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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창원대문학상 소설부문 장려 - 하나뿐인 내 편
  • 창원대신문
  • 승인 2022.05.02 09:01
  • 호수 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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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내 편

김가은(국어국문학과 2학년)

 

“그땐 엄마가 어리고 아무것도 몰라서 그랬지, 지금이었으면 아주 다 엎고 난리 쳤을 거야.”

이 날은 유난히 해가 화창하게 내리쬐었으며 구름은 적절히 두둥실 떠다녀 최적의 날씨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린 그 하늘 아래에서 신나게 도로를 달리는 중이었다. 내가 성인이 된 부터였을까,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나와 단 둘이 차를 타고 갈 때면 자신의 시집살이 이야기들을 하나 둘 늘어놓기 시작했다. 혈혈단신 어린 나이에 시집 와 겪은 이야기들은 들어도 들어도 화수분처럼 쏟아 나왔다.

“그때 시어머니가 자기가 아프니 나보고 죽을 만들어오라고 그랬어.”

“근데?”

“전복죽을 해갔더니 누가 감기 걸렸는데 전복죽을 먹냐며 핀잔을 주더라. 다시 만들어오라면서. 참나, 지금 생각하면 진짜 웃기지? 근데 그때 엄마는 어렸어가지고, 그래 너무 어려서 그냥 내가 잘못했나 싶었지.”

“그래서 또 만들어 갔어?”

“응. 몇 번이고 만들어 갔어. 참깨죽도 해보고 소고기죽도 해보고 야채죽도 하고. 아주 별의 별 죽은 그때 다 만들어본 거 같네. 지금이었으면 다 때려 치고 나왔을 텐데.”

“진짜 미쳤어. 엄마 진짜 고생했다. 그게 뭐하는 짓이야 진짜.”

내 기억 속엔 희미하게 남아있는 친할머니였다. 사실 기억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젠 고모들마저 가물가물하다. 친할머니에 대한 추억도, 애정도 딱히 없는 나는 늘 그랬듯이 엄마에게 무조건적인 공감을 해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혹독한 시집살이, 친할머니의 정신적인 괴롭힘은 친할머니가 죽고 나서야 끝이 났다. 그러기 전엔 끝낼 수 없는 싸움이었다. 세월은 그로부터 십년이 훨씬 더 지났지만 그때의 기억은 방부제와도 같은지 사라지지 않고 엄마의 수면 너머에 계속해서 떠오르는 듯 했다.

어느 순간부터 부쩍 늘어난 엄마의 이야기는 사실 내 맘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친정과의 연을 다 끊어내고 비교적 행복하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엄마가 왜 굳이 과거의 아픈 기억을 수면위로 꺼내어 나에게 말해주는 걸까. 잘 살다가도 엄마는 이따금씩 자기의 아픔을 끄집어 내었다. 그럴 때 마다 자연스레 달라지는 분위기가 난 참 이기적이게도 조금 불편했다.

어쩌면 엄마는 친정에 대해 같이 시원하게 욕 한 판을 나누고 싶은 것일까, 물론 그 이유라면 언제든지 적극적인 자세로 임할 준비가 되어 있다. 아님 억울했던 자신에 대한 하소연일까? 하지만 하소연이라고 하기엔 고개를 슬쩍 돌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엄마의 표정은 생각보다 평온했다. 듣고 싶은 말이 딱히 없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더 이상의 추측은 머리가 아파 그만두고 엄마의 이야기를 마저 들었다. 사실 이러한 추측이 의미가 있기는 한가 싶었다. 그리고 엄마는 이제 또 다른 에피소드로 넘어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번 회상은 ‘너는 친정이 없으니 여기 내내 있어라’ 라는 시어머니의 말과 함께 일주일 내내 고모4명과 시어머니의 끼니를 다 차려준 일로 물꼬를 틀었다. 사실 외롭고 가여운 엄마의 과거를 듣는 것은 딸로써 썩 달가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얘길 별 감정도 없이 말하는 엄마의 얼굴이 더 내 맘을 시리게 했다. 덤덤한 이유는 아마 단순히 시간이 지나서가 아닐 것이란 걸 난 안다. 쫘악 뻗은 도로 위를 달리며 엄마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졌고 날씨는 여전히 화창했으며 구름은 바라보는 하늘마다 적당하게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

 

“야, 강지윤. 너는 만약에 엄마 아빠 따로 산다고 하면 누구랑 같이 살 거냐.”

“아, 쟤 지금 저 질문에 빠졌어 완전. 근데 그래서. 넌 그럼 누구 따라갈 거 같아?”

분식집에 팔던 500원짜리 컵떡볶이를 제일 좋아했던 우리는 어느덧 미성년자 타이틀을 나란히 뗀 후 시원한 카페에 둘러 앉아 팥빙수를 먹으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성인이 됐지만 여전히 쓸모 있는 얘기는 죽어도 안하는 우리였다. 성인이 됐다고 바뀐 건 고작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는 투상적인 질문에서 ‘만약 둘이 따로 살게 된다면, 누구랑 같이 살 거야.’ 라는 현실성을 곁들인 질문으로 업그레이드 된 것뿐이다.

“음. 근데 이건 당연히 엄마 아닌가?”

“야, 그치. 나도 엄마 골랐어.”

“사실 송은서도 엄마 골랐어. 근데 우리 네 명 다 엄마 골랐네?”

“야, 근데 솔직히 이건 그냥 엄마다. 난 엄마가 지금껏 아빠를 거둬주고 있는 거만으로도 아빠는 엄마한테 고마워해야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난 지금 당장 엄마가 아빠랑 따로 살 거라고 해도 반대 안할 거 같은데?”

진심이 어느 정도 담긴 농담식의 말에 애들이 다 웃어 넘어갔다. 그리고 그 웃음엔 동의의 의미도 담겨 있음을 안다. 엄마의 희생으로 굴러가는 가정의 온전함을 이젠 더 이상 굳이 지킬 필욘 없다고 생각하는 철 든 20살들이었다. 단지 나의 안정감 때문에 엄마를 가정이란 이름 아래에 묶어둘 순 없다고 다들 생각하는 것이다. 아마 다들 나와 같이 그간 옆에서 많이 지켜봐왔기 때문에 자연스레 든 생각이지 않을까. 지금의 가정을 위해 엄마가 어떤 포기와 고생을 했는지 알기에 제법 쿨하게 나올 수 있는 답변이었다.

“근데 지금 우리 나이에서 조금만 더 먹으면 엄마가 시집 온 나이다? 진짜 어리지. 우릴 어떻게 키웠대. 난 지금 당장 내 몸도 챙기기 힘든데.”

“그니까, 심지어 우리엄마는 제사음식을 혼자 다해. 며느리가 우리엄마밖에 없거든. 난 엄마가 혼자 고생하는 게 싫어서 도와주는 건데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그냥 나도 여자니까 당연히 하는 건 줄 알아. 근데 우리엄마는 한마디도 못해, 그래, 근데 뭐 어쩌겠어.”

그때 그 시절 엄마의 나이에 가까워질수록 우린 점점 더 엄마에 대해 말하는 빈도가 늘어났다. 예전엔 당연하게 여기듯 지나쳤던 것들도 성인이 돼서야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실감하고 있었다. 우린 결국 그 시절 엄마의 나이대가 돼서야 엄마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우린 이제야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문득 갑자기 서글퍼졌던 거 같다. 엄마는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을까.

아직 고등학생 티를 못 벗은 우리답게 대화 주제는 깊어지지 않고 금방 휙휙 바뀌었지만 난 이 질문에 잠시 사로잡혀있느라 대화주제가 몇 개씩이나 바뀌었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엄마는. 우리 엄마는.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을까?

 

***

 

집으로 오자마자 난 엄마를 붙잡은 채 오늘 있었던 일을 쪼잘거리며 늘어놓았다. 집에 귀가하면 오늘 내가 있었던 일을 말해주는 것은 엄마와 나 사이의 암묵적인 귀여운 규칙이었다. 오늘도 늘 그랬듯이 친구들과 있었던 일들을 하나 둘씩 꺼내 놨다. ‘응, 엄마 오늘 먹은 곱창전골이 진짜 맛있었어. 다음에 우리 같이 가보자. 엄마 곱창전골은 먹잖아 그치. 아니 그리고 은서는 운동을 열심히 하더니 살이 많이 빠졌다? 지은이는 이제 휴학할거래.’ 사실 엄마는 딱히 궁금해 하지 않을 이야기다. 딸의 친구들의 소식을 알아서 뭐하겠나. 하지만 내가 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엄마는 잠자코 들어주고 있었다.

“아 맞다. 그리고 오늘 친구들이랑 그 얘기 했어. 만약에 엄마 아빠 따로 산다면 누굴 따라 갈 거냐, 라는 질문으로. 근데 우리 생각보다 은근 진지하게 했다? 좀 웃기지.”

“지윤이는 누구 선택했는데?”

“당연히 엄마 아냐? 난 그냥 엄마지. 내가 그럼 누굴 따라가.”

“진짜?”

“응. 당연하지.”

“진짜 그냥 바로 엄마 따라 갈 거야?”

물어보는 엄마의 표정에 순간 미소가 가득 서렸다. 진짜? 라고 물어보는 말투엔 기분 좋은 웃음이 실려 있었다. 나의 답변이 생각보다 좋았는지 재차 물어보는 엄마였다. 너무나 좋아하는 엄마의 모습에 도리어 내가 당황을 했다. 이거 근데 그냥 장난으로 한 이야기인데.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당장 엄마와 아빠가 따로 살지 않을 것이란 걸 안다. 말 그대로 그저 가정형인, 단지 하나의 만약에 놀이에 그치는 것이었는데, 그래도 엄마의 기분은 내가 예상한 거 보다 매우 좋아보였다. ‘왜 엄마랑 같이 살 건데? 그냥 엄마 따라 올 거야?’ ‘응, 난 그냥 엄마 따라 갈 거야.’ ‘그럼 너희 친구들은 누굴 골랐어?’

엄마의 이와 같은 질문은 계속되었고 심지어 집에 어슬렁 걸어 다니는 동생을 붙잡아 넌 누굴 따라갈 거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어차피 의미 없는 건데 왜 계속 물어보는 거지? 싶었지만 엄마가 너무 신이 나 보여서 그냥 엄마가 묻는 말마다 답을 해주었다. 응응, 난 엄마 따라 갈 거라니까. 왜긴 왜야. 아빠는 뭐 며칠에 한 번씩 자주 보러 가면 되지 뭐. 외로움 잘 안 타는 성격이잖아. 나름 알아서 잘 살 걸? 엄마 혼자 밥 먹는 것도 싫어하잖아. 그리고 내가 왜 엄마랑 따로 살아. 아, 엄마가 요리 잘해서 그런 거 아니라니까. 난 그냥 엄마랑 같이 살 거야. 내가 이제 엄마한테 다해줘야지. 응. 엄마 기분 좋아? 난 진짜로 만약에 그런다고 하면 무조건 엄마야. 뭔가 든든하지?

이 대화는 엄마의 연하게 탄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미지근하게 식을 때 까지 계속되었다. 어중간하게 식은 커피를 제일 싫어하는 엄마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전혀 상관없어보였다. 오히려 엄마의 말에 띈 열기가 마치 엄마의 손에 쥐어진 잔을 따뜻하게만 해줄 거 같았다.

 

***

 

쏟아지는 빗줄기와 함께 엄마와 장을 본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모든 것이 가라앉은 듯 차분한 회색빛 날씨와 차에 부딪쳐 나는 규칙적인 빗소리가 나름대로의 낭만을 형성하고 있었다.

“지윤이가 그냥 뭣도 안보고 엄마 따라갈 거라고 한 거 너무 웃겼어.”

엄마는 오늘 우연히 얻어걸려 세일특가로 값싸게 얻은 1+1 섬유유연제 보다 며칠이나 지난 나의 이야기가 더 인상적이었던 거 같았다. 분명 일주일 정도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얘길 꺼내는 걸 보니 엄마의 머리속엔 나의 말이 여전히 맴도는 듯 했다. 엄마의 말을 기점으로 소소한 이야기들은 계속해서 오갔다.

“근데 지윤이 언제 이렇게 컸어. 많이 컸다. 우리 딸.”

“엄마, 나 벌써 20살이야, 진짜 나 많이 컸지?”

“응. 다 크니까 엄마가 너무 좋네.”

“근데 갑자기? 난 예전이랑 똑같은 거 같은데.”

“그냥. 너 원래는 안 이랬어. 아무튼 좋아. 그냥 요즘 다 좋아.”

그냥. 이라며 말을 아끼는 엄마였다. 그저 좋다, 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지만 그 속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있음을 안다. 이 속에 생략되어 있는 많은 의미를 난 이제 알 수 있었다. 아마 내가 손이 더 가지 않을 만큼 성장했기 때문도, 오늘 일부러 약속을 잡지 않고 엄마와 함께 장을 보러 갔기 때문도, 요즘 내가 엄마의 말을 잘 들어서도, 장난 식으로 한 질문에 엄마를 따라가겠다고 외쳐서도 아니다. 엄마는 그저 묵묵히 들어주는 내가 고마웠던 거다.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자신과 함께할 것이란 사실에 고마웠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엄마는, 새삼 온전한 나의 편이 있다는 게 좋았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지난날 엄마에게 했던 추측들은 다른 의미로 무의미해져가고 있었다. 엄마가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거였다. 엄마의 이야기엔 목적이 없었으니까. 자신의 말에 돌아오길 원하는 말도, 바라는 것도 없었다.

엄마는 단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엄마가 힘들었던 지난 시절들을 나에게 꺼낼 때를 다시 떠올려본다. 무조건적인 공감을 딱히 바라지도, 무언가의 연민의 반응을 원하지도, 난 이렇게 힘들었으니 너는 나한테 잘해야 한다, 라는 식의 암묵적 요구도, 어떠한 어느 것도 잘 느껴지지 않았던 날을 회상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제 난 이해한다.

 

***

 

엄마는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엄마답지 않게 진지했기도 했으며 그때가 다시 생생하게 생각나는지 갑자기 슬픔과 외로움이 얼굴에 스쳐지나가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화가 나는지 대뜸 장난스럽게 흥분하며 열을 올리기도 했고 다시금 차분해져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다양한 표정들과 감정들이 종잡을 수 없이 나타났던 것은 자신이 어떤 모습을 띠든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의 옆에서 자유로웠다.

그렇다. 엄마는. 우리 엄마는 그저 자신의 모든 모습을 온전히 받아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뿐이다. 내 모습이 어떻든 간에 날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자유롭고 싶었던 것이다. 절대적인 사랑과 믿음으로 감싸진 울타리는 우리를 끈끈하게 묶어주고 있었다.

엄마는 나의 말로 인해 영원한 하나뿐인 내편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것이 좋았던 것이다. 그래, 단지 그게 고마웠던 것이다. 엄마는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다. 절대적인 사랑 아래에선 그 어떠한 것이라도 흔들리지 않으며 나라는 이유만으로 그 어떠한 것도 품어줄 수 있는. 자신의 어떤 이야기도 아무 말 없이 다 들어줄 수 있는 사람. 덧붙여지는 어떠한 조건과 설정 없이 늘 자신의 옆에 있어줄 사람. 엄마는 홀로 외로이 버티며 평생 동안 이를 바래왔다.

 

절대적인 사랑과 믿음으로 연결된 관계는 말하지 못할 안정감을 준다. 괜한 심술과 어리광은 어쩌면 상대방에 대한 굳건한 믿음의 감정으로부터 생겨난다고 생각한다. 되도 않는 심술은 이래도 결국 날 떠나지 않을 것이란 걸 알기에 부리게 된다. 당장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해도 이로 인해 날 절대 저버리지 않을 것이란 걸 알기 때문에. 우린 그 영원한 믿음과 신뢰의 울타리 속에서 다양한 감정들을 파생시킨다. 그리고 엄마는 그러지 못했다. 엄마에겐 울타리라는 것은 없었다.

그 동안 외로웠을 엄마를 생각한다. 자신을 바로 잡아줄 완전한 어떤 관계도 울타리도 없이 홀로 꼿꼿이 버텼을 어린 시절의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의 온전한 집은 없었다. 난 이제야, 그때 그 엄마의 나이가 되서야 엄마를 이해했다. 아니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다짐한다. 엄마의 맹목적인 영원한 편이 될 것을. 온전한 내 편, 어디 가지 않고 내 옆에 꼭 붙어있을 든든한 나의 편. 그래, 하나뿐인 내편. 난 엄마의 하나뿐인 엄마 편이다.

 

응. 엄마. 왜 슬픔은 수용성이 아닐까? 엄마의 슬픔은 수용성이면 좋겠어. 다 씻겨 내려가 잊어버리게. 엄마 우리 같이 손을 잡고 저 하늘을 날아 비를 잔뜩 맞고 오자. 눈이 안 떠질 정도로 흠뻑 맞는 거야. 비속에서 우리 손을 잡고 춤을 추자. 그러고 그냥 감기에 확 걸려버리는 거야. 뜨끈한 장판에 며칠만 몸을 지지면 우린 감쪽같이 다 나을 걸? 아, 엄마는 감기 걸리면 기침을 많이 하니까 이건 안 되겠다. 음, 그럼 어쩌지. 그럼 엄마의 수면 위로 둥둥, 또 다시 둥둥 썩지 않고 방부제처럼 떠오르는 기억들을 내가 다 먹어버리고 와야겠다. 그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야금야금 해치워버리고 며칠 고생하면 되지 뭐. 응, 엄마. 난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엄마는 이제 행복해야해. 엄마는 행복해야하는 사람이야. 그 아픔들은 이제 다 나 줘. 엄마는 그 정도 아팠으면 됐어. 우리 이제 웃을 날만 있어야지. 우리 서로 손을 뒤엉킨 채로 온기를 나누자. 엄마는 따뜻한 사람이니까 걱정 마. 엄마는 바다 속의 모래까지 녹일 거야. 엄마는 빙하기에서도 여름을 만들어 냈을 거야. 그니까 엄마. 엄마는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이제 내가 엄마보다 크니까 엄마는 내 뒤에 꼭 붙어있어. 난 언제든 엄마편이랬잖아. 응, 엄마. 내가 너무 구구절절했지. 사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말이지. 우리 행복하자고. 행복하자 엄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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