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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RAP] : 그 가볍고도 무거운
  • 황태영 기자
  • 승인 2017.11.13 08:01
  • 호수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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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지금 힙합 전성시대다.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방송이 종료되자마자 힙합 음악이 음원 순위 상위권을 줄줄이 차지하고, TV 속 광고 모델로도 래퍼가 자주 등장하는가 하면, 대학 축제에서 가장 환영받는 초대 손님도 래퍼다.

이처럼 힙합 문화는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비주류에서 주류로 성장했다. 그리고 랩은 힙합 문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한 축이다. 이번 사회면에서는 랩 문화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에 대해 알아본다.


세상에 첫 발을 내딛다

랩은 비트와 가사로 구성되며 멜로디보다 리듬에 기반을 둔 보컬 기술로, 1970년대 초 미국의 흑인 젊은이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음악 요소다. 미국 게토(빈민촌)의 열악한 조건 속에서 살아가던 그들은 억압과 신분 상승 기회의 봉쇄에 대한 분노 표현 도구로 랩을 이용했다. 랩에서 R은 운(rhyme)과 리듬(rhythm)을 의미하고, P는 시(poem), 어떤 경우에는 정치(politics)를 의미한다. 그렇게 랩은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닌 흑인들의 삶의 방식이자, 강력한 정치표현의 창이 됐다.

우리나라에는 1990년대를 전후로 대중가수들이 댄스 음악에 랩을 가미하는 식으로 조금씩 시도되다가,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본격적으로 랩 장르가 가요계에 도입됐다. 이후 대중매체를 통해 다양한 양상으로 힙합 문화가 전개되면서 주류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힙합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하위문화가 고급문화·주류문화로 흡수되는 상향전파를 이뤘다. 특히 음악으로서의 힙합인 랩은 세계 곳곳에서 발전, 확산되는 바람에 일률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러한 랩의 발전 과정에 따라 랩은 이중적인 코드가 내재돼 있다.

저항정신을 기초로 한 그 시작에 걸맞게 그 내용은 다소 거칠며 아주 사소한 내용도 가사로 다룬다. 급속도로 발전해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 우뚝 선 지금, 그 사소한 구절들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런 두 특성이 접합된 사회는 아주 이중적인 양상을 띠게 된다.

 

양면성에 대하여 

일부 평론가들은 힙합 문화가 “매우 정교한 포스트모더니즘 구성”, “자의식적인 정치적 실천”, “문화적 재생의 중심”, “자본주의의 대항적 형성체” 등과 같이 높이 평가한다. 이는 랩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정신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강력한 정치표현 수단이자 자아표현 수단이 된 랩은 많은 이들의 정체성 확립에 기여했다. 이것이 전파되면서 사회 부조리가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었으며, 표현의 자유가 보장됐다.

우리나라는 힙합이 순조롭게 정착돼 자국화에 성공한 나라로 꼽힌다. 그 이유에 대해 박애경 음악평론가는 “힙합의 핵심을 이루는 랩은 ‘제2의 구술문화’의 도래를 가장 확실하게 그리고 안전한 방법으로 알리고 있다. 한국 역시 구술언어의 전통이 깊고 비교적 충실히 유지되고 있는 곳이다”고 말했다.

이어서 “판소리 사설과 휘모리 잡가에서 말을 이어가는 ‘엮음’의 방식은 랩의 즉흥성, 상황 의존적인 발화, 장황하고 논쟁적인 어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것은 구술언어의 전통과 아주 행복하게 합치되고 있다. 랩이 짧은 시간에 지배적 양식으로 자리 잡은 요인은 이처럼 우리 내부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고 말했다. 이렇게 우리나라 고유의 특성과 랩이 만나 보다 풍부한 제2의 하위문화가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변화는 늘 양의 방향으로만 가지 않는다. 끝없이 많은 것이 변화하는 사회에서, 한 현상이 변질되는 것도 한순간이다. 특히 독일에서는 힙합이 극우 민족주의와 결합하는 기이한 변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독일의 힙합 음악은 하층민을 겨냥하고 있는데, 여성이나 동성애자를 비하하고, 외국인에 대해선 적대적이다.

이처럼 랩 가사에는 욕설과 은어, 외설, 특히 여성이나 성 소수자에 대한 비하 등 여러 혐오 표현이 만연해 있다. 우리나라에서 2012년 첫 번째 시즌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6번의 시즌을 거쳐온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인 Mnet <쇼미더머니>는 어마어마한 화제성과 상업적 영향력을 불러왔다. 그렇게 한국 힙합의 대중화에는 한 획을 그었지만, 랩 가사에 있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랩은 밑바닥 계층의 관습적 표현’이라며 거친 가사가 고된 현실을 왜곡 없이 담을 수 있는 언어라고 얘기하는 반면 ‘내재된 편견을 자극해 웃음을 유발하는 건 저급한 비하’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변화의 폭풍우 속에서

가장 대중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반대중적인 랩, 이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매우 다양하다.

학내 힙합 동아리 ‘포다비츠’ 동아리 회장인 김민준(전기전자제어공 13) 씨는 “랩의 매력은 자유로움과 무한한 다양성이다. 누가, 어떤 가사를, 어떤 비트로 쓰는가 등 많은 것이 다양성에 영향을 준다. 이런 다채로운 장점으로 힙합이 비주류에서 주류 문화로 나아가서 더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 다만 특정 대상에 대해 지나친 비난 및 욕설을 랩 가사에 넣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평소 랩에 관심이 많지 않다는 박현정(의류 16) 씨는 “랩에 대해 많은 걸 알지는 못하지만, 최근 가사 논란이 많이 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동시에 언젠가는 래퍼 ‘도끼’가 자신의 성공한 이야기를 담은 랩을 듣고 삶에 긍정적인 자극을 받은 적이 있다. 한국 힙합에 양면성이 있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비췄다.

앞선 사례들을 미루어보았을 때 분명 랩에는 부정적인 측면도, 긍정적인 측면도 함께 내재한다. 한쪽으로 일반화할 수만은 없다. 힙합 문화가 변화하는 것 못지않게, 시대도 변하고 있다. 그리고 두 가지 역시 상호연관적이므로 재차 변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현재 미국 래퍼들의 가사를 살펴보면 여전히 여성 및 다른 사회적 약자를 건드리며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가사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중 일부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다소 용인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힙합 문화가 대중화된 만큼, 이에 대해 대중과 미디어가 반응하는 방식은 이전과 달라졌다. 비하적 표현에 불편함을 토로하고, 변화를 촉구한다. 더는 ‘힙합은 원래 그런 거야’가 아니게 된 것이다. 대중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 래퍼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요구받듯이 자신의 앨범에 쓰인 랩 가사에 책임을 요구받는다. 

우리나라가 유독 과한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아니다. 해외 래퍼들 사이에서는 이미 비하적 가사 표현을 지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릭 로스’는 강간을 연상시키는 가사를 써 사회적으로 질타를 받은 뒤 현재까지 재기하지 못했으며, ‘닥터 드레’를 비롯한 ‘갱스터 래퍼’들 역시 자신이 과거에 쓴 잘못된 가사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미국의 래퍼들 역시 표현의 자유를 누린 후 사회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는 예술에 도대체 왜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특히나 대중예술의 한 갈래로 자리 잡은 힙합은 더 그러하다. 작품이 윤리적으로 논쟁거리가 된다면 책임은 아티스트 본인의 몫이다. 사회적인 행위는 분명 최소한의 굴레 안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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