 수 없는 것도 싫었고, 무엇보다 엄마의 빈자리가 싫었다.

“야, 빨리 내.”

“나 오늘 깜빡하고 안 들고 와서 내일 따로 낼게.”

반장이 걷을 때면 가방에 떡 하니 종이가 들어있어도 안 들고 온 척 따로 교무실에 가서 제출을 하였고, 교탁 앞에 제출을 할 때면 어느 정도 종이가 쌓이고 난 이후 친구들이 낸 종이 사이에 잽싸게 끼워 넣곤 하였다. 그래도 이정도 쯤은 내가 잘 숨겨서 안 들키면 되니까 괜찮았다.

하지만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쪽팔리는 일이 내가 초등학교 4학년, 공개수업일이 되었을 때 일어나 버렸다.

반 친구들이 들뜬 채로 자기 부모님은 온다, 우리 부모님은 조금 늦으신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할 때 나는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유정아, 너희 부모님은 언제 오셔?”

“아, 우리 부모님은 바쁘셔서 못 오실 것 같아.” 

“아···, 슬프겠다.”

전혀. 철없던 8살을 제외하고는 아빠에게 공개수업의 공자도 먼저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었다. 아빠가 오는 것만큼 나에게 비참하고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니까. 이후 반 친구들의 부모님들이 한 분, 두 분씩 들어오시더니 수업을 시작할 때쯤엔 교실 뒤의 사물함을 다 가릴 정도로 부모님들이 많이 오셨다. 엄마들이 대부분이었고 아빠는 세 분 정도가 오셨으며 그마저도 엄마와 함께 온 것이지 아빠만 온 집은 아무도 없었던 것 같았다.

“자, 1번 문제 풀어볼 친구 있나요?” 

“선생님, 저요!”

“저요!”

반 친구들은 부모님들이 오셔서 들뜨고 부모님께 잘 보이고 싶었는지 평소에 꾸벅꾸벅 졸던 친구들도 손을 들고 발표를 하고 싶어 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뒷문 열렸고 순간 교실 분위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는 듯 했다. 

뒷문을 연 주인공은 다름 아닌 아빠였다.

대체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아빠는 목이 늘어나고 땀에 절어 흰색보다 노란색에 가까운 티셔츠를 입고 머리는 잔뜩 떡이 져서는 늦어서 죄송하다며 뒤편의 좁은 공간을 꾸역꾸역 비집고 들 어섰다.

꽃냄새가 가득한 엄마들과 달리 땀내에 절은 데다가 셔츠와 정장을 멋있게 빼입은 다른 아빠들과 달리 늘어난 티셔츠를 입은 아빠가 미운오리새끼마냥 주변의 부모님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미운 오리의 검은 털 대신 검은 얼굴 갖고 하얀 백조 같은 다른 부모님들 사이에 껴있는 것 같았기에.

나와 눈이 마주친 아빠가 입을 뻐끔거리며 나에게 손을 흔들었지만 나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다시 시선을 선생님이 계신 정면을 향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선생님께선 웃으시며 내 이름을 부르고 질문을 하셨다. 

"유정이는 어떻게 생각해?"

"···."

“선생님 제가 말해볼래요!”

“성주야, 유정이가 답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줄까?” 

“네에.”

몇 십 초가 지나도 내 입이 떨어질 생각을 않자 선생님께선 머쓱한 웃음을 지으시며 성주에게 질문을 하셨다.

평소에는 좋은 향기가 나고 다정한 목소리를 지닌 선생님이 좋아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나서서 발표를 하던 나였지만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망부석처럼 앉아 공개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고 공개수업이 끝나면 모르는 사람인 척 아빠를 피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 쪽으로 다가가는 아빠를 보는 순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아빠 뭐해? 빨리 가!"

"선생님께 인사는 드리고 가야지."

“뭔 소리야, 빨리 가라고!”

“그러면 되나···, 우리 유정이 선생님이신데.”

아빠는 붙잡는 나를 떼어두곤 기어코 엄마들 사이를 또 한 번 비집고 선생님께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 유정이 애빕니다."

아빠는 바지춤에 손을 한 번 슥 닦고선 선생님께 악수를 건넸다. 막노동을 하다 보니 흙 때가 손톱에 끼어 평생을 안 씻은 손 마냥 더러워보였다.

냄새가 나고 누리끼리한 티셔츠도 한층 더 손이 더러워 보이는 데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아빠의 손을 본 착한 선생님께선 흠칫하시더니 웃으며 손을 잡아주셨다.

"저희 유정이가 말도 잘 안 듣죠?"

“아니에요, 유정이가 똘똘하고 평소 수업 때 대답도 잘해줘서 제가 얼마나 고마운 줄 몰라요. 오늘 아버지가 오셔서 유정이가 많이 긴장했나 봐요. 그치 유정아?”

“···.”

나는 또 다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기만 하였다.

너무 쪽팔려서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모든 친구들과 부모님들이 나와 아빠만을 바라보는 듯 했기에.악수를 하기 전 손을 닦은 아빠와는 반대로 아빠와 악수를 한후 손을 닦는 선생님의 모습까지 모든 게 다 짜증나고 부끄러웠다.

나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웃는 아빠의 손을 끄집고 교실 밖으로 나섰다.

“아빠 아직 선생님이랑 대화도 다 못했는데···.”

아빠는 미련이 남은 듯 교실 안쪽을 자꾸만 힐긋거리며 바라보았다.

"아빠 나 쪽팔려 죽으라고 온 거야? 어떻게 알고 왔어?"

“해민이 엄마가 알려주셨지.”

해민이는 교실에서 제일 시끄럽고 나서기 좋아하는 옆집에 사는 놈이었다. 엄마도 똑같이 나서길 좋아하고 오지랖이 넓으니 해민이도 그 모양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며 해민이가 더 싫어지는 것 같았다.

“알겠으니까 빨리 가! 앞으로 마음대로 오지 좀 마.”

“왜 그래···, 예전에 아빠가 학교에 못와서 유정이 너 속상했을까봐 이번에는 하던 일도 다 때려치우고 달려왔는데···.”

“몰라서 물어? 다른 애들은 다 엄마들이 오는데다가 아빠가 오더라도 다들 저렇게 멋지게 하고 오는데 아빠는 꼴이 그게 뭐야? 누가 이번에 와 달랬어? 진짜 쪽팔려 죽겠어!”

“유정아···!”

순간 울컥해지는 마음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아빠를 밀치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다음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 화장실에 쭈그려 앉아 눈물을 훔쳤고 어느 정도 진정된 후 화장실에서 나왔을 땐 아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아빠가 학교에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공개수업일 이후 몇 달이 지났다.

“얘들아, 나 오늘 생일이니까 다들 우리 집으로 놀러와!”

재수 없는 우리 반 반장 생일이었다.

반장으로 뽑히자마자 반 친구들에게 햄버거를 돌리고 체육대회때에는 각종 음료수와 치킨을 돌린 것으로 보아 잘 사는 집일 가능성이 높았다.

재수 없는 반장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지만, 저런 애 집은 어떨지 궁금해 서 반 친구들과 함께 생일 파티에 가보기로 했다.

“너희 집 몇 층이야?”

“25층.”

“우와 높다.”

반장이 재수 없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숫자 25가 적힌 버튼을 눌렀다.

인정하긴 싫지만 엘리베이터부터 넓고 으리으리했다.

아무리 초등학생들이라도 10여명이 넘는 아이들이 다 태워진데다가 심지어 널널했으니까.

그러나 엘리베이터는 집에 비해서는 화려한 것도 아니었다. 반장의 집은 넓고 깨끗했으며 햇빛도 잘 들어왔고 무엇보다 쿰쿰한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반장의 방은 하늘빛의 가구들만이 예쁘게 놓아져있었으며 책과 피규어, 각종 인형들도 제자리에 예쁘게 정돈되어 있었다.

내가 소리 없이 감탄을 하고 있는 사이 한 친구가 입을 뗐다.

“와, 니 방 짱 깨끗하다.”

“이거 내가 청소한 거 아니야. 엄마가 너희들 온다고 어제부터 대청소한 거야.”

“야, 나도. 청소 안 하면 엄마가 답답해서 결국 다 해주심.”

“맞아 맞아.”

모든 아이들이 공감을 하며 시시덕거릴 때, 나는 관심도 없는 피규어만을 만지작거리며 서있었다.

‘똑똑-.’

“네에.”

“얘들아, 나와서 치킨이랑 피자 먹어.”

“네!”

타이밍 좋게 반장네 엄마가 노크를 하고 들어오신 덕분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피할 수 있었다.

나는 가장 먼저 방에서 빠져나와 자리를 잡은 후 치킨 한 조각을 집어 들고 먹기 시작했다.

“효석이 너, 학원도 빠졌으니까 오늘은 신나게 놀고 내일부터는 다시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네에.”

“으이구, 생일 축하해 아들.”

반장네 엄마가 반장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고나니 좋아하는 음식들이 한 가득이었지만 이상하게 많이 넘어가지도, 즐겁지도 않았다.

결국 나는 한참을 깨작거리다 가방을 챙겨들었다.

“나 먼저 가볼게.”

“엥, 벌써?”

“어, 부모님이 걱정하셔.”

“어머, 좀 더 놀다가지 그러니···.”

“괜찮아요, 안녕히 계세요.”

괜스레 나도 사랑받는 아이인척 하고 싶어 퇴근하지도 않아 내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아빠와 있지도 않은 엄마 핑계를대며 먼저 일어섰다.

현관문을 열고 나서려는 순간, 반장네 아빠가 퇴근을 하셨는지 문 앞에 케이크를 들고 서 계셨 다.

깔끔한 정장에다가 떡 진 머리의 우리 아빠와는 다른 왁스로 깔끔하게 올린 머리, 누런 뻐드렁니가 아닌 하얗고 가지런한 이를 보이며 ‘효석이 친구니? 더 놀다가 가지 않고.’라고 웃으며 말씀하시는 반장네 아빠는 공개수업 때 잠깐 힐긋거리며 봤을 때보다 더 멋있고 어른 같았다. 저런 아빠라면 공개수업에 왔어도 쪽팔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며 서둘러 인사를 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집에 오니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아빠가 있었다.

머리숱도 얼마 없고 누가 멱살을 잡았는지 잔뜩 늘어난 난닝구와 볼품없이 펄럭이는 팬티 한 장만을 입고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묻는 아빠가 너무 없어보였다.

“아빠가 치킨 사왔어. 같이 먹자.”

“아빠 혼자 다 먹어.”

말이 치킨이지 튀기지도 않은 길거리 트럭에 파는 작은 통닭이었다. 진짜 튀긴 치킨을 먹고 왔는데 저런 통닭이 먹고 싶을 리가 없었다.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나니 아빠가 문을 벌컥 열며 따라 들어왔다.

“왜에, 우리 유정이랑 먹으려고 아빠가 사왔는데.”

“아, 됐다고! 배 안 고프다니깐? 그리고 문 좀 벌컥벌컥 열지 말고 노크 좀 해!”

반장네 집과 모든 것이 비교가 되고 짜증이 났다.

“알았어···, 나중에 배고파지면 말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고 나가는 모습까지 너무 지질해보여 더 화가 났다.

내 방을 한 번 훑어보니 모든 게 다 서러웠다.

반장 방의 반의반밖에 되지 않아 보이는 크기, 색깔의 통일이라곤 전혀 없고 그저 세일하는 상품만 사들여 난잡해 보이는 가구들, 아빠의 나시처럼 누렇게 뜬 벽지. 모든 게 다 거지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짜증을 낸 것도 잠시, 반장네 집에서 얼마 먹지 않아 금세 배가 고파졌다.

나가서 통닭 봉투를 열어보니 조금도 건드리지 않은 듯한 통닭이 그대로 있었다.

속도 없는 나는 안 먹는다고 짜증을 낼 땐 언제고 빠른 속도로 닭을 해치워가기 시작했다. “아빠도 먹어.”

“응? 아빠 먹고 있어.”

아빠는 같이 먹으려고 아껴뒀다더니 내가 먹지 않는 퍽퍽한 살들만 조금씩 떼어먹을 뿐, 내가 먹는 모습만을 바보처럼 웃으며 바라보았다.

반장네 집을 갔다 온 이후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 집을 탈출해야겠다는 의지가 더 강해졌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에 들어가 첫 시험을 보았을 때, 생각보다 성적이 너무 못 나와 잔뜩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아빠가 반에서 10등 안에 들면 잘 하는 편 아니냐고 딴에는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노동일을 하며 고생은 고생대로 하지만 나이를 먹고도 제대로 된 직장 하나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는 아빠를 보며 안정적이고 남들이 보았을 때 번듯해 보이는 직장을 갖길 원했고, 그 직업은 바로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러나 계속 이런 성적이라면 교대는 꿈도 꾸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성적을 올리고 싶었지만 학교 수업만을 듣고 좋은 성적을 받기엔 어려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선생님들께서는 모든 아이들이 학원을 다닌다는 전제 하에 수업을 진행하셔서 기초설명보다는 심화문제 풀이를 중시하셨고 실제로 우리 반만보더라도 아무 생각 없이 놀기만 하는 애들을 제외하면 학원을 다니지 않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듯 했다.

그러자 내가 1등을 하지 못하는 건 학원 보내줄 능력이 되지 않는 아빠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빠에게 화살이 향했다.

"아빠가 그렇게 대충 만족하며 사니까 그 모양인거 아니야."

“···.”

“나 솔직히 집만 어느 정도 잘 살았어도 훨씬 더 성적 좋았을 자신 있어. 지금 반에서 학원 안 다니는 애도 나밖에 없어.”

아빠가 자극을 받아 돈도 더 열심히 벌어왔으면 하는 마음에 괜히 오버해서 세게 말한 것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싸가지 없게 말하면 혼낼 법도한데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방문을 닫고 나갔다. 내가 너무 심했나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사과를 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며칠 후 아빠가 먼저 말을 건네 왔다.

“유정아, 너 알아본 학원 있어?”

“다니지도 못하는 학원 알아봐서 뭐해?”

“아빠가 보내줄게.”

“뭐? 아빠가 뭔 돈이 있다고?”

“괜찮으니까 학원 알아보고 학원비랑 계좌 알려줘.”

아빠가 돈이 어디서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학원을 보내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신나게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며 학원을 알아보았고 학원을 다니는 시점부터 아빠는 하루 에 집에 있는 시간이 3시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새벽에 퇴근을 하고 새벽에 출근을 하는 아빠와는 생활패턴이 맞지 않았을 뿐더러 공부 핑계로 바빴던 나는 아빠와 대화할 시간이 없었다.

아빠와 별 대화도 큰일도 없이 3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아빠의 희생 덕분일까, 나는 내가 그토록 꿈꾸던 교대에 합격하게 되었다.

집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지고 싶어 타 지역 대학교만을 지원하였기에 나는 기숙사에서 지내게 되었다.

방학이 되면 본가로 가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방학에도 기숙사에서 머물렀다.

바쁘다는 핑계로 얼굴 한 번 제대로 비추지 않던 내가 졸업 이후 임용고시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아빠는 내 앞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

“잘 됐다 유정아···. 정말 잘 됐어! 아빠는 멍청했는데 느그 엄마가 똑똑했어서 그런 갑다.”

아빠는 까막눈이라 읽지도 못하는 합격 통지서를 한참이고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내가 노력한 건데 왜 지금 있지도 않은 엄마 덕분이라는 것인지, 아빠는 왜 이렇게 우는 건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취업했으니 내가 효도해줄 거라고 생각해서 일을 그만 둘 생각인 건가?’

이러한 내 걱정과는 달리 발령을 받고 근무를 시작한 이후부터 달마다 용돈을 보내주어도 아빠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병원인데 백흥민씨 보호자 분 맞으세요?”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듯 했다.

‘뭐지. 과로로 쓰러진 건가? 큰 병인 거 아니야? 수술해야 하는 건가?’

짧은 시간에 온갖 걱정이 스쳐지나갔지만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고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맞는데요.”

“아, 백흥민씨가 척추골절 때문에 입원을 하셔서요.”

전화를 끊고 곧장 병원에 가니 난처한 얼굴로 누워있는 아빠가 있었다.

“며칠만 입원하면 된대.”

“내가 용돈 주잖아, 그러니까 왜 그 나이 먹고 쓸데없이 일을 해.”

아빠가 일을 그만둬서 돈이 많이 들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할 땐 언제고 복대를 두르고 누워 있는 아빠의 모습을 보니 속상함이 짜증으로 바뀌어 또 다시 못된 말이 튀어나왔다.

“그걸 어떻게 써···, 나중에 우리 유정이 결혼할 때 보태야지.”

“누가 결혼한대? 아빠가 다쳐서 나오는 병원비가 더 부담스러워. 쓸데없이 싸돌아다녀서 다치지 말고 집에 좀 있어. 아빠가 아직도 젊은 줄 알아?”

“아니 나는···.”

“또 막노동하러 가기만 해!”

신경질만 바락바락 내고 아빠 말은 끝까지 듣지도 않은 채 병실 문을 닫고 나갔다.

집으로 돌아온 후 씻고 침대에 누우니 곤란해 하던 표정과 함께 볼 때마다 주름이 늘어나는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과 나이도 있는데 몸을 함부로 쓰는 아빠가 멍청한 것 같다는 생각이 번갈아가며 내 머리를 아프게 하였다.

그날 밤 나는 한참을 뒤척거리다가 결국 잠을 설치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며칠 후 아빠에게서 문자가 왔다.

[딸, 아빠가 미안해. 아빠 이제 집에 간다. 앞으론 아빠가 고생 안 시킬게.]

글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 읽을 줄도 모르는 아빠가 문자를 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문자를 어떻게 보낸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병원에서 화를 냈던 게 조금은 미안해져 주말에 아

빠 집을 찾아갔다.

“나 왔어.”

집에 들어가 복대를 차고 걸음마를 뗀지 얼마 안 된 아기처럼 아장아장 다가오는 아빠를 본 후 탁자를 보니 공책과 몽땅 연필이 하나 있었다.

“뭐야 저게?”

“그 저번에 간호사한테 문자해 달라 했는데 근처에 한글 가르쳐주는 교실이 있대서 다녀 보려고. 꽁짜래 꽁짜!”

아빠는 공짜가 그리 좋은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을 했다.

“이제 와서 글을 배운다고?”

“나도 우리 딸한테 문자도 보내보고 싶고, 이 나이 먹고 글도 제대로 못 읽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 뭐 열심히 해봐.”

무엇을 배우기엔 너무 늦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들뜬 아빠의 모습을 보니 별 다른 말을 꺼내진 못했다.

아빠 집을 다녀오고 며칠 후, 공개수업이 시작되었다.

반에 현빈이라는 아이는 어머니가 계시지 않아 개인적으로 신경이 쓰이는 학생이었다.

아버지께서 안 오시길래 역시 혼자 아빠를 데려오긴 좀 그런가라는 생각이 들며 별 대수롭지 않게 수업을 진행하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뒷문이 열리더니 현빈이의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어둡던 현빈이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뒤를 돌아 아빠와 마주보며 강아지 꼬리마냥 손을 흔들어 댔다.

아빠가 오자 마법처럼 소극적으로 있던 현빈이가 손을 들고 발표를 하고 싶어 했고 공개수업이 끝난 후에는 아빠를 끌고 오더니 나에게 인사를 시켜주었다.

“선생님! 저희 아빠예요!”

“아, 제가 손이 더러워서···.”

“아, 괜찮습니다.”

정비소에서 일을 하다가 바로 오셨는지 작업복 차림에다가 기름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그래도 현빈이는 아빠가 온 것만으로도 좋은지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아빠가 그리 좋아 현빈아?”

“네, 바쁘신데도 제가 혼자 슬퍼할까봐 와주셨잖아요.”

순간 내 얼굴이 새빨개졌다.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누구를 위해서였는지 아빠를 숨기기에 급급했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다 각자 부모님만을 바라보기에 정신이 없었고 몇몇 아이들은 바쁜데도 달려오신 현빈이의 아빠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우와 너네 아빠는 일 하다가 오신 거야?”

“엉, 맞아.”

“우리 아빠는 바쁘다고 한 번도 와준 적 없는데···, 좋겠다.”

그 말을 듣자 현빈이는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로 웃어보였다.나는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는 이유로 아빠를 원망했지만 한여름에도 한겨울에도 똑같이 목이 늘어나고 노랗게 물든 티셔츠만을 입던 본인과 달리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우리 유정이는 쑥쑥 자란다며 나에게 새로운 옷을 사 입히던 아빠였다.하나밖에 없는 방을 나에게 내어주고 겨울 내내 추위를 느낀 적이 없게 방에 빵빵하게 보일러를 틀어준 후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거실 방바닥에서 보일러도 틀지 않고 잠을 청하던 아빠였고, 춥지않냐고 보일러 좀 틀고 자라고 핀잔을 주면 아빠는 열이 많아 더우면 잠을 못 잔다며 내가 전에 쓰던 솜이 다 죽은 이불을 덮고잠을 자던 아빠였다.항상 아빠에게서 냄새가 난다며 짜증만 내고 옷 한 번 빨아준 적 없는 나였지만 없는 형편에 나를 학원에 보내주기 위해 새벽에 나갈 때도 내 교복만큼은 섬유유연제 냄새가 가득하게 빨아놓고 주름 하나 없이 반듯하게 다려두어 항상 좋은 향기가 난다는 칭찬만을 받고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해준 아빠였다.정말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못난 사람은 나였다.공개수업 이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이 멍해진 탓에 그날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냥 아빠가 보고 싶어졌다.

주말에 아빠에게 찾아가, 드라이브를 가자고 하니 아빠는 신나서 옷장을 뒤지고는 가장 아끼는 재킷을 걸치고 나왔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아빠에게 선물했던 옷이었다.

아빠를 차에 태우고 나니 왜소해진 모습이 더 잘 보였고 콧노래를 부르며 바깥을 쳐다보는 모습이 꼭 어린아이 같아 보였다.

이후 내 시선은 아빠의 옷에 머물렀다.

멋 부린답시고 가장 아끼는 재킷을 입었지만 이십 년도 더 지난 옷은 곳곳이 해어지고 색이 바래있었다.

“유정이 니 출근할 때 입을 옷이나 하나 더 사라.”

아빠는 집에만 있는 내가 이런 옷이 뭐가 필요하냐며 손사래를 치며 자꾸 옷 가게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빨리 갈아입고 와.”

아빠를 억지로 피팅룸에 집어넣은 후 기다리자 어린 시절 옷가게에 가면 우리 공주님은 뭐든 다 잘 어울린다며 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올 때마다 칭찬 세례를 하던 아빠 모습이 떠올랐다.

“어후, 아버님이 워낙 옷걸이가 좋으셔서 너무 잘 어울리세요.”

언제 갈아입고 나왔는지 어색해하며 머리를 긁적이고 아유 어유 이런 바보 같은 소리만 반복하고 있는 아빠를 보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잘 어울리네.”

“어유, 그래? 이런 옷을 뭐 입어본적이 있어야지···.”

“따님이 아버님이랑 데이트도 해주시고 옷도 사주니 너무 좋으시겠어요.”

당연히 형식적인 말이었지만 아빠는 입꼬리가 하늘로 치솟고 우리 딸이 진짜 효녀라면서 내가 선생님이라는 물어보지도 않은 말까지 덧붙이며 직원에게 자랑을 이어갔다.

아무것도 해준 것도 없는 내가 뭐가 효녀라는 건지 이해가 안 됐지만 직원이 본인을 칭찬해줄 땐 어색해하더니 내 칭찬은 아무렇지 않게 쉴 틈 없이 내뱉는 아빠 모습이 웃겨 그냥 내버려두었다.

두 벌은 진짜 필요 없다며 한사코 거절하는 아빠 때문에 처음에 입은 옷만을 결제하고 차에 타니 아빠는 한참을 만지작거리며 옷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힐긋 본 후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

“글쓰기 수업할 때 입고 가서 딸이 백만원짜리 옷 사줬다고 자랑해.”

“백만원? 이, 이거 교환하러 가자. 아빠 이런 거 못 입어.” 아빠는 사색이 되어 얼른 옷을 벗으려고 했다.

“···농담이야.”

“아, 그래? 요새 애들은 이런 농담을 하나보네.”

그러자 다시 옷을 제대로 입고서는 가서 수업 때 써먹어야겠다며 동네 모질이처럼 웃어댔다.

“글쓰기 수업은 좀 어때?”

“사람들도 다 좋고 재밌어.”

“다행이네.”

“근데 우리 딸이 열심히 번 돈으로 아빠가 이리 놀고먹어도 되는가 모르겠네.”

“놀고먹긴 무슨, 공부하는 거잖아.”

“돈 안 벌면 놀고먹는 거지.”

어린 나이부터 가장이 되어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일만하던 아빠는 일을 하지 않는 지금이 많이 어색한 듯 했다.

아빠가 자꾸 내 눈치를 보는 듯해서 망설이다가 입을 뗐다.

“아빠는 예전에 공부도 못하고 일만 했으니까···, 지금이라도 하는 거지. 미안해하지 마.”

그러자 아빠가 눈이 똥글해진 채로 나를 쳐다보더니 웃어댔다. 괜히 낯간지러운 소리를 했나 후회가 되려고 할 때쯤에 아빠가 다시 입을 뗐다.

“고마워 딸. 그래도 앞으로 이런 건 됐어···. 그냥 얼굴만 자주 비춰줘도 아빠는 충분해.”

“···알았어, 앞으론 자주 갈게.”

내가 자주 가겠다는 말을 하자마자 아빠는 갖고 싶은 선물을 가진 어린아이처럼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빠를 데려다준 후 집에 가 누우니 온종일 웃으며 있었던 아빠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아빠에게 수도 없이 많은 상처를 줬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기에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며 어쩔 수 없다고 핑계를 대고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그러나 겨우 옷 하나와 잠깐 바람을 쐬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좋아하고 늦은 나이에도 글을 배우려고 애쓰는 아빠를 보며 나도 늦은 감이 있더라도 아빠에게 효도까진 아니더라도 더는 상처주고 싶지 않고 잘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토록 모질게 굴어도 남들에게 효녀라고 말하고 다니고 나를 보고 싶어 하는 바보 같은 아빠는 내가 잘해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헛웃음에 가까운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뒤척거리다 하루종일 웃던 아빠의 얼굴을 또 다시 떠올리며 기분 좋게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났을 때엔 아빠에게 문자가 와있었다.

[우리딸.사랑해.곰아워.잘임꼬다일께.]

엉망인 맞춤법에 웃음이 나왔지만 그래도 단기간에 이렇게 알아볼 수 있게 문자를 보낼 줄 알게 된 것은 엄청난 성장이었다.

“금방 배우네···.”

글쓰기 수업을 들은 후 문자까지 보내며 하루하루 성장하는 아빠를 보며

나도 아빠에게 배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하루 빨리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사랑해.]

아빠에게 사랑을 받는 법은 배웠지만

사랑을 주는 것은 여전히 서툰 나는 배워야 할 점투성이인 모자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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