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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이야기 찾기] 세기의 미녀, 오드리 헵번
  • 김은혜 기자
  • 승인 2019.09.09 08:00
  • 호수 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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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의 대명사라고 하면 누가 생각이 나는가. 현재까지 세기의 미녀라고 불리는 여자, 바로 오드리 헵번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오드리 헵번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옛날 사진관을 가면 예시로 보여주는 그 사진, 처피뱅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앞머리와 올림머리, 짙은 눈썹은 아예 헵번스타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겉모습만 보고는 우아하고 행복하게만 자라왔을 거 같던 그녀는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

오드리 헵번은 태어났을 시절에는 부유했으나 부모님들이 우익 파시즘의 신봉자로 어머니는 문제를 깨달아 금방 빠져 나왔지만, 아버지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가족을 떠났다. 그러던 와중에 2차 세계대전까지 터져 외할아버지가 독일군의 협조를 거부하고 지조를 지키는 바람에 독일군에게 재산을 몰수당해 가난의 끝자락으로 치달았다. 먹을 게 없어 풀을 뜯어 먹기도 했고 개 사료와 빗물을 먹고 간신히 배를 채웠다. 한번은 너무 굶주려 죽을 뻔했을 때 네덜란드 병사가 준 초콜릿을 먹고 살아난 적이 있다. 그 뒤로 헵번은 매일 초콜릿을 먹을 정도로 초콜릿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외가 쪽의 성향을 받은 탓인지 오드리 헵번은 레지스탕스 조직 활동을 했다. 당시 발레리나 수업을 받고 있던 헵번은 레지스탕스의 활동 모금을 위해 비밀 모임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위문공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관중 모두 나치에게 들킬까 봐 춤이 끝난 후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는데 헵번은 그 관중들이 자신의 인생의 최고의 관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고립된 공수부대원을 인도하며 그들에게 메시지, 물품, 음식을 전달하였고 훗날 아들에게 위험했지만 스릴 넘치는 일이었다고도 말했다. 이런 일들을 계기로 헵번은 배우가 되었을 때 전쟁영화 출연은 거절했고 배우 인생 중 하고 싶었던 캐릭터가 안네 프랑크였다. 헵번이 할리우드 스타가 된 뒤 안네의 일기 캐스팅을 받지만, 아버지가 나치의 신봉자였던 죄책감으로 인해 거절한다. 이뿐만 아니라 과거 자신이 가난할 때 국제 구호 기금을 받은 기억으로 유니세프에서 활동하며 죽을 때까지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이처럼 오드리 헵번은 과거의 일이 자신의 행동을 더 좋은 곳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과연 우리가 저 상황이었으면 헵번처럼 행동할 수 있었을까. 헵번의 과거를 잊지 않는 봉사 정신과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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