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론 독자마당
[독자투고] 철로 위에서 나를 바라보다
  • 이인영/자연대·생명보건학부 15
  • 승인 2017.09.11 08:00
  • 호수 619
  • 댓글 0

새하얀 눈 위로 9,900㎞를 7일 밤낮동안 달리는 현실 판 설국열차. 반복되는 일상과  인간관계에 지쳤던 내게 많은 것을 보여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말하려 한다. 기차의 첫인상은 놀라움이었다. 한 칸 안에 거의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층 침대에 들어가 있어 화장실을 가거나 앞 칸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같은 칸에 있는 모든 이의 얼굴을 봐야 했다. 낮선 공간과 사람, 그 속에 오직 언니와 나만 있었다. 

우리는 기차 안에서 주로 각자의 시간을 보냈는데 이건 이번 여행에서의 약속이기도 했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잠시 멈춰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고 우리는 서로에게 그런 시간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나는 시간이 날 때 마다 밤이면 침대로 변할 창가 책상에 앉았다. 모두가 공개돼있어 양쪽 사방에서 알 수 없는 외국어들이 들렸지만 나는 창가에 비치는 풍경에 빠져 그 소리들은 서서히 작아지는 듯했다. 눈을 난생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끝없는 땅이 모두 눈에 덮혀 있고, 거기에 하얀 자작나무가 검은 속살을 조금씩 보이며 곳곳에 서있는 모습이란! 보자마자 따스한 기차 안 공기와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의 이질적인 모습에 나는 마치 그곳의 나무 한 그루가 된 기분이었다.

얼마나 보고 있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차가운 바람에 얇은 나무껍질이 벗겨져 검은 속살을 내비치는 자작나무들이 꼭 나 같다’. 그리고 알았다. 지금 내가 많이 지쳤구나. 조금 서글픈 생각이 들 때, 옆을 지나던 수많은 외국인 중 한 명이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그는 혼자 있는 내가 심심하지 않은 지 묻더니 같이 가서 놀지 않겠냐고 물었다. 서글픈 기분을 털어버리고 싶었던 나는 흔쾌히 같이 이동하였다.

참 신기한 만남이었다. 프랑스 인 로메인이 데려간 곳에는 러시아 인 올랴와 꼴랴가 있었다. 영어 그리고 한인계인 올랴의 짧은 한국어로 우리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들은 금세 나이를 뛰어넘은 친구가 됐다. 인간관계에 지쳤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사람으로부터 위로받자 기분이 묘해졌다. 다시 창문을 바라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벗겨진 자작나무의 껍질들이 슬펐는데 하얀 눈이 모든 것을 덮고 있으니 검은 속살과 어우러져 마치 거대한 얼룩무늬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얼룩무늬는 참 아름다웠다.

내가 그 어디에도 속한 느낌이 들지 않는 생각이 들어도 옆에서 나라는 검은 점을 감싸주는 미처 알지 못하는 흰 눈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가끔 견디기 힘들 때는 주변의 흰 눈에 기대보는 것은 어떨까.

이인영/자연대·생명보건학부 15

<저작권자 © 창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