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론
나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 창원대신문
  • 승인 2023.03.13 08:00
  • 호수 696
  • 댓글 0

“나이는 어디로 먹었냐”, “네 나이가 몇인데”, “그 나이에 그러면 안 되지”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말이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무엇을 하건, 나이라는 요소는 항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20살에 대학 입학을 하고 20대 중반에 졸업하면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취업 전선에 뛰어든다. 서른살쯤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삼십대 중반이 지날 때쯤이면 모두 결혼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며 가정을 꾸리는게 ‘당연한’ 일이 돼버렸다. 이 암묵적인 룰에서 조금만 벗어나 연령대에 맞지 않는 선택을 하면 바로 무모하거나 철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이처럼 한국 사회는 유독 나이별로 해야하는 일에 대한 의무감 이나 선입견이 크다. 세상 어디에도 ‘연령대별 행동 강령’은 존재하지 않는데 말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면 자신의 나이를 돌아본다. 그냥 나이가 발목을 잡는 일은 허다하다. 단지 숫자에 불과한 나이가 나를 판단하는 잣대가 됐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우리는 ‘나이’라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 어리다는 이유로 선택권을 빼앗기거나 의견을 묵살 당하기도 하고, 나이가 많다고 일을 도맡아하는 형벌을 받는 그런 감옥 말이다. 그러나 최근 사회에서 요구하는 연령대별 행동양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아나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들려오며 인식이 바뀌고 있다.

지난해 화제의 인물이었던 허준이 교수는 한국인 최초로 ‘필즈상’을 수상했다. 필즈상은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국제수학자대회에서 주는 상으로, 노벨상에 수학 분야가 없어 ‘수학계 노벨상’이라고 불린다. 이런 사실만 두고 본다면 허 교수는 어릴 적부터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수학 외길’만 팠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시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기도 했고, 대학에 입학한 후 F가 수두룩한 성적표를 받아 학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수학에 빠져들게 된 것은 대학 과정 6년 중 5년째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허 교수에게 ‘늦깎이 도전자’라 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늦깎이 도전자는 허준이 교수뿐만이 아니다.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와 같은 작품을 제작한 이경미 감독 또한 늦깎이 도전자 중 한 명이 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이감독은 ‘이 일이 내게 어떤 보상을 주지 못하는 일인데 미련이 남아 끌려다니면 안되겠다’는 결심이 서 퇴사를 하고 무작정 영화 공부를 시작했다. “스스로 나이가 많아 지금 뭔가를 배우는게 매우 위험하고 늦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봤을 때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한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연령대별 행동지표를 벗어나 행동하는 사람 중에는 연령대가 어린 사람들도 많다. 중·고등학생 중에서 문구류 사업을 펼치거나 의류 사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성인을 대상으로 사업장을 펼친 청소년들도 있다. 지난달 18일(토) 방영된 JT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실제로 무인 복사기를 운영하거나 직접 디자인한 굿즈를 토대로 협력 사업을 펼치는 10대 젊은 사장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나이만 보고 마냥 어리다고 막아서면 안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사례들이다. 이들이 ‘나이’라는 숫자에 얽매여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이들의 가능성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을까?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도전만 하면 무조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듣기 좋은 소리만 늘어놓고자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이경미 감독은 무일푼으로 생활하면서도 꿈을 놓지 않았고, 10대 사장들은 한참 나이를 먹은 어른들이 하기도 힘든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그들은 사업을 위해 상 권을 분석하느라 머리를 싸맨다. 이처럼 이들의 경험담은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하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면 인생의 새 페이지를 써 내려가진 못했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이는 그 사람의 성숙도와 행동 지표를 결정하는 기준이 됐다. 한 사회와 집단이 적응력이 떨어지고 위험해지는 때는 다양성이 사라질 때라고 한다. 우리 사회와 집단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개개인을 위해 서라도 나이로 사람을 판단하고 바라보는 시선은, 그로 인해 도전을 포기하는 일들은 줄어들어야 할 것이다. 거창한 성공만이 성공은 아니니 ‘나이’라는 족쇄에 얽매여 본인의 꿈을 포기하기보다는 작은 도전이라도 해 보자. 이 고민을 하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순간이다.

<저작권자 © 창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창원대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