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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미래, 민주화를 외치다
  • 남해빈 기자
  • 승인 2019.09.09 08:00
  • 호수 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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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9일(일), 홍콩에서 사상 최대 인원인 103만 명이 동원된 시위가 일어났다. 2017년 기준 홍콩의 인구가 739만 명인 점으로 볼 때, 홍콩 전체 인구의 7분의 1이 참여한 셈이다.

이 시위는 정부가 추진 중인 ‘범죄인 인도법’의 철회를 요구하는 움직임에서 시작됐다.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이란 어떤 국가에서 범인이 다른 국가로 도주하였을 때 그 타국가로부터 범죄 행위지 국가로 외교상의 절차를 통하여 범죄인을 인도받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이 법안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국가들이 다른 나라와 이 법을 체결하고 있고, 홍콩 역시 현재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20개국과 범죄인 인도 협정을 맺은 상태다.

그렇다면 홍콩 시민들은 왜 이렇게까지 이번 범죄인 인도법의 개정에 반발하는 것일까?

홍콩 시위의 시작 배경과 그 의의에 대해 알아보자.

 

치정사건에서 시작된 시위

홍콩 대규모 시위 발발에 시발점이 된 사건은 홍콩인 남성 찬퉁카이의 살인사건이다. 찬퉁카이는 대만의 한 여관에서 임신한 홍콩인 여자친구를 치정문제로 살해하고 홍콩으로 도피했다.

하지만 홍콩은 속지주의를 채택하고 있기에 홍콩 밖 다른 국가에서 발생한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못한다. 따라서 찬퉁카이는 살인죄를 제외한 절도 및 돈세탁 방지법 위반으로만 처벌될 수 있었다. 결국 29개월의 징역형만을 선고받아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더구나 홍콩과 대만이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고 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범행 지역인 대만에 찬퉁카이를 인도할 수가 없었다. 이에 홍콩 정부는 이 사건을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범죄자의 외국 송환을 쉽게 하기 위한 법률 제정을 추진하게 된다.

 

시민들이 분노한 이유는?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라면 왜 홍콩시민들이 이렇게까지 화가 났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는 홍콩과 중국의 역사적 관계에 대해 알아야 이해가 가능하다.

 

홍콩과 중국 관계의 역사

19세기 중반 영국과 청의 아편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한 후 난징조약을 통해 홍콩 지역을 영국에 할양했다. 그 후 155년 만에 홍콩이 다시 중국으로 반환됐다. 그 후 장래문제를 다루기 위해 이루어진 홍콩반환협정에는 1997년 이후에도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홍콩 주민의 자치권을 인정한다는 일국이체제론이 포함됐다. 즉 홍콩의 체제는 50년간 지속될 것이며 입법, 사법, 행정부를 다 독자적으로 가질 수 있는 ‘특별행정구’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홍콩은 오랜 기간 영국의 체제 아래 있었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지만 이에 비해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 국가다. 홍콩의 입장에서 봤을 때 독자적인 체제 유지를 보장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다.

 

2014 홍콩 우산혁명

이 두 체제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2014년 우산혁명이다. 지난 2017년 치러질 계획이었던 홍콩 행정장관 선거를 주민투표로 치를 것을 요구하며 시작됐다. 2014년 8월 31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친중국계로 구성된 후보 추천 위원회의 과반 지지를 얻은 인사 2∼3명으로 행정장관 입후보 자격을 제한한 것에 대한 반발이 시위로 이어진 것이다.

우리나라 70년대에 장충체육관에서 이루어진 체육관선거와 흡사하게 민주주의에 위배되는 선거 행태인 셈이다. 이는 홍콩 주민들의 자치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홍콩의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행위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에 맞서 2014년 9월 28일 수만 명의 홍콩 학생들과 시민들이 홍콩 거리로 나왔다.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아 대는 경찰의 강제 진압에 시민들이 우산으로 막는 모습이 상징이 되어 ‘우산 혁명’이라고 불리게 됐다.

홍콩 주민들이 범죄인 인도법 개정을 반대하는 이유는 일국가이체제 아래 중국 정부가 이를 악용해 부당한 정치적 탄압 목적으로 홍콩의 반중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해 처벌할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홍콩은 그 전까지는 중국, 마카오, 대만과 범죄인 인도조약을 체결하지 않았으나, 법안이 개정되면 중국에 범죄자를 넘길 수 있게 된다. 즉 홍콩 내에서 민주주의를 지지하거나 시진핑과 같은 중국 공산당의 인물을 비판하면 범죄인이 되어 중국으로 송환될 수도 있다.

 

시위 전개 과정은?

첫 번째 집회였던 6월 9일(일) 시위에서 시위대는 ‘▲범죄인 인도법 완전 철폐 ▲캐리 람 행정장관 퇴진 ▲행정장관 직선제 투표 도입 ▲중국 공산당의 홍콩 내정간섭 금지’를 요구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시위에 참여함에 따라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은 6월 15일(토)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범죄인 인도법’ 개정을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송환법 완전 폐지를 요구하며 지금까지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홍콩 경찰의 무력진압으로 인해 부상자들이 등장했고,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이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결국 8월 12일(월) 홍콩 국제공항이 폐쇄됐다. 이어 지난달 30일(금), 홍콩 경찰은 시위의 지도자들을 불법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했다. 그에 따라 31일(토)에 예정돼있던 대규모 집회는 결국 취소됐다.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진지 13주가 넘어갔다. 2014년에 벌어진 우산혁명을 넘어서는 최장기간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는 시민과 정부의 대립이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민주화 운동 중심의 청년들

이번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는 그 원인과 시민들이 얻고자 하는 목적을 생각해 보면 민주화운동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이 운동은 10대와 2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확산돼왔다.

물론 대부분 민주화운동의 주체가 젊은 세대들이긴 하지만 이번에 일어난 홍콩 민주화운동은 중국에 대한 홍콩 청년들의 불만이 기폭제가 됐다. 따라서 젊은 세대들의 참여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들은 현재 홍콩의 높은 물가와 부동산 난으로 인해 생활하기 힘든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왼쪽 사진에 있는 청년 민주화 조슈아 윙은 현재 2019 홍콩 시위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비교

이번 시위는 우리나라 80년대 일어난 5.18 민주화 운동과 흡사한 부분이 많다. 특정세력에 의해 민주주의 체제와 주권을 침해당했고 이에 저항하기 위해 민주화 운동을 펼쳤다. 또 운동 과정에서 지배층, 정치인들이 아닌 시민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이 특이한데 이 점은 두 운동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형태다.

두 운동 모두 대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했다는 점과 시위 과정에서 무력진압을 당했다는 점도 유사하다. 물론 시대적 상황이 변함에 따라 차이점도 존재한다. 홍콩운동은 과거 민주화 운동과 달리 젊은 세대들의 SNS 소통을 통해 빠르게 정보를 교환하고 행동하는 특징을 보인다. 80년대에는 권력층이 언론을 장악하여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른 지역에서는 알지 못했지만, 기술의 발달에 따라 홍콩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민 유혈사태와 경찰의 과잉진압 같은 일들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로 알려지고 있다.

시대가 변해도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변함이 없다. 조슈아 웡은 2014년 시위로 체포당하며 “10년 후 초등학생들이 홍콩의 민주화를 위해 시위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이것은 우리의 책임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체제의 차이와 오랜시간동안 지속되어온 국가 속 뿌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시위를 통해 이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서로의 대화와 타협으로 보인다. 어서 빨리 두 국가 사이에 화합의 꽃이 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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