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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창원대문학상 소설 부문 가작 - 깡통클럽
  • 창원대신문
  • 승인 2023.03.02 08:04
  • 호수 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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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클럽

강혜원 (산업디자인학과 3학년)

 

물어 젖어 쭈글해진 하찮은 종이처럼 구부러진 자세로 술병을 이리저리 흔들던 엄마는 나의 미간을 툭툭 치며 말했다.

[넌 여기가 비었어.]

그리고 이어서 가슴팍을 밀치며 나에게 혼을 내듯이, 말에 힘을 주며 소리 내었다.

[여기도 비었어. 넌 아무것도 든 게 없어.]

그런 모진 말을 듣고도 멀뚱히 엄마의 눈을 쳐다보는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든 게 없을지도 모른다. 생각도 감정도, 자존심도.

가만히 다음 말을 기다리는 나를 보며 환멸이 난다는 듯 엄마는 손을 휘저으며 어디로든 좋으니까 내 눈앞에서 사라지라는 뜻을 보낸다. 나는 익숙한 듯 고개를 한번 끄덕이곤 집을 나섰다. 비 오는 바깥 상황에 맞춰 우비와 장화를 맞춰 신는 건 까먹지 않고 말이다. 그때 나의 나이는 8살이었다.

 

“기진 씨, 그때 어머니는 당신을 왜 그리 미워했나요? 어린 자식에게 할 말은 아닌듯싶어서요” 내 맞은편에 앉은 딱딱한 인상을 가진 의사가 묻는다.

“어머니는 암에 걸려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었어요.”

“그렇다 해도 두고 갈 자식에게 모질게 굴 이유는 없었을 텐데요”

“아마 제가 아버지 집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해서 화가 났을거예요.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서 이혼했지만 곧 돌아가실 어머니를 둔 저에겐 머무를 집이 필요했으니까요.”

“... 음 알겠어요.”

의사는 내 눈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을 끝냈다.

주변 이들의 권유로 시작한 이 상담은 어떠한 막도 올리지 않은 채 끝나버린 것 같았다. 의사는 파란 메모지에 글귀를 새겨 넣고는 나에게 보여주었다.

“기진 씨가 매번 과거 얘기로 악몽을 꾼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동요가 없어 보여요. 아니, 내가 보기엔 감정에 목마른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한번 여기 참여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네요.”

종이에는 [깡통 클럽 오후 6시 마이너 재즈 바] 라고 적혀있었다. 모임 이름이 깡통 클럽인가? 게다가 재즈바라니.. 뭐 확실히 감성 충만한 사람들이 많이 오겠어. 종이를 한번 보고 의자에서 일어나는 나를 향해 의사가 말했다.

“깡통 클럽이란 단어, 그냥 재미 삼아 지은 거니까 신경 쓰지말아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뒤돌아 나가는 나에게 의사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거기 사람들은 기진 씨 같은 사람이 필요하고, 기진 씨도 그들에게 많은 걸 느끼길 바랄게요”

 

상담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가지를 깨달았다. 대체 언제 가야 하는 거지? 종이에는 시간만 적혀있었는데.. 아무 날이나 가도 괜찮은 건가. 나는 휴대폰을 켜 의사에게 연락했지만 수신음만 계속되었다. 오늘은 내 전화를 안받을 모양인가 보다.

지금 시간은 오후 5시. 마이너 재즈 바는 검색해 보니 집에서 40분도 안 걸릴 것 같다. 곧바로 집을 나와 차에 시동을 켜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했다. 딱 봐도 나 같은 사람들만 모인 클럽일듯싶으니 합류해도 금방 해산하겠지.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위치에 도착하고, 시계를 보니 5시 40분.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군. 너무 일찍 들어가 새로운 사람들과 시시덕거리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기에 50분까진 차에서 대기해야 할듯싶다.

그나저나 [마이너 재즈 바]라고 영어 필기체로 써져 있는 간판은 요즘 보기 힘든 올드한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흰머리 가득한 연세를 가진 사람들이라도 이해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의사에게 처음 소개받았을 당시에도 큰 흥미를 가지진 않았지만 지금은 굉장히 지루할 것 같아 야근할 당시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기다리는 동안 멍하니 앞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누가봐도 시선이 갈법한 사람들이 마이너 재즈바에 들어가고 있었다. 민머리에 가지각색 문신을 새긴 남자, 수영장에서 끼는 까만 물안경을 낀 남자, 일본 가부키 배우의 화장처럼 얼굴에 새하얀 분을 칠한 여자. 이런 사람들은 한 달에 한 번 보는 것도 신기할법한데 오늘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게다가 이 사람들이 클럽 멤버들이라면 자주 볼 수밖에 없겠어. 내가 이 사람들이랑 무엇이 비슷한지 생각하며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한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마치 가발 같은 밝은 핑크색 단발머리와 두꺼운 초커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앞머리를 쓸던 손을 내리는 걸 보니 여자는 내 차의 창을 거울삼아 머리를 정돈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밖에서도 안이 조금은 보일 텐데 여자는 눈을 피하지 않고 계속해서 응시했다. 눈을 피한 건 나였다. 여자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다 시간을 보니 벌써 6시 3분. 주변 시로 여자가 나를 여전히 보고있다는게 느껴졌다. 버티다간 날 밤새우겠어. 나는 창밖 여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문을 열었다. 천천히. 부딪히지 않게.

“안녕하세요!”

여자는 나를 보며 밝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그에 보답했다.

“깡통 클럽에 새로 들어오신다는 분이시죠? 생각했던 분위기랑 달라서 놀랐어요! 뭔가 추리 영화에 나올법한 인상이시네요! 아 나쁘게 듣지는 마세요. 좋은 의미로는..그래 똑똑해 보인다는 거예요! 제가 그 쪽으론 부족해서 박식해 보이는 분들 보면 정말 부럽더라구요.”

여자는 나를 잡아 놓듯이 대화의 감옥으로 집어 넣었다. 빈 껍데기 같은 의미없는 감상평에 내가 할 일은 아까와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이너 재즈바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여자는 쉴 틈없이 나에게 말을 건넸고 내 얼굴은 위 아래로 규칙적이게 흔들거렸다.

 

딸랑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가게 인테리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앤티크한 가구들이 가득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새까만 현대식 가구들이 즐비했지만 노란 조명 덕에 나무 재질로 보여 값이 나갈듯한 같은 인상을 주었다.

“어서 와요 앨리스 씨”

“여러분! 새로운 분이 오셨어요”

우리를 반겨주는 인상이 따뜻한 중년 남성에게 앨리스란 여자는 깜짝 선물을 발표하듯 큰 소리로 화답했다. 그 덕에 모두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가벼운 미소를 유지한 채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정적이 흘렀다. 중년 남성과 앨리스를 빼곤 모두들 일제히 시선을 거두었다. 이 분위기가 머쓱한지 중년 남성은 레코드 턴테이블의 버튼을 눌러 공기가 유해 지게 만들었다.

“반가워요 기진 씨, 의사 선생님께 오신다고 연락은 받았는데 바로 오실 줄은 몰랐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연락 드릴 걸 그랬습니다” 중년 남성은 잔기침을 하며 작게 웃었다.

“혹, 제가 불편하게 해드렸다면 사과드립니다”

“하하 미안할 거 없습니다. 저희가 일정이랄 것도 없어서 말이죠. 이제 이 공간은 기진 씨가 마음껏 편하게 쓰시면 됩니다.”

중년 남성의 말을 들어보니 이 클럽 사람들은 모두 각자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문신이 많았던 남자는 작은 캠퍼스에 그림을 그렸고, 물안경을 쓴 남자는 카메라를 쥔 채 두리번거리고 있었으며 얼굴이 새하얗던 여자는 종이가 새까매질 때까지 연필로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은 나와 내 옆에 계속 붙어있는 앨리스뿐이었다.

“이분들은 모두 저를 마스터라고 부른답니다”

자신을 마스터라 칭한 남성은 나이가 무색하게 순수함이 곁들여진 웃음이 돋보였다. 단련된 내 미소는 이와 같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나저나 이제부터 이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하라니.. 어린 시절 흰 도화지를 건네주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라는 순간과도 같았다. 쓸데없는 시간이야. 괜한 시간을 투자했어. 마스터에게 돌아가겠다고 이야기를 꺼내려는데 앨리스가 강한 힘으로 나를 이끌었다. 앨리스는 턴테이블 근처로 나를 데려갔다. 그리고 뭐가 즐거운지 이가 훤히 보일 만큼 환하게 웃었다.

“역시 마스터는 센스 있다니까? 기진 씨는 이 노래 알아요?”

“엘라 피츠제럴드의 Misty. 유명하죠”

로맨틱한 피아노 선율과 엘라 피츠제럴드의 환상적인 목소리가 감미로운 이 노래를 턴테이블로 들으니 차 안에서 들었을 때와는 묘하게 달랐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에요. 내 장례식이 있다면 이 노래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장례식에 재즈곡이 나온다면 신선하겠네요”

“그렇죠? 외국 장례식은 그런 경우가 있는데 한국은 너무 딱딱해요. 난 내 마지막도 아름다웠으면 싶다구요”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면 끝나겠지 싶었지만 앨리스는 내 팔 옷깃을 잡은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앨리스는 노래도 가만히 듣지 않았다. 어깨를 흔들고 한 손은 앞으로 내밀어 튕기듯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우스꽝스러운 춤이었다. 하지만 본인은 신경 쓰지 않는듯했다. 노래가 끝나고 앨리스는 여전히 나를 잡은 채 클럽 멤버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녀는 자신을 가이드로 자처한 것 같다.

처음 소개한 사람은 얼굴에 하얀 분칠을 한 여자였다. 여자는 우리가 가까이 오는 순간부터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석연치 않아 했는데 코앞으로 마주하자 질식하듯 숨을 안 쉰다. 낯선 타인의 숨은 절대 들이지 않겠다는 의지처럼.

“이 친구는 호연이! 그림 그리는 건 싫어하는데 색칠하는 건 좋아한대요. 재밌죠! 이 분홍색 머리도 호연이가 염색해 준거예요. 예쁘지 않나요?”

앨리스가 말을 할 때마다 호연의 고개가 숙여지는 게 보였다. 나는 앨리스의 머리 색을 칭찬하며 슬쩍 그녀가 검게 칠하던 종이를 봤다. 종이에는 영어로 I love you라고 삐뚠 글자로 빼곡히 쓰여 있었다. 더 이상 관여하면 무서운 일을 보겠는걸.

나는 앨리스에게 다른 분의 소개를 받고 싶다고 하자 앨리스는 흔쾌히 수락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수경을 낀 남자였다. 남자의 눈은 완전히 봉쇄했기에 속눈썹 한 가닥도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호연과 달리 서글서글하게 우릴 맞이했다. 그는 나를 보곤 짧고 굵은 한 마디를 내뱉었다.

“잘생겼네요”

그 말에 오히려 앨리스가 호들갑을 떨며 한마디에서 끝나지 않게끔 만들었다.

“맞아! 나도 처음에 보고 한눈에 반했다니까. 게다가 되게 똑똑하실 것 같지 않아?”

“카메라도 좋아해”

남자는 나를 몇 번 찍더니 결과가 만족스러운지 다음에 자신의 강아지와 사진을 찍어주는 건 어떻겠냐 물었다. 당신과 찍는 게 강아지도 좋아할 거라 하니 자신은 절대 사진에 나오지 않을 거라 단호히 답했다.

“나는 모델로 삼아주지도 않던데 부러워요. 참, 이 수영 안경 낀 남자 이름은 정선우!”

앨리스는 틈틈이 나에게 사람들의 이름이나 특징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보통은 귀찮을 법한데 그녀는 천직인듯 지치지도 않는 기색이었다.

마지막으로 만나본 남자는 문신이 가득한 남자였다. 그런데 민머리에 그려진 문신은 대체적으로 꽃, 돌고래, 구름같이 평화로운 그림뿐이었고 기선을 제압하는 무서운 그림들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말투도 나긋나긋해 클럽 멤버들 중 성격으로는 가장 무난한 축에 속했다.

“내 이름은 조민철. 이름만 부르기엔 딱딱하니까 편하게 삼촌이라 불러도 돼. 깡통 클럽이란 곳이 있단 걸 나도 의사 선생님께 소개받았지. 내가 처음 왔을 땐 지금보다 사람들이 많았어. 당신이 좀 더 일찍 왔었음 진귀한 사람들을 많이 봤었을 텐데 아쉽게 됐어”

이 정도도 충분히 진귀한광경인데요 라는 말이 나오려는 걸 참은 뒤, 이제 멤버들 소개도 끝났겠다 집에 돌아가기 충분한 사유란 생각이 들었다. 마스터에게 먼저 가겠다고 한뒤 앨리스에게 놓아달란 언동을 취하자 그녀는 포기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나를 잡고 따라왔다.

“다음에 봬요 앨리스 씨”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요?”

“네 물론이죠”

“기진 씨 성은 뭐예요?”

“... 허기진입니다”

이 이름으로 옛 시절 얼마나 많은 놀림을 당했던가. 엄마는 죽기 직전 평범했던 내 이름을 허기진이라 바꿔, 마지막까지 서글픈 원망을 남편이 아닌 나에게 저주처럼 들러붙게 하였다. 집안 형편까지 함께 맞물려서 나는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허기진 것 같았고, 늘 무언가 부족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엄마의 작은 복수는 나와 평생을 함께 할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내 이름을 듣고도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다. 아니 더 밝게, 따뜻하게 웃어준다.

“우리 클럽에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다들 배가 많이 고프신가요?”

“하하 아뇨 여기 사람들, 다 마음이 텅 비어서 오는 거예요. 가만히 있기엔 허기지고 정이 고프니까 무리해서라도 오는 거구요. 예전에 호연이가 열이 펄펄 나는데도 기어코 온 거 있죠. 그땐 얼굴을 하얗게 칠했는데도 붉었다니까요! 그나저나 이름 가지고 제멋대로 의미 부여했네요! 기분 나빴다면 죄송해요”

“아닙니다. 재밌게 잘 들었어요. 앨리스 씨는 본명인가요?”

“네 2년 전에 한 영화를 보고 홧김에 바꿔 버렸어요. 클로저라고 아시나요?”

“나탈리 포트만이 나오는 영화라면 알고 있어요”

“맞아요! 전 그 영화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그래서 거기 여주인공 이름도 따라 하고 이 머리도 따라 했죠”

“정말 좋아하시나 보네요”

“정말 좋아해요.. 하지만 그 영화 속 인물들처럼은 살고 싶지 않아요. 난 사랑을 믿어요”

오그라들 수도 있는 말을 진솔되게 말하는 앨리스를 보며 오히려 내가 낯부끄러워졌다.

“이제 가야겠어요”

“기진 씨 다음에도 오시는 건가요?”

“시간이 맞는다면 들리겠습니다”

내 나름의 거절 방식. 완곡한 표현보다는 둘러서 말하는 게 말하는 이가 편하다. 듣는 사람에겐 어떨진 모르겠지만.

앨리스는 더 얘기를 나누고 싶은지 내 차가 자신의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도 사랑이 고픈 걸까. 뭐 충분히 예쁜 외모를 가졌으니 누구나 그녀를 사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피곤했던 오늘 하루를 씻어내기 위해 차가 멈췄을 때 라디오를 틀었다. 운명인지 우연인지 앨리스와 들었던 엘라 피츠제럴드의 Misty가 흘러나왔다. 이 노래는 턴테이블로 듣는 게 더 좋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른 채널로 돌렸다.

 

깡통 클럽에 안간지 일주일이 지났다. 처음 며칠 안 갔을 때는 의사에게 연락이 왔었지만 업무가 바쁘다고 하니 이후로는 묻지 않았다. 악몽도 꾸지 않게 되었다. 매번 잠들 때마다 엄마가 나의 목을 조르는 꿈을 꾸었는데 이젠 다른 인물이 찾아온다. 자신이 사랑스럽다는 걸 알면서 상대에게 교태를 부리는 여자. 그럼에도 사랑을 갈구하는 여자. 그녀가 웃음기를 가진 채 내게서 등을 돌리면 난 그녀에게로 손을 뻗는다. 그렇게 난 꿈에서 깨어난다.

“앨리스..”

오늘도 앨리스가 꿈에 나왔다. 겨우 하루 만났을 뿐인데 아이 같은 그녀의 모습은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왜일까. 살면서 많은 여자를 만났지만 하루 만에 꿈에 나올 정도로 생각한 여자는 없었다. 앨리스는 예쁘긴 해도 말이 많아 피곤한 여자다. 앨리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생각하다 한 인물이 곧장 떠올랐다. 그래 앨리스는 엄마의 좋았던 모습이랑 똑 닮았다. 건강하고, 아버지가 바람을 안 피웠을때. 그때의 엄마는 조잘조잘 재밌는 이야기를 곧잘 들려주던 아침의 종달새 같았다. 엄마가 빨래를 널 때 라디오 노래에 맞춰 몸을 덩실덩실 흔드는 모습을 사랑했다. 그걸 깨닫고 나니 앨리스가 보고 싶었다. 겨우 꿈에 나왔을 뿐인데 애정을 느끼는 내 모습이 바보 같았다. 평소보다 울적해 보이는 내 얼굴이 형편없었다.

 

회사일이 끝나고 마이너 재즈 바로 향했다. 일주일이나 안 갔으니 내 얼굴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왔을 때처럼 나는 여전히 차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 중이다. 깡통 클럽 멤버들이 올까 내심 기대했다. 그 사람들은 워낙 개성이 강해 한눈팔더라도 바로 눈치챌 수 있다. 마침 물안경을 쓴 정선우가 지나갔다. 저번엔 까만 안경이었는데 오늘은 형광빛이 도는 안경을 썼다. 여전히 눈은 보이지 않았다. 다음으로는 조민철. 더 이상 문신할 곳이 없었는지 모습은 그대로였다. 호연은 원래의 하얀 분칠에 입술색이 더해졌다. 빨간 입술이 흰 얼굴과 대비되어 눈에 튀었다. 앨리스는.. 역시나 내 차를 기억했는지 고개를 돌리니 옆 창가에서 그때의 미소를 다시 보여주었다.

차에서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 내 팔을 꽉 잡고는 깡통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자기소개를 해서 그런지 이번엔 인사말에 정적이 흐르지 않았다. 밝게 맞아주진 않았지만 작게 고개를 끄덕여 주기도 했다. 나는 깡통 클럽 멤버들과 사소한 얘기를 조금씩 나누게 되었고 그 옆엔 늘 앨리스가 있었다. 앨리스는 어리지 않았다. 오히려 어떨 땐 인간관계에서 더 성숙하다는 이미지가 얼핏 보이기도 했다. 그런 매력을 알아갈 때마다 조금씩 가까이 앨리스에게 다가갔다.

 

앨리스와 나는 연인과 같은 행동을 했지만 서로를 연인이라 칭하지 않았다. 앨리스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다가 직장동료를 만나 소개를 했을 때 앨리스는 자신을 그저 나와 아는 여자라 칭했다. 이유를 물어도 그게 좋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앨리스의 얼굴이 너무 서글퍼 보여서 물을 수 없었다.

 

깡통 클럽 멤버들과도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들의 아픔도 알게 되었다. 하얀 도화지 같은 얼굴의 호연은 어린 시절 캐나다의 백인 양부모에게 입양되었다가 파양 당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입양 온 다음 해 태어난 귀한 동생이었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 입양한 것이니 그녀는 쓸모를 다한 것이다. 그렇게 그녀의 살구빛 피부는 하얗게 쌓아 올린 분에 가려져버렸다. 호연은 현재까지도 자신이 버림 받은 게 백인이 아니었기라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야 1년 남짓의 행복한 시절을 소중히 간직할 수 있나 보다. 호연은 양부모에게 처음 배운 문장을 계속해서 쓰고 있다. I love you 글자가 종이를 가득 채워 까맣게 사라질 때까지.

정선우는 과거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물안경을 쓰는 건 아무도 자신을 보지 않았으면 싶었다고 조용히 읊조렸다. 수영은 못한다고 해서 클럽 멤버들 모두가 천장이 무너지듯 크게 웃었다. 그의 사진을 한번 구경 한 적이 있는데 모두 흑백이었다. 자신은 모든 게 흑과 백으로 나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조민철은 귀여운 밤톨이 같은 자식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을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다. 자신에겐 목숨도 아깝지 않은 아이들이라며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첫째 딸 조미정, 둘째 딸 조미연 막내아들 조정민. 자신의 몸은 그 아이들의 스케치북이라며 매년 생일인 아이들의 그림을 그려 넣는다고 했다. 그런데 사진 속 아이들의 모습은 모두 2017년이 마지막이었다. 그 다음해 사진의 유무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모두의 사정을 알게 된 후, 깡통 클럽 멤버들은 나의 얘기를 궁금해했다.

“저도 의사 선생님께 소개받아서 오게 됐습니다”

“에이 그런 거 말고 재밌는 얘기 없어요?” 정선우가 말했다.

“말하는 것도 때가 있다니까, 우리 천천히 기다려 봐요!” 앨리스가 정선우를 진정시키며 나의 편에 서준다.

“엄마가 암에 걸렸을 때, 난 바람나 우리 가족을 떠난 아버지에게 가겠다 말했어요. 엄마는 나를 원망했고 죽어도 찾아오지 말라 했죠”

정적이 흘렀다. 전의 정적과는 다른 온도로. 지금 나는 누구도 편들어 줄 수 없다. 앨리스조차도.

“잠깐 나갔다 올게요” 길었던 정적을 깬 앨리스는 나에게 어떤 표정도 보여줄 새 없이 고개를 재빨리 돌려 이 자리를 벗어났다. 나도 앨리스가 나가는 모습을 도저히 볼 수 없었다.

“내가 너희 어머니 같은 상황이었으면 사는 시간이 더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조금의 원망이 담긴 목소리로 조민철은 나를 책망했다. 정선우와 호연도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면서 그들의 의사를 비췄다. 역시 나는 큰 잘못을 지었다. 용서받을 수도 없는, 용서할 이도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마스터에게 인사를 한 뒤 재즈 바를 나오자 앨리스가 내 차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앨리스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보였다. 앨리스가 우는 모습을 상상하니 나 자신이 더욱 싫어졌다.

앨리스는 헝클어진 핑크색 단발머리를 단정히 빗으며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궁금한 게 있어. 질문해도 돼?”

“응 얼마든지”

“엄마를 사랑했어?”

“...”

당연히 사랑했지라고 말을 하려는데 도무지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말이 나오기 전에 입가에 눈물이 먼저 흘러내렸다. 나는 울었다. 처음으로 울었다. 사랑이라는 말이 나오려니 그간의 죄책감과 죄악감이 나에게 사랑을 말할 자격도 없다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 나오려는 감정들이 무서웠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끅끅대며 우는 나를, 앨리스는 조용히 안아주었다.

 

밝고 사랑스러웠던 엄마.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조명이 꺼진 듯 그녀의 생기는 빛을 잃었다. 우리 집은 그녀처럼 항상 어두웠다. 술을 마시고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쏟아내는 그녀가 무서웠다. 병이 깨져 조각들이 나뒹구는 바닥이 나를 아프게 하였다. 그래서 집이 싫었다. 저 여자는 우리 엄마가 아냐. 배고파. 학교 가고 싶어. 빌라 1층에서 쭈구려 고개를 숙인 나를 아버지가 찾아왔다. 아버지는 멋진 양복을 입고 있었고 맛있는 음식을 내게 가득 안겨 주었다. 이런 날이 매일 있었으면 좋겠다고 8살의 나는 상상했다.

엄마가 암에 걸렸다고 했다. 곧 죽는다고 한다. 엄마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녀의 손가락이 더 빨랐다. 그녀는 나의 미간을 툭툭 치면서 나의 존재를 상기시켰다. 아무것도 든 게 없는 어린아이. 그렇게 나와 엄마의 관계는 비극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그 후 아버지의 집에서 살게 되었지만 나는 아빠라고 부르지 않았다. 아버지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나를 지칭하는 용어 어떤 것도 쓰지 않았다. 그 모든 게 엄마를 떠올리게 만들었고, 우리는 같은 죄인이었으니까.

 

앨리스의 품속에서 그 간의 일들을 모두 털어내니 조금 민망해졌다. 그녀가 혹시 나를 더 싫어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앨리스는 웃었다. 그녀는 아까 울었을 때도 미소를 지으려 노력했다. 그녀는 강하다. 그녀의 미소는 그녀를 더 강하게 보이게끔 한다. 앨리스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이 따뜻해서 기분이 좋다. 나의 걱정과는 반대로 그녀는 나를 더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했어 네가 참 아이 같다고” 앨리스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냐. 그럴 나이 아닌걸” 나는 머쓱해하며 앨리스의 눈을 피해버렸다.

“난 그런 네 모습이 어떤 때보다 사랑스러워. 정말이야” 나에게 앨리스는 입을 맞춘다. 내 키가 더 크기에 나는 허리를 숙여 그녀의 사랑을 받는다.

“네게 한 일들은 영원히 상처로 남아있을 거야. 하지만 난 내가 할 일을 하고 싶어”

“그게 뭔데?”

“너랑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거”

“그럼 계속 내 옆에 있어주는 거야?”

앨리스는 말 대신 나를 다시 껴안아주는 걸로 답한다. 앨리스와 나의 마지막이 어떻든 지금 느끼는 감정들이 나중을 기약하지 않게 해준다.

 

다음날 깡통 멤버들은 앨리스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는지 어제와 같은 죄인 취급은 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평소와 달리 캔버스와 물감, 카메라, 종이, 연필 대신 무언가 가득 쌓인 검은 봉지를 가져왔다. 그 안에는 여러 통조림 깡통이 들어있었다. 과일, 채소, 생선, 해산물.. 내가 살면서 본 통조림도 이것보단 부족할 것이다. 그들은 통조림을 넓은 테이블에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그리곤 수저를 건넸다.

“대체 뭐 하는 거예요?”

“아 기진이는 모르겠구나. 우리 클럽의 전통이야” 조민철이 파인애플 통조림의 날짜를 확인하며 답했다.

“감정이 터져 나올 때마다 통조림을 배불리 먹는 거지” 정선우는 입맛을 다시며 설명했다.

“안에 있는 통조림을 다 먹고 빈 깡통으로 다시 돌아오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여기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앨리스는 나를 바라보곤 통조림으로 눈을 돌렸다.

“왜 안되는 거죠?” 나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다시 질문했다.

“깡통 클럽이 애초에 텅 빈 사람들을 위한 곳이니까. 기진이 너는 처음 왔을 때보다 속이 꽉 차 보이거든. 이러다가 퇴출 당하겠어” 조민철은 파인애플 통조림 뚜껑을 4개씩이나 여는 중이다.

나는 앨리스를 쳐다보지만 앨리스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아마 통조림에 눈이 팔린 것이리라.

 

모두와 함께 먹는 줄 알았더니 나 혼자 모두 해치우는 것이었음을 늦게 깨달았다. 그 많은 통조림을 먹고 나니 구역질이나 화장실에서 모두 게워냈다. 빈 깡통이 된다는 건 이런 뜻이었나. 화장실에서 나오니 앨리스가 나에게 안겼다. 아까 토했을 때 옷에 묻진 않았나 확인하길 잘한 것 같다. 앨리스의 등을 감싸려 하니 앨리스는 황급히 어디론가 나가버렸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앨리스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른다. 그녀에겐 어떤 일이 있었을까. 앨리스는 왜 아직도 나를 연인으로 받아주지 않는 걸까. 그녀가 믿는다던 사랑에 나는 포함되지 않는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앨리스에게 어떠한 질문도 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얘기를 꺼내게 된다면 앨리스는 나를 떠날 거란 직감이 들었다.

 

의자에 앉아 클럽 멤버들과 얘기를 나누는데 앨리스가 들어왔다. 초조했던 얼굴은 어디 가고 늘 짓던 미소가 돌아와 평상시의 얼굴을 완성시켰다. 앨리스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대화에 녹아들었다. 나는 다행히 깡통 클럽의 멤버로 남아있게 되었다. 과연 그것이 좋은 선택인지에 대해서는 답을 아끼겠다.

 

클럽 활동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 나는 앨리스와 차를 타며 어디론가 가고 있다. 앨리스에게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물어도 앨리스는 계속 답을 안 하고 고민만 한다. 그녀는 요즘 부쩍 살이 빠졌다. 힘도 없다. 생기도 없어졌다. 앨리스와 헤어진 뒤 앨리스가 앉았던 좌석을 보면 그녀의 핑크빛 머리카락이 군데군데 자주 보인다. 앨리스에게 머리카락이 상한 거 아니냐고 묻자 그녀는 모자로 머리카락을 가려버렸다. 나는 이 상황이 익숙해서 무섭다. 그때의 기억으로 날 잡아 이끄는 것 같다. 아닐 것이다. 이런 생각은 하지 말자. 앨리스가 무서워할 것이다.

나는 이럴 때 무표정한 내 모습에 감사한다. 조금이라도 흩트려졌다간 앨리스가 바로 눈치챘을 것이다. 분위기를 바꿔보려 라디오를 틀었다. 마침 엘라 피츠제럴드의 Misty가 흘러나온다. 부드럽고 상냥한 음률이 그녀의 기분을 달래 주길 간절히 빌어본다. 차를 정차하고 앨리스의 손을 잡았다. 따뜻하다. 아직 따뜻하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음악에 몸을 맡긴다. 절대 서로를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

아 역시 이 노래는 턴테이블로 들었을 때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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