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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창원대문학상 수필 부문 당선 - 동일 판례, 상이 견해, 시선의 차이일 뿐입니다
  • 창원대신문
  • 승인 2023.03.02 08:08
  • 호수 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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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 판례, 상이 견해, 시선의 차이일 뿐입니다.

김채윤 (법학과 4학년)

 

사각사각. 오늘도 펜을 움직인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뒤척이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그만 눈이 번쩍 뜨이는게 아닌가. 다시 잠을 청하려고 애써 눈을 감아보지만 유리에 빗맞아 튕겨나가는 빗소리가 내 심장도 울리게 만든걸까. 두근두근.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 떨림이 이어졌다. 요란한 심장소리를 다독일겸 새벽잠을 포기하고 책상 위에 앉아 어젯밤에도 끄적거리던 토익 책을 펼쳤다. 어지러운 활자들 사이로 창밖에 내리는 빗줄기보다 더 시원한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빗발치는 빨간 비에 절로 한숨이 나오더라.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니 그칠 기미가 보이지도 않는 자욱한 먹구름 아래로 가을비가 세상을 적시고 있었다. 토독토독. 떨어지는 빗방울 사이로 겨울이 다가온 것이다. 비가 내린 후에는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질거라고 뉴스에서 떠들어 대더라. 며칠 전만해도 바닥에 널부러진 지뢰를 피하느라 정신없었는데. 겨울이 다가왔다는 건 종강도 다가왔다는 것. 이전 같으면 다가오는 방학에 들떠있을 시기이지만 지금의 난 압박감에 지쳐 널부러져있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감각이 나의 취업 압박을 더욱 재촉해댄다. 컴활도 따야하고 토익도 해야 하고, 전문 자격증 시험도 도전해야 할는지... 지나가는 발걸음에 한없이 채이다 끝내 짓이겨져 버린 은행더미가 마치 내 심정같아 나도 모르게 동정어린 시선으로 내려다 보곤 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추적이는 빗물에 속이 터진 은행내음이 자욱하게 공기 속에 젖어 있었고 난 강의실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내가 맡은 정당방위 발표가 있는 날이라 평소보다 1시간 일찍 강의실에 도착해서 발표 준비를 했었다. 형법 판례 시간에 있는 한 번 뿐인 발표라 더 신경을 곤두 새우고 준비한 것이다. 피피티의 내용 구성도 관련 있는 동영상 자료를 넣으려고 얼마나 유튜브를 뒤적였는지 모르겠다. 이번 발표는 정당방위와 관련된 김보은 사건에 대하여 발표하는 시간이었는데 여러 내용 가운데서도 정당방위의 인정요건에 관하여 학설과 판례의 대립되는 부분에 중점을 두고 준비를 했다. 김보은 사건은 워낙 형법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양아버지의 강간 사건이다보니 대략적 줄거리를 학생들도 많이 알고 있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사건의 전개보다도 특히 대법원과 학계의 견해차를 중점적으로 발표하면 좋겠다는 교수님의 코멘트가 발표의 메인을 결정하는데 한몫했다. 내 발표의 메인디쉬는 침해의 현재성 인정여부였다. 정당방위 인정요건 가운데 침해의 현재성이 있는데 판례에서는 이를 인정하지만 학계에서는 이 부분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 침해의 현재성을 인정하는 것은 소위 말하는 ‘예방적 정당방위’라고도 하는데 학계에서는 예방적 정당방위에 대해서 극히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정당방위의 과다한 허용이라는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준비한 대본과 아침에 급하게 추가한 논문까지 인용해서 무사히 발표를 마무리했다. 분명히 처음 단상에서 마이크를 잡는 그 순간에 내 심장박동 소리만 들리는 듯 했다. 쿵쾅쿵쾅. 요동치는 심장 녀석 덕분에 정신도 혼미해져 시야가 슬로우 모션으로 흘러갈 때 즈음 가까스로 입을 뗐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형법 판례 시간에 정당방위와 관련된 사건인 김보은 사건에 대하여 발표를 맡게 된 법학과 19학번 김채윤입니다. 반갑습니다.” 처음 말문을 트는 건 너무 힘겨웠는데 인사를 하고 나자 물꼬를 튼 것 마냥 말이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 김보은 김진관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며 그들에게 감정이입하여 열변을 토로하기도 했고 현재 정당방위의 인정이 지나치게 힘든 현실의 고충에 대해서도 토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나의 메인 디쉬였던 침해의 현재성에 대한 견해의 대립에 가장 힘을 주며 발표를 멋들어지게 해냈다. “지금까지 발표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터져나오는 박수소리가 너무 컸던 탓일까. 단전에서 엄청난 희열과 뿌듯함이 벅차올랐다. 짝짝짝짝. 강의실을 가득 메우던 박수소리가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벅차오른 감정도 잠시, 발표를 끝내고 나와 학내 휴게실에 가서 라면 하나 끓이자 부풀었던 감정이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힘들긴 했지만 내가 열심히 준비한 화면을 초롱초롱하게 바라봐주던 사람들의 눈초리에 나도 모르게 사건에 감정까지 이입하며 열변을 토하던 무대 위의 나는 사라졌다. 그저 김이 새어나는 컵라면 위에 나무젓가락 하나 얹어놓고 각종 공기업의 인턴 공고를 연신 스크롤 내리며 살펴보느라 바빴다. 하... 토익 점수를 먼저 올려야 하나, 컴활을 1급으로 올려서 다시 따야 하나. 휴대폰에서 눈을 거두고 사발면으로 눈을 돌리는데 꿈뻑 꿈뻑 스며 나오던 김이 보이지 않았다. 급하게 뚜껑을 여니 이미 오동통해져버린 면발이 반신욕하며 나를 보고 있는게 아닌가. 착잡해진 국물만큼이나 내 마음도 착잡했지만 어쩔 수 없이 통통한 면발을 입안에 있는대로 우겨넣었다. 직전에 발표를 끝내고 와서 그런지 라면을 우걱우걱 씹어넘기는데도 머릿속에서는 학설과 대법원의 견해가 계속 대립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똑같은 사건인데도 이렇게 결론을 정반대로 지을 수가 있나. 법학을 배우며 여러 판례를 접하다 보면 종종 느끼는 내 감상이었다. 특히 별표 다섯 개는 박힌 것 같은 전원합의체 판결문을 접할 때에는 오히려 다수의견보다도 소수의견이나 반대의견의 논리에 박수를 보내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의례 과제로 해내는 판례 보고서의 마지막은 늘 내정되어 있다. ‘대법원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과제를 준비하며 소수의견이나 반대의견의 논리를 접할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들의 주장에 공감했던 기억을 선명히 갖고 있다. 하나의 사안에 대해서 양날의 검처럼 바라볼 수도 있다는 것을 대립되는 학계의 견해들을 접하며 익혀왔다. 생각이 꼬리를 물며 궁극적으로는 바라보는 시각에 따른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때 쯤 되자 라면이 참 맛있게 느껴졌다. 오동통해진 면발이 더 포만감을 주며 가성비있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식사를 마치고 터덜터덜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아침에 봤던 은행들과 재회했다. 아침에는 지뢰처럼 내 발에 채이는 것마냥 느껴지던 불쌍한 은행들이 놀랍게도 환해보였다. 기숙사로 향하는 내 발걸음마다 가을의 마지막을 노란빛으로 장식해주는 것 같았으니까. 나는 항상 내가 부족한 면이나 스펙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역으로 기숙사로 가는 내내 내가 학교를 다니며 배우고 일구어온 일들에 대해 곰곰 생각해봤다. 토익 성적은 없었지만 학점을 알차게 닦아 놓았고, 컴활 1급은 따지 못했지만 컴활 2급과 그래픽 기술자격시험은 구비해둔 상황이었다. 교외 수상실적이 부재했지만 교내 수상실적과 봉사활동 이력이 존재했고 프리 토킹이 불능하지만 해외 연수가서 자소서에 누누이 나오던 팀원과 갈등과 협력을 구체적으로 경험해봤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난 꾸준히 노력하고 있었다.

 

생각에 저문 채 기숙사 책상에 앉아 토익 책을 펼치는 데 나도 모르게 부스스 웃음이 일더라. 바닥을 노랗게 물들인 은행들 만큼이나 나 또한 대학 4년의 마지막을 알차게 장식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새삼 알았기에. 주변과 비교할 필요없다는 그 뻔한 말이 참 와닿았다. 주변에서 척척 시험에 합격하여 펄럭이는 플랜카드에 이름을 박는다고 해서 내 마음도 같이 펄럭일 이유는 없다. 사람마다 속도가 다른 것이고 사람마다 가는 방향도 다른 것이다. 김보은 사건에서도 대법원이 피해자 김영오를 향한 피고인 김진관의 살해행위가 침해의 현재성이 인정된다고 판시를 내렸지만, 학계에서는 침해의 현재성을 부정하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임대차 건물의 화재로 인한 멸실로 인해 임차인이 건물의 인도 등 이행불능이 된 사안에 대하여도 다수의견에서는 임차 외 건물 부분의 임차인이 손해배상을 할 필요가 없다고 판시했지만, 반대의견에서는 임차 외 건물 부분에 대하여도 임차인의 손해배상이 요구된다는 논지를 뚝심있게 펼쳐나갔다. 타인의 그림을 굳이 탐낼 필요는 없다. 내 삶의 도화지는 내가 메워 가는 것 아닐까. 삶이라는 하얀 도화지 위에서 결국 붓자락을 놀려야 하는 것은 내 마음이자 내 손일 테니까. 한참을 마음먹어도 안되던 고요함이 내 마음에도 찾아왔다. 무언의 압박감에 사시나무 떨 듯 떨리던 손끝의 떨림이 잦아드는게 눈에 보인다. 사각사각. 오늘도 펜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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