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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창원대문학상 소설 부문 장려 - 해일의 밤
  • 창원대신문
  • 승인 2023.03.02 08:01
  • 호수 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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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일의 밤

한성주 (문화테크노학과 1학년)

 

 너는 꼭 생명의 흐름을 쥔 물거품인 것만 같았다.

 익숙한 푸른 봉투를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바다라는 이름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우편함에 꽂힌 봉투를 빼내었다. 하늘의 쪽빛을 잘라다 놓은 것 같은 색에 직접 그려 넣은 파도의 물결무늬가 눈길을 잡아당긴다. 뒷면에는 발신인과 수신인의 이름이 각각 적혀 있었다. 발신인은 바다, 수신인은 도 현이다. 느릿한 손길로 봉투를 열자 이질적일 정도로 매끈한 종이가 우선 시야에 뛰어들었다.

 파도처럼 거칠게 밀려온 기억들은 도로 뒷걸음질을 치듯 금방 쓸려가 버리기 마련이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어렸을 적의 기억을 더듬었다. 내 발목을 적시고 여운을 남긴 잔상은 우선 창백하리만치 하얀 피부와 푸르스름한 눈동자의 색이었다. 남색 빛이 도는 머리카락은 늘 물결치는 것처럼 허리께에서 찰랑였고, 곧게 뻗은 손가락은 겨울이 되면 푸르스름하게 얼어붙곤 했다.

 푸른 봉투의 내용물은 세부로 향하는 비행기 표와 사진 한 장, 그리고 편지 한 장이 전부였다. 비행기의 날짜는 일주일 뒤 목요일로 되어 있었다. 일주일 후라면 마침 겨울 휴가철이라 일정은 얼추 맞출 수 있을 듯했다. 표가 구겨지지 않도록 한 손에 쥐고, 곱게 접힌 편지지를 펼쳤다.

 편지지 안에는 처음 보는 단어들의 조합이 쓰여 있었다. 영어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더듬더듬 해석하다 보니 이 한 줄짜리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대충 알 수 있었다. 필리핀, 만다우에. 세부에 위치하고 있는 어떤 건물의 주소인 모양이었다. 마지막 말은 보고 싶으니 꼭 찾아와 줬으면 한다는 상투적인 문장이었다. 나는 편지지와 비행기 표를 봉투에 집어넣은 뒤 승강기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편지의 발신인, 바다와 연락이 끊긴 지는 꽤 오래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헤어졌고, 간간이 편지를 보내 소식을 주고받기는 했으나 그마저도 학년이 올라가면서 점차 끊긴 탓이었다. 마지막으로 편지를 주고받았던 때가 아마 5년 전이었을 것이다. 언젠가 한 번쯤은 얼굴 보러 찾아가야지 하는 마음은 언제나 마음으로만 남아 있었다. 마을 어른들이 말씀하셨던 대로,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더라도 몸이 멀어지면 멀어지게 되는 모양이다.

 뱃머리의 기개와 세찬 바닷바람의 기개가 기억 속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어렸을 적 바다와 함께 지냈던 마을은 여기서 자동차를 타고 다섯 시간을 내리 달리고, 배를 타고 얼마간 더 가야 하는 섬마을이었다. 배편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니었던지라 나와 바다는 태극기를 펄럭이는 배가 항구에 들어올 때면 늘 제일 먼저 달려 나가 인사를 건네곤 했다. 노을을 등에 업고 기세 좋게 물살을 가르는 배가 어렸을 땐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띵, 하는 승강기의 안내음이 상념을 꿰뚫는다. 길게 늘어선 복도에는 이미 어둑하게 저녁이 내려앉아 있었다. 텅 빈 복도에 또박또박 발소리가 울렸다. 빈 공간을 채우고 한참을 헛돌던 발소리는 내가 걸음을 멈춘 뒤에야 사그라드는 듯했다. 나는 얼어붙은 손끝을 문지르며 현관문을 열었다.

 집에 들어서자 얕은 훈기가 몸을 감쌌다. 나는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벗고 손을 씻은 뒤 곧장 방으로 향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책장의 가장 아래쪽 칸에 어린 시절의 사진첩을 넣어두었을 터였다. 어머니의 만류에도 가끔 추억 여행을 하고 싶다며 부득불 가져온 것이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이야. 독립할 때 본가에서 가져온 사진첩들은 꺼내놓고 보니 한 무더기나 되었다. 바다와 함께 지낸 건 초등학교 때까지였으니 중학교 이후의 것들은 필요 없었다. 교복이 드문드문 보이는 사진첩은 따로 빼 두고, 완전히 아기였을 때의 사진첩도 골라내었다. 이것저것 정리하고 나자 두 권 분량만 남았다.

 사진이라는 것은 참 편리하다. 그냥 지나간 순간을 붙잡아둔 것뿐인데, 눈 깜짝할 새 과거를 걷고 있을 수 있으니까. 조금씩 빛이 바랜 사진들을 훑던 나는 마음에 드는 것을 한 장 골라 조심스럽게 꺼내 놓았다. 펼친 김에 조금만 더 구경할까 싶어 사진들을 넘기고 있으려니, 사이사이에 내가 끼워두었던 푸른 봉투의 편지들이 툭툭 떨어졌다. 늘 푸른빛의 봉투만 쓰는 것도 바다의 특징이었다. 기분이 좋은 날에는 떠오르는 태양을 그렸고, 우수에 잠기는 날이면 노을 지는 바다를 그려주었다.

 바다가 봉투 한 귀퉁이에 그려 놓는 그림들을 구경하는 것도 꽤 재미가 쏠쏠한 일 중 하나였다. 달이 떠오른 바다, 바닷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 그러고 보니 물결무늬를 그린 것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그물처럼 펼쳐진 흰 물결이 무얼 의미하는지 몰라 나는 한참이나 생각에 잠겼다.

 자세한 건 바다를 만나고 나서 물어봐도 늦지 않을 것이다. 나는 생각을 곱씹으며 몸을 일으켰다. 흔치 않은 장기 휴가를 모두 세부에서 보내고 올 생각이었다. 이 기회에 바다와 함께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모두 해 봐도 좋을 것 같았다. 인생은 길게 보라고 하지만, 오늘은 너무나도 짧은 순간일 뿐이니까. 갈아입을 옷가지를 몇 챙기고 세면도구를 꼼꼼하게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챙긴 건 바다의 마지막 편지에 동봉되어 있던 조개 장식의 팔찌였다. 작은 조개껍데기를 이어 놓은 푸른색의 팔찌는 단단한 실로 직접 엮어 만든 듯했다. 특별한 날 차고 다니라는 바다의 당부대로 여태까지는 그저 보관만 해 두었던 물건이었다.

 일주일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나는 마지막 업무 인계를 끝마친 뒤 짐 가방만 챙겨 곧장 공항으로 향했다. 거대한 몸집의 비행기들이 날렵한 소리를 내며 멀어지고 있었다. 태양이나 달을 전부 가려버릴 수도 있을 듯한 크기였던 비행기들은 순식간에 푸른 하늘에 잠겨들어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나는 자유롭게 하늘 너머로 사라진 비행기를 한참이나 넋 놓고 바라보았다.

 이제 막 별들이 몇 빛나기 시작한 저녁 하늘은 은은하게 아름다웠다. 세상이 나를 감싸 안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짐 가방의 바퀴를 드륵드륵 끌고선 출국 수속장에 발을 들였다. 매끄럽게 닦인 바닥에 신발이 닿을 때마다 또박또박 기분 좋은 울림이 발끝을 타고 올라왔다. 문제없이 수화물을 부친 후엔 메밀국수로 가볍게 저녁을 때웠다. 바다가 표를 보내준 세부까지는 길어봐야 5시간 안팎으로 도착한다고 했다. 때늦은 피곤이 몰려왔지만 잠들고 싶지는 않았다. 비행기에 무사히 발을 올린 나는 안전띠를 두어 번 확인한 후 소지품 가방에 넣어두었던 사진을 꺼내 들었다.

 좁은 창밖으로 몇 대의 비행기가 더 멀어졌다. 내가 탄 쪽은 아직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모양인지, 영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나는 창가에 좀 더 바싹 붙어 앉았다. 그러고 보니 비행기를 타 본 것도 해외 출장을 갔던 걸 제외하면 거의 처음이던가. 새삼스레, 줄곧 모자란 상태였던 낭만이 마음속에 차오르는 것 같았다. 출장 때문에 탔을 땐 안전띠를 매자마자 정신없이 잠들었던 기억밖에 없다. 워낙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깥 구경을 할 여유도 물론 없었다. 정신없이 일만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땐 조금 억울했지만, 남들은 다 그렇게 산다고 애써 마음을 다독였다. 물빛 새벽을 안주 삼은 맥주가 그날따라 씁쓸한 맛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지금만은 이 세상의 모든 땅이 나의 것인 것만 같고, 사실은 내가 가진 땅이 아무것도 없어도 좋을 것 같았고, 얼른 저 타오르는 하늘에 뛰어들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시선은 여전히 창밖에 둔 채 등받이에 편안히 몸을 기대었다. 옆자리는 이미 처음 보는 여성이 앉아 조용히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대차게 꼬아 앉은 다리를 이따금 흔들거리면서 처음 들어보는 곡조를 흥얼거리더니, 무언가 기분 좋은 추억이라도 떠올랐는지 은은한 미소를 그리기도 했다. 날아오르기 직전의 마지막 점검을 끝내고 나자 여자는 휴대전화의 화면을 끄고 멍한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

 이륙을 알리는 안내 방송과 함께 경쾌한 진동이 발끝을 타고 올라왔다. 바깥의 풍경이 서서히 움직이는가 싶더니, 커 보이기만 했던 모든 것들이 곧 빠른 속도로 지나쳐 가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밤이 내려앉고 있다. 겨울이라 그런지 해가 짧았다. 짙은 남색으로 물들어 가는 하늘에서 이따금 빛나는 것들이 인공위성인지, 별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불이 들어온 활주로를 따라 비행기가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붕 뜨는 감각과 함께 동체가 힘차게 날아올랐다. 나는 창밖의 풍경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나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눈부신 야경과 칠흑으로 물든 바다가 시야에 뛰어들었다. 드넓게 펼쳐진 바다가 마치 우주를 한 조각 뿌려놓은 듯 새까맣게 번져 갔다. 그렇게 한참을 바깥만 내다보던 나는 문득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숨결에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높게 묶은 말총머리, 어딘가 시원해 보이는 인상의 여자가 바로 뒤에서 함께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퍼뜩 놀라 등받이에 최대한 몸을 밀착시켰다. 하늘을 보는 데 온통 정신이 팔려있던 그녀는 내가 쭈뼛쭈뼛 구석으로 붙어 앉을 때까지 이쪽의 기척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녀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 정중하게 너무 가까운 것 같다는 의사를 전했다. 나를 바라보는 푸른빛의 눈동자가 일순 당혹감에 물들었다. 바다와 언뜻 닮은 듯한 눈매였다.

 느릿하게 흘러가는 나의 시선을 따라 그녀의 시선도 함께 움직인다. 오늘 챙겨온 사진은 꽤 옛날 사진이라 귀퉁이가 누렇게 조금 바래 있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을 담은 사진이기도 했다. 태극기를 단 배 앞에서 새끼손가락을 걸고는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멋쩍은 듯 머리카락 끝부분을 매만지던 그녀는 쭈뼛쭈뼛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실례했네요.”

“아녜요, 괜찮아요.”

“내 이름은 유지아예요. 그쪽은 이름이 뭐예요?”

“도 현이에요. 외자로 현.”

“예쁜 이름이네요. 친구라도 만나러 가시는 건가요?”

 그녀에게서는 여름을 떼어다 놓은 것만 같은 청량함과 열기가 함께 묻어나왔다. 보고 있으면 나까지 감화될 것만 같은 시원한 성격이었다. 지아의 시선이 내가 든 사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눈치챈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렸을 적부터 친했던 친구가 비행기 표를 보내줬거든요.”

“멋진 친구네요.”

“지아 씨는요? 여행이에요?”

“비슷해요. 나도 친구 만나러 가는 거거든요.”

 그녀가 검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대답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창밖에 눈길을 두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저 작은 빛으로만 보인다. 강렬하고 조그마한 빛을 흩뿌리는 건물들은 흡사 가까이서 바라본 별 무리 같기도 했다. 별들은 그저 때가 되면 아름답게 폭발하며 마지막 빛을 남길 뿐이라고 들었지만, 그런 건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다리를 꼬고 턱을 괸 유지아는 입가에 호를 그리며 웃어 보였다.

“밤하늘을 보고 있으면, 사사로운 것들은 아무래도 좋아지죠.”

 나는 입을 다문 채 고개만 두어 번 끄덕였다. 하늘뿐만이 아니라 바다도 마찬가지였다. 압도당할 것만 같은 거대한 자연 앞에 서 있노라면 마음에 품고 있던 고민들은 저 넓은 창공에, 저 깊은 파도 너머에 쓸려가 버릴 것처럼 사소해지곤 했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까지 우리는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가령, 나이나 직업처럼 서로에 대한 것들을 주로 묻고 답하는 분위기였다. 이야기를 나눈 끝에 나는 그녀가 나보다 아홉 살쯤이 더 많은 한참 언니라는 것을 알아냈다. 놀란 내가 입을 벙긋거리며 창문 쪽에 몸을 붙이자 그녀는 정말로 유쾌하다는 듯 웃었다. 사람을 기분 좋게 해 주는 데 재능이 있다는 칭찬은 덤이었다.

 비행기는 열심히 하늘을 달려 우리들을 세부에 데려다 놓았다. 다시 지상에 발을 딛었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나는 손목에 찬 시계를 흘끗 바라보았다. 시침과 분침은 이제 막 1시 20분경을 가리키고 있다. 그녀는 내가 예약해둔 숙소의 위치를 묻더니, 곧 화색을 띠었다.

“저도 거기 예약해뒀는데, 잘 됐네요. 같이 갈까요?”

“좋아요, 같이 가요.”

 낯선 땅에서 안면을 튼 사람의 존재란 오묘하게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효과가 있어서, 나는 보폭을 맞추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바다의 짠 내가 묻어 있었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내쉬었다. 낯선 곳에서 맞이하는 밤은 늘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주홍빛 가로등 불이 거리 위에 아른거렸다. 숙소는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조금만 걸어가면 되었다. 나보다 한 걸음 정도를 앞서가는 지아 씨는 이전에도 이곳에 와 본 듯 꽤나 익숙해 보였다. 어쩌면 그녀는 매해 여기를 찾는 걸지도. 나는 자꾸만 흘러내리는 가방을 추어올리며 그녀의 뒤를 좇았다.

 구석구석 구부러진 골목을 빠져나가자 큰 길이 나왔다. 시간은 벌써 한밤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거리에는 환한 불빛이 가득 펼쳐져 있었다. 길거리 음식을 파는 사람부터 그저 정처 없이 걷고 있는 사람, 길모퉁이에 쭈그려 앉아 있는 사람까지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여 있는 듯 보였다. 지아 씨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걸음을 재우쳤다.

“그러다가 소매치기 당해요. 얼른 가죠.”

“아, 네.”

 어깨를 감싼 팔이 따스했다. 처음 맡는 타국의 향기에 지아 씨의 은은한 향수 냄새가 흩어졌다. 나는 자꾸만 들뜨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며 가방끈을 꼭 붙잡았다. 지아 씨는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어깨동무를 풀지 않은 채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저기예요.”

“지아 씨는 여기 여러 번 와 보셨나 봐요?”

“그런 편이죠. 안 오면 아무래도 친구가 섭섭해할 것 같아서요. 자, 들어가요.”

 지아 씨가 어깨를 두어 번 토닥인 다음 먼저 자동문 너머로 발을 내딛었다. 깔끔한 대리석 바닥과 부드러운 샹들리에 빛이 시야에 뛰어들었다. 밝은색의 바닥과 대조되게 안내 창구를 감싼 색상은 감색 계열이었다. 로비 중앙에 설치된 폭포 모형에서는 물 대신 빛이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자잘한 줄 조명을 여러 겹 늘어뜨려 놓은 모양새였다.

 나는 가방에서 예약 확인서 따위의 서류들을 꺼내 직원에게 건넸다.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를 대비해 챙겨온 서류들이었다. 직원은 서류에 적힌 내용과 예약자 명단이 일치하는지 몇 번 확인해 보더니, 곧 웃음을 지으며 305호의 열쇠를 건네주었다. 바로 옆에서 다른 직원에게 체크인을 맡긴 지아 씨는 703호였다.

“Magandang gabi.”

 까무잡잡한 손끝에서 열쇠가 흔들거렸다. 내 어깨 위에 팔을 살포시 얹은 다음, 승강기를 찾는 걸음이 경쾌했다. 대리석 바닥에 구두 굽이 닿을 때마다 또각또각 청명한 소리가 로비에 울려 퍼졌다. 승강기의 단추를 누른 다음 발로 박자를 타 가며 이름 모를 곡조를 흥얼거리던 그녀는 불쑥 말했다.

“아까 한 말은 좋은 밤 되시라는 인사예요.”

 부끄럽게도 필리핀에서 통하는 말은 하나도 할 줄 몰라서, 나는 조금 전 지아 씨의 입안에서 매끄럽게 굴러다니던 발음을 속으로 곱씹으며 승강기에 올랐다.

“현 씨, 내일 저녁에 시간 돼요?”

“ㆍㆍㆍ같이 맛있는 거라도 먹을까요?”

 가볍게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더니, 그녀는 입가에도 잔잔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럼 내일 저녁에 뵐게요.”

 한껏 멋을 낸 단화의 굽이 단잠에 빠진 사람들을 깨우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객실 앞 복도에는 푹신한 재질의 양탄자가 꼼꼼하게 깔려 있었다. 열쇠를 사용해 문을 열고 커다란 침대에 몸을 내던지고 나자 이제껏 무시해왔던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챙겨 온 사진은 조심스럽게 꺼내 침대 옆 탁자에 올려두고,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샤워를 했다. 물에 젖은 미역마냥 온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바다는 어쩌다가 세부에 오게 된 걸까. 내일 만날 수는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찾아가겠다는 답신조차 하지 않고 무작정 와 버렸으니 어쩌면 길이 엇갈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쳤다.

 바다는 종종, 드넓게 펼쳐진 해안선을 따라 걷곤 했다. 금방이라도 물거품처럼 꺼져버릴 것 같은 앙상한 몸으로 이따금 물에 들어가기도 했다. 마을 어른들이 만류하면 새벽녘에 몰래 나와 간질거리는 파도에 발만 적시고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새벽녘의 바다가 주는 장엄한 광경을 보통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알 수가 없다. 아직 밝아오지 않은 하늘에서는 갈매기 우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오고, 바다에 녹아 있던 어둠이 푸르게 걷혀 가는 모습을 그 누가 마음에 담고 살아갈까. 외따로 떨어져 배편마저 없었던 작은 섬마을의 아이들은 바다를 동경하며 커 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살풋 잠이 든 모양이었다. 간밤에는 꿈에서 파도 소리를 들었다.

 푸른 물결을 닮은 아이가 해안가에 서 있었다. 동틀녘인지, 수평선 너머에서 타오르는 빛에 바다가 반짝거렸다.

‘푸른 땅을 품은 아이의 진짜 이름을 기억해. 그럼 그 기억만으로도ㆍㆍㆍㆍㆍㆍ.’

 난데없이 날아와 꽂힌 나지막한 속삭임은 아주 어렸을 적, 할머니가 종종 해주시곤 했던 이야기였다. 나는 아이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다. 마침내 손을 뻗어보려는 찰나, 요란한 알람음이 귓전을 때렸다.

 어슴푸레한 아침 햇살이 창문 너머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창을 가린 커튼을 걷은 다음 미리 골라두었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명랑한 호텔 직원들의 호의를 받아 샌드위치를 하나 입에 물고, 일찍 거리에 나섰다. 편지에 쓰여 있던 주소가 정확히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를 몰라 큰길로 나가 택시를 잡아탔다. 아침 풍경에 활기가 깃들어 있었다. 창 너머로 지나치는 사람들은 각자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각자가 향하는 곳으로 나아갈 뿐인데,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창을 열자 바다 냄새가 훅 끼쳐 왔다. 활기찬 도시 소음을 들으며 눈을 감자 마치 바다가 눈앞에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커다란 2층 주택 앞이었다.

 나는 푸른 봉투를 열어 주소를 재차 확인한 뒤 조심스레 초인종을 눌렀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부산스러운 소음을 내며 문을 열어준 이는 처음 보는 아주머니였다.

 집 안을 메운 알코올 냄새가 코끝에 훅 스친다. 챙겨왔던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람을 만나러 왔노라고 설명하자 아주머니는 부드러운 얼굴로 그녀와 무슨 관계냐고 물어 왔다. 아무래도 말은 통하지 않는 모양이라 푸른 봉투와 편지를 건네주었더니, 아주머니는 화색을 띠며 내가 들어갈 수 있도록 한 걸음을 비켜주셨다. 왜인지 들뜬 모습으로 무어라 더 이야기를 하셨지만 대부분은 알아듣지 못했다. 번역기를 거쳐 띄엄띄엄 이해한 내용은 바다가 나를 많이 기다렸고, 와 줘서 고맙다는 말 정도였다.

 바다가 있는 곳은 2층이었다. 보송보송한 햇살 냄새에 알코올 냄새가 섞여들었다. 계단 앞까지 나를 안내해 준 아주머니는 얼른 가보라는 듯 손짓을 하고는 부엌 쪽으로 향했다.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중간 지점에 커다란 창이 있었다. 내내 내리쬐고 있던 햇빛 덕인지 따스한 온기가 몸을 감싼다.

 바다의 방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파도 무늬의 팻말이 걸려 있던 덕이다. 밝은 나무 문을 앞에 둔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이 문 너머에 바다가 있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몇 년 만이더라. 편지가 끊긴 시점부터 계산해 보자면 거의 5년 만이던가.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까마득한 세월이 하잘것없는 숫자가 되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나 이제 와서 영양가 없는 상념은 도움이 되지 않겠지. 나는 팻말에 적힌 바다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른 다음, 천천히 문을 밀어 열었다.

“현아.”

 눈부신 햇살이 창밖에서 부서져 내렸다. 창백한 푸른빛. 감색 광택이 감도는 머리카락. 천천히 침상에서 내려온 바다가 느린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바다의 푸른 분위기도 사람의 시선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우선 내 시야에 뛰어든 것은 바다와 연결된 링거 줄이었다. 바다가 움직일 때마다 한쪽 팔에 연결된 링거 팩이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마음속에서 커다란 어선이라도 침몰한 듯 감정의 회오리가 사정없이 요동친다. 나는 마음속에 피어난 동요를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써 오묘한 푸른 빛의 눈동자에 시선을 고정했다.

 링거 줄만 제외하면 기억 속의 바다와 똑 닮은 모습이었다. 예전보다는 조금 더 야윈 듯하기도 하고, 여전히 눈빛이 맑은 것 같기도 한 바다였다. 자잘한 분위기는 바뀌었는지도 모르지만, 창백한 인상과 금방이라도 풍덩 소리를 내며 빠져버릴 것 같은 눈동자만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 오랜만이라며 포옹을 해 오는 그녀를 마주 안은 채 등을 두어 번 토닥여 주었다. 해풍이 몰고 온 짠 내가 배어 있던 친구에게서는 이제 알싸한 알코올 향이 났다. 그래, 그것만이 달랐다.

“잘 지냈어?”

“나야 잘 지냈지. 한동안 연락도 없더니, 세부에는 언제 온 거야?”

“꽤 됐어. 7년 넘었나?”

“갑자기 왜 간 거야?”

 햇살을 등진 바다가 처음 보는 표정을 지었다. 미간에 느릿하게 주름이 잡힌다. 눈썹을 움찔거리며 입술을 꾹 다무는 건 고민이 있을 때 으레 내보이던 바다만의 버릇이었다. 나는 잠자코 바다의 대답을 기다렸다.

 언뜻 둘러본 방에는 아기자기한 장식들이 가득했다. 책상 위에 즐비해 있는 소라 모형도 신기했지만, 무엇보다도 직접 파도 문양을 새겨 넣은 듯한 책상 상판이 독특하게 아름다웠다. 하얀 펜을 들고 한 땀 한 땀 직접 무늬를 새겨 넣었을 바다를 상상하자 문득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바다는 초등학생일 때도 책상 한가득 파도 무늬를 그려 놓았다가 선생님께 대차게 혼난 적이 있었지. 독특하게 반복되는 무늬는 아마 편지 겉봉에도 새겨놓은 것과 같은 모양인 듯싶었다.

 창가에는 투명한 보석을 꿰어 놓은 듯한 장식을 길게 늘어뜨려 놓았다. 차르륵 차르륵 부딪힐 때마다 소리를 내던 장식들은 햇빛을 잘게 부수어 온 방 안에 빛 조각을 흩뿌려댔다. 부러울 정도로 채광이 좋은 방이다. 회사 생활을 위해 도시로 간 이후로는 한 번도 탐내보지 못했던 햇살이었다. 몇 평 되지 않는 자취방에는 늘 어둠이 짙게 깔려야지만 들어올 수 있었고, 어쩌다 맑은 날 집에 있더라도 빽빽하게 늘어선 건물 탓에 해를 보며 사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탓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하늘을 바라본 것도 꽤나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졌다.

 머리카락을 배배 꼬며 말을 고르던 바다는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탁 트인 바다가 보고 싶어서.”

“우리가 살던 동네도 탁 트인 곳은 있었잖아?”

“아, 너는 모르는구나.”

 바다가 곱게 뻗은 손가락으로 밝은 빛깔의 서랍을 열었다. 이윽고 그녀가 꺼내준 것 노랗게 빛이 바랜 신문 한 부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신문의 첫 장을 넘겼다. 오래된 종이 냄새가 코끝에서 휘몰다 이내 사라진다.

 바닷물이 한 줌밖에 보이지 않는 신문 첫 면의 사진은 간척 사업이라는 거대한 제목을 달고 있었다. 나는 적당한 말조차 찾지 못해 입만 벙긋거리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됐어. 간척 사업 덕분에 섬이 발전하니 뭐니 말들은 많았는데, 결국 예전부터 살던 사람들은 거의 떠났거든.”

“그럼 너도ㆍㆍㆍㆍㆍㆍ?”

“아는 사람 아무도 안 남은 데서 살아봤자 재미도 없고 해서.”

“팔에 그건?”

 내 시야를 쫓아 링거 팩으로 눈길을 준 바다는 금방 호쾌하게 웃어 보였다.

“그냥 영양제야, 영양제. 가끔 맞는 건데, 네가 오늘 올 줄은 예상 못 해서.”

 문득 귓가에 파도 소리가 울렸다. 머나먼 곳에서 우는 갈매기는 내 쪽으로 금방 날아와 머리 위에서 한 바퀴를 크게 맴돈다. 나는 어슴푸레한 새벽의 기억을 걷어내고는 눈앞의 바다에게 온전히 집중했다. 바다는 세부로 날아온 경험을 상세하게 설명해주면서 마치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을 가감 없이 뱉어냈다.

“그럼 지금 혼자 살고 있는 거야?”

“아냐, 아냐. 아까 너한테 문 열어주셨던 아주머니 있지? 그 아주머니랑 같이 살고 있거든.”

“하숙?”

“그런 셈이지.”

 바다의 부모님은 여태껏 한 번도 뵌 적이 없다. 섬마을에 살았을 땐 육지에서 일하시느라 늘 바쁘시다고만 전해 들었다. 집에도 가지 않고 자꾸만 해안가에 앉아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던 바다를 돌봐준 건 마을 사람들이나 우리 부모님이셨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덴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동원되어야 한다는 옛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다. 우리는 평범한 어린아이들답게 장난을 잘 치는 악동들이었다. 악의 없는 훼방을 막기 위해 어선을 운전하시는 윤진 아저씨는 이따금 우리에게 수영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기도 했다. 얕은 물에서 준비 운동을 하고 기세 좋은 파도에 발을 적시다 물속으로 뛰어드는 순간은 늘 짜릿한 쾌감을 선사했다.

 내가 헤엄치는 걸 본 마을 친구들은 나더러 물고기 같다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아가미만 달려 있었다면, 섬마을을 떠나지만 않았다면 난 정말 바닷속을 유영하는 한 마리 물고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햇살이 내리꽂히는 바닷속을 떠다니고 있으면 우주에 놓인 수족관에라도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그에 반해 바다는 수영에는 전혀 재능이 없었다. 물을 두려워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자꾸만 뜨지 않고 가라앉기 일쑤였다. 그 시기의 바다는 마치 물에 떠오르는 걸 거부하는 사람 같았다. 아이들을 가르치기로는 우리 마을에서 제일가는 사람이었던 해준 아저씨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고, 바다의 구명조끼 줄을 몇 번이고 다시 조여 줬던 윤진 아저씨도 결국에는 바다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셨다.

 나는 마치 자연이 바다를 잡아당기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볼 때는 마치 블루홀에라도 발을 들인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다가 다른 사람들이 해수면 밖으로 끌어올려 주면, 바다는 오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물속에서 그 아이가 보고 왔을 광경이 궁금해 한참이나 잠수를 해 보아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묘한 표정이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신문을 도로 접어 바다에게 건넸다. 빛이 바랜 것만 빼면 종이 질은 어느 한 군데 상한 곳 없이 매끄러웠다. 바다는 신문을 다시 서랍 안에 넣어두곤 내게 물었다.

“언제 돌아갈 거야?”

“일주일 뒤에.”

“관광할 곳은 정했어?”

“대충 둘러보고 싶은 곳은 몇 군데 있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

“같이 다닐 일행은 있고?”

“여기 오면서 새로 사귄 친구가 한 명 있긴 해.”

 나는 문득 유지아를 떠올렸다.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망설임 없이 나와 함께 숙소로 향했던 걸 보면 그쪽도 일행이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여행 내내 함께 다니자고 제안이라도 해 볼까. 나는 속으로만 생각을 곱씹으며 눈동자를 굴렸다. 바다는 입가에 호를 그리며 기분 좋게 웃었다.

“비행기에서 만난 사람이랑 친구가 됐어?”

“어쩌다 보니까ㆍㆍㆍ.”

“낭만적이네.”

“그러고 보니 오늘 그 사람이랑 저녁식사 함께 하기로 약속했는데.”

“그럼 슬슬 가봐야겠네. 나도 이따 일이 좀 있어서.”

 손목에 찬 시계는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바다는 링거 줄이 꼬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노을이 넘어가려는지 마치 주황색 물감이라도 풀어놓은 듯한 빛이 거리에 가득 묻어 있었다. 나는 바다에게 주려고 준비해두었던 작은 열쇠고리를 건넨 뒤, 담담한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다음에 또 와. 바다가 창문 너머로 링거를 꽂지 않은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나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바다의 인사를 받아주고는 걸음을 재우쳐 택시를 잡았다.

 숙소 앞에 익숙한 인영이 서 있었다. 나는 그 인영이 지아 씨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처음 보았을 때처럼 날렵한 말총머리를 하고 가벼운 차림을 한 그녀는 휴대전화를 몇 번이고 들여다보다가 나를 발견하곤 힘차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미안해요, 기다렸어요?”

“아뇨, 저도 방금 왔어요. 이 근처에 맛있는 거 없나 하고 찾아보고 있었거든요.”

“우선은 돌아다니면서 한 번 찾아볼까요?”

“좋죠.”

 앞서가던 그녀에게서 나는 문득 낯선 향을 느꼈다. 색색의 화려한 조명이 켜지고, 밤의 활기가 거리를 지배하고 있는 분위기와는 영 상반되는 향이었다.

“지아 씨.”

“네?”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녀가 돌연 입을 다물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지아 씨에게는 실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끝에, 나는 다급히 별말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지아 씨는 내 표정을 읽고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 어느 정도 유추에 성공해낸 모양이었다. 그녀가 팔목에 코를 묻고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아기자기한 조개 장식의 팔찌에서 짤랑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좀, 안 어울리는 향이 나죠?”

 국화꽃의 숨 막히는 향기, 그리고 느리게 타들어가는 향불이 남기고 간 흔적.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으레 배곤 하는 향기였다. 담담하게 갈무리된 표정이 아팠고, 아프다고 말하지 않기에 더욱 저렸다.

“전에 말했던 그 친구가, 사실은 몇 년 전에 떠났거든요. 저기로.”

“미안해요.”

“괜찮아요, 오늘 만나고 왔으니까. 모처럼 즐거운 일도 있었고.”

 지아 씨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줄곧 생각한 거지만 보폭이 정말 넓은 사람이다. 나는 종종거리며 걸음을 재우쳐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이 근처에 맛있는 한인 식당이 있다며 길을 안내하는 걸음걸이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화려한 골목들을 지나치고, 달콤한 향이 나는 거리를 지나자 지아 씨가 눈여겨보았던 가게가 나왔다. 그녀는 음식보다도 먼저 맥주를 주문했다. 시원하게 내려가는 맥주의 맛이 오늘따라 씁쓸하다.

 맛있는 것을 먹고, 기념품을 사고, 사진을 남기다 보니 일주일은 금방 흘러갔다. 나는 간간이 바다를 찾아 미리 인화해두었던 사진을 건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바다는 사진을 한쪽 벽에 고이 걸어두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의 추억으로 가득 찬 방의 벽면에서는 그리움이 나풀나풀 피어났다.

 시간은 쏜살같이 달렸다. 나는 가족들에게 줄 열쇠고리며 엽서 같은 기념품을 사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지아 씨는 지아 씨대로 바쁜 모양이라, 출국 전날에야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작별 인사를 위해 나를 찾아온 그녀는 자동차 면허가 있다며, 이것도 인연이니 출국 시간에 맞추어 공항까지 태워주겠다는 호의를 베풀었다. 숙소에서 보내는 마지막 저녁이었다. 나는 짐을 모두 꾸린 후, 창밖으로 어둑하니 부서져 가는 석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바다와는 낮에 이미 작별 인사를 마친 상태였다. 나는 바다에게 추려 둔 사진첩을 건네주었고, 바다는 나에게 직접 만든 엽서 한 장을 선물했다. 세부의 바다를 담은 듯한 모양새였다. 보랏빛과 청록색이 오묘하게 뒤섞여 빚어내는 색감이 마치 오로라 같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마지막 포옹을 나누었다.

 나는 이제 한철 나기 꽃과 친해지고 만 꿀벌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꼭 붙잡은 바다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또 기회가 있을 거라 섣불리 믿었다. 지아 씨의 차를 타고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도 그리 믿고 있었다. 밤늦은 시간임에도 공항에는 여전히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내가 선물한 열쇠고리를 들고 은은하게 미소를 그려 보인 지아 씨가 내게 나지막이 물었다.

“어떻게, 여행은 즐거웠어요?”

 하늘은 오전부터 꾸무럭한 게 조만간 비가 한바탕 쏟아질 것처럼 보였다. 잿빛으로 뒤덮인 하늘이 얼룩덜룩 어둠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습도가 올라가면서 공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지아 씨가 메고 온 가방을 뒤적여 무언가를 꺼냈다.

 푸른 봉투였다.

 쿵쿵거리는 심장음 위에 파도 소리가 덧씌워졌다.

“바다한테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받아들자, 지아 씨가 얼른 열어보라는 듯 고개를 으쓱해 보였다. 나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봉투를 열었다.

 사진 한 장, 그리고 시야에 뛰어든 서류 한 부는 사망 진단서였다.

 날짜는 5년 전이다. 나는 5년 전에 도착한 것을 마지막으로 뚝 끊겨버린 바다의 편지를 떠올리며 헛숨을 삼켰다. 간신히 마음을 가다듬으며 바라본 이름 칸에는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바다의 본명이 적혀 있었다.

‘해 일’

 기억이 머나먼 과거를 향해 날았다. 잿빛 바다가 코앞에서 넘실거렸다. 고래 울음소리가 성큼 가까워졌다 멀어지고 있었다. 처음 보는 기계 장비들이 해안가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 문득 눈에 띄었다. 나는 이질적일 만큼 작아진 손을 쥐었다 펴며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바다가 드넓은 수평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 아이는 늘 수영을 못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달랐다. 양팔로 힘차게 물살을 가르고, 힘껏 발을 굴려 앞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그 아이의 손에 함께 붙들려 뭍으로 돌아온 건 한 마리의 참돌고래였다. 외따로 떨어져 있는 데다 사람에게 붙잡힐 정도로 느린 걸 보면 아무래도 무리에서 떨어져 부상을 당한 모양이었다. 물을 뱉어내며 몇 번인가 헛기침을 하던 바다는 재빨리 고래의 상처부터 살폈다.

 붉은 피가 번져 나오는 데 비해 상처는 그다지 깊지 않았다. 바다는 상처 부위를 눌러 지혈을 해 주고는 다시 물로 돌려보내 주기 위해 꾸물꾸물 움직였다.

 해안가에 버려져 있던 그물이 그 아이의 발목을 휘감은 건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 몸이 꺾어졌다. 별안간 시야에서 사라진 바다를 쫓아 나는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염분이 섞인 물이 새벽녘의 해풍과 만나 사정없이 얼굴을 강타했다.

 재빨리 바다의 손을 낚아챘지만 역부족이었다. 나는 자꾸만 미끄러지는 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억지로 붙잡은 바다의 옷깃을 꽉 쥔 나는 몸을 휘감은 한기에 이만 딱딱 부딪쳤다.

 새벽녘의 바다는 몹시 춥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심장을 에는 듯한 추위에도 나는 어쩌질 못하고 하염없이 바다를 붙들고만 있었다. 손끝에서 생명이 꺼져 가는 것이 두려웠고, 그 생명이 바다의 것이라는 것이 두려웠다. 그 사이 바다는 발목에 걸린 그물을 빼내려다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앙칼지게 해수면 위를 달리던 목소리가 해풍에 풍화되어 바스러졌다.

 커다란 바다의 아가리가 작은 아이를 집어삼켰다. 태양은 이제 떠오르기 직전이었다. 나는 검은 물감에 감화되어버린 바다를 허우적거리며 나아갔다. 나를 붙잡고 있던 가녀린 손은 이미 저 먼바다로 빠져나간 지 오래였다. 바람이 강해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나는 바다의 이름을 연신 외치며 후들거리는 다리로 얼음장 같은 물속에 들어섰다.

 어른들이 도착한 것은 바닷물이 내 목 언저리에서 넘실거리고 있을 즈음이었다.

 어른들의 억센 손에 이끌려 뭍으로 돌아온 바다는 그날부터 아주 깊은 잠을 잤다. 내가 충격으로 사고 당시의 기억을 잃고, 섬을 떠날 때까지도 좀처럼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였다.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았던 그 사건의 기억을 모두 지워버린 건 나를 지키고자 하는 무의식의 일환이었다.

 나는 그제야 할머니가 해 주셨던 이야기를 온전히 떠올려냈다.

‘푸른 땅을 품은 아이의 진짜 이름을 기억해. 그럼 그 기억만으로도 너는 그 아이의 조각을 바라볼 수 있을 게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눈앞에 선 지아 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희미하게 묻어났던 향내와 국화꽃의 향기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까지 순식간에 파악하고 말았다. 내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나를 안아 왔다.

 가려두었던 기억이 물밀듯 터져 나왔다. 손톱에 봉숭아 꽃물을 들이며 해맑게 웃던 아이들의 이름이 푸른 하늘에 조각조각 흩어진다.

“바다가 마지막으로 현 씨를 꼭 보고 싶어 했어요.”

 나도 모르게 읊조린 두 글자에 문득 지아 씨의 움직임이 멎었다. 공항에 걸린 전광판은 내가 타야 할 비행기의 탑승 수속 과정이 시작되었음을 알렸지만, 그런 사사로운 것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짐 가방을 내려놓고 지아 씨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지아 씨, 저 바다한테 못 한 말이 있어요.”

“비행기는 어쩌고요?”

“괜찮으니까 바다한테 가요, 얼른요.”

 도로 운전석에 앉은 지아 씨가 부릉부릉 시동을 걸었다. 힘찬 엔진의 구동 음이 귓전을 때렸다. 나는 지나가는 모든 풍경들을 놓치지 않도록 손잡이를 꽉 붙잡은 뒤, 잽싸게 지나쳐 가는 바람에 맞서 눈을 치켜떴다. 바다의 본명, 지금껏 아무도 불러주지 않아 녹슬 뻔했다던 이름 하나는 외자였다. 성은 해 씨에 이름이 일이다. 이토록 독특한 이름을 잊어버린 이유는 그간 일을 바다라는 별명으로만 불러댔던 탓이었다.

 거리의 불빛이 순식간에 지나쳐 갔다. 사람들이 우리가 지나쳐 갈 때마다 문득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지아 씨와 어울리는 붉은색 자동차는 바다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나는 코앞에 다가온 바다의 짠 내음을 깊이 들이마시며 먹빛으로 물든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낮에 보았던 바다는 투명한 옥빛이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펼쳐진 바다는 어둠을 한없이 집어삼켜 먹물만 한가득 넘실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거의 뛰어내리다시피 조수석에서 내려왔다.

 길게 뻗은 해안선을 따라 걷다 보니 물가에 넘실거리는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잔뜩 갈라진 목소리를 모아 힘껏 뱉어냈다.

“일아.”

 새벽녘의 푸른 빛, 한밤중의 잔향을 모두 품은 그녀가 천천히 나를 돌아본다. 철썩거리는 파도의 울음소리 위에 그날의 기억이 생생히 덧씌워졌다. 자동차 시동을 꺼 두고 뒤늦게 나를 쫓아온 지아 씨의 발소리가 사박사박 가까워 왔다. 나는 문득 오른쪽 팔목이 간질거리는 감각을 느꼈다. 푸른 실로 연결해둔 팔찌의 올이 사락사락 풀려가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바닷바람을 맞아 한들거렸다. 저 멀리 쏟아질 것만 같던 별들이 내 곁으로 훌쩍 다가온 것 같았다. 나는 바다의 잔상을 향해 손을 뻗었다가, 곧 오른 손목에 채워둔 팔찌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천천히 팔찌를 풀어냈다. 손에 쥔 실이 얕은 빛을 발했다. 조개껍데기가 찬란한 광택을 흩뿌리며 제 존재감을 뽐냈다.

 나는 바다의 방에 걸려 있던 장식들을 떠올렸다. 강한 빛을 자잘하게 쪼개어 그림자 속에 흩뿌려주던 보석 장식들이 문득 생각이 났다. 작은 빛을 품은 팔찌를 살포시 손에 쥐여주었더니, 바다는 잔잔한 미소를 그려냈다.

 그와 동시에 마치 그림자처럼 서 있던 바다는 희멀건 물거품이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실로 장엄한 광경이었다. 나는 내가 보았던 모든 신기루 같은 형상들을 기억 속에 새겨놓기 위해, 일렁거리는 시야를 애써 다잡았다. 마지막으로 읊조려 본 이름 두 자와 함께 바다는 완전히 밤하늘에 녹아들고 말았다.

 내가 본 게 신기루라 해도 좋았다. 허상뿐인 바다를 아꼈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탁 트인 곳에서 만족하며 떠나갔다면 그것으로 나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아 씨의 따뜻한 손길이 어깨를 감싸 왔다. 그녀의 손목에 걸려 있던 팔찌도 어느샌가 푸른 실의 잔재만 남았을 뿐, 조개껍데기의 형상은 사라진 채였다.

 하늘에 비행기가 날아오른다. 바다에선 여전히 철썩거리는 파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넓은 은하수의 하늘이 너의 품인지, 빛과 어둠을 모두 삼킨 바다가 너의 마음인지, 달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눈물방울이 너의 흔적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네 이름대로 마음껏 물러났다가 한꺼번에 또 와르르 밀려오기를, 나는 남몰래 바랐다.

 그렇게 밤이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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