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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진의 Talk Talk] 회상
  • 임현진 편집국장
  • 승인 2022.10.17 08:00
  • 호수 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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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가 잠든 새벽녘에도 여전히 눈을 뜨고, 순간에 갇혀 한 표정만을 짓고 있는 것. 지그시 보고만 있어도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그 시절만의 붉은 볼, 누구에겐 잔주름,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적 없음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망각 속 흐려지는 잔상에 선명함을 입혀주는 매개체이자 소중한 순간을 엮고 땋은 책이다. 글이 있어야 책인가. 무슨 내용인지, 어떤 장면인지 그려지기만 하면 됐다. 그것이 비로소 책이니 책장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여운이 남는다. 기자에게 한 장의 책장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다르게 읊어보면, 쌓여있는 사진들을 한 장씩 넘겨볼 때 그저 단편영화 같기만 하다. 불연속적인 장면을 이어 놓으니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의 모든 순간이 엮어져 있었으니까. 순간을 함께 한 사람들까지 그 속에 담겨있다. 기자의 시간을 채워준 고마운 사람들의 모습까지도 잊지 않을 수 있었다. 이는 불씨가 꺼지고 연기만을 내뿜는 모든 모닥불에 가느다란 생명을 불어넣는 것과 같았다.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지기 마련이니까. 그 순간을 남긴 과거의 기자에게 고마웠다. 시간이 지나도 선명히 남을 수 있는 것이 이 세상 만물 속에 몇 없는데 사진은 배신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변하고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불변의 진리에 이의를 표할 수 있게 됐다.
 기자는 유독 사진을 좋아했다. 지나고 보면 사진만큼 재밌는 것이 없다. 당시가 생생히 떠오르기도 하면서, 그 당시의 날씨와 기분, 기자에게 일어난 사소했던 일까지 모조리 그 한 장이 기억해 주는 것만 같았다. 옛날 사진을 보기 시작하면 시간이 멈춘 듯 저항 없이 빠져들곤 했다. 현재가 멈춘 대신 과거가 움직이는 듯, 과거의 모든 것이 숨을 쉬고 움직이는 것이다. 감동적인 영화의 한 장면이나 귀를 홀리는 노래 한 소절을 들었을 때처럼 숨을 잠깐 멈추고 나만의 세상에 빠져들곤 한다. 그러다 보면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사진 속 함께한 사람들의 목소리. 세상에 잠깐 머물다 사라진 사람의 목소리까지 더듬을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익숙한 목소리가 들릴 때 한 번쯤 돌아보게 되는 것이, 목소리에 개성이 있나 보다. 어쩌면 우리 뇌는 기억하고 싶은 누군가를 위해 익숙한 소리에 반응하도록 자리를 만들어 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 목소리는 할아버지 목소리니까 저장해놔야지’와 같은 유치하지만 고마운 자리가 뇌 한 켠에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게 직접 듣는 소리가 아닌 어떠한 장면일지라도.
 누군가를 잊어가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늘 서글프게 다가왔다. 사진은 순간의 모습은 담지만 목소리는 담지 못했기에, 분명 나는 누군가를 추억하고 있는데 뭔가 텅 빈 느낌이었다. 어두워진 방에 누워 창문 밖을 바라보다 늦은 새벽까지 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소리를 들었는데, 그때 깨달았다.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했다. 한참을 운 적이 있었다. 잊었다는 사실에 미안했고, 어찌할 줄 몰랐다. 다시 들을 수 없으니 기억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명할 수는 없어도 어렴풋이 들리는 사진 속 대사와 그 말을 하던 목소리에 조금은 편안한 미소를 띨 수 있었다. 귀로 들리는 것만이 소리가 아니구나.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그 가수만의 음색이 떠오르는 것처럼 소리도 기억할 수 있구나 싶었다. 18살 마지막으로 들었던 그 목소리를 더듬으며 회상을 해봤다. 옅지만 영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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