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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정당하고 존중받는 사회를 향해
  • 안보영 기자
  • 승인 2022.05.16 08:00
  • 호수 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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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일) 123주년 노동절을 맞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이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전면 해제 이후 첫 대규모 집회다. 민주노총은 서울을 비롯한 경기, 인천, 대구, 부산, 광주, 제주 등 전국 16개 지역에서 ‘2022년 세계 노동절 대회’를 열었다. 민주노총은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하며 ‘차별 없는 노동권’과 ‘해고의 위협이 없는 안전하고 질 좋은 일자리’를 외쳤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의 대화를 요구했다.

<차별 없는 노동권, 해고 위협 없는 일자리>

 해마다 돌아오는 5월 1일은 ‘세계 노동절(May Day)’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절이라고도 하지만 ‘근로자의 날’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노동’과 ‘근로’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근로’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고,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이다. ‘노동’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라고 나와 있다. 즉 근로는 사용자에게 귀속된 수동의 뉘앙스, 노동은 노동자 자신을 위해 일하는 능동의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다. 과거 정권에서부터 ‘노동’이라는 단어는 ‘근로’로 대체돼 오고 있다. 오랜 기간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서 ‘노동 3권’이라고 불려온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은 ‘근로 3권’으로 불리고 있다. 학술적으로 두 용어에 큰 차이는 없으나 용어의 뉘앙스 차이는 분명함으로 헌법에서부터 노동자에 대한 존중과 노동의 가치가 분명하도록 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노동절은 온 세계 노동자들의 권익과 연대를 상징하는 기념일로, 1886년 미국 시카고에서 일어난 노동 투쟁에서 비롯됐다. 1880년대 미국의 노동자들은 하루 12~16시간 장시간의 노동과 허름한 집 방세도 내기 힘든 정도의 급여를 받으며 살고 있었다. 1886년 5월 1일,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했고, 경찰의 발포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3일 뒤인 5월 4일, 30만 명의 노동자가 경찰의 만행을 규탄하는 평화 집회를 열었지만 미국 정부는 이들을 폭동죄로 체포했고, 이들에게는 사형이 선고됐다. 이 사건이 바로 세계 노동 운동사에 기록된 ‘헤이마키트 사건’이다. 이후 1889년 창립된 제2 인터내셔널이 시카고 노동자들을 기리며 1980년 5월 1일을 제1회 메이데이로 선포했다. 주 8시간 노동제와 노동일 수 단축 운동도 이때 병행됐고, 1938년에 8시간 주5일제 법이 미국에서 입법화 됐다. 하지만 위 일은 모두 19세기, 20세기 초반의 일이다. 이른바 3차 산업혁명도 20세기 후반이므로, 21세기 현시점의 노동과 비교하면 매우 다르다.

<우리나라 노동 현장>

 2022 OECD Hours worked 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평균 연간 근로 시간은 2020년 기준 1,908시간으로 회원국 중 4번째로 많았으며, 2022 OECD Temporary employment 지표에 따르면 2020년 우리나라 임시 고용률은 26.1%로 회원국 중 2번째로 많았다. Employment rate 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15~64세 고용률은 68%로 2번째로 적었다. OECD가 2020년 8월 11일 발표한 「한국경제보고서(OECD Economic Surveys: Korea 2020)」에 따르면 생산성 및 일·생활 균형·환경 부문 삶의 질 제고가 필요하며 다른 회원국 대비 여성·청년 고용률이 낮고, 고령층이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 후 소득감소 등이 발생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다만 코로나 19 완화 조치로 고용시장이 활기를 되찾으며 통계청이 발표한 「2022.03 고용동향」을 보면 15~64세 고용률은 67.8%로 전년동월대비 2.1%p 상승,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46.3%로 전년동월대비 3.0%p 상승했다. 취업자는 2,775만 4천 명으로 전년동월대비 83만 1천 명 증가했다.

 한편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취임 당시 ‘비정규직 제로(0)’ 시대를 내세웠으나 지난해 비정규직 수는 오히려 150만 명 증가했고, 대졸 이상 비정규직도 284만 명을 기록했다. 문 정부 출범 첫 해 32%였던 비정규직 비율이 지난해 35%를 넘어서는 역설이 발생한 것이다. 최저임금은 5년간 시간당 6,470원에서 9,160원으로 인상됐다. 노동 규제는 강화하면서 최저임금이 비약적으로 인상돼 인건비 부담이 커지자 기업들이 신입 채용은 기피하면서 정규직 등의 일자리는 줄인 것이다.

 비정규직은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비정규직 고용 형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도입됐으나 양상은 오늘날과 조금 다르다. 현대 비정규직 형태는 노동자를 일회성으로 취급하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임금 등과 같은 부분에서 이른바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 ‘노동유연화’라는 보기 좋은 말로 포장해 결국은 노동자를 마음대로 해고하고, 임금을 적게 주고, 정규직과 비슷한 수준의 업무를 시키고 있다. 정부 기관에도 비정규직이 있다. ‘공무직’이라 불리는 이들은 공무원이 아니면서 정부의 공무를 담당하고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 민간인(기간제, 용역 등) 중 무기 계약직으로, 공무원과 유사 동일한 업무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우에서 극심한 차별을 받고 있다. 2007년 노무현 정권은 ‘비정규직 보호법’을 신설해 한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2년 이상 근무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했으나 정작 노동자들은 이 법을 ‘비정규악법’이라 칭하며 철회를 위해 투쟁했다. 사용자는 노동자를 2년 이상 사용하지 않고 해고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임금피크제 역시 지적되고 있다. 임금피크제는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으로 인한 50대 이상 고령층의 실업 완화 및 고령층의 경험과 노하우를 살리고자 도입됐다. 근로자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면 임금을 점진적으로 삭감하는 대신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고, 남은 자원을 신규 채용에 쓰자는 취지이다. 하지만 임금피크제는 신규 채용은 등한시하고 단순히 고령 근로자의 임금 수준만 하락시키는 방향으로 악용될 수 있으며 실질적으로 정년 보장은 되지 않는 상황에서 근로자를 싸게 쓰는 방식으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노동 정책, 무엇이 바뀌나?>

 2018년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노동시간을 주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고 특례업종을 축소하는 ‘근로기준법’이 개정 추진됐다. 근로 시간을 단축해 과로 사회에서 벗어나고 국민의 건강한 삶과 일·생활의 균형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다만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노동 시간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대표 공약인 ‘노동 시간 유연화’ 때문이다. 주 52시간을 근무해도 OECD 노동 시간 최상위권인 우리나라이기에 큰 틀은 유지하되 노사 합의에 따라 직무나 업종 특성에 맞춰 노동 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하자는 것이다. 즉 기존 1~3개월이었던 선택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을 최대 1년으로 대폭 확대하면 1년 동안 주 평균 근로 시간을 52시간 이내로 맞추고 그 안에서 노동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한 해 일정 기간 주 100시간을 일해도 다른 노동 시간을 줄이면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다.

 이러한 공약은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 나타난 양상 때문이다. 사용자는 특정 기간에 업무가 몰리더라도 노동자들의 근무 시간을 늘릴 수 없어 업무에 차질을 겪었고, 노동자는 근로 시간 감소로 임금이 줄거나 노동 시간을 넘겨도 기록을 남기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특히 발주처 납기일을 맞춰야 하는 제조업체나 성수기·비성수기가 극명한 기업의 경우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했다. 업무량 증가 등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 주 52시간을 넘게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특별연장근로’ 제도가 있긴 하나, 고용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고작 9개월 만에 1년 치에 해당하는 4,542건을 넘어섰다. 이에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일(목) 페이스북에 “근무 시간 산정 단위를 주 단위로 고집할 것이 아니라 탄력적으로 운영해서 기업과 근로자가 처한 현실을 잘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일부는 디지털 전환 시대와 코로나19로 인해 바뀐 근무 형태 등을 반영해 근로 시간에 다양성을 주는 것을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유연 근무제 시행을 반기지 않는 사람들은 윤 대통령이 친기업 행보를 보인다고 말한다.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스타트업 관계자 인터뷰 이후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고 한 말과 같은 맥락에서다. 하지만 게임 업계는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다. 게임 업계에는 오랜 관행인 ‘크런치 모드’가 있다. 크런치 모드는 게임 등 소프트웨어 개발 업계에서 마감을 앞두고 수면, 영양 섭취, 위생 기타 사회활동 등을 희생하며 장시간 업무를 지속하는 것으로, 평일 연달아 야근은 물론 주말 출근도 당연하게 여겨져 ‘워라밸(워크&라이프 밸런스·일과 삶의 균형)’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하지만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 억지로 야근하거나 자신을 희생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유연 근무제가 도입된다면 합법적으로 과도한 크런치 모드가 다시 가동될 위험이 있어 유연근무제가 장시간 노동을 방치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한편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플랫폼 노동자 및 5인 미만 사업장, 비정규직, 산업노동안전 등에 대한 노동자 보호 안전망이 구축되지 않은 채 유연 근무제가 도입되면 노사 간 대립이 극에 달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노동 시간 유연화 이외에도 윤석열 정부는 ▲임금체계 절차 간소화를 위해 공공부문 먼저 연공급제(호봉제)를 줄이고 직무·성과급제 도입 ▲다양한 고용 형태의 노동자 기본권 보장을 법제화 등을 발언했다.

 이 순간에도 노동자들은 취약한 노동 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신제품 개발을 위해 밤낮을 지새우고,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비정규직이 철폐되지 않는 한 비정규직의 내일은 없고, 노동자의 인간다운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한 이들의 노동은 정당하게 존중받지 못한다. “노동자는 이제 우리 사회의 주류”라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노동절 축사가 허물만 남지 않도록, 노동자들의 노동이 정당하고 존중받는 사회가 되도록 변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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