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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 김민경 수습기자
  • 승인 2018.09.03 08:00
  • 호수 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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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이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아시안 게임은 월드컵이나 올림픽처럼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아시아 대륙 최대의 종합 스포츠 제전으로 올림픽보다 많은 종목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아시안 게임은 1951년 인도의 뉴델리에서 최초로 개최됐으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으로 개막 18회를 맞았다. 우리나라에서도 3회 개최됐으며 서울, 부산, 인천에서 개최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아시아의 소통과 화합의 장이 열리는 아시안 게임에 대해 알아보자.

 

아시안 게임 개최 이모저모

지난 8월 18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이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 스타디움에서 막을 올렸다. 하지만 이번 아시안 게임의 개최국은 원래 인도네시아가 아닌 베트남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2012년 11월 8일 마카오에서 개최된 아시아 올림픽 평의회 총회에서 기존의 아시안 게임이 개최되는 해에 평창 동계 올림픽과 FIFA 월드컵이 같이 개최되어 흥행성이 저조할 것을 우려하여 개최연도를 홀수로 바꾸기로 했다. 그래서 2019년 아시안 게임부터 새로 적용하기로 했고, 이 회의에서 인도와 아랍에미리트 그리고 베트남이 후보국으로 올라왔다. 가장 유력 후보였던 두바이가 총회 직전 유치 신청을 철회하고, 베트남 정부가 인프라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겠다는 약속을 하며 최종적으로 베트남의 하노이가 선택되었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경제 위기에서 베트남 또한 안전하지 못했고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베트남 정부는 2019년 아시안 게임 개최권의 자진 포기를 선언했고 개최국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로 바뀌게 됐다. 한편 인도네시아는 아시아 올림픽 평의회에 두 가지를 요구했다. 하나는 자카르타와 다른 서브 도시 한 곳의 공동 개최이고 다른 하나는 2019년 7월 있을 대선 기간을 피해 개최연도를 1년 앞당겨 달라 했다. 결국, 이 요구를 받아들여 18회 아시안 게임은 2018년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와 팔렘방에서 개최됐다.

아시안 게임의 개최연도나 개최국이 변경된 일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1951년 개최된 제1회 뉴델리 아시안 게임은 원래 1950년 개최 예정이었지만 인도 공화국의 대회 준비가 미진해 1년 연기한 1951년에 개최됐다. 1970년 개최된 방콕 아시안 게임 또한 원래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북한의 군사 도발 위협 및 재정상의 문제로 개최권을 반납하여 직전 개최국인 방콕에서 개최됐다.

1978년 개최된 방콕 아시안 게임은 더욱 복잡한 내막을 가지고 있다. 원래 싱가포르에서 개최권을 가져갔으나 당시 싱가포르의 재정 상황에 압박을 받아 개최권을 반납하였다. 그래서 중국의 자금 지원을 받는 대가로 파키스탄에서 개최를 결정하였으나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해 개최권을 반납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중동 산유국의 지원을 받는 대가로 또다시 방콕에서 아시안 게임이 개최됐다. 따라서 태국은 아시안 게임을 4회나 유치한 아시안 게임 최다 개최국이 됐다.

한국에서 개최된 아시안 게임

우리나라의 경우 18번의 아시안 게임 중 3번을 개최하면서 최다 개최국인 방콕을 바로 쫓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대회는 1986 서울 아시안 게임과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그리고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이 있다.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은 국내 최초로 개최된 종합 국제 스포츠 대회로 1988년 열리게 될 올림픽을 대비한 리허설 성격이 강했다. 1970년 아시안 게임 유치 실패 이후 경제적 상황이 나아지면서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연달아 유치하게 됐다. 총 27개국이 참여했으며 우리나라는 종합 2위를 차지했다.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은 2000년대 첫 대회라는 상징성 때문에 처음으로 경쟁이 벌어진 대회였다. 우리학교 인근인 창원 실내수영장, 창원 체육관, 창원 종합 사격장에서도 경기가 열렸다. 총 44개국이 참여했으며 우리나라는 종합 2위를 차지했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은 9,501명의 선수진을 포함한 13,855명의 선수와 임원진이 참가한 역대 아시안 게임 사상 최대 규모의 대회였으며, 아시아 올림픽 평의회 45개 회원국이 모두 참가한 완벽한 대회였다. 총 45개국이 참여했으며 우리나라는 종합 2위를 차지했다.

-아시안 게임은 한·중·일 운동회?

아시안 게임에서 항상 한국과 중국, 일본이 상위권을 차지하게 되면서 일각에서는 우스갯소리로 ‘한·중·일 운동회’라고도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을 제외하고 2014 인천 아시안 게임까지 총 메달 총수는 13,744개인데 한·중·일이 가져간 메달만 해도 중국이 2,895개, 일본이 2,851개, 한국이 2,064개 총 7,810개로 전체 매달 수의 56.82%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0년대 이후부터 메달을 따기 시작했고, 중국도 1974년부터 아시안 게임에 참가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비율은 엄청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이 모두 참여한 1974년부터 1974 테헤란 아시안 게임을 제외한 모든 대회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이 종합 1위, 2위, 3위를 하고 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가 종합 1위를 차지한 적은 없는데 종합 1위에 가장 근접한 성적은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이다. 우리나라는 금메달 94개를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끗 차이로 금메달 94개를 획득한 중국에 밀려 종합 2위를 했다.

-최초의 아시안게임

1951년 3월4일, 극동 선수권 대회 중단이라는 아픔을 덮고 첫 아시안게임이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됐다. 10회를 마지막으로 한 극동 선수권 대회의 아쉬움과 아시아 각국의 친선과 평화를 목적으로 인도 올림픽 위원회 대표 구루 두트 손디가 아시안게임을 창설하기로 결의했다. 그 후 1년 뒤에 인도에서 아시아 경기 연맹이 결성됐다. 6개의 종목으로 우리나라가 포함되지 않은 11개국이 8일 간 경기를 펼쳤다. 참여 국가와 종목이 적은 만큼 두 국가의 한경기만으로 메달이 정해지기도 했으며 금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국가도 있었다.

제 1회 아시안게임의 결과 극동 선수권 대회에서도 총 5회 우승한 국가답게 24개의 금메달로 일본이 1위를 차지했고 15개로 인도, 8개로 이란이 나란히 등수를 이었다.

근데 왜 아시아 경기에 우리나라는 참석하지 않은 것 일까? 참석하지 못 한 것이 더 맞는 표현이다. 우리나라 또한 경기 참석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1950년에 북한의 도발로 일어난 6.25 전쟁으로 참석하지 못 하게 됐다. 처음이라는 뜻 깊은 자리에 참석하지 못해 아쉬움만 남는다. 우리나라가 첫 경기에 참여했었다면 어떤 결과를 얻었을지, 몇 명의 스포츠 스타가 탄생했었을지 궁금하다.

우리나라의 첫 참여

우리나라는 마닐라에서 개최된 2회 아시안게임에 처음으로 참여하여 종합 3위의 기록을 얻었다. 총 18개국이 참여했으며 크게 8개 종목으로 이뤄져 있었다. ▲육상, 역도, 복싱 3종목에서 8개의 금메달 ▲축구, 육상, 역도, 복싱, 레슬링 5종목에서 6개의 은메달 ▲육상, 복싱, 레슬링 3종목에서 5개의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총 6종목에서 19개의 메달을 딴 격이다. 1회보다 많은 나라가 참여했음에도 상위권에 머물렀다.

참여 선수 중 최윤칠은 중학생 시절부터 실력 좋기로 소문난 마라톤 선수였다. 당시 1,500m 달리기에서 동양신기록을 세우며 아시안 게임에서 첫 금메달을 획득하여 금메달리스트가 되었고 5000m 달리기에서도 은메달을 따내며 실력을 인증했다. 또 다른 선수인 최윤칠도 10,000m에서 금메달을 따 대한민국의 전체 순위를 올렸다.

육상으로도 한 획을 그은 대한민국이지만 육상보다 강력한 종목 하나가 더 있었다. 바로 역도다. 금메달 8개 중 5개는 역도 종목에서 딴 것 이다. 참여 국가 중 역도 종목에 강했던 이란이 국가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하게 되자 선수들의 체급을 바꿔 메달을 획득했다. 위험한 도전이였지만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아시안게임에 대해 알아봤다. 아시안게임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해 주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항상 그렇듯 경기 후 결과와 상관없이 아쉬움이 남는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 아쉬워할 사람은 선수들이다. 순간의 실수로 야유를 받더라도, 4년간의 노력이 무너져버려도 항상 경기에 최선을 다해주고 있다. 다른 나라 심판의 편파판정으로 욕하고 분했던 순간도 많았지만 무너지지 않고 위로 올라가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실패와성공은 항상 공존하는 법이다. 실수를 했더라도 열심히 뛰어주고 땀 흘려준 대한민국 모든 선수들에게 박수 크게 보내보자.

김민경 수습기자 mggyo@changwon.ac.kr

김민경 수습기자 bedinos@ch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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