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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창원대신문
  • 승인 2023.10.04 08:00
  • 호수 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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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이 떠들썩했던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에도 안타까운 소식이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의정부와 대전의 초등학교에서도 악성 민원으로 인한 업무 스트레스로 교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건이 보도됐다. 잇따른 비보에 국민들은 안타까움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고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법과 제도를 향한 불신은 커져만 갔다. 비극적 사건이 끊이지 않자,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외치던 사람들은 더 이상 목소리만 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온라인상에서 가해 학부모를 추정해 신상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공권력의 테두리가 이제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한 사람들이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이다.

‘국가 또는 공공의 권력이나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 개인이나 사적 단체가 범죄자에게 벌을 주는 일’을 뜻하는 사적 제재는 SNS 개인 계정 또는 채널을 통해 가해자의 신상을 유포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개인이 SNS 계정을 통해 가해자의 상세한 개인정보를 폭로하면 많은 사람에게 빠른 속도로 확산된다. 실제 ‘의정부호원초등학교 이영승 선생님’이라는 이름의 계정으로 의정부 교사 사건 학부모의 신상뿐 아니라 학생이 다니는 대학교까지 공개됐다. 대전 교사 사건도 마찬가지다. 가해 학부모 관련 정보를 올리는 SNS 계정이 등장하는가 하면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로 학부모가 운영하는 사업장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를 안 일부 시민은 해당 음식점 찾아가 비난 섞인 내용과 함께 ‘살인자’라고 적힌 쪽지를 붙였으며 달걀을 던지고 케첩을 뿌리기도 했다.

사적 제재, 보복의 양상은 가해 학부모 신상 공개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과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해 큰 화제가 됐던 ‘카라큘라 탐정사무소’ 유튜브 채널, 양육비를 주지 않는 사람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설 사이트 ‘양육비 안 주는 사람들’,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는 사람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설 사이트 ‘나쁜 집주인’ 모두 사적 제재를 가하는 사례다. 심지어 서울 강서구 의원이 자신의 SNS를 통해 부산 돌려차기 가해자 신상을 게시하기도 했다. 가해자의 만행에 공분을 느끼고 불안에 떨며 수사·사법기관의 절차를 기다리기보다 개인의 즉각적인 처리, 일명 ‘사이다 대처’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시민들. 그렇기에 사적 제재는 ‘인과응보’, ‘피해자의 아픔에 대한 정당한 응징’이라 여기는 대중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심지어, 신상 폭로자에 ‘영웅’, ‘사이버 자경단’이라는 이름을 붙여 그들을 칭송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적 제재는 명예훼손,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될 수 있는 엄연한 위법행위일뿐더러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이미 대전 교사 사건만 해도 가해 학부모의 사업장으로 알려진 곳이 실은 아무런 연관도 없는 곳인 걸로 밝혀지며 애먼 곳이 피해를 당한 사례가 있었다. 무분별한 비난은 엉뚱한 곳으로 향하기 쉽다. 또한 정당한 절차, 정확한 증거 없이 법을 어기며 자극성만을 쫓는 사적 제재, 보복 콘텐츠들이 난립하면 이는 사회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 피해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가해자 색출에만 혈안이 돼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해선 안 된다.

많은 사람이 사법 체계에 회의를 느끼는 현상이 사람들이 생각했던 처벌과 다른 관대한 형벌이 이뤄지며 실제 처형과 국민의 법 감정 사이에 간극이 발생해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난세의 영웅이 아니다. 강력한 처벌만이 완전무결한 사회를 만드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우리는 그저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지켜보고 안심할 수 있는 당연한 사회를 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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