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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나의 21212호실 연가(戀歌)
  • 이천우/경영대 글로벌비즈니스학부 교수
  • 승인 2017.05.29 08:00
  • 호수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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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교수님을 찾아갈려고 하는데 연구실이 어디에요?”

“예, 우리학교 학생생활관쪽으로 가는 끝 건물 21호관의  212호실입니다”.

나는 1982년 9월 13일 아주 젊은 나이에 당시 국립 마산대학 경제학과 전임강사로 발령받았다. 해군 중견장교를 교육하는 해군대학에서 해군대위로 전역하고, 바로 국립 마산대학으로 왔다. 가포 앞 바다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갈마산 기슭에 자리 잡은 국립 마산대학은 교육대학에서 4년제로 승격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당시 학교를 이끄시던 손병규 학장(훗날 동아대학교 제2대 직선 총장 역임)님은 나와 전공이 같은 경제학이라 신출내기 전임강사였던 나에게는 신경이 많이 쓰였다. 30대 초반이던 나는 가끔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의 경남도내 교장단 회의에 가서 ‘한국경제의 현황과 과제’에 대하여 특강을 하곤 했다. 특강 후 교장단의 평가가 학장님의 귀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강이 있으면 특강 준비에 매진했었다. 그러던 즈음 나는 가포 캠퍼스의 생활 6개월 만에 창원시 봉림동 9번지(새주소: 창원시 의창구 창원대학로 20) 창원 캠퍼스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1983년 1월에 창원 캠퍼스로 이사 와서 배정받은 연구실이 오늘의 21호관 212(21212)호실이다. 당시 연구실 동(棟)은 준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새 건물 냄새가 많이 났다. 그로부터 35년이 흘렀다. 그 기간 동안 학교는 마산대학에서 창원대학으로 이름이 바뀌고, 종합대학교로 승격하며 발전되었다. 나도 童顔(동안)의 30대 초반 검은머리에서 60대 중반의 주름진 얼굴에다 백발로 변모했다. 나는 이 연구실에서 내 생의 대부분인 35년을 보냈다. 젊었을 때는 가끔 시간이 아까워 귀가하지 않고 연구실의 간이침대에서 잠을 자기도 하며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도 했다.

내가 21212호 새 연구실로 이사한 걸 기념하여 샘돌 이황우선생께서 써주신 글 ‘修德養義(수덕양의)’는 35년 동안 나를 비춰주는 거울의 역할을 했다. 이 글귀는 내가 연구실에서 논문과 책을 쓰거나 학생들과 상담하는 동안 줄곧 나를 비춰주었다.

21호관 212(21212)호실! 나는 35년간 정들었던 연구실을 이제 떠나야 한다. 나의 속 마음은 두 갈래다. ‘한편으론 많이 섭섭하고, 다른 한편으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설레기도 하지만, 연구실을 떠난다는 아쉬움이 더 큰 게 사실이다’.

마산에서 창원으로 이사 왔을 때만 해도 우리학교 건물은 21호관과 11호관 두 동(棟)뿐이었다. 당시 우리학교는 물론 소규모 대학이었지만, 건물 두 동에서 학장실을 포함한 행정구역과 도서관까지 소화하고 있었다. 1984년 1월로 기억된다. 그 해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어느 일요일 날 학교 연구실에 나와서 책을 보고 있었는데, 창밖 산등성이에 쌓인 눈 위로 꿩들이 노니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었다. 지금은 21212호실 옆으로 펼쳐진 산등성이는 나무가 우거지고 창원 둘레길로 오르는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다.

21212호실은 나만의 작은 왕국이었다. 벽의 양면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고, 컴퓨터가 놓인 책상과 큰 테이블이 가운데 차지하고 있어 운신조차 비좁은 10평 남짓 좁은 공간이지만, 나는 여기만 오면 편안하고 충만한 느낌이 든다. 책 냄새 나는 좁은 공간이지만, 21212호실에 들어서면 나만의 여유와 평정심, 그리고 자유로움이 솟아난다. 나에게 21212호실은 어머니 젖가슴 같은 푸근함과 절간 같은 그윽함을 함께 제공해주는 곳이다.

21212호실 밖으로 보이는 산등성이에는 높게 자란 나무들로 가득하다. 가끔 나는 숲속에 있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숲이 울창하다. 요즘 같은 여름철이면 청정한 기운이 감도는 나무숲에 새들이 쉬어가며 지저귄다. 나는 오후 4시 경이면 가끔 연구실을 나와 산등성이를 올라 둘레길을 따라 봉림산 중턱의 소목고개까지 올랐다가 오기도 한다. 창원 둘레길 등산로에 소목고개 못미처 군락을 이루고 있는 편백나무숲은 내 머리를 맑게 해주는 산소탱크다.

나는 거기서 심호흡을 하며 나만의 여유를 찾곤 한다. 거기에다 우리학교 학생생활관 앞 연못주위는 나의 또 다른 쉼터이고, 기운을 받게 하는 명소다. 나는 자주 학생생활관 앞 연못주위를 산책한다. 연못에는 5월이면 수련과 하늘지기, 부들이 가득차고, 쇠물닭이 짝을 지어 수련잎 위를 오가며 노닌다.

우리학교 기숙사 앞 연못주위는 인근에 있는 교원연수원에서 연수받는 선생님들과 창원시민들의 쉼터이기도 하다. 지금은 창원에서 명물로 자리매김한 학생생활관 내 커피숍은 외부 사람들의 쉼터로 각광받고 있는 명소가 되었다. 나는 가끔 커피숍에서 생과일주스를 사서 들고 연못주위를 돌기도 한다. 연못주위에 있는 높게 자란 메타스콰이어 숲은 내가 지쳐있을 때 나에게 용기를 주는 또 다른 명물이다. 이런 낙원 같은 환경이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세월은 나를 오랜 보금자리에서 밀어내고 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요즘 교수로서 아니 21212호실 주인으로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최근에 평소 정리하고 싶었던 『경제학의 역사와 사상』을 썼다(율곡출판사 출간). 그리고 나는 근래에 들어 35년 동안이나 나의 근거지였던 21212호실을 떠나는 준비를 하면서, 나의 삶의 궤적을 정리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35년 여 창원대학교의 교수로서,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21212호실에서 행복한 삶을 누렸다. 그 기간에 내가 위암수술을 받고 힘든 재활생활을 할 때도, 나는 21212호실에서 창밖의 나무들을 보고 에너지를 충전하며 힘을 얻곤 했다. 나에겐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정년퇴임을 하고 나서 21212호실을 방문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나는 오늘도 21212호실에서 나의 왕국생활을 즐긴다. 위대하다.

이천우/경영대 글로벌비즈니스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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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6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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