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회
우리가 산업재해에 분노하는 이유
  • 안보영 기자
  • 승인 2022.11.07 08:00
  • 호수 692
  • 댓글 0

지난 15일(토) 오전 6시 20분경 평택 SPC 계열 SPL 제빵공장에서 근로자 A씨가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소스 교반기를 가동하던 중 기계에 상반신이 끼여 목숨을 잃었다. A씨는 밤새 파리바게뜨에 납품할 샌드위치의 소스를 만들고 있었다. SPC 그룹 측은 16일(일) A씨의 장례식장에 파리바게뜨 빵 두 박스를 놓고 갔고, 유족은 분노하며 “이 공장에서 일하다 숨졌는데 이 빵을 답례품으로 주는 게 말이 되냐”며 언론을 통해 전했다. 이 사실은 소비자들의 분노에 불을 질렀고, SPC 계열 브랜드 리스트가 인터넷상에 빠르게 퍼지면서 SPC 불매 바람은 커졌다. 허영인 SPC 그룹 회장은 사건 발생 한 주 뒤인 21일(금) SPC 본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그러나 SPC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한 지 이틀 만인 23일(일), 또 다른 SPC 계열사 공장에서 노동자의 손가락이 기계에 끼여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는 부상자가 1명이고, 사망 사고가 아니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데, 어느 경우에 적용되고 적용되지 않는지, 근무 중 발생하는 사고에 대한 책임을 누구한테 물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발생한다. 우리가 중대재해 사고에 분노하는 이유와 다른 사고는 어떻게 대처돼 왔는지 살펴본다. 


사고 발생 경위

지난 15일(토) 제빵공장에서 발생한 사고가 왜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당시 누구도 사고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고, 평소 작업 시 앞치마가 끼이거나 어쩔 수 없이 손을 넣어야 하는 경우가 있으니 그걸로 원인을 추측할 뿐이다. 다만 이번 사고의 쟁점은 회사의 안전 조치다. ▲비상 상황에 대비한 ‘2인 1조’ 작업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 ▲회전하는 소스 배합기에 끼임 사고를 방지할 덮개나 ‘인터록’(덮개를 열면 기계가 멈추는 자동 멈춤 장치)이 없었다는 점 ▲사고 일주일 전 비슷한 끼임 사고가 있었는데 별다른 예방 조치가 없었다는 점이다. 

사고 직후인 15일(토) 오전 동료는 발견 2분 뒤 야간 현장관리자에게 유선으로 전화 연락을 했고, 8분 뒤 관리자는 119에 신고했다. 119가 도착한 건 18분이 더 지난 뒤였다. 이후 야간 조 동료들은 소스 배합기에 가득 찬 소스를 퍼내 피해자를 수습해야 했다. 그러나 회사는 야간 조 동료들 중 일부에게만 16일(일)부터 휴가를 줬다. 나머지는 회사 지시로 16일(일) 밤 출근해 재료를 폐기해야 했고, 주간 조는 피해자가 숨진 기계를 옆에 두고 일해야 했다. 16일(일) 정의당 의원들이 공장을 방문해 사고 현장을 살펴보는 사진에서도 노동자들은 빵을 만들고 있었다. 

SPL 노동자들은 사측의 총체적 안전관리 부실과 안전교육 부실 등을 지적했다. SPL 평택공장 1,100여 명 근로자 중 20여 명이 가입한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는 사측이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안전교육을 제대로 실시하지 않았을뿐더러 이수 서명만 받는 방식으로 서류를 날조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으로 SPL이 근로자의 안전한 업무 환경 확보를 위한 안전 예산을 작년보다 많이 삭감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5년간 산재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5년(2017~2021년) 동안 식품 제조 기계와 관련된 사고로 305명이 부상을 입거나 숨졌다. 그러나 한국에는 산업재해 국가 통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산업재해 발생 현황 통계는 산재보험을 통해 ‘산업재해’로 인정받아 보상받은 경우를 집계한 결과다. 즉, 산재로 인정받지 못한 노동자, 일하는 도중 죽거나 다쳤다는 점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통계에 누락되는 노동자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SPC 그룹 제빵공장 산재 사망 사고를 조사하기 위해서 18명으로 구성된 전담팀도 꾸렸다. 모든 사망 사고에 이와 같은 조치가 취해지지는 않는다. ‘이달의 기업살인’에 따르면, 올해 1월 27일(목)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노동자는 ▲1월 67명 ▲2월 49명 ▲3월 65명 ▲4월 73명 ▲5월 67명 ▲6월 61명 ▲7월 82명 ▲8월 79명이다. 작년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산재 사망 노동자는 총 833명이다. 올해 9월 산재 사망 노동자는 총 82명이고, 유형별로 ▲떨어짐(23) ▲깔림(9) ▲끼임(8) ▲화재 및 폭발(8) ▲물체에 맞음(8)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그중 이번 SPC 사망 사고처럼 식품 제조 기계 관련 끼임 사고 정보를 언급한다. 

2022-09-05 끼임
부산 해운대구 / 오전 11시경 / 부산시 해운대구 소재 사업장 내 노동자 A씨가 가동 중인 식품 혼합기에 고무장갑을 착용한 손으로 재료를 넣던 중 몸이 기울어져 임펠러(회전 날)에 말리면서 끼여 사망.

2022-05-11 끼임
경북 청도 / 오후 5시 32분경 / 경북 청도군 화양읍 소재 고춧가루 제조업 공장에서 노동자 A(48)씨가 엉켜있는 고춧가루를 푸는 작업 중, 분쇄기에 몸이 끼여 사망.
사망한 노동자는 20대부터 70대까지였으며, 국적 역시 다양했다. 식품 제조 기계 관련 끼임 사고 외 발생 원인은 기계에 끼인 후 안전 센서 미작동 및 작업에 필요한 차량 끼임 사고 등이었다. 


중대재해처벌법과 허점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고용노동부 산업재해현황> 데이터에 따르면 2020년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2,062명이고, 재해자 수는 108,379명이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세월호 침몰 사고, 구의역 스크린도어 김 군 사망사고,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씨 사망사고 등 산업재해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원인을 제공한 기업과 기업주들이 가벼운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받는 등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못하자 이들을 제대로 처벌해야 
안전한 노동환경을 보장할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됐다. 이에 지난 1월 27일(목)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시행됐다. 

이 법률은 “사업 또는 사업장, 공중이용시설 및 공중교통수단을 운영하거나 인체에 해로운 원료나 제조물을 취급하면서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하여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 공무원 및 법인의 처벌 등을 규정함으로써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 중대재해란 「산업안전보건법」 제2조 제1호에 따른 산업재해 중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이 해당하며, ‘중대시민재해’란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동일한 사고로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10명 이상 발생 ▲동일한 원인으로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가 10명 이상 발생이 해당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시 근로자가 5명 미만인 사업 또는 사업장의 사업주(개인사업주에 한정한다) 또는 경영책임자등’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근로복지공단에 접수된 SPC 계열사들의 산업재해 신청 건수는 최근 5년간 꾸준히 증가해 총 877건이었고, 승인된 산재 사고 건수는 759건에 달한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산재 사고가 발생한 셈이다. 다만 지난 5년간 사망 사고가 없었으므로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피할 수 있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허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경영책임자가 법이 정한 보건 및 안전 의무를 위반해 중대재해에 이르게 된 경우라면 책임자가 처벌받지만, 사고가 발생해도 법적 의무를 준수했다면 처벌받지 않는다. 이는 책임자에게 면책 사유를 제공한 것이다. 법적 기준선 역시 모호하다. 예로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에서 주관적 해석의 여지가 다분한 ‘필요한’ 등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에게 부과된 의무 규정 혹은 관리상의 행위인데, 이 점이 오히려 경영책임자를 위축하게 만들어 현장의 안전성을 책임지는 행위는 하지 않고 면피성 업무에만 몰입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노동자의 투쟁 

눈앞의 비용 절감에 매달리다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SPC 그룹 계열 제빵공장 사고 다음 날인 지난달 16일(일) 충남 천안에서 크렌인이 파손돼 떨어진 자재에 맞아 노동자가 사망했고, 그다음 날인 17일(월)에는 인천 연수구에서 방수 작업 중이던 노동자가 추락해서, 18일(화)에는 충북도청 도로보수 공무직 노동자가 도로보수 작업 중 트럭에 치여서, 19일(수)에는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하청업체 노동자가 지게차에 깔려 사망했다. 산업현장에서 벌어지는 중대재해는 하루가 멀다 하고 그칠 줄 모른다. 그런데 지금까지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받은 사업·경영주는 없다.

재해 사실을 은폐하지 않고 안전장치 및 예방을 제대로 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산업재해처럼 노동자들은 열악한 근무 환경 개선과 안전하고 보장된 근무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곳곳에서 투쟁해왔다. 지난 7월에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이 51일간의 파업을 끝내고 노사 협상을 타결했다. 당시 파업 현장에는 0.3평 철제 감옥에 자신을 유폐한 유최안 노동자와 고공농성을 해온 노동자 6명이 있었다. 극적인 노조 협상 타결이었지만, 하청노동자들이 그동안 겪은 고통에 비하면 결과물이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현재 하청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최저 임금을 가까스로 넘긴 수준이며, 현장 인력 비중이 압도적이고 위험 부담이 따른다는 점에서 노동집약산업인 조선업은 이들의 희생을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SPC를 상대로 한 투쟁도 있었다. 지난해 노조는 SPC에 파리바게뜨 노동자의 휴식을 보장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행 등을 요구했으나 SPC 그룹은 사회적 합의 이행 완료를 스스로 선언한 후 관리자들을 통해 노동조합 탈퇴를 종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올해 3월 28일(월)부터 5월 19일(목)까지 파리바게뜨지회(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소속) 임종린 지회장은 사회적 합의 이행, 노동기본권 보장 및 민주노조 탄압 중단을 요구하며 53일간 단식농성을 진행했다.

노동자들은 그들의 당연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자신을 가두고, 굶고, 목이 터져라 요구하는 등 극단적 투쟁을 해왔다. 극단적인 방식이 아니면 사회의 관심조차 얻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들의 극단적 투쟁에도 기업은 대화조차 시도하지 않으며 이들의 행위를 불법 행위 혹은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로 매도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1907년, 1916년 두 차례에 걸친 퀘백교 붕괴 사고로 각각 작업원이 75명, 13명 사망한 사례가 있다. 계획 부실, 비숙련 엔지니어, 비용 절감 공법 등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사고 이후 캐나다의 엔지니어들은 오른손이나 왼손의 새끼손가락에 반지를 끼기 시작했고, 이 전통은 대학 졸업 시 ‘엔지니어의 소명 의식(The Ritual of the Calling of an Engineer)’이라는 수여식을 통해 전수된다. 이 반지의 면은 각이 져 있는데, 엔지니어들이 도면 작성이나 글씨를 쓸 때 반지가 바닥에 긁히면서 잘못된 선을 그리거나 계산 오류를 저지르지 않도록 방지하고, 이들의 오류가 초래할 참담한 결과를 잊지 말라는 뜻에서 엔지니어의 직무상 의무를 상기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가 산재사고를 대하는 태도와는 분명 차이가 있어 보인다. 

박주영 판사의 <어떤 양형 이유>의 일부분을 빌려 노동자들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옴에 가장 적확한 단어는 퇴근이나 귀가일 수 없다. 생환이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말처럼 이들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정의의 빈 부분을 채우고 있다. 우리는 산업재해에 분노하고, 재난·사고의 위험에 대해 늘 상기시키며 부정과 비리, 실수와 무지가 사회에 초래할 암담한 결과를 잊지 않고 이를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창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안보영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