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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 대하여21회 창원대문학상 수필부문-장려
  • 창원대신문
  • 승인 2017.03.20 08:00
  • 호수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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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 관하여

 

하승우/사회대 신문방송학과 2학년

 

12월의 아침은 상쾌하지만 나른했다. 잠에서 깨어났지만 정신은 없었다. 퀭한 눈으로 일어나 화장실로 몸을 옮겼다. 이불 위에서 내려와 첫 발을 디딘 사림동 세 평짜리 원룸은 올여름 어느 해수욕장의 백사장 위에 돗자리를 펴 놓고 한창 놀다 와서 돗자리 위를 밟았을 때의 그 이물감이 오롯이 전해졌다. 방을 청소한 지 얼마나 됐는지 헤아려 보았다. 한 달이 넘게 청소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화장실을 다녀와 곧바로 청소에 돌입했다. 갑자기 어디서 생겼는지도 모르는 부지런함에 취해 방문과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쓰레기들을 주워 담고 있을 때였다. 따듯하고 습한 방바닥과 음식물 때문이었을까, 바퀴벌레 한 마리가 문틈을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순간 한 마리만 들어와도 방은 바퀴벌레 소굴이 된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필사적으로 달려가 바퀴벌레에게 살충제를 뿌렸다. 바닥 장판이 흰색이 되고, 살충제가 바퀴벌레의 형체를 모두 덮을 때까지 계속 뿌렸다. 바퀴벌레는 죽은 것이 확실했다. 그래도 혹여나 알을 놓지는 않았을까 그 사체를 휴지로 겹겹이 움켜쥐고 변기통에 넣은 후 물을 내렸다.

곧바로 청소에 돌입해 바닥을 쓸고 있을 때였다. 부스럭부스럭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길고양이 한 마리가 문 앞에 꺼내놓은 쓰레기를 뒤지느라 열중이었다. 길에서 자라는 동물에게 손을 대지 말라는, 그들은 갖은 질병과 세균 덩어리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곧바로 들고 있던 빗자루를 고양이에게 던졌다.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던 고양이는 영문도 모르는 채 날아오는 빗자루에 화들짝 놀라 꽁무니를 뺐다.

청소를 마치고 방에 누워있으니 룸메이트가 괘씸해졌다. 룸메이트와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같이 나온 절친한 친구였다. 내가 복학하고 난 후 뒤늦게 군 전역을 한 그는 공장에서 일을 하겠다고 내 자취방에 얹혀살고 있었다. ‘같이 살고 있는데 왜 나 혼자 청소를 하지?’에서 시작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월세도 내 것, 보증금도 내 것, 전기세도 내 것, 인터넷 비용도 내 것, 저기 보이는 빨래 건조대도 내 것이고, 식기도 내 것, 밥솥도 내 것, 라면도 내가 산 것, 옷걸이도 내 것, 수건도 내 것, 오늘 룸메이트가 신고 간 양말도 내 것, 세제와 섬유 유연제도 내 것, 수저도 내 것, 얼마 전 쿠폰 10장을 모아 시켜 먹은 치킨의 쿠폰까지 모두 내 것이었다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자그마한 분노는 마른 짚 덩이에 성냥을 던진 것처럼 퍼져나갔다. 분노에 휩싸여 룸메이트가 들어오면 곧바로 한 소리 해야겠다고, 나가라는 말까지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담배를 태우러 나갔다. 주머니 속 꼬깃꼬깃한 담뱃갑 속에 마지막 남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꺼냈다. 불을 붙이려는데 라이터에서 불이 나오지 않았다. 하나 되는 일 없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가스가 없나 싶어 속을 들여다보았다. 가스는 충분했다. 어떻게든 불을 붙여보려 애쓰다 문득 우스워졌다. 가스는 있는데 불은 나오지 않는 라이터는 나를 닮아 있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외로움이 싫었다. 항상 옆에 누군가가 있어 주었으면 했다. 그런데 지금 내 영역을 지키기 위해 바퀴벌레와 고양이를 쫓아냈던 것처럼 룸메이트를 밀어내려 하고 있었지 않았나. 그렇다. 생각해 보면 인간관계는 변증법적이었다. 밀고 당기기를 번갈아하는 연인들의 관계가 그러했고,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도, 떨어져 있으면 애틋하지만 만나면 견원지간이 되는 누이와 나의 관계도 그러했다.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정(正), 나의 영역에 대한 침범을 경계하는 반(反), 그리고 그것의 합(合), 이러한 정, 반, 합의 변증법적 관계와 모순은 인간의 본질이었다.

상쾌하지만 나른한 날씨와, 가스는 있지만 불은 나오지 않는 라이터가, 혼자가 되기는 싫지만 혼자이고 싶은 내가 너무나도 우습지만 슬퍼졌다.

방안을 가득 채운 침묵에 귀가 먹먹해질 때쯤 룸메이트는 들어왔다. 그는 깨끗하게 정리된 방을 보고 흠칫 놀란 듯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룸메이트에 대한 애증이며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화가 났지만 침착해졌고 바람은 찼지만 후덥지근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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