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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인문학?
  • 조수민 기자
  • 승인 2023.10.16 08:00
  • 호수 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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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문학은 어떤 학문인가?

포털 사이트에 ‘인문학’을 검색해 보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인문학(人文學)은 언어, 문학, 역사, 철학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이런 정의는 대단히 협소한 범위만을 포함하고 있어 정의라고 보기 어렵다. 관련 자료를 더 찾아보니, 인문학은 ‘humanities’의 일본발(發) 번역어다. ‘humanities’는 인류, 인간성, 인간애 등을 뜻하는 humanity의 복수형이다. 이렇게 언어의 뜻을 좇아 올라가다 보면 인문학이란 인간에 관해, 더 나아가 인간성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제대 인간 환경 미래연구원 이태수 원장은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고전을 공부하는 것이 인문학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보편적으로 인문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시발점으로 잡는 것이 태초 인간성에 관한 탐구를 진행했던 고전이다. 아주 멀게 느껴지는 그리스의 아테네 학당이나, 조선 시대 훈장님이 엄하게 회초리를 휘두르는 서당에서나 인간이란 무엇인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깊은 탐구를 이어 나갔을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학문을 행한다는 것은 철학을 한다는 것이었고, 이는 인문학이 학문계에서 유일한 위치를 독점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양분되기 시작했다. 이때 독일에서는 자연과학을 ‘자연학 (Naturwissenschaft)’이라 불렀고, 그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인문학은 ‘정신학(Geisteswissenschaft)’이라 불렀다. 자연학은 몸으로 표상되는 물질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 학문이었고, 정신학은 인간 정신이 역동하는 방식과 그 부산물인 언어, 역사, 예술 등을 이해하는 학문이었다.

세계가 물질과 정신, 두 가지로 양분됐다고 믿었던 근대에는 인문학이라는 큰 기둥만을 가지고 세계를 설명할 수 있었지만, 세계가 점점 다양화되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점점 복잡해지면서 ‘실증’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급기야 인문학의 주요 주제인 ‘인간성’에 대해서도 신경과학이나 인공지능 연구를 통한 실증적인 탐구 가능성에 대한 희망이 커지면서 ‘인문학 위기론’은 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 ‘인문학 위기론’은 무엇인가?

인문학 위기론은 199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된 문제다. KESS(국 가교육통계센터)에서 발간한 교육통계 분석 자료집의 고등교육 통계 편을 살펴보면, 연도별, 계열별 학생 수 통계에서 2000년도에 는 241,043명이었던 인문 계열 학생 수는 2012년 273,850명으로 최고치를 찍고 계속 하락해 2022년 208,787명으로 최저치를 찍었다. 비율로 살펴보면 ▲공학 ▲사회 ▲교육 ▲자연 ▲예·체능 ▲의약을 포함한 전체에서 2000년대 14.5%로 최고치를 찍고 3.4% 감소한 2022년 11.1%로 최저치를 찍었다. 전체적으로 학생 수가 늘었지만 교육(0.1%), 자연(3.3%)은 감소했다. 한편, 의약(3.7%), 예·체능 (2.4%), 사회(0.6%)에 진학하는 학생 비율은 증가했다. 그러나 공학 계열에서는 학생 비율이 2000년과 2022년이 29.5%로 똑같았고, 학생 수는 65,654명 증가했다. 교육 계열은 비율상으로는 감소했지만, 실제 학생 수에서는 6,660명이 증가했다. 따라서 기초 학문인 인문과 자연 계열에서 가장 높은 감소폭을 보였고, 실제 학생 수에서도 인문 계열은 32,256명이 감소했으며, 자연 계열에서는 28,261명이 감소했다.

실제 학생 수가 감소하면서 전공별 편중 현상은 점점 심해졌고, 인문학과 관련된 역사, 철학, 문학과 관련된 학과들은 기피 대상이 됐다. 실제로 철학과의 경우 그 위기가 뚜렷하다. 한국연구재단이 발간한 ‘변화와 위기의 인문학 연구와 교육의 역할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2011년 전국에 80개였던 철학과가 점점 줄어들어 2016년 70개, 2021년에는 60개로 절멸 위기에 놓였다.

‘인문학 위기론’이 학부생, 학과의 감소만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은 비약일 것이다. 그러나 전문적인 연구 진행과 후학 양성이라는 대학의 중요한 역할을 생각해 보면 위기론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3) 인문학의 미래, 학생의 이야기

Q.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A. 독어독문학과에 재학 중인 20학번 학부생이다.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익명으로 진행하게 됐다.

Q. 인문 계열에 진학하게 된 이유는.

A. 중학생 시절부터 영어나 일본어 같은 언어 과목을 좋아했다. 그래서 대학교 전공을 선택할 때도 어문 계열에 끌렸던 것 같다.

Q. 진학한 뒤로도 전공이 자신과 잘 맞는다고 생각되는지 궁금하다.

A. 그렇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도 흥미롭고, 문학 작품이나 유럽 문화에 대해서 배우는 것도 재밌다.

Q. 혹시 본인이나 동기들이 복수전공이나 전과 관련한 생각을 자주 하는지 궁금하다.

A. 저는 생각이 없지만, 동기들이나 주변에서는 언어만으로 취업이 힘들다는 현실 때문에 유럽에서라도 일을 할 수 있도록 복수전공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Q. 최근 인문학에 대해서 회의론이나 위기론이 많이 제기되는 것 같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인문 계열은 기피 대상이 됐다. 이에 대해서 인문학도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A. 철학이나 어문과 같은 인문학은 아주 옛날부터 있었고, 늘 존재했기 때문에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과학기술이나 새로운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Q. 인문학 전공은 취업이 어렵다는 말에 대해서 개인적인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A. 솔직히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선배들이나 주변에서 그런 경우를 많이 보기도 하고, 스스로도 취업 관련 생각을 하면 막막해지기도 한다.

Q. 마지막으로 같이 인문을 공부하는 학우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린다.

A. 취업과 같은 벽을 느끼면서 많은 좌절감을 느끼고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함부로 뱉어진 사람들의 말에 상처받지 않고 힘내서 열심히 탐구하다 보면 우리들의 시간이 올 것이라 굳게 믿는다.

(4) 인문학의 현재, 교수의 이야기

‘인문학 위기론’에 대해 윤애경 국어국문학과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인문학 위기론은 9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돼 온 문제다.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인문학이 왜 우리에게 중요한 학문인지에 관해서 설명 부탁 드린다.

A.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이 이뤄 놓은 문화 전반에 관한 이해를 다루는 학문이다. 즉, 인문학은 즉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실용 학문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삶에 대한 사유 자체를 확장하고 풍요롭게 열어주는 본질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 사회 체제가 어떤 방식으로 변화되어 가든 간에 그 역시 근본적으로 인간들이 누리게 될 삶의 조건이라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따라서 인간이 앞으로 누리게 될, 혹은 적응해 나가야 할 수많은 상황 속에서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인문학적 사고의 본질적인 가치는 희석되지 않을 것이다. 

현재 광속으로 발전하고 있는 과학기술과 신자본주의체제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자기 삶의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성찰하고 시대의 변화와 함께 호흡하며 진취적으로 나아가게끔 사고의 유연성을 열어주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인문학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삶에 여전히 가치 있는 학문이다.

Q. 그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인문학 위기론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짧은 식견으로 조사해 본 결과 학벌 사회의 만연으로 인한 획일적 입시 위주 교육에 따른 학문 다양성의 상실과 같은 원인이 조사됐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A. 인문학의 위기를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서 원인이 달라질 것 같다. 질문자가 지적한 교육 환경의 문제와 취업이나 승진 관련 거대한 사회 구조의 문제로 짚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인문학 자체에서 성찰해 볼 부분으로는 인문학이 시대의 변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데 미흡하지는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인문학의 본질적인 가치를 다양하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공유해 나갈 당위성과 필요성이 제기된다.

Q. 문사철이라는 용어가 멸시적인 어조를 가진지 오래된 만큼 인문·사회 계열의 학생들이 전공을 선택하면서 많이 망설이게 됐다. 과거에 비해 현재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실용 학문 전공에 대한 압박이 심해졌으리라 짐작되는데, 교수직을 해나가면서 느낀 점이 있는지, 학생들에게서 가시적인 변화를 체감하는지 궁금하다.

A. 인문학이 더 이상 인문학 그 자체로서 가치를 충분히 공감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수용되는 차원으로 그 가치를 재조명받고 있다. 최근 인문학은 대부분 고부가 가치 산업으로 부상하는 문화 콘텐츠의 일부로 집중해서 편향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 이런 인문학이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유의미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인문학의 정신이나 본질에 대한 진지하고 깊이 있는 성찰을 바탕으로 해야 다양한 방식으로 변신과 소통이 가능하리라는 점이다.

Q. 최근 AI나 첨단 과학의 발전으로 외려 과학과 인문학의 학문적 영역을 뛰어넘는 학제적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발명된 AI 챗봇 ‘이루다’가 인종·성차별적 발언을 그대로 학습하는 등의 문제에서 인문학이 소환되곤 한다. 이런 현상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이런 현상이 최근 김초엽 작가를 필두로 한 SF 문학의 강세와도 영향이 있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A. 언급한 문제들은 우리 사회에 내재한 문제들, 특히 뿌리 깊은 차별과 배제로 불화를 겪는 인간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과학 기술의 문제를 인문학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인문학과 과학기술이 협업해야 할 문제라기보다, 과학기술 발전의 내용 자체가 인간의 삶, 인간 사회의 문제들과 불가분의 관계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나온 문제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2010년대 말 이후 SF 문학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 현상이 단순히 과학기술 시대이기 때문이거나, 과학기술과 문학의 학제적 연구의 필요성 때문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SF 문학은 과학기술에 대한 발전상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미래 시대에도 여전히 소외되고 갈등하는 인간 삶의 문제에 귀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갈등, 불화의 문제는 관계의 문제이며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의 핵심을 예리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시사적이다. 

현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과학과 인문학 학제 간 연구 경향들은 과학기술 시대에 과학과 인문학이 분리될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에 대한 방증이라 할 수 있겠다. 과학기술 시대에 과학 발전의 이해에 대한 궁극점은 인간 삶의 내용으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Q. 인터뷰가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는데, 인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그리고 이 기사를 읽게 될 학우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린다.

A. 시대와 걸맞지 않은 듯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자괴감에서 벗어나기란 이 시대의 젊은 인문학 전공자로서 쉽지 않은 과제다. 그러나 이 시대는 전공 공부와 취업 분야가 일치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직업 세계가 지금도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과거에 없었던 직업들의 탄생은 이 직업의 내용이 있어야 하는 사람들의 요구로부터 나온다. 결국, 모든 인간 사회의 다양한 삶의 형태가 인간에 대한 이해로부터 비롯된다. 돈과 광속의 과학 기술을 중시 하는 거대한 사회체제에 몸을 맞추는 퍼즐 형 인간보다는, 시대와 가치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인문학도로서 인간 삶에 대한 폭넓은 사유를 소통의 무기로 삼아 자기 삶의 주체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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