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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 창원대문학상 소설 부문 장려 - 현실같은 꿈, 꿈이 아닌 현실
  • 창원대신문
  • 승인 2024.03.04 08:00
  • 호수 709
  • 댓글 0

현실 같은 꿈, 꿈이 아닌 현실

조  희  수/인문대·철학과·2018 입학

 

“와와아아아~~~”

긴장되어 보이는 팀동료들, 멀리서부터 들리는 각자의 팀을 응원하는 서포터의 함성소리, 컨디션이 좋아보이는 상대팀 선수들... 드디어 바라고 바라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무대다. 옆에 있는 제이슨이 너무나 긴장해서 경직되어 있길래 한마디 건냈다. 

“제이슨, 긴장하지마 어차피 우리팀이 이길거야!” 

그러자 제이슨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박, 너는 어떻게 그렇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거야? 떨리지도 않아? 상대팀은 그 레알 마드리드라고!” 


“하하하, 내가 왜 확신에 차있는지 결과로 보여줄게! 너는 최선만 다하면 돼! 언제나 나는 경기의 주인공이었잖아? 자, 부담없이 재밌게 하고오자!” 


떨떠름한 표정의 제이슨을 뒤로 하고 경기장으로 향해 나아갔다. 많은 함성소리가 우리를 맞이한다. 경기장은 꿈의 극장, 올드 트램포드. 여기서 내가 존경하는 박지성 선수가 뛰었다는거지.. 매 경기 긴장되었겠는걸?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응원하다니. 우리팀은 이번 챔피언스리그의 돌풍팀, 프랑스의 낭트fc, 상대팀은 전통의 강호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 아무도 우리팀이 마지막까지 이변을 보여줄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는다. 하긴, 옆만 봐도 항상 웃던 얼굴이 굳어 무표정으로 있는 제이슨, 긴장해서인지 평소엔 안하는 기도를 하는 누누, 계속 장갑에 침을 뱉는 에르난데스... 친구들아 너희는 나랑 같은 팀이라 행운이다. 


매 경기 챔피언스리그를 뛸 때마다 들었지만 들을 때마다 항상 설레는 챔피언스리그의 음악소리가 끝나고, 서로의 진영을 결정하는 시간이다. 나는 동전의 앞면, 레알 마드리드의 주장 헨리는 뒷면을 선택. 주심의 손에서 동전이 던져졌다. 결과는 뒷면. 각자의 진영이 선택되고 나는 팀 동료들 사이로 가 주장으로서의 한마디를 한다.


“얘들아, 아무도 우리가 여기까지 올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어. 심지어 우리조차 말이야. 하지만 봐봐. 우리는 지금 여기에 서 있고, 우리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저렇게나 많이 왔어, 내가 처음 낭트에 왔을 때 우리는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할거라고 했지? 90분 뒤면 내가 한 말이 이루어질거야. 형제들아! 나는 했던 말은 지키는 사람인걸 누구보다 잘 알지? 자! 다신 안 올수도 있는 이 순간을 즐기고 오자!” 


나의 말을 들은 동료들은 언제 긴장했다는 듯이 누구보다 가볍게 경기에 임할 준비를 하는듯했다. 주심의 휘슬이 울리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레알 마드리드부터 전반전을 시작한다. 경기가 시작되고 30분이 지난 지금, 확실히 레알 마드리드가 잘하긴 한다. 주장 헨리를 중심으로 강한 압박으로 우리팀을 압박하는데 우리팀이 준비한 걸 제대로 못하고 역시 많이 밀린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는 우리팀. 잘하고 있구나 싶은 순간, 페널티박스 앞에서 패스실수를 한 잭슨,아.. 이건 골이다.. 역시나 실수를 놓치지 않고 골로연결하는 상대팀 공격수 헨리. 스코어는 1-0. 레알 마드리드가 한골 앞서 나간다. 감독이 소리치는 소리가 팬들의 함성소리를 뚫고 들린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잭슨에게 다가가 말한다. 


“잭슨, 나한테 길게 차줘 너한테 어시스트가 들어갈거야. 그리고 고개들고 임마! 60분이나 남았어.”


자책하는 잭슨을 뒤로 킥오프를 하러 갔다. 공을 패스하고 나에게 공을 길게 뿌려달라고 말하고 수비들의 빈틈을 향해 뛰어간다. 갑작스럽게 올라간 템포에 살짝 당황해보이는 상대팀 수비수들. 하지만 곧바로 내가 공을 편하게 받을 수 없게 거친 몸싸움이 들어온다. 수비수를 등진 채 고개를 들어 공의 위치를 보니 잭슨이 공을 잡았다. 잭슨과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잭슨을 믿고 빈 공간으로 뛰기 시작했다. 뛰는 동시에 뒤를 보니 공이 머리 위로 날아오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낙하지점을 향해 온힘을 다해 뛰었다. 수비수들이 거칠게 잡아챘지만 빠른 발을 이용해 이겨낸 뒤 정확히 공의 낙하지점을 예측해 공을 받아냈다. 공을 받은 후 고개를 들어보니 골키퍼가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거리를 좁혀 내가 슛을 하지 못하게 할 셈이겠지.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기도 전에 몸이 본능적으로 공을 툭 찍어 찼다. 그 순간 시간은 멈춘 듯 했고, 공은 천천히 포물선을 그리며 상대의 골대로 들어갔다. 골이었다. 팀원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나를 향해 뛰어왔고, 나도 팀원들과 기쁨을 나눴다. 결승전 무대에서 골을 넣다니.. 기분이 정말 날아갈 것 같다. 우리 팀을 응원하려 와준 서포터를 향해 세레모니를 한 뒤 다시 우리 진영으로 돌아갔다. 스코어는 1-1. 역습 한방으로 만들어낸 귀중한 동점이었다. 전반전은 남은 시간 레알 마드리드의 공세를 우리가 막아내며 1-1 로 끝났다.


라커룸에 들어가자 플랑코 감독님은 약간 상기되어 보였다. 후반전에 어떻게 플레이할지 멘데스 코치님이 설명을 한 뒤 플랑코 감독님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서 가운데로 모여 어깨동무를 하라고 했다. 


“모두 전반전에 아주 잘 해줬다. 비록 실수가 있었지만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는 법이야! 만약 이 경기가 지더라도 우리는 팀으로 진거지 누군가의 탓이 아니다! 그러니 잭슨, 고개를 들고 다시 경기장에서 너의 장점을 보여주면 된다! 후반전은 전반전과 다르게 우리도 압박해서 공격적으로 나갈거다. 우리가 계속해서 얻어맞는걸 보려고 팬들이 여기에 온 게 아니니 까. 여기는 올드 트램포드다! 꿈의 극장이라고 불리지.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걸 꿈꾸지. 꿈의 극장에서 우리의 꿈을 이뤄낼 시간이다. 장소는 준비되었고, 관객도 준비되었다. 이제 주인공인 여러분만 남았다. 남은 시간 우리가 꿈꿔왔던 것을 이뤄낼 차례다.” 


감독님의 연설이 끝나자 기분이 묘했다. 전반전을 꽤나 괜찮게 플레이했던 우리는 투지가 넘치는 전사같았다. 누구든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기세로 다시 경기장으로 향했다. 전력이 우리보다 우세했던 레알 마드리드가 오히려 초조해보였다. 마치 전반전이 시작하기 전의 우리 팀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짧은 쉬는 시간이 끝나고 우리의 공으로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후반전엔 감독님의 지시처럼 오히려 우리가 거세게 압박을 했다. 그러자 전반과는 다른 우리의 모습 때문인지, 아니면 격차를 벌리지 못했다는 압박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대편의 잔실수가 많아졌다. 우리는 이틈을 놓치지 않았고, 시작한 지 5분 만에 상대의 골문을 위협했다. 내가 중앙에서 받은 공을 빠르게 반대편의 제이슨에게 연결했다. 제이슨이 공을 받은 후 침투하는 누누에게 연결했고, 누누가 터치 이후 곧바로 슛으로 연결했다. 누누가 차는 순간, 골이다 싶었는데 아쉽게 골키퍼 손에 맞고 골대에 맞고 나왔다. 이 공을 상대편 수비수 마틴이 처리하면서 아쉽게 골로는 연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격이 나를 통해 마무리되었었는데 내가 아닌 동료의 마무리라니 흐름이 좋았다. 계속 이 흐름을 이어가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우리의 압박이 초반에는 예상치 못해서 잘 못 풀어나가던 마드리드는 이내 적응하고 우리의 압박을 곧잘 풀어나갔다. 이후 헨리의 원맨쇼가 펄쳐졌다. 중앙에서부터 드리블로 우리의 중원을 뚫어낸 후 마드리드의 팀동료인 멘디와 원투패스를 주고받은 후 조금은 먼 듯한 거리에서 중거리슛을 찼다. 공은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날라갔고, 에르난데스가 몸을 던져 손을 뻗어봤지만 공은 그대로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반박할 수 없는 완벽한 골이었다. 스코어는 2-1. 남은 시간은 70분. 아직 20분정도 남았다. 이제 내가 본격적으로 활약할 차례다. 레알 마드리드가 멘디를 빼고, 수비형 미드필더인데 실바를 투입하며 골을 넣은 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패스할 공간이 없자 뒤에서 공을 돌리고 있는 우리팀. 답답해서 내가 중앙까지 내려와서 공을 받았다. 공을 받은 후 우리 팀의 위치를 확인해보니 정말 패스할 공간이 없다. 어쩔 수 없지. 드리블을 하기로 마음먹을 후 중앙에서부터 속도를 붙여나가기 시작했다. 패스를 할 것이라고 예상과는 달리 내가 드리블을 하니 예상하지 못했던 공격수의 압박정도 는 쉽게 드리블로 이겨내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 남은 수비는 4명. 이제 아무 생각없이 공을 달고 앞으로 나가가겠다는 생각만 하고, 본능적으로 드리블을 하기 시작했다. 몸의 흐름에 맡겨서 공을 다룬다. 나도 그 순간은 어떻게 내가 공을 다루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부드럽게 드리블을 했다. 드리블 후 공간을 만들어 슛을 하려고 하는 순간 내 시야에 제이슨이 보였다. 슛하는 척 제이슨에게 패스를 건냈다. 나조차 예상하지 못한 패스였기에 제이슨에게 붙은 수비수는 없었고, 제이슨과 골키퍼 미트로비치와의 1대1 찬스. 제이슨이 여기에서 골을 넣는다면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첫골이다. 나는 너를 믿어 제이슨. 제이슨이 패스를 받은 후 골기퍼는 보지 않고 공만 보며 슛을 강하게 찼다. 이 공은 미트로비치의 머리와 팔 사이로 절묘하게 들어갔다. 제이슨의 골이었다. 스코어는 2-2. 시간은 85분. 당황한 쪽은 마드리드일 것이다. 추격당하는 쪽이 초조한 법. 동점을 만든 제이슨의 표정은 자신이 정말로 골을 넣은건가 하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얼른 달려가 제이슨의 얼굴을 향해 점프를 했다.


“내가 뭐라고 했어! 트로피는 우리거라고 했지? 첫골이 결승전에서 넣는 골이라니 축하한다 제이슨~!”


제이슨이 그제서야 평소와 같은 환한 미소를 짓는다. 다시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으로 경기는 시작되었다. 5분 동안 흐름을 찾기위해 총 공격하는 마드리드. 우리는 한방을 노리며 공격을 막아내었다. 추가시간은 5분. 상대의 코너킥 상황, 우리는 이것만 막아내면 다시 우리의 흐름으로 가져올 것을 노리며 최선을 다해 막아내기 위해 노력을 다했다. 켄이 올리고 뜬 공을 비야가 슛을 했다. 헤딩 슛을 에르난데스가 무서운 반사신경으로 잡아냈다. 잡아낸 것을 보자마자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우리의 역습이다. 시간은 90분이 지나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아드레날린이 폭발해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빠른 느낌이 들었다. 뛰면서 위를 확인해보니 공이 내 앞으로 정확하게 날라가고 있었다. 에르난데스, 한 건 하는구나. 총공격을 위해 우리 진영으로 수비수까지 올라와 었었던 마드리드의 공간에는 수비수가 하나뿐이었다. 공을 먼저 잡은 후 수비수를 제친 후 앞으로 치고 나가려고 하는데 뒤에서 내 다리에 깊은 태클이 들어왔다. 나는 그대로 다리를 부여잡고 쓰러졌고, 나에게 태클을 건 라모스는 다이렉트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했다. 팀원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와 상태를 물었다. 


“박! 괜찮아? 부서진 거 아니야? 뒤에서 엄청 깊게 들어갔는데.” 


나는 안심시키며 말했다. “괜찮아. 나 엄청 튼튼한거 알지? 퇴장시킬려고 아픈 척 한거야. 아프지도 않아 하하하” 


누가봐도 아프지 않을 수 없는 태클이었을거다. 하지만 나는 진짜 아프지 않다. 경기가 끝나기 직전 찾아온 프리킥 기회. 굳이 방금 쓰러진 내가 차겠다고 우겨서 내가 프리킥을 찬다. 이 기회를 실패하면 연장전까지 가야하는데, 아무리 상대가 1명 없다고 해도 지쳐 쓰러지기 일보직전인 우리팀이 이길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고 부담을 느끼던 그 때 나 스스로에게 말했다.


“너는 주인공이야, 임마!” 주문처럼 외우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호날두처럼 공을 처리했다. 공이 발에 얹히는 느낌이 좋았고, 공은 수비벽을 넘고 그대로 속력을 유지한 채 골문 구석으로 빨려들어갔다. 3-2. 역전한 것이다! 같이 경기를 뛰었던 동료들은 물론 후보, 감독, 코치들까지 전부 나에게 와서 함께 기쁨을 나눴다. 경기는 그대로 우리의 승리로 끝났다. 대이변이 펼쳐진 것이다. 경기장 위에는 실망한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누누, 어린아이같이 뛰어다니는 제이슨 등 기쁨으로 가득차있는 우리팀의 모습이 보인다. 나도 함께 기쁨을 나누지만 저들의 아픔에공감하기에 기분이 묘했다. 우승 세레모니를 하며 정신없이 보내다 호텔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잠이 들기 싫다.

"삐- 삐- 삐-"

듣기싫은 알람소리와 함께 어김없이 아침이 찾아왔다. 시간은 오전 7시30분. 방금 전과는 다른 힘이 없는 몸이다. 방금 전까지는 내가 주인공이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잠에 청해 본다. 잠에 들었다깼지만 시간만 10분 지나있을 뿐 다시 꿈에 들진 못했다. 이런 생활을 한지 어느덧 2년이다. 꿈 속에서의 세계와 현실세계에서 나는 동시에 살아간다. 갑자기 나에게 현실같은 꿈이 나타났다. 처음엔 우연인가 했다.

하지만 꿈속에서 잠에 들면 잠이 깨는 것을 몇 번 반복하고 나서는 나에게 꿈은 이제 다른 인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 이런 현상이 반복되었을 때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한 달 이상 꿈이 이어지자 꿈 속에서의 생활을 제대로 살아보고자 했다. 그래서 꿈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시작했는데 내가 현실에서 본 유명한 축구선수들의 플레이를 다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방금 꿈속에서 우승을 하고 돌아왔다. 꿈에서도 생활을 하고 난 뒤부터는 현실이 싫다. 현실에서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할 수 없다. 나는 여기서는 패배자지만, 꿈 속에서는 승리자이고, 주인공이다. 내가 내 세상에서 알아낸 것은 총 7가지이다.
1. 하늘을 날거나, 순간이동을 한다던지 등 비현실적인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2. 꿈 속의 세상의 사람들에게는 그 세계가 현실이다. 사실 나의 꿈인데 그것을 말하면 믿지 않는다.


3. 아프지 않다. 축구를 하면서 발목이 돌아간 적이있는데, 그때 전혀 아프지 않았다.


4. 꿈, 아니 이 세계에서는 내가 주인공이다. 무엇이든 쉽게 이루어진다. 재능이 흘러넘친다. 


5, 현실과 꿈은 무조건적으로 매치되지 않는다. 현실에서 유명한 연예인이 여기서는 유명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6. 현실같은 ‘꿈’이다. 꿈 속 세계에서 잠에 들면 진짜 ‘잠’에서 깬다.


7. 꿈 속에서 생활하여도 몸은 잠을 잔 것과 같은상태이다.


어느덧 시간은 오전 8시. 오늘은 아침 1교시가 있는 날이라 세수만 얼른 하고 가방을 챙기고 수업을 들으러 간다. 등록금과 부모님의 졸업 기대만 아니었더라면 그냥 게임이나 했을텐데.. 버스를 겨우 타서 겨우 겨우 수업 시작 전에 도착했다. 아는 사람이 없기에 조용히 강의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오른쪽 맨앞 가장자리. 거기가 항상 앉는 내 자리이다. 수업은 역시나 지루하다. 입시에 실패했고, 재수는 하기 싫어 대충 성적에 맞춰서 사학과에 왔더니 적성에 하나도 맞지 않는다. 지금 시대에 한자를 배워서 뭐 하나 싶고. 수업 때마다 공부는 안 하고 교수님은 어떻게 저렇게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시나 감탄하고 돌아온다. 수업이 마치면 애매한 공강시간이 찾아온다. 항상 학식으로 대충 밥을 먹는다. 오늘은 특히 맛이 없다. 가지볶음이라니.. 그냥 김치랑 대충 먹어야겠다. 대충 먹은 후 도서관에 가서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며 다음 수업까지 시간을 보낸다. 나는 게임이 참 좋다. 게임을 하면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시간이 빨리 가야 얼른 내가 원하는 세상이 찾아온다. 나머지 수업도 꾸역꾸역 다 들은 후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간다. 오늘도 한마디도 안 했군.. 버스 뒷자리에선 고등학생들의 대화 소리가 들린다. 참 좋을 때지.. 나른한 오후햇살에 비치는 버스 창가는 항상 옛 향수에 빠지게 하는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스스로 패배자라고 생각하게 된 시기는 군전역 후 대학에 복학하고 나서인 것 같다. 나도 고등학생 때는 평범하게 친구들과 두루두루 잘 지냈다. 점심시간엔 다 같이 급식을 먹고, 시험기간에 열심히 공부하고, 체육시간엔 축구도 같이 하고.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때도 인기가 많은 편은 아니라 주인공이라 생각은 안 했지만, 스스로 어느정도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어 패배자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서의 핑크빛 미래만을 꿈 꾸었던 학창시절이었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어느정도 했어 서울권 대학들에 호기롭게 원서를 넣었으나 수능 때 너무나 긴장하여 모의고사 때보다 성적이 훨씬 낮게 나왔다. 그때부터였을까. 스스로에게 자주 실망하게 된 것이. 성적표를 받은 후 성적에 맞는 대학에 그냥 들어가는가와 재수의 갈림길에서 나 자신이 공부를 1년동안 열심히 할 자신이 없어 공부에서 도망치듯 지금의 지방 국립 대학의 사학과에 들어왔다. 들어오고 싶었던 학과는 경영학과였는데 갑자기 사학과에 들어오니 동기들에게도 마음을 잘 열지 못하고, 편입이든, 전과든 할 생각으로 어영부영 보냈다.


그렇게 1년 간의 대학에서의 시간을 허비한 후 대학민국의 남자라면 가야할 군대에 육군으로 입대하게 된다. 군대는 은근히 체질에 맞았다. 시키는 것만 잘하면 에이스 취급을 해주니. 내가 자발적으로 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시키는 것만 하니까 편했다. 

남들은 군대 가 시간을 허비하는 곳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군대에서 바닥을 향해 추락하고 있던 나의 자존감 을 조금은 회복하는 아주 뜻깊은 시간이었다. 군대가 체질에 맞아 직업군인도 생각해봤지만 윗 직급들에게 항상 혼나는 하사들을 보면서 내가 저 상황이 된다면 나는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대로 전역을 했다. 전역 후엔 곧바로 복학을 했는데 역시나 대학생활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전역 후에는 학과생활을 해볼까 하고 각종 행사에 참석을 했으나 누구도 나를 반겨 주지 않았고,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나에게는 학과생활에 적응하기가 참으로 어려웠고 결국엔 혼자 학교에 다니고 있다. 전공공부 또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서 겨우 겨우 시험에 백지만 내지 않을 수준으로만 공부하는 등 참 어려운 생활을 지금까지도 보내고 있다. 고등학생들의 대화에서 여기까지 내 신세를 한탄하다니.. 또 나를 자책하며 집으로 걸어 간다.

저녁시간 쯤 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있다. 엄마 앞에서는 최대한 밝게 생활한다. 그래야 걱정하지 않으니까. 엄마는 항상 내가 뭐든 어떻게든 해내는 줄 안다. 학원에 안 다녀도 고등학교 때 좋은 성적을 받았다, 수능은 조금 못 쳤지만 그래도 국립대엔 들어갔다, 군대에 들어가서는 안 다치고 몸 건강히 전역했다 등 별것도 아닌 것에 나를 치켜세우는 것을 보면 내가 스스로 패배자라고 생각하는 것을 들키기 더더욱 싫어진다. 그래서 엄마 앞에서는 밝게 행동한다. 저녁을 먹은 후 엄마에게는 과제를 한다고 한 뒤 방에 들어와서 게임을 킨다. 게임은 그래도 친구들과 같이 할만한 수준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종종 게임을 같이 한다. 게임을 같이 하는 친구들은 유일하게 나와 연락을 하는 3명이다.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과는 대부분 연락이 끊겼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아침 8시부터 야자시간 오후 10시까지 같이 있다가 이제는 만나려고 노력해야 만날 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니 나처럼 먼저 다가가지 않고 소심한 친구들은 금방 잊혀지는 것이지.

그래도 나에게 꿈속의 세상이 있다. 그것이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자랑할 사람도 없고, 말한다해도 믿어주지도 않을 거지만. 군 전역 후 어영부영 살다가 나라는 존재가 정말 계속 살아도 되는가라는 의문이 들 때, 꿈이 라는 새로운 세상이 나에게 찾아왔다. 그 이후 그래도 살아갈 목적이 생겼다.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현실을 살아간다. 처음엔 잠만 자면 그 세계에서 눈을 뜰 줄 알고 잠만 계속해 서 자려고 노력했었다. ‘꿈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은 일상생활을 다 끝낸 후 피곤하게 깊은 잠에 들 때 뿐인 것을 알았다. 나머지는 그냥 일반적으로 시간만 흐르는 잠이다. 나는 밤에 잠 에 들 때마다 두렵다. 나의 세계에서 눈을 뜨지 않고 그냥 시간이 흐른 채 내가 눈을 뜰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일반적인 경우처럼 일시적인 꿈을 꿀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등 여러 가지 생 각을 하며 눈을 뜰 것을 기대하며 눈을 감는다.

“짹,짹,짹”

여유로운 아침햇살과 함께 아침부터 지저귀는 새소리로 눈을 뜬다. 옆에는 우승기념 샴페인이 있다. 오늘도 돌아왔구나.. 챔피언스 리그 트로피와 함께 맨체스터에서 낭트로 돌아오니 수많은 인파가 우리를 반겨준다. 특히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컸다. 하긴 어제 2골 1도움으로 내 활 약이 크긴 했지. 혼잡했던 공항 속에서 인터뷰를 몇 개 한 뒤에야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 제 모든 경기가 끝났고 새로운 시즌을 앞두고 휴가를 얻었다. 여기서 눈 떴을 때 가족은 없었다. 그 점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서도 가족이 있었다면 현실의 가족과 비교했을 것 같다. 동료들은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데 나야 눈 뜨면 한국이니까 그냥 파리에 잠깐 놀라갔다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금방 돌아올 생각으로 짐을 간소하게 꾸린 후 파리로 차를 출발했다. 낭트에서 파리까지 4시간. 오랜만에 운전하니까 재밌었다. 매일같이 운전하면 힘들겠지만.

낭트에서 축구선수로 뛰면서 경기하러 파리에 2번정도 오긴 했지만 온전히 파리를 구경하기 위해 오는 것은 처음이라 설렜다. 어차피 나는 동양인이라 모자쓰고 마스크쓰면 사람 들이 잘 못 알아본다. 그래서 편안하게 구경할 작정이다. 도착하고는 바로 호텔로 체크인한 뒤 푹 쉬었다. 내일 본격적으로 구경해야지. 잠에 들고 잠에서 깬다. 또 현실에서의 무기력한 삶을 살아간 뒤 다시 진정한 나의 세계로 돌아온다. 아침부터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한다.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해서 그런지 나를 알아보 는 것 같은 느낌을 보이면 후다닥 빠르게 지나쳐 귀찮은 일을 피한다. 모자라도 쓸걸 그랬나. 내가 이 세계에서 주인공이라고 해도 현실에서의 성격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래도 모두가 나 에게 호감을 보인다. 처음보는 사람, 인종, 성별, 나이에 상관없이 나에게 호감을 보인다. 그래 서 좋다. 현실에서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은 엄마뿐인데.. 여기서도 부정적인 생각이냐. 떨쳐내야지.

‘여기서 나는 주인공이니까!’

오글거리지만 위로가 되는 한마디를 크게 외친 후 전력으로 뛴다. 산책을 마친 후 호텔로 돌아와 파리 시내로 나갈 준비를 한다. 호텔 로비에서 부른 택시 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에게 무관심한 여자 한명을 보게된다. 이 세계에서 이렇게까지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이 있었나? 라는 의문이 들고 호기심이 생길 쯤 택시가 도착했다. 지금까지와 다 른 현상이 일어났기에 약간의 찝찝한 기분으로 택시를 타고 파리 시내로 나갔다. 파리에서 에펠탑도 보고, 르브르 박물관도 보고 여행유튜브를 보며 꿈꿔왔던 것을 꿈에서 이루고 있다.

이걸 이뤄냈다고 할 수 있나? 뭐 어때. 여기가 나한테는 진짜 세계인걸? 저녁을 먹은 후 호텔로 돌아오니 로비에 오전에 봤던 여자가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호기심에 계속 쳐다봤더니 눈이 마주쳤다. 프랑스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동양인. 그것도 한국인의 여성. 나는 여성에게 다가가 물었다.

“놀러오셨나봐요? 파리 외곽에서 같은 한국인을 마주치는 건 굉장히 특별한 일인데요 하하”

여성은 대답없이 나와 눈을 계속 마주칠 뿐이다.

“음.. 이것도 인연인데 저녁 같이 드 실까요? 제가 살게요!”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여성은 한동안 내 얼굴만 쳐다보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일어났다. 이 여자 뭐지? 여기서 이렇게까지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스러운데? 당황하며 레스토랑으로 간다. 레스토랑에 들어가 코스 요 리를 시킨다. 어차피 돈은 많으니까 제일 비싼 걸로 시켰다.

“제가 사는거니까 부담없이 드셔도 돼요”

여자는 여전히 말이 없다. 그냥 내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볼 뿐이다. 뭐지.. 말을 못하 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여기에선 행복해?”라는 여자의 질문이 훅 들어온다. “내 이름은 릴리야” 당황하며 대답한다. “어.. 네.. 뭐 행복하죠? 최근에 원하던 우승 트로피를 얻었거든요 하하 제 활약으로? 제 이름은 박세진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릴리씨” 뭐지.. 알고서 하는 말인가? 당황스럽다. 선선한데도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그 이후 음식이 나올 때까지 서로 눈만 마주치고 있다. 처음엔 내가 유명한 축구선수라서 쳐다보는 줄 알았다. 밥 먹 기 전까지는 이 여자가 지금까지 이 세계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을 받 았지만 이내 행복하냐는 질문을 듣고는 릴리라는 여자가 꿈의 세계 속 사람들과는 다르고 지금 의 ‘내’가 다른 세계 즉, 현실에서 왔다는 것을 알고 말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속이 울렁거린다. 맛있는 음식이 나오지만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의 생활과는 다른 상황이 찾아오자 이 꿈의 세계가 없어질수도 있을거라는 불안이 파도 처럼 나를 덮쳐왔다. “저기.. 박세진 선수 맞으시죠? 와! 정말 박세진 선수네! 정말 팬이예요. 실례가 안된다면 싸인 좀 부탁해도 될까요?” 수많은 생각들로 정신없던 중 나를 알아보고 싸인을 요청하는 부탁이 들어왔다. “하하.. 감사합니다. 어디에 해드리면 될까요?” 싸인을 하고 사진까지 찍은 후 나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릴리씨 제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오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그러곤 빠르게 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릴리라는 여자가 아무말없이 뒤를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방문 앞까지 내 뒤를 따라오자 나의 인 내심도 한계에 다달랐다. “저기요! 이렇게 뒤 따라오는 거 스토킹인거 아시죠? 당장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돌아가세요!” 나의 절규에 가까운 고함에도 릴리는 그저 내 눈만 쳐다보며 말했 다. “너가 나를 알아본순간을 기다렸어. 우리 대화하자.” 그게 무슨 소리지? 알아봤다니? 우 린 오늘 처음 본 사이가 아닌가? 온갖 의문에 혼란스러워할 때 릴리는 손에 있는 방키를 휙 뺏 더니 내가 열지도 않았는데 혼자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어안이 벙벙해 상황파악을 하고 있는 데 릴리가 덤덤하지만 안심이 되는 목소리로 말한다. “어서 들어와. 나는 대화하는 순간만을 기다렸어.” 대화하지 않으면 이 여자를 보낼 수 없다는 생각과 이 세계에 대해 아는듯한 여자 에 대한 궁금증으로 홀린듯이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끼익- 쿵.”

먼저 의자에 앉아있는 릴리. 나도 천천히 맞은편에 앉는다. “그쪽은 저를 아는 듯이 말하는데 저는 당신을 처음 보거든요. 혹시 우리가 마주친 적이 있을까요?” “나는 항상 너의 곁에 있었어. 아까도 말했듯이 너가 나를 이번에 처음으로 인식한거지.” 지난 2년간 이 세계에서의 기억을 아무리 떠올려도 이 여자를 본 기억이 없다. 특히 프랑스에 온 이후 한국인을 많이 안 봤는데.. 한국인 이름이 릴리라니. 사실 프랑스 사람인가.. “너는 ‘저 세계‘에서는 어떤 사람이 야?” 머리가 망치에 한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세계에서는 아프지 않으니 심리적 충격이겠지. 나에 대해 알고 있다고 의심은 하고 있었지만 확신이 되는 순간이다. 내가 충격받 은 얼굴로 한동안 말이 없자 다시 릴리는 나에게 질문한다. “너는 어떤 사람이야?”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떻게.. 음… 혹시 릴리씨는 이 세계를 만든 신.. 뭐 그런 존재인가요?” “아니 나는 이 세계를 만들지 않았어. 다만 너의 곁에 항상 함께 있었을뿐이야. 다시 한 번 물을게. 너는 어떤 사람이야?” 혼란스럽지만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면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할 것 같았다. “어.. 저는 뭐 이 세계에서와 비슷하죠. 축구만 안 할 뿐이예요 하하” 릴리의 표정을 살폈다. 아무런 변화없는 표정. 릴리는 담담하지만 단호한 말투로 다시 나에게 말했다. “솔직하게 말해줘. 박세진. 너는 어떤 사람이야?” 어지럽다. 한번도 솔직하게 나에 대해서 말해본 적이 없다. 현실에서의 나는 말할 사람도 없을 뿐더러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 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걱정할까봐 말할 생각도 해본적이 없는데 갑자기 이렇게 솔직하게 말 해달라니.. 내가 고민하는 동안 릴리는 아무말없이 내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어차피 여긴 꿈의 세계. 꿈에서라도 나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긴 침묵 끝에 입을 열기 시작했다. “… ‘저 서계’, 현실의 나는 여기와는 다르게 패배자같은 인생을 살고 있어. 나는 스스로 패배자라고 나를 정의해.” 속마음을 말하니 저절로 말이 편하게 나왔다. 릴리는 그런거 는 신경쓰지 않는듯이 다시 나에게 물었다. “왜 스스로 패배자라고 생각하는거야? 여기서는 주인공처럼 당당하잖아” “여기선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 당당한 모습이지.” “왜 그 러면 스스스로를 실패자라고 생각하는거야?” 내가 실패자인 이유를 생각만 해봤지 내 입으로 말해본 적은 없는데 말하려고 하니 망설여졌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누가 내 마음에 대해 물어보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먼저 25살이 될 때까지 이루어낸 것이 없어.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졸업을 위한 준비조차 하지 않아 아마 졸업도 유예하겠지. 그 흔한 자격증조차 따지않고 허영부영 세월을 보냈네.. 또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친구가 없진 않았는데 지금은 친구가 없어.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도 이젠 게임이 아니면 연락하지도 않고. 하루에 엄마와 대화할 때 빼고는 거의 말을 안 하는 것 같아. 잘하는 것도 없지. 잘하는 게 있었다면 그 쪽으로 진로를 정해서 갔을텐데.. 또 하고싶은 것도 없네. 남들은 작게는 간호사, 회계사 등 직업을 바라고, 크게는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웃음을 주는 사람 등 비전을 꿈꾸고 사는데 나는 의욕도 욕심도 없어. 그러니 자연스럽게 고등학교 때 꿈꾸던 밝은 미래는 커녕 당장 1년 뒤의 미래도 깜깜한 상태라고 생각해. … 고등학교 때 그리던 대학생의 나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 데..”

스스로를 돌아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내 볼을 타고 흘렀다. 눈물을 닦으며 말을 계속 이어갔다.

“엄마가 내 이름을 지을 때 세상을 향해 나아가라는 의미로 세진이라고 지었대. 그런데 지금 나의 모습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는커녕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어. 엄마는 내가 잘 하는 줄 알겠지.. 항상 거짓말로 엄마를 속이고 안심시켰으니까…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내가 나를 패배자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어…”

나의 말을 다 들은 릴리는 여전히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하.. 직접 말하고보니 현실의 나의 상황은 비참하다. 일어나면 또 현실을 살아야한다는 압박감이 내 목을 조여오는 느낌이다. 그래서 현실은 잊고 이 세계가 진짜 세계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한다. 현실의 내가 죽으면 이 세계가 진짜가 될까.. 사실 나도 안다. 이 세계는 꿈이라는 것을. 하지만 현실을 잊을 정도로 너무나 달콤해 여기에 빠져 산다. 이제는 현실에서조차 ‘꿈의 세계’를 기대하며 살아가는 수준이니. 남들은 ‘꿈’을 향해 아갈 때 나는 ‘꿈’을 향해 돌아간다. 내 이야기를 다 들은 릴리는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내 눈을 바라보며.

“나는 너가 ‘저 세계’에서 실패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내 생각엔 너 스스로 실패자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거지. 너는 실패자가 아니야. 무언가를 시도하지 않은 데 어떻게 실패자라고 할 수 있겠어. 또 너의 어머니는 항상 너를 믿어주신다며. 너를 응원하는 팬이 있는데 왜 포기하는거야. 여기에서 한 말 기억나? 팬들을 실망시키지 말자는 이야기? 너는 너를 가장 응원해주는 팬을 잊고 살아가고 있어.”

릴리의 말은 내가 마음 속 깊이 묻어놨 던 내가 외면하고 있던 현실의 문제들이었다. 나는 나를 실패자라고 스스로 정의하며 오히려 나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방어기제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충격에 빠져서 생각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릴리가 일어나며 말했다.

“자 여기. 이건 내가 너에게 주는 선물이야.” 갑자기 평범한 돌맹이를 식탁 위에 올려둔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모두 너를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해.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아. 나는 또 언제나 너의 곁에 있겠지. 여기서의 당당한 모습처럼 너의 세계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바라. 너가 변화하기를 바란다면 이 돌 맹이를 손에 쥐고 자. 그럼 안녕.” 말을 마친 릴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문을 열고 나갔다. 혼자 남겨진 나는 많은 생각에 빠졌다. 꿈 속에서의 멋진 나, 스스로 실패자라고 여겼던 현실의 내 모습, 꿈 속의 ‘박세진’이 진짜 ‘박세진’이 아님을 아는 여자, 그 여자가 남기고 간 돌 맹이. 릴리가 말한대로 이 돌맹이를 쥐고 자면 어떤 일이 일어나지? 그냥 지금과 같이 꿈의 세 게와 현실의 세계를 오고가거나 다시 꿈 속으로 돌아왔을 때 돌맹이가 없거나, 최악의 경우 다 시는 이 세계에 못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하고 릴리와의 대화 를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날이 밝아지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는 잠에 깬 지 24시간이 지나면 불 가항력적으로 잠이 찾아와 자야한다. 잠을 자야하는 시간은 다가온다.

그래도 이 세계에서 내가 하고싶은 것을 다하니까 이 세계를 택하고 돌맹이를 그냥 놔두려는 순간, 엄마 생각이 난다. 아 빠가 교통사고로 빠르게 돌아가신 후 엄마 혼자 온갖고생을 하며 나를 키운 우리 엄마. 항상 아빠없이 컸는데도 올바르게 자라줬다며 별볼일 없는 나를 사랑해주시는 우리 엄마. 내가 지금 처럼 계속 살아가면 언젠가 엄마도 나의 상태를 알거고 실망하고, 무척이나 걱정하시겠지. 지금 까지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 알아야하는 사실을 모른 척 외면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 사실을 직면했다. 이 평범한 돌맹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고민을 하나. 아니, 이 평범한 돌맹이를 잡는 것조차 나에게는 큰 다짐이고 도전이다. 자 이제 결정의 시간이다. 현실로의 도전이냐, 지금과 같은 생활을 하느냐. 정신이 몽롱해진다. 눈만 감으면 잠이 들 것 같은 느낌이다. 쓰러지듯 침 대에 몸을 맡긴다.

“삐- 삐- 삐-”

평소와 다름 없는 아침이다. 하지만 심경은 복잡하다. 평소처럼 머리가 눈을 찌르지 않게 머리 를 정리하기 위해 손을 이마로 올리는데 뭔가로 내가 머리를 쳤다. 설마.. 릴리가 놔두고 간 돌 맹이다. 평범한 돌맹이. 돌맹이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가만히 쳐다본다. 오늘은 토요일이라서 더 자도 되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돌맹이를 보며 지금까지 한심했던 내 모습들을 돌이켜본다.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이, 원래 나는 이러니까, 나를 받아주지 않으니까 등의 핑계를 대며 피하기만 하던 나의 과거들. 과연 내가 앞으로 변하고자 한다고 변할 수 있을까. 발전할 수 있 을까.. 문득 릴리의 말이 떠오른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 정말 내가 나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와 같은 현상을 겪은 사람이 있을까? 꿈의 세계를 경험하고, , 심지어 그 세계의 물건이 내 손에 있다. 이 돌맹이는 그냥 보기에는 평범한 돌맹이지만 나 에게는 꿈의 세계 사람들이 나를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증표와 같은 소중한 돌맹이인 것이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침대를 박차고 나간다. 차근차근 변화해보려고 한다. 물론 쉽지 않겠지. 항상 도망만 치고, 도전하지도 않았던 나니까. 하지만 이제는 도전하고 부딪쳐보려고 한다. 쓰 러져보려고 한다. 정말로 실패자가 되어보려고 한다. 평소와 같지만 다르게 방문을 열고 나간 다. 엄마가 아침을 하다말고 깜짝 놀라신다. “아니 아들?! 오늘 토요일인데 웬일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평소같으면 오후까지 자는 녀석이?” “하하하 엄마 오늘부터 제대로 살아보려고. 엄마가 지어준 이름대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보려고! 응원해줄거지?” “이 녀석이.. 아침부터 오글거리게 지금 뭐라고 하는거야? 잠을 잘못 잤나..” 평소와 다른 나의 모습에 장난스럽게 반응한 뒤 한마디를 더 붙인다.

“엄마는 항상 우리 아들 응원하지!”

평소와 다른 모습에 당황한 듯 보이지만 얼굴은 웃고 계신다. 이렇게 아침부터 엄마와 대화를 나눈 것이 언제였더라.. 시작 이 좋다. 고등학교 이후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다. 여전히 오늘 밤에 꿈 속 세계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떡하나라는 불안감이 불쑥불쑥 나를 찾아오지만 이제는 이겨낼 자신이 있다. 나는 이 현실에서도 특별한 존재이고 내가 나를 주인공이라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나를 주인공으로 생각 해주는 누군가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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