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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山敎育大學과 昌原大學校의 연결고리
  • 이차리 편집국장
  • 승인 2018.04.16 08:00
  • 호수 629
  • 댓글 0

마산교육대학에 대해 들어봤는가? 아마 들어본 사람은 극히 소수일 것이다. 이름 그대로라면 현재 존재하는 교육대학들처럼 교사가 되기 위한 학교일 텐데,

이 대학이 교육대학이 없는 우리대학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이미 눈치를 챈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마산교육대학은 우리대학의 옛 이름이다.

마산교육대학에서 창원대학교가 되기까지의 연결고리를 우리대학의 역사를 보관 중인 박물관에서 찾아봤다.

 

마산교육대학, 마산초급대학, 마산대학, 창원대학교

 

“건물을 지어달라고 시위하던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지금 우리대학을 보면 건물이 많은데 처음에는 건물이 10개도 채 되지 않았다”. 졸업생 하성규(인문대 사학 89년 졸) 씨가 당시를 회상하며 한 말이다.

마산교육대학은 마산지역개발위원회, 마산상공회의소 등 단체와 지역민의 성원으로 1968년 10월 17일(목) 대통령령 제3613호로 설치 인가됐다. 그리고 1969년 3월 초등교원 양성을 목적으로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에서 마산교육대학으로 설립됐다. 하지만 1도 1교육 대학 일원화 조치와 먼저 있던 진주교육대학교로 인해 1978년 3월 마산 초급대학으로 개편했다. 이후 현재 우리대학에는 교육대학이 존재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교생실습생

마산 초급대학으로 개편되며 5개 학과에 입학정원 200명을 모집했고 이후 1979년 3월 4년제 마산대학으로 승격하여 6개 학과(경영, 무역, 회계, 행정, 미술, 음악)에 입학정원 400명을 모집했다. 1983년 1월부터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 캠퍼스에서 지금의 창원시 사림동 봉림 캠퍼스로 이전이 시작됐다. 당시 봉림 캠퍼스는 1~6호관, 도서관, 봉림관 총 8개 건물로만 이뤄져 있었다.

마산교육대학 전경

학교가 창원으로 이전했지만, 학교명과 지역명이 일치하지 않아 대내외적으로 혼란이 발생한다. 그래서 1985년 3월 1일(금) 교명을 창원대학으로 변경하고 1988년 대학원을 설치, 4개 학과 석사과정을 개설하였다. 1991년에 종합대학교로 승격됐고, 1993년 교육대학원이 설치되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기계산업단지인 창원공단을 끼고 있는 지리적인 이점 덕에 기계공학과, 기계설계 공학과, 제어계측 공학과, 전기공학과, 전자공학과로 이뤄진 메카트로닉스 공학부가 특성화됐고 1994년 8월에 정부로부터 국책대학으로 선정되었다.

 

성실, 진리, 자유, 창조를 교훈삼아

 

우리대학은 성실, 진리, 자유, 창조를 교훈으로 삼고, 교화인 동백의 강인한 생명력은 힘차게 뻗어가는 우리대학의 기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네 가지 교훈을 바탕으로 현대사회의 각 분야를 이끌어 갈 전인적 인격과 창조적 지성 및 전문성을 갖춘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며, 나아가 지역사회와 국가 및 인류의 번영에 기여하는 것을 교육목표로 한다.

이제는 인문대학, 사회과학대학, 경상대학, 자연과학대학, 공과대학, 메카트로닉스대학, 예술대학, 미래융합대학 총 8개 단과대학과 46개 학과, 3개 학부(9개 전공)가 있으며, 본부는 교무처, 학생처, 기획처, 사무국, 산학협력단(법인)으로 구성해, 3처 1국 1법인의 체계를 가지고 있다.

 

도서관, 학생 민원 수용 후 탈바꿈 하다

 

우리대학이 가포 캠퍼스에서 봉림 캠퍼스로 이전할 때부터 존재했던 중앙도서관은 4층이었다. 그중 3, 4층이 열람실이고 3층만 외부인 출입이 가능했다. 이곳은 2012년 1학기까지 중앙도서관으로 이용됐고 이곳의 자료들은 그해 하계방학 때 신축 도서관으로 옮겨졌다. 새로운 도서관이 개관한 이후 내부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 내부에는 박물관과 종합인력개발원이 입주해있다. 건물 이름도 동백관이라고 새로 명명했다.

구 도서관(현 동백관)

이승현(신문방송 11) 씨는 “열람실이 3, 4층밖에 없는데 3층 전체에 외부인 출입을 가능케 한 탓에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와 학습 분위기를 흐리고 이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많았다. 또 봉림관 앞에 위치하다 보니 동아리 홍보를 하는 시기에는 그 소리가 열람실 안까지 들려 힘들었다”라고 당시의 불편함을 전했다.

2012년 9월에 개관한 신축 도서관에서는 이런 민원을 최대한 수용했다. 열람실이나 자료실에 출입할 때는 학생증 바코드나 앱의 QR코드를 찍어야 통과할 수 있다. 외부인은 1일 출입증을 발급해 출입할 수 있게 하고 시험기간에는 중·고등학생의 이용을 제한해 소란스러움을 없앴다.

 

새 단장한 터줏대감, 박물관

 

우리대학 박물관은 1973년 마산교육대학의 ‘향토관’에서 출발했다. 이는 가야와 신라의 문화를 비교할 수 있는 연구 자료를 제공하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설립됐다.

1980년 향토관에서 박물관으로 불렸고 1991년에 종합대학교 박물관으로 자리 잡았다. 2013년 리모델링을 해 기존 150㎡에 불과했던 전시면적을 795㎡의 규모로 5배 이상 대폭 확대해 재개관했다. 이때 진행한 박물관 재개관식에서 최해범 총장은 “대학 박물관은 곧 그 지역과 대학의 역사를 가르쳐 주는 상징과도 같은 공간이다”라며 “앞으로 창원대 박물관은 지역사회와 대학이 소통하는 중심 통로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전한 바 있다.

경남, 울산 지역을 중심으로 발굴조사에 참여해 현재 선사시대부터 고려, 조선시대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또한, 역사관에는 80년대의 학생증과 졸업증서, 성적표 등 역사관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옛 우리대학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박물관을 관람한 이주현(음악 16) 씨는 “지금과 많이 다른 학생증과 수강신청 카드가 기억에 남고 그때의 수강신청 방법에 대해 궁금해졌다. 또 우리대학 내 위치한 박물관이라 우리대학의 역사만 있는 줄 알았는데 경남의 유물이 있어서 신기했고 경남의 역사를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80년대 학생생활(수강신청 카드, 학생증 등)

박물관은 평소에는 상설전시를 통해 창원시민, 교직원 및 학생들의 교육, 연구 자료로 활용되고 있으며, 박물관 문화유산 답사, 어린이 박물관 교실 등의 사회교육을 시행해 지역민들과 함께하는 박물관으로 다가가고 있다. 공휴일과 주말을 제외한 월~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람할 수 있고 관람료는 무료이다. 개인 관람은 언제든지 가능하고 단체관람 시에는 창원대 박물관 홈페이지에 첨부된 단체 관람안내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건물이 8개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교에서 30개가 넘는 지금의 종합대학으로의 성장을 가능케 한 것은 성실, 진리, 자유, 창조의 정신이 아니었을까? 지금까지 발전하고 성장해온 우리대학, 그 성장의 끝은 과연 어디까지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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