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킬러문항 배제’를 꺼낸 윤석열 정부. 사교육을 감소하고 공교육 범위 내에서 수능 문제를 출제해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학생과 학부모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상위권 대학 진학을 위해선 꼭 맞춰야 한다고 여겨지는 킬러문항. 킬러문항이 사라진 수능 시험지는 어떨까? 킬러문항이 무엇인지 낱낱이 파헤쳐 보고, 킬러문항을 없애고자 하는 이유와 킬러문항을 배제하고 치러졌던 9월 모의평가 분석을 통해 수험생들의 생생한 반응을 살펴보려 한다.

[대입제도 변천사]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생일대의 시험, 수능. 학벌 주의가 판을 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수능은 매우 중요한 행사다. 수능 당일이면 회사원들은 출근 시간을 늦추고, 국방부는 큰 소 리가 나는 훈련을 자제하며 심지어 비행기 이착륙도 금지한다. 출 제위원들은 1~2개월 정도 철저한 보안 속에서 생활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그런 수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처럼 대학 입학 시험 방법이 바뀐 것은 이번이 처음일까? 그렇지 않다.

1945년 광복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대입 제도는 총 18번의 변화 를 맞이했다. 이를 크게 세 가지 시기로 나눠 볼 수 있다. 첫 번째 는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 정권 시기였던 1969년부터 1980년까지 치러진 예비고사 세대다. 이 시기엔 예비고사와 본고사로 학생들의 대학 입학이 결정됐다. 예비고사는 본고사보다 먼저 치는 시험으로, 각 대학에 지원해 본고사를 치를 수 있는 능력이 되는지 그 자격 여부 판단을 위한 시험이다. 본고사는 각 대 학에서 자체적으로 시험을 치르고 학생을 선별하는 고사로, 이 시 기 정부는 시험일이나 과목만 결정할 뿐 시험 출제나 신입생 선발 은 전적으로 대학에 맡겼다. 그러나 고사 출제와 채점 권한이 전적으로 대학에 있다 보니 입시 비리가 끊이지 않았고, 본고사의 난도가 극악의 수준에 달해 사교육을 받지 않고는 문제를 푸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부작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결국 1982년부터 1993년까지 본고사가 전면 폐지되고, 신군부가 들어오며 7.30 교육개혁 조치로 국가가 주도하는 학력고사로 대입 제도가 바뀌게 된다. 학력고사는 고등학교 3년간 이수 과목을 정 리해 학력고사와 내신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제도다. 출제 과목은 총 14과목으로 거의 전 과목이 출제되다 보니 누가 더 많이 외우 느냐가 시험의 당락을 좌우하기 시작했다. 또, 경쟁 교육과 대학 줄 세우기 논란 등 각종 부작용을 낳으며 10년도 채 넘기지 못하 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후 1994년부터 지금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됐다. 학력고사 의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암기 위주가 아닌 통합적 사고력을 키우 자는 취지로 미국의 SAT 시험을 본떠 만들어졌다. 그러나 수능도 완벽하진 않았다. 학생들을 성적으로 줄 세운다는 비판에 직면해 다른 평가 요소인 수시 제도와 2013년 학생부 종합전형의 도입으로 오늘날의 우리가 알고 있는 대입제도가 완성됐다.

[ALL KILL]

킬러문항은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출제되는 문제 중에서 어떻게 해서든 학생들이 틀리게 만들려는 의도가 다분한 초고난도 문제 로, 응시생들의 점수와 정신을 ‘kill’ 한다는 뜻으로 통한다. 일반 적으로 킬러문항은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을 출제하거나, 학습하는 교과목의 수준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사고력과 추론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적당히 어려운 ‘준 킬러’ 문제는 사고 력과 추론력을 높여 긍정적인 장치로 활용된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킬러문항의 역사는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 에 EBS와 수능의 연계율을 70%로 높이기로 결정된 이후 킬러문 항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킬러문항을 만든 가장 큰 이유는 ‘변별 력 확보’ 때문이다. 연계율이 높아진 만큼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 지 않는 내용을 다루거나, 난도가 매우 높은 문제를 출제하는 것 이 학생들의 수준을 측정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또, 킬러문항에는 수험생들에게 도전 의식을 심어주고,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를 주기 위한다는 취지도 담겨있다.

그러나 시험 범위 축소 및 교과 내용 감축 등으로 적당히 어려 운 수준의 문제로 변별할 수 없을 경우 필요 이상으로 난도를 높 이게 되는데, 이러한 킬러문항은 공교육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 추가로 사교육을 활용하는 것이 필수조건이 돼 버렸 다.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문제는 학생들에게 소위 정신력이 붕괴 한다는 뜻의 ‘멘붕’을 선물하며 수년간 수능 하나를 위해 달려왔 던 학생들에게 최악의 결과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교육부가 발표한 최근 3년간 수능과 2024학년도 6월 모의평가에 출제된 킬러문항과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2022학년도 대학수학 능력시험에 출제된 수학 29번, 30번 문제 모두 대학에서 배우는 개념을 활용해 푸는 것이 가능해, 고등학교 수준 이상으로 심화학 습을 한 학생은 출제자가 기대하는 풀이 방법 외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학생별 유불리 및 과도한 선행학습을 유 발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영역의 15번 문제의 경우 과학 및 수학 분야의 내용을 다루고 있 는 어려운 지문을 제시해 국어 독해력보다는 ‘기초 대사량, 상용 로그, 비례를 나타내는 그래프, 최소 제곱법, 대사 체중, 클라이버 의 법칙’ 등에 대한 배경지식의 차이와 수학적 이해 능력이 문제 해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킬러문항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이처럼 공교육에서 학습한 내용 이상의 수준을 요구하는 킬러문항은 좋은 사교육 인프라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비교 우위를 가지고 애초에 킬러문항을 만든 취지에서 벗어나, 쉽고 빠르게 맞추는 요령을 익히는 데 집중하게 돼 공정성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Kill the 킬러문항]

이러한 킬러문항의 폐해는 이미 곳곳에 드러나 있다. 교육과정평 가원은 수능의 성격에 대해 “고교 교육 과정을 벗어나는 영역에 서 문제 출제는 안 된다는 게 당연한 원칙인데 이를 당연하지 않 게 받아들이는 부조리가 작금의 현실”이라 꼬집었다. 그리고 임종성 전 서울시립대 영어학 교수는 2024학년도 6월 모의평가 34 번 지문이 사우스이스턴 노르웨이대학의 다니엘 루빈스타인 교수가 쓴 책 《How Photography Changed Philosophy(2023)》이 라 밝히며 “이 책은 사진과 철학 분야 학자를 위한 것”이며 “고 교생이 이런 책에서도 극히 일부 문단만 보고 내용을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1994년 시행 이후 주입식 교 육과 문제 풀이를 기술로 점철된 수능은 그 역할을 다했다”며 “이 제는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논술을 강화하는 쪽으로 입시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잇따른 비판으로 위기에 놓인 킬러문항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학교 수업만 열심히 따라가면 수능 문제 를 풀 수 있도록 출제하라고 지시한 지 나흘 만에 열린 당정 협의 회에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 은 수능 출제를 배제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특히 이른바 킬러문항 이 수능에 나오지 않게끔 하겠다며 “킬러문항은 학생과 학부모의 눈높이에서 핀셋으로 철저히 제거하겠다”고 공언했다. 킬러문항이 시험의 변별력을 높이는 쉬운 방법이지만,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근본 원인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킬러문항 폐지에 대한 반응이 마냥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킬러 문항이 모호하다’, ‘쉬운 문제만 내는 것은 오히려 입시를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사교육 시장이 줄어들지 의문이다’는 우 려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학원가에서는 2010년대 후반 부터 중간 난도의 문제에 특화된 강의로 학생을 유치해 왔기에 오 히려 사교육이 더 활성화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며 중간 난도의 문제가 확대되며 사교육 경감 효과가 희석될 것이라는 우려가 퍼 져나가고 있다. 실제로 이런 현상에 대해 서울 강동구의 한 학원 강사는 “킬러문항 공략으로 유명해진 극소수 일타강사들만 타격 을 입고 나머지 학원들은 반사효과를 얻을 것”이라며 “중위권 학 생들이 난도가 낮아진 것을 계기로 더 많이 학원을 이용할 수도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변별력 확보가 가능한지에 대한 우려에 정부는 “공정한 수능은 쉬운 수능, 어려운 수능이 아니라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문제를 배제하며 적정 난이도로 시험의 변 별도를 갖춘 수능이다”며 “출제 기법을 고도화해 킬러문항 배제 이후 수능에서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K-고3이 본 현황]

수능을 두 달 앞둔 9월 6일(수), 킬러문항이 배제된 9월 모의평가 가 치러졌다. 킬러문항이 배제된 9월 모의평가, 과연 어땠을까? 주요 과목별로 영향을 알아보자

교육계에 따르면 수학은 상대적으로 쉽게 출제돼 킬러 배제로 변 별력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종로학원 표본조사 결과, 6월 모 의평가 대비 ‘미적분’은 원점수 기준 4.4점, ‘기하’는 5.2점, ‘확률 과 통계’는 3.0점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킬러문항이 빠지며 난 도 조절에 실패한 것이다. 기존에 킬러문항으로 여겨지던 ▲세 가지 이상의 수학적 개념이 결합한 문제 ▲고차원적 접근 방식 ▲대 학 수준 개념을 활용하는 문제가 출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EBS 체감 연계율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통과목 12번 문제는 EBS 수능 완성 4회 모의고사 문제와 일치했고, 20번 문제는 EBS 수능 완성 3회 모의고사 문제와 똑같았다.

반면 국어와 영어는 킬러문항 배제에도 난이도 조절에 성공해 변 별력을 확보했다. 난이도는 작년 수능과 올해 6월 모의평가보다 높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답률이 60% 미만 문항이 12문제 로, 6월 모의평가가 5문제였던 것에 비해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 다. 그러나 킬러문항이라고 볼 만한 문제는 없었다는 것이 변별력 확보 성공의 요지다. EBS를 비롯한 사설학원들에 따르면 ‘독서’에 서 가장 어려웠다고 여겨지는 ‘조선시대 신분제’ 지문은 EBS 수 능 완성 실전 모의고사에 수록됐고, ‘미세 물질 질량 측정과 압전 효과’에 관한 지문은 EBS에 수록되진 않았지만, 배경지식 없이도 지문을 숙지하면 풀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영어는 초고난도 문항은 없었지만, 까다롭게 출제된 것으로 밝혀졌다. 헷갈리기 쉬 운 선택지 구성을 통해 변별력을 높인 것이다.

성공하지도, 실패하지도 않은 9월 모의평가. 학생들은 어땠을까? 킬러문항이 삭제된 마지막 모의평가를 통해 본 수능의 전략을 세 워야 하는 학생들은 혼돈에 빠진 모습이다. “한번 본 모의평가를 통해 본 수능 난이도를 가늠해야 해 불안하다”, “수학이 변별력이 없어서 본 수능 때 동점자가 대거 발생해 등급 컷을 못 맞출지 걱 정된다”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잇따랐다. 킬러문항 폐지를 주제로 학생들을 인터뷰한 스브스 뉴스에서도 학생들은 ‘노력하지 않았 던 친구들이 풀 수 있는 문제가 변별력이 없어진다고 해야 할까?’, ‘어떻게 공부법을 바꿔야 할지 모르겠다’, ‘몇 년 동안 킬러문항을 정확하게 풀려고 훈련해 왔던 것이 물거품이 된 것 같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킬러문항 배제는 사교육을 배제하고 공교육 속에서 동등한 기회 를 제공하겠다는 좋은 취지를 가졌다. 그러나 정부의 최근 발표는 너무 늦거나 갑작스러운 발표로 오히려 그 당사자인 학생들에게 혼란만 불러일으킨 것 같아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진행했거나 올해 초 혹은 작년 말부터 준비했다면 학 생들의 혼란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렇게 국가 교육 시스 템의 핵심 가치인 공정성과 평등성을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한 지금 이 적극적인 발걸음을 옮겨 더 나은 국가 교육시스템을 만들 적기라 판단된다.

<저작권자 © 창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