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론 사설
[사설] ‘미투’ 가해자의 문학 작품 논쟁을 보며
  • 이은주 수습기자
  • 승인 2018.04.02 08:00
  • 호수 628
  • 댓글 0

최근 가장 뜨거운 화제를 고르라면 단연 미투(ME TOO)를 빼놓을 수가 없다. 미투 덕분에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잠들어있던 참혹하고 부당한 일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연예계, 예술계, 정계 등 각계각층의 유명 인사를 향한 고발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중 문학계의 경우에는 가해자들의 작품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특히 해당 작가의 작품을 교과서에서 배제해야 하는지, 작품의 불매 운동의 필요성 등에 대해 양측이 치열하게 맞서고 있다. 이러한 논의에 대해 혹자는 “작품은 작품일 뿐, 창작자와 분리해서 봐야 한다”라며 창작자와 작품의 분리를 주장한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칼로 자르듯 명확하게 나눌 수 있을까. 창작자는 말 그대로 그저 창작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가. 작품은 그에게서 나왔지만, 별개로 존재하는가. 무엇보다 우리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온전한 답을 내놓을 수 있는가.

제아무리 인간을 원자화된 개인이라 칭할지라도, 결국 모든 인간은 서로에게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타인의 영향을 받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인간들이 모인 ‘사회’에서 그 영향은 더욱 강화되고, 누군가는 사회에서 회자하는 내용을 스스로 내면화한다. 따라서 결국 인간에게서 나온 것들은 세상에서 벗어나 별개로 존재할 수 없고, 예술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창작품은 그 당대를, 그리고 당대를 바라보는 창작자의 시각이 담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과연 창작자와 작품을 별개의 것으로 놓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저버린 작품을 우리는 이미 많이 봐왔다. 이 작품들이 여전히 존재함은 마땅한가. 누군가는 ‘문학사적 의의’나 ‘작품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이유로 작품만은 그 창작자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존재해야 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물론 작품의 의의와 가치, 아름다움이 저평가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이를 안타깝게 여기며, 작품의 존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째서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는가. 우리가 그 작품을 소비한다는 건 단순한 작품만의 선상에 놓인 행위가 아니다. 필연적으로 창작자에게 득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게 피해자들을 한 번 더 괴롭히는 행위와 다를 바가 무언가. 이와 같지는 않더라도, 대체할 수 있는 작품이 있다면 우리는 철저하게 기존의 작품을 외면해야 한다. 그게 바로 우리가 소비자로서 가해자들을 벌하고, 피해자의 상처를 껴안아 줄 수 있는 최소한의 행위이다.

작품은 저마다 각자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의미가 합쳐져 하나의 소우주를 이룬다. 그리고 창작자는 창작의 주체인 동시에, 그 소우주·창조자의 위치에 서 있다. 본디 예술은 인간사와 함께 시작하고 발전해왔다. 그렇기에 인간과 예술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였다고 할 수 있다. 즉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다. 그렇다면 과연 한 인간의 존엄을 처참히 짓밟은 자에게서 탄생한 작품을, 진정한 예술이라 할 수 있을까. 일그러진 소우주에서 나온 것이 과연 우리가 오랜 시간 함께하며 갈망하고 사랑하던 예술인가.

<저작권자 © 창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은주 수습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