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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창원대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 - 북극성
  • 창원대신문
  • 승인 2023.03.02 08:07
  • 호수 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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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성

신소이 (식품영양학과 2학년)

 

어린 시절 나는 할머니 손에 길러졌다. 할머니 집 주변에는 그 흔한 놀이터 하나 없었다. 유일한 놀 거리라곤 몇 분 걸어가면 있는 바다뿐이었다.

‘쏴아아-.’

나는 바다를 참 좋아했다.

동요 하나 들을 수 없는 시골에서 파도 소리는 나에게 하나뿐인 노래가 되어주었고, 또래친구 하나 없는 나에게 모래 알갱이들은 나의 친구가 되어주었으며, 엄마를 볼 수 없는 나에게 길 잃은 꼬마 게는 위로가 되어주었다.

나는 욕심이 많은 아이는 아니었다. 애초에 내 것이 아닌 것은 크게 탐하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내 것이던 정든 물건이 사라지면 슬프겠지만 내 것이 아닌 물건은 사라져도 알아채지 못하듯 엄마 아빠의 자리는 애초에 비어있던 자리였다.

엄마 아빠의 부재는 나에게 호기심에 가깝지 그리움은 결코 아니었다.

“오매, 더운 것.”

할머니는 여름이 덥다고 싫어하셨지만 나는 여름이 좋았다.

항상 조용하던 바다가 떠들썩해졌기 때문이다.

“늦게 댕기지 말고 싸게 싸게 들어와라잉.”

“알겠어.”

방학이 끝나면 금방 떠나갈 사람들이지만 잠시나마 할머니의 촌스러운

사투리가 아닌, 스쳐가듯 들어도 다정한 어른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어때? 재밌지 얘들아."

들려오는 어른들의 목소리와 따뜻한 햇빛을 쬐며 바다 위에 떠 있을 땐

엄마 품은 이런 기분이려나, 상상에 빠지곤 했다.

"읏차."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목마를 태우는 아빠를 보며 나는 천천히

등대에 올랐다. 목마 탄 아이보다 더 높은 곳에서 많은 걸 내려다

볼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후덥지근하던 바닷바람이 점점 시원해지고 등대에 불이 들어오면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집에 들어가면 할머니가 상을 차리고 있었다.

"밥 묵자."

메뉴는 거의 정해져 있었다.

김에 밥을 싸먹을 때가 많았고 특별한 날에는 계란 후라이도 나왔다.

옆집에 사는 해녀인 김씨 할머니가 전복을 챙겨주면 그날 저녁은 전복죽이 되었고 생선을 챙겨주면 생선구이가 메뉴로 나오기도 하였다.

저녁을 먹고 나면 소화가 잘 안 된다는 할머니와 같이 산책을 나가곤 했다.

난 모래사장을 걷는 것을 좋아했지만 유모차에 의지하며 걷는 할머니와 걷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천천히 좀 가야."

"천천히 가고 있어."

나는 시간이 갈수록 키가 커지고 걸음도 빨라졌지만 할머니는 점점 작아지고 느려졌다.

주택가 주변을 맴돌며 돌아다니면 골목 사이사이로 바다 내음과 바닷바람, 파도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시골의 밤은 길고 어두웠다. 9시 즈음이 되면 주택가의 별이 하나 둘씩

사라졌다. 의지할 불빛이라곤 등대뿐이었다.

할머니와의 짧은 산책이 끝나면 간단하게 씻은 후 허리가 불편한

할머니를 대신하여 이부자리를 폈다. 모기향을 피우고 전등을 끈 후 누우면 등대의 불빛이 집 안에 은은하게 피어있는 듯 했다.

"할머니, 잘 자."

"오야."

이불 속에 들어가 눈을 감으면 나는 할머니와 함께 바다 위에 떠 있었다.

 

"얘."

처음 듣는 목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한 아줌마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엄마, 얘 꼴이 왜 이래? 무슨 난민 같네."

할머니에게 엄마라고 부르는 아줌마를 보며 생각했다.

'아, 저 사람이 내 엄만가?'

그러기엔 내가 생각한 다정한 말투도, 따뜻한 눈빛도 아니었다.

"할머니, 이 아줌만 누구예요?"

"누구긴, 니 어매지."

아줌마라는 내 말에 눈빛이 한층 더 매서워졌다.

애써 시선을 무시하며 모르는 척 이불을 정리했다.

"엄마, 얘 짐 챙길 것도 없지?"

"지민이 쟈 지 이불 아니믄 잠 못 자는디∙∙∙."

시장에서 할머니가 사준 이불이었다. 계절에 상관없이 껴안고 덮고

자다보니 솜이 튀어나오고 꿰맨 자국이 이곳저곳에 있었다.

"아, 뭔 이불이야. 덮지도 못하게 생겼구만."

"그려, 그람 짐은 됐고 밥이나 한 숟갈 뜨고 가."

"밥은 무슨, 이제 가야해."

"지민이 쟈는 인자 인나서 가는 길에 배고플 텐디∙∙∙."

"휴게소는 장식이야? 됐어."

새벽에 할머니 혼자 시장에 다녀왔는지 가득 차 있는 장바구니가 널부러져 있었다.

"그람 우유라도 한 잔 마시고 가."

할머니가 헐레벌떡 우유를 따라와 전해주며 내 손을 잡았다.

"지민아, 엄마 말씀 잘 들어야 한다잉."

"할머니, 나 어디 가?"

"니도 이제 핵교 다녀야제."

할머니의 까칠한 손이 내 뺨을 쓸고 내려갔다.

"이제 나와."

어느새 아줌마는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빈 컵을 건네주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겼다.

 

“타.”

나는 아무런 대꾸 없이 까만 승용차에 올라탔다.

아줌마는 나를 차에 먼저 태운 후 할머니에게 물건을 받고 대화를 나누는 듯 했다.

"가요."

"오야, 도착하믄 전화허고."

대충 까닥거린 후 아줌마가 차에 올라탔다.

차가 출발하고. 오래 머문 동네였지만 내가 떠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봐 주는 건 등대뿐인 듯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저기∙∙∙."

"저기? 하, 됐다. 왜?"

아줌마는 한 소리를 하려다가 됐다는 듯 한숨을 쉬고 말했다.

"저 속이 이상해요∙∙∙."

"뭐? 그럼 아까 휴게소 지나기 전에 말했어야지!"

아줌마는 안 그래도 무서운 얼굴로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좀만 참아봐."

자동차를 이렇게 긴 시간 타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웃집 아저씨의 트럭을 타고 동네를 도는 것은 좋아했지만 불편하고 낯선 사람과 이렇게 장시간 차를 타는 것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우웩."

"야!"

출발하기 전에 마신 우유가 자동차 시트를 타고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갓길에 차를 세운 후 물티슈를 잔뜩 뽑아냈다.

"아, 이거 어떡할 거야. 내려 봐."

아줌마는 조수석을 열심히 닦은 후 남은 물티슈를 나에게 건네주려다 다시 가져가며 나에게 말했다.

"옷∙∙∙ 하, 이리와 봐."

내 옷을 닦은 후 나에게 물었다.

"괜찮아?"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다시 차에 탄 후 또 한참을 달렸다.

도착한 곳은 층수가 그리 높진 않은 구축 아파트였다.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엘리베이터도 있고 할머니 집처럼 쾨쾨한 냄새가 나진 않았다.

 

"여기가 네 방이야."

폭신해 보이는 침대, 깨끗한 책상과 옷장 테레비에서 보던 방 같았다.

모든 게 어색해서 방바닥에 그냥 멍하니 앉아있는데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밥 먹어."

특별한 날에만 먹던 계란 후라이와 고기가 한상 위에 같이 있었다.

토한 것도 잊고 허겁지겁 먹는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한숨을 쉬고 물었다.

"할머니가 밥 잘 안 줬어?"

고개를 젓고 대답했다.

"밥은 잘 주셨는데 이런 맛있는 반찬은 오랜만에 먹어요."

"∙∙∙앞으론 자주 먹게 해줄게."

신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저 먹었다.

 

따뜻한 물로 씻은 후 잘 시간이 되자 난 의문이 생겼다.

"저기∙∙∙, 어디서 주무세요?"

"난 내 방에서 자지."

"그럼 저는요?"

"넌 네 방에서 자야지."

아줌마는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내가 우물쭈물하며 있자 “잘자렴.” 한 마디를 남기고 방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방문은 굳게 닫혀있고 불빛 하나 없이 정적이 맴도는 방은 무서웠다.

푹신한 침대, 뽀송한 이불이지만 바다 위가 아닌 진득한 갯벌 위에 혼자 허우적거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할머니 혼자 이불 못 깔 텐데.'

'할머니 산책은 혼자 가셨나?'

할머니 생각과 걱정이 많아질수록 할머니가 보고 싶어졌고 깊은 어둠 속에 빠져 들어가는 듯 했다.

'벌컥.'

갑자기 들어온 불빛에 인상을 찌푸리고 방문 쪽을 바라봤다.

"혼자 자기 무서워?"

아줌마는 할머니가 사준 낡은 이불을 들고선 내게 물어봤다.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아줌마가 침대로 올라왔고 침대가 파도마냥 흔들렸다.

"크큭∙∙∙."

"뭐가 웃겨?"

"침대가 파도처럼 출렁거려서요."

"참나, 별게 다 웃기네. 잠이나 자."

나는 할머니가 준 이불을 덮고 어색하게 토닥이는 손길에 눈을 감고 서서히 잠에 들었다.

나에게도 나만의 바다가 생긴 날이었다.

 

시간이 지나 학교에 들어가 친구를 사귀고 엄마 소리가 자연스레 나올 때쯤, 나는 바다도 등대도 서서히 잊혀 갔다.

“지민아, 오늘 할머니 뵈러 가기로 한 거 안 잊었지?”

“아, 근데 나 오늘 민지 만나기로 했는데?”

“안 돼. 너 저번에도 친구랑 논다고 안 갔잖아.”

“아씨, 할머니 집엔 할 것도 없는데∙∙∙.”

바다보다 친구가 좋아졌고 등대에 오르는 것 보단 게임이 더 재밌어졌다.

 

“엄마, 우리 왔어.”

“어어, 왔냐잉?”

억지로 따라온 탓에 기분이 좋지 않아 할머니한테 인사도 하지 않고 들어왔다.

“지민이 쟈는 와 저리 뿔이 났다냐.”

“몰라, 요새 지 멋대로 하려고 하네.”

할머니 때문에 할 것도 없는 시골로 오게 된 거 같아, 엄마보다 할머니가 더 얄밉게 느껴졌다.

“지민이 니가 좋아하는 전복죽 끓이놨다.”

“내가 언제 전복죽을 좋아했어? 그냥 주니까 먹었던 거지.”

“그랬냐∙∙∙?”

할머니가 머쓱해하며 웃음을 보였고 그 모습을 보자 할머니에게 한 방 먹인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좀 나아졌다.

 

저녁을 먹은 후, 엄마는 운전하느라 피곤했는지 잠이 들었다.

“많이 피곤했는가벼∙∙∙.”

“할머니 집이 워낙 시골구석에 있어야지.”

할머니는 또 머쓱하게 웃기만 했고 이번에는 기분이 그닥 좋지는 않았다.

“지민아, 할미랑 바다에 산책이나 갈까잉?”

“할머니 바닷가 못가잖아.”

“못가긴? 할미도 갈 수 있어.”

주섬주섬 옷을 챙기는 할머니를 보며 나는 한숨을 쉬고 유모차를 꺼내들었다.

할머니는 그새 더 느려지고 더 작아진 것 같았다.

내 발걸음에 맞추느라 할머니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걸 느꼈지만 걸음을 늦추지도, 할머니를 기다려주지도 않았다. 그냥 빨리 이 시간이 지났으면, 내일이 빨리 와 집에 갔으면 싶은 마음뿐이었다.

‘쏴아아-.’

바다였다.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그 바다였다.

“지민이 너 옛날에는 바다를 그렇게 좋아했는디.”

지금도 바다를 좋아하긴 했다. 친구랑 게임이 더 좋아서 그렇지.

나는 바다도 등대도 항상 제자리에 있어서 좋았다.

변하지 않아서 좋았다.

언제나 나를 반겨줘서 좋아했다.

“춥진 않어?”

옆을 보니 발걸음을 맞추느라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 눈이 등대 불빛처럼 빛난다.

할머니 옷이 바닷바람에 휘날리며 옷 주름 하나하나가 파도처럼 일렁인다.

“응.”

왜 자꾸 할머니만 보면 심술궂게 구는 걸까. 나도 내 자신이 이해가 안

간다. 파도가 가려가며 쓸어가지 않듯, 할머니도 항상 내 모든 모습을 다보듬어주셨다. 그래서 내가 이 모양인 건가.

“할머니는 내가 싫었던 적 없어?”

“잉? 우리 지민이만큼 착한 아가 어딨다고 그랴.”

“∙∙∙.”

“할미가 쪼매만 부자였어도 우리 지민이 더 맛난 거 맥이고 더 좋은 거 입힐 수 있었을 텐디.”

“뭐래 갑자기∙∙∙ 됐어.”

웃으며 접히는 할머니의 눈가 주름들이 하나씩 내 마음 속에 박혀온다.

“지민이 니한테 해준 것이 너무 없어서∙∙∙, 그래서 니가 시장통에서 사온 이불 하나에도 그리 매달린 건가 싶어 맴이 쓰이네.”

“그냥 좋으니까 썼던 거지, 무슨.”

파도가 일렁일 때마다 내 마음도 일렁였다.

할머니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나에게 바다가 되어주었다면 할머니는 나에게 등대였다. 항상 제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주고 나를 반겨주며 내가 쉬어갈 수 있게 해주었다. 당연하다는 듯 나를 밝혀주었다.

“할머니도 바다가 좋아?”

“당연하제, 지민이랑 오니께 더 좋네.”

할머니가 바다가 좋다면 나도 할머니에게 바다가 되어주고 싶다.

할머니와 함께한 모든 추억을 하나도 빠짐없이 품고 살고 싶고 할머니에게 더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 싶다.

“나도.”

할머니에게 더 큰 바다가 되어주고 싶다.

 

다음날, 아침을 간단히 먹은 후 집에 갈 채비를 하니 할머니의 얼굴에 아쉬움이 뚝뚝 묻어났다.

“점심도 먹고 가지 그러냐∙∙∙.”

“그럼 너무 늦어져서 안 돼.”

“그럼 이거나 챙겨가.”

“뭔데?”

할머니가 건넨 노란 보자기를 펼치자 바다를 담은 듯한 파란 이불 하나가 들어 있었다.

“구멍 난 이불 그만 덮고 이거 덮고 자. 알겠제?”

“∙∙∙응.”

“엄마, 나오지 말고 안에 있어.”

“알았어.”

할머니는 알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배웅하러 나오는 것은 물론, 얼마 없는 짐 싣는 것 마저 불편한 몸으로 도우려고 했다.

“우리 갈게.”

“잉, 조심히 가고 도착하면 연락혀.”

“알겠어.”

“할머니, 조만간 또 올게.”

“그려, 꼭 와.”

항상 조만간 온다고 말해놓고 반년이 지나서야 겨우 얼굴을 비친 나였지만 할머니는 저 말을 들을 때마다 환히 웃으며 내 볼을 쓰다듬곤 했다.

“엄마, 들어 가.”

“잉, 알겄어.”

차가 출발하였지만 할머니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코너를 돌아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전까지도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다음에 오면 할머니와 좀 더 긴 시간을 함께하고 싶다.

할머니가 아쉬움이 하나도 남지 않게끔, 더 많이.

나를 바라보는 등대를 보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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