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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사랑이라는 추억, <8월의 크리스마스>
  • 이은주 기자
  • 승인 2018.10.29 08:00
  • 호수 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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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옆 동물원, 봄날은 간다, 시월애, 클래식, 번지점프를 하다… 수많은 걸작을 배출한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 많은 이들은 이 시기를 한국 멜로영화의 전성기라 칭한다. 기자 또한 이 시대 특유의 감성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중에서도 당시 최고의 스타였던 한석규와 심은하가 주연으로 나온 <8월의 크리스마스>를 가장 좋아한다.

사진관을 운영하는 정원과 주차관리 요원으로 근무하는 다림, 다림이 그의 사진관을 찾아오며 영화는 시작된다. 둘은 여느 커플처럼 사랑을 키워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사랑이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바로 정원의 병 때문이다. 그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의 삶을 선고 받는다. 그러나 그는 다가올 죽음에 좌절하지 않고, 아버지에게 비디오를 녹화하는 법을 알려주고, 친구들과 사진을 남기는 등 차분히 자신의 죽음 이후를 준비한다. 그리고, 너무나 차분하고 담담하게 다림을 떠난다. 영문도 모르고 남겨진 다림은 그를 그리워하다가, 분노하며 사진관으로 돌을 던지기도 하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는다. 영화는 그들의 재회를 그리지 않고, 그저 흰 눈이 내리는 겨울 사진관에 걸린 자신의 사진을 보며 웃는 다림을 잠시 등장시키며 끝난다.

당시 이 영화를 본 많은 관객이 죽음을 준비하는 정원의 모습에, 그를 기다리던 다림의 모습에,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눈물을 흘렸다. 영화가 그들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정원의 이별을 너무나 덤덤히 그려내서 오히려 보는 관객들의 슬픔은 더욱 배가 됐다. 이미 영화를 몇 번이나 본 기자도, 아직 몇몇 장면에서는 울컥하곤 한다. 하지만 이렇게 먹먹한 이 둘의 사랑에는 작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

바로 영화 내내 사랑한다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 그는 왜 그녀에게 그 흔하디흔한 사랑한다는 말도 안 하고 떠나갔을까. 기자는 정원은 다림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오히려 말로 할 수 없던 것이 아닐까 하며 혼자 짐작해본다. 영화 내레이션 중에 “내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칠 걸 알고 있습니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뜨거웠던 열정도, 꿈도, 사랑도 결국 모두 추억으로 귀결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는 사랑한다는 고백이 언젠가 그의 사랑을 추억으로 만들 것으로 생각했지 않을까. 적어도 정원에게 다림, 그녀 한 명 만큼은 추억에 머무르지 않는 오래도록 진행될 사랑으로 남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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