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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 하루21회 창원대문학상 소설부문-당선
  • 창원대신문
  • 승인 2017.03.20 08:00
  • 호수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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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 하루

 

유수민/인문대 국어국문학과 3학년

 

<낮>

손에 쥔 샤프펜슬 끝이 종이 위에 깔끔하게 인쇄된 글자와 글자사이의 작은 공백 밑으로 깨알같이 작은 글씨를 또 적어 채웠다. 중요하니까 꼭 외워야 한다는 열정적인 목소리에 응해 눈에 확 들어오는 빨간 펜으로 적고 싶었으나, 놓치면 되돌아오지 않을 말을 한 글자라도 놓치지 않고 받아쓰기 위해서는 펜을 바꿀 잠깐의 여유도 없이 바쁘게 손을 놀려야했다. 틈틈이 저를 돌아보는 눈동자와 꼬박꼬박 눈을 맞추고 이따금 고갯짓도 해주며 열심히 따라가고 있노라고 끊임없이 보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지럽게 화이트보드 위를 돌아다니던 마카펜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도, 샤프펜슬을 쥔 손은 다음 수업시간까지 풀어 와야 할 숙제 프린트물들을 받고나서야 겨우 쉴 수 있었다. 수고했다는 인사말은 가방을 챙기는 소리와 의자가 뒤로 끌리는 소리에 섞여 희미했다. A는 평소처럼 함께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다 나가는 동안 가방을 싸고, 가장 늦게 강의실을 나섰다. 평소라면 이미 바삐 사라졌을텐데, 오늘따라 늦게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앞은 아직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A는 두꺼운 외투 위로 흘러내리는 가방끈을 재차 끄집어 올리며 그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섰다. 힐끗 올려다본 엘리베이터는 아직 3층이었다. 눈이 뻑뻑했다. 수업시간 내내 억지로 참아냈던 탓에 메마른 통증까지 슬슬 밀려오고 있었다. 시야를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몇 번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억지로라도 물기를 짜내려 했던 눈은 여전히 뻑뻑했다. 한참 눈만 깜빡이다가 외투 주머니에 챙겼던 안약이 떠올랐다. 안약을 꺼내려고 주머니 안으로 손을 휘젓는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한 발자국 떼기도 전에 뒷사람들의 발걸음에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팔이 불편하게 뒤틀린 자세였으나 다닥다닥 붙어선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어떻게 움직이든 옆 사람의 옆구리를 찌를 것이다. A는 잠깐의 불편함은 참기로 했다.

“야, 넌 이번 시험 잘 쳤냐.”

고개를 삐딱하게 한 채로 엘리베이터 숫자판을 보고 선 잿빛 코트를 입고 있던 남자가 툭 말을 던졌다. 그것은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 붙어선 자세만큼이나 불편한 주제였다. 다들 관심 없는 척 휴대폰이나 자기 발끝을 보고 있었지만 이미 신경을 곤두세우고 이어질 대화를 엿듣기 시작했다. A는 그 남자 뒤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에 비해 어린 티가 나는 야구점퍼를 입은 남자의 어딘가 묘하게 뒤틀린 모양새의 웃음을 볼 수 있었다.

“잘 칠게 있겠어요. 그냥 친 거지.”

“그래도 쉬웠다 어려웠다 이런 건 있었을 거 아냐. 솔직히 난 좀 이번에 쉬웠던 거 같은데. 너도 그렇지 않았어?”

“글쎄요, 전 지난 시험이랑 크게 다른 거 못 느꼈어요. 쉬운 건 쉬웠고, 어려운건 어려웠고. 늘 그렇지, 뭐.”

“시험 치는 게 벌써 몇 번짼데 말이 그러냐?”

“아이고, 형. 쉽고 어렵고가 뭐가 중요해요. 내가 답을 찾을 수 있었느냐가 문제지.”

“아, 새끼. 말 어렵게 하네. 그래서 넌 답 잘 찾았느냐고.”

질문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남자는 자기보다 머리통 하나 정도 더 작은 선배-라고 추측되는 관계일 뿐이지만-를 잠시 바라봤다. 어떻게 대답해야할까 고민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저 약간 질렸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잿빛 코트를 입은 남자만큼이나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이 엘리베이터 안에는 가득 있었다. A 역시 그 중 하나였다. 그는 한 쪽 눈을 살짝 찡그리고 엘리베이터 숫자판을 힐끗 올려다봤다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자알 찍고 나왔습니다.”

말꼬리를 늘이며 낮게 웃음을 터뜨린 남자는 눈을 굴려 주위를 슥 둘러보더니, 제 옆구리를 툭 치는 주먹을 손바닥으로 몇 번 두드렸다. 그리고는 손인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그 안을 쏙 빠져나갔다. A는 쉽다 어렵다는 그 두 단어에 제 표정이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엘리베이터 안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쉽게 내뱉는 말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양새가 우스우면서도 가엾다. 찍었다는 말에 안도하듯 남자를 보며 픽 웃던 사람들은 어느 하나 비열한 것 없이 그저 그런 이들인 것이다. A는 야구점퍼를 입은 남자 역시 그것을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가 내리기 전 엘리베이터 안의 모든 사람들을 훑어본 것에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한들 그는 알았을 것이다. A는 주머니에서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던 안약을 꺼냈다. 뚜껑이 언제부터 열렸던 것인지, 반쯤 새어나온 점안액이 손에 잔뜩 묻어있었다. A는 손바닥을 대충 바지에 문질러 닦고는 안약을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스스로에 대한 비난도 동정도 아까운 시간만 낭비할 뿐이었다.

학원 옆에 딸린 독서실은 여느 때와 같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A는 발소리를 죽이며 미끄러지듯 지정석이 된 구석자리로 가 앉았다. 산만해지기 쉬운 탓에 통로자리는 질색하는 A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사실 A는 몇 달 전부터 이 자리를 노리고 있었는데, 시험에 붙은 것인지 포기한 것인지 더 이상 보이지 않던 자리의 원래 주인이 나타나지 않자마자 차지한 자리였다. 책을 펼치고 노트를 함께 옆에 나란히 펼치고 필통에서 몇 가지 필기구를 꺼내는 동안 A는 문득 궁금해졌다. 이 자리에 앉아있던 그는 왜 더 이상 오지 않는 것일까. 구체적인 이유는 중요치 않았다. 승자로서 떠난 것인가, 아니면 패자로서 사라진 것인가가 궁금했다.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는 얼굴 위로 승패에 따라 걸리는 표정만 선명하게 그려졌다. 희미한 근거로 이런저런 추측을 하던 A는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아까 잡지 못했던 빨간 볼펜을 집어 들었다. 사라진 그의 성공여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스스로가 달 타이틀이 둘 중 무엇이 될 지가 중요한 것이다. 주위에는 양 옆 칸막이 안에서 책과 씨름하는 이가 한 가득이었다. 저들의 사연 하나하나에 호기심을 가지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A는 머리를 감싸 쥐며 방금까지도 보고 있던 책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잘하자.”

제발. A는 제 귀에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매일같이 주문처럼 읊는 말이었다. 집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방금까지 보고 있던 책을 다시 쳐다봤다. 깔끔하게 인쇄된 글자와 그 사이에 빼곡하게 적힌 제 글씨를 쳐다봤다. 딸깍. 볼펜 꼭지가 눌려지는 소리가 났다. 노트 위로는 중요하다고 대충 그려놓은 별표 아래의 글자들이 빨간색 볼펜으로 똑같이 옮겨 적어졌다.

<저녁>

뻐근해진 고개를 뒤로 젖혔다가 천천히 돌리며 스트레칭을 했다. 허리를 왼쪽, 오른쪽으로 당기듯 했다가 뒤로 힘껏 기지개를 키면서 한참 굽어있던 몸도 펴주었다. 오랜 시간 한 자세로 있었던 몸이 뚝뚝하고 뼈 빠지는 소리를 냈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일곱 시.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다. 발밑에 던져두었던 가방에서 지갑과 보온병을 꺼내들고 독서실을 나섰다. A는 먼저 화장실로 가, 점심으로 먹었던 미숫가루를 탄 우유를 담아온 보온병을 따뜻한 물로 씻어냈다. 고소하지만 어딘가 텁텁한 미숫가루 냄새가 올라왔다. 깨끗이 씻은 보온병의 물기를 털어내는데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핏발 선 눈과 벌겋게 충혈 된 눈이 서로 마주쳤다. 이만큼 열심히 했다는 뿌듯함보다는 애처로워 보이는 모습에 자조적인 웃음이 먼저였다. 다시 뜨거운 물을 틀어 손을 적신 후 두 눈덩이를 지그시 눌렀다. 물기 가득한 손가락으로 속눈썹 위로 문질렀다. 억지로 들어간 물 탓에 눈이 따끔거렸지만 그나마 뻑뻑함이 덜 해졌다. 세면대를 움켜쥔 채 그대로 눈을 감았다. 다시 고개를 들어 거울을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 A는 고개를 비스듬하게 숙인 채 보온병을 챙겨들고 화장실을 나왔다.

A는 독서실과 같은 건물에 작게 자리 잡고 있는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턱을 괴고서 항상 비슷비슷한 것만 사가는 손님들을 쳐다보고 앉은 중년의 캐셔 직원은 따분해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이따금 친화력 좋은 사람들이 말을 건네는 경우도 더러 봤지만, 애초에 그것도 계산하는 잠깐 동안 이루어지는 대화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루함을 쫓는 데에는 별다른 효과가 없는 것 같았다. 여하튼 직원의 지루함이 어느 정도인지 간에 A는 하루 종일 미숫가루 밖에 들어가지 않아 허기 진 배를 적당히 채우고 싶었다. 애초에 편의점에 들어온 것 자체가 목적에는 별로 맞지 않는 일이었지만 식당을 찾아가 음식을 기다려서 먹는 시간은 언제나 아까웠다. A는 가장 밑에 진열된 편의점 도시락을 내려다봤다. 제법 알차게 구성된 도시락이었다. 사천오백 원짜리 도시락을 집어 들고 한참 고민했다. A의 지갑에는 이 도시락을 충분히 사고도 남을 돈이 있었지만 망설여졌다. 사천오백 원짜리 도시락이 사치로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이 가격이면 평소 먹던 식단을 두 번 먹을 수 있었다. 몇 분을 더 고민하던 A는 결국 컵라면 하나와 삼각 김밥 하나를 골랐다.

“천육백오십 원입니다.”

천육백오십 원. 부모에게서 완전한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한 A가 죄책감이 들지 않는 한 끼 가격이었다. 심드렁한 캐셔 직원이 나무젓가락을 챙겨주는 동안 A는 삼백오십 원의 잔돈을 꾸역꾸역 지갑 안 작은 동전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지갑이 또 동전으로 두꺼워졌다. 매번 사는 것임에도 왠지 계산할 때면 부끄러워지는 손으로 황급히 까만 비닐봉지를 낚아채듯 챙겨들었다.

오늘따라 휴게실이 제법 비어있었다. A는 그나마 찬바람이 덜 닿는, 입구와도 창문과도 적당히 떨어진 중간 자리로 가 앉았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받아놓고 익기를 기다리는데, 입구 옆 자판기 앞에 서 있는 남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미리 맡아둔 자리인건가 싶었지만 자리에는 아무런 물건도 없었다. 게다가 남자는 이미 식사를 끝내고 커피를 뽑고 있는 거 같았다. A는 애써 닿는 시선을 무시하면서 컵라면 입구에 집어놓은 나무젓가락만 쳐다보려고 했다. 그 때, 남자가 A의 맞은편 의자를 당겨 앉았다. A는 고개를 들고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는 슬며시 웃으며 말을 걸었다.

“저 아시죠? 수업 같이 듣는데.”

그렇게 듣고 보니 익숙한 야구점퍼였다. 낮과는 달리 두꺼운 뿔테안경을 쓰고 있었다. 안경 때문이 아니라 그다지 주변 사람들을 주의 깊게 보지 않는 편이라 못 알아본 거였지만 A는 안경 때문에 못 알아봤다가 얼버무렸다. 당황한 기색이 보였는지 남자는 의자를 조금 뒤로 빼고 앉으며 저 나름대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덧붙였다.

 

“휴게실에선 아는 사람 잘 못 마주쳤는데, 눈에 익은 분이 계시길래 괜히 반가워서 말 한 번 걸어봤어요. 많이 불편하세요?”

“아뇨. 괜찮아요.”

“제가 독서실엔 말동무가 없어서요. 수업 같이 듣는 형은 집 근처 도서관에서 공부하거든요.”

 

능청스럽게 대화를 이끌어가는 남자와는 달리 A는 이 대화가 상당히 불편했다. 강의실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의 얼굴이 눈에 익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처음부터 친분이 있는 게 아니면 애초에 대화는커녕 인사도 하지 않았다. 강의실에 들어오자마자 책이나 화이트보드만 쳐다보는데 새로운 친분이 쌓일 리도 없었다. 그러니까 이 대화는 충분히 드물고 어색한 상황이 맞았다. 짧게 통성명을 나눈 후, 남자는 날이 더 추워졌다느니 자판기 커피 양이 점점 더 줄어드는 거 같다느니 하는 시답잖은 얘기를 꺼냈다. 그다지 관심이 가지도 집중되지도 않는 대화였지만 A는 그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길 바라면서 적당히 맞장구를 쳐가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한참을 혼자 떠들던 남자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의 시야에 걸린 뭔가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A의 기억이 맞다면 거기엔 시침소리가 시끄러운 데다가 시간도 4분 정도 늦는 시계가 걸려있었다. 불편했던 대화는 오히려 끊긴 게 더 곤혹스러웠다. A는 슬슬 땀이 차기 시작하는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그러다 먼저 말을 꺼내야 되나 싶어 쳐다본 그의 눈에도 벌건 핏줄이 돋아있는 것이 보였다. A는 그 핏줄 돋은 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시선을 느꼈는지 그는 눈을 느리게 몇 번 깜짝이더니 다시 A를 보며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제가 말 걸어놓고 딴 생각이나 하고.”

“괜찮아요.”

“원래 이러지 않는데 요즘 자주 이러네요. 자꾸 잡생각 들고.”

“뭐, 다들 그럴 시기니까요. 그런 사람들 많을걸요.”

 

그런가요. 그 말과 함께 남자는 어딘가 익숙한 표정을 지었다. 낮에 엘리베이터에서 봤던 바로 그 표정이었다. 어쩐지 A는 아까는 잘 보고만 있던 그 표정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남자의 눈 밑을, 광대뼈와 볼 사이 애매한 그 어딘가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또다시 눈이 뻑뻑해지기 시작했다.

“근데 공부는 할 만 하세요?”

A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도 딱히 답을 보채지 않았다. 괜히 입만 달싹이고 마르지도 않은 입술을 혀로 축였다. 그는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었다. 안부와 다를 것 없는 가벼운 질문이었다. 그런 질문에도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건 그냥 그런 시기여서일까. A는 남자 대신 변명해주었던 것을 다시 제게로 가져오며 겨우 대답했다.

 

“그냥 할 만 해요.”

 

뜸들인 것 치고는 별 볼일 없는 대답이었다. 어쩐지 얼굴에 열기가 올라왔지만 남자는 짤막한 대답도 없이 음 하며 고갯짓만 몇 번 해줄 뿐이었다. 또 잠깐의 침묵 후에 그가 말을 꺼냈다.

“갑자기 제 자랑 같지만 전 정답 찾는 데는 진짜 자신 있는 편이었거든요. 학교 다닐 때 성적도 좋았어요. 쉽잖아요, 틀린 것만 안 고르면 되는데. 다 정답이라고 알려주는 그거, 그게 답인 거 알고 시작하는데 뭐가 어려워요. 남들은 고등학교랑 대학교는 완전히 다르다지만 별로 다른 거 못 느꼈어요. 솔직히 지금 하는 공부도 똑같아요, 저한테는. 근데 이상하죠. 예전엔 정답이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글쎄,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예고도 없이 늘어놓은 남자의 자기고백이 당황스럽기보다 A는 막연하게 그가 시험을 못 쳤을 거라고 지레짐작으로 단정 지은 자기 자신이 부끄러웠다. 뭐 때문에 이 사람의 점수가 나쁘다고 생각했을까. 고작 찍었다는 그 말에 당연히 그보다는 제 성적이 높을 것이라 판단한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자신이, 함께 안도했던 그 사람들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모두가 한 그 생각을 그가 알고 있을 것이란 확신 때문이었다. 그는 얘기하는 내내 마시지 않은 싸구려 자판기 커피를 한 번에 다 들이켰다. 다 식어빠진 믹스커피의 단 맛이 쓴 맛으로 바뀌기라도 한 듯, 얼굴이 잔뜩 찡그려졌다. 그는 입을 꽉 다물어버린 A를 보면서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제가 시간을 너무 빼앗았죠. 죄송합니다. 그래도 대화 즐거웠어요. 제가 지금 가진 게 이것뿐이네요, 공부할 때 하나씩 먹으면 도움이 되더라구요. 다음엔 커피라도 한 잔 살게요.”

 

그는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가장 비싼, 금박으로 포장된 초콜릿이 든 작은 플라스틱 상자를 내밀었다. A는 남자를 쳐다보지도 초콜릿을 받지도 않았다. 그저 자존심인지 미안함인지도 모를 감정으로 가까스로 한 마디 내뱉었을 뿐이다.

 

“잘 하실 거예요.”

 

남자의 손이 A 앞에 초콜릿을 뒀다.

 

“고마워요. 아, 그리고 이것도 드릴게요. 전 이제 필요 없을 거 같아서요.”

 

초콜릿 옆에는 안약이 함께 놓여졌다. A는 그제서야 남자를 올려다봤다. 그는 안경알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면서 말했다. 눈이 많이 빨개요. 그대로 그는 휴게실을 나갔다. 너무 퉁퉁 불어버려 먹지 못할 컵라면 대신 A는 그가 주고 간 초콜릿을 까먹었다. 오늘 산 한 끼 식사보다 비싼 것이었다.

 

<밤>

열 시였다. 버스 막차를 타기 위해선 지금 독서실을 나서야했다. 아직 빈자리보다 사람이 앉은 자리가 더 많은 독서실을 나섰다. 더 차가워진 바람이 몸으로 스며들었다. A는 목 쪽으로 살짝 올라온 외투 옷깃 안으로 목을 집어넣으며 종종걸음을 걸었다. 십 여분 떨어진 버스 정류장에는 아직 사람이 많았다. 찬바람을 피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진 않지만 그래도 하는 마음으로 유리벽 안 쪽으로 들어가 섰다. 전광판을 보니 타야 할 버스는 십오 분 뒤에나 도찰할 예정이었다. 멍하니 허공만 떠돌던 시선이 막 야자를 마치고 나온 듯한 여고생들에게 꽂혔다. 제법 살을 에는 추위에도 얇은 스타킹을 신고 옹기종기 몸을 붙이고 선 어린 아이들이었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제대로 들리진 않았지만 짐짓 심각한 표정을 하고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제법 귀여웠다. 나름대로 얼마나 심각한 얘기를 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저 나이 때 하는 고민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이미 A도 충분히 겪고 지나온 것들이었다. 일생일대의 선택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라고, 이것보다 골머리 앓는 일은 없을 거라고 왁왁거리던 고등학생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고민이 귀엽게 느껴지는 것은 먼저 인생을 겪은 인생선배의 시선이라는 거창한 이유라기보다는 오늘 낯선 사람인 자신에게 속내를 토해냈던 야구점퍼를 입은 남자 때문이었다. 그의 말이 눈앞에 선 아이들의 고민보다 무겁게 다가왔다. 남자의 말 속으로, 그 속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버스가 도착했다. A는 재빨리 뛰어가 앞으로 슬슬 나가서는 사람들보다 먼저 버스에 올라, 겨우 창가에 하나 남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머리를 툭 기댄 유리창 위로 비친 A의 상이 아직 버스를 기다리는 아이의 얼굴과 겹쳐졌다. 맞지 않는 그림이었다.

집에 도착한 시간은 열한시가 조금 안 된 시각이었다. A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노트북을 켜 시험 일정을 검색했다. 푸르스름하게 하얀 모니터 빛에 찬바람을 맞아 아무래도 건조해진 눈이 더욱 더 뻑뻑해졌다. 몇 번 찡그리듯 눈을 깜빡이던 A는 손바닥으로 눈을 꾹 눌렀다. 마사지를 하듯 한참 꾹꾹 누른 눈은 겨우 쥐어짜낸 눈물로 조금이나마 촉촉해졌다. 흐리멍텅해진 시야 때문에 모니터를 더 바짝 끌어와서 봐야했지만 하루 종일 느꼈던 기분 나쁜 뻑뻑함이 나아지는 것으로 만족했다. 노트북 옆 달력에는 이번에 친 시험 성적 발표일과 다음 시험일, 그 시험의 성적 발표일이 차례차례 적혀나갔다. 빼곡하게 적힌 달력을 보는 동안 다시 눈이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A는 체념하듯 한숨을 쉬며 아직 벗지 않은 외투 주머니에서 손을 굴렸다. 안약통 두 개가 잡혔다. 또 남자가 떠올랐다. A는 이제 약간 짜증스러움을 느끼며 안약통들을 책상 위로 던져버렸다. 다시 달력을 쳐다봤다. 달력 위쪽 귀퉁이에는 조그마한 글씨로 잘 하자라고 적혀 있었다. A는 그 말을 따라 읊조렸다.

 

“잘 하자.”

 

이제는 다짐인지 바람인지도 모를 말이었다. A는 다시 눈을 감싸 쥐었다.

 

하루 종일 울리지 않았던 휴대폰 전화벨이 울렸다. A는 휴대폰 액정에 뜨는 이름을 확인했다. 엄마. 휴대폰을 움켜쥔 채 좀 더 음악이 흐르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 잠깐 사이 전화가 끊기길 바랐지만, 이대로 끊긴다한들 집 밖으로 내보낸 자식 걱정에 전화벨은 또 울릴 것이다. A는 짧게 숨을 들이 킨 후에 통화버튼을 눌렀다.

 

“응, 엄마.”

“얘는 맨날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아.”

“미안. 씻느라고 그랬어.”

“어디야? 집이야?”

“집이지. 방금 씻고 있었다고 그랬잖아.”

 

독서실이 아니고 왜 벌써 집이냐는 매몰찬 말은 하지 않을 거란 것도 오히려 오늘도 고생했다는 말을 할 것도 알고 있으면서 괜히 집이라는 대답이 미안했다. 밥은 잘 챙겨먹고 있는지, 별 일은 없었는지 묻는 걱정스런 질문에 응이라고만 대답했다. 엄마도 이제 자식이 제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으리란 건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갑자기 길게 말을 시작하며 가슴 철렁할 그런 나쁜 소식을 전해들을 바에야 이런 식의 짤막한 대답이 더 마음이 편할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A의 추측이 맞든 아니든 간에 매일같이 묻게 되는 건 또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내일도 가?”

“매일 가.”

 

이제 슬슬 통화의 마무리 단계였다. 매번 같은 패턴으로 끝나니, 이제 끊겠구나할 때면 정말로 끊기는 때였다.

 

“일찍 자.”

“응, 그럴게. 엄마도.”

“그래. 또 전화할게.”

 

통화가 끝났다. 통화종료 화면에 뜬 엄마라는 단어를 잠깐 쳐다봤다. A는 휴대폰을 뒤집어 놓고 나서 달력을 책상 안쪽 끝으로 쭉 밀어 넣었다. 노트북 전원도 껐다. 아직 입고 있는 외투도 벗어 의자 등받이에 대충 걸어두었다. 이젠 정말로 씻을 시간이었다.

 

<새벽>

 

다시 또 하루를 시작하려면 충분히 잠을 자둬야 했지만 제대로 된 수면을 취한 게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남들보다 일찍 나와야 했던 독서실에서의 공부를 이어 하느라 늦게 자는 건 아니었다. 차라리 그랬다면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자려고 누워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잠깐 뒤척였다 싶으면 새벽 두 시였다. 그러면 독서실에 남아 있던 이들의 푹 수그려진 뒤통수가 떠올랐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펜을 놓고 있지 않을 사람들과 침대 위에서 쓸데없이 시간만 흘려보내는 자신의 나태함이 비교됐다. 그렇게 또 생각이 시작된다. 잠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남들처럼 바삐 쫓기는 새벽을 보내지도 못한 채 자신에 대한 혐오감과 우울감에 빠졌다. 그렇게 또 울컥 눈물이 나오는 것이다. 베갯잇을 적시는 눈물이 다 씻어 내준다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않았다. 괜히 더 답답해진 가슴을 쥐고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A는 꿈을 꾸고 있었다. 허무맹랑한 꿈만 꾸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현실과 다를 바 없는, 아니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A는 제 양 옆으로 제 키만큼 쌓인 책들을 보고 있었다. 오늘 안에 다 봐야 하는데. 눈이 말썽이었다. 제대로 봐도 모자를 판에 흐리멍텅한 눈은 막 꺼내든 첫 번째 책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눈을 감았다 떠도 미친 듯이 비벼 봐도 시야는 더 흐려지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책 더미의 높이는 점점 높아지기만 했다. 벗어나고 싶었다. A는 저를 둘러싸고 있는 책 더미를 힘껏 밀쳤다.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제 책 더미의 꼭대기는 보이지도 않았다. A는 비명을 질렀다.

 

<아침>

아침을 알리는 요란한 알람소리가 울렸다. 제대로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더듬어 찾은 휴대폰 시계는 일곱 시였다. 몇 시간 자지도 못했건만 꿈까지 꿨다. 무슨 꿈인지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개운치 못하고 찌뿌둥한 몸만으로도 충분히 상쾌하지 않은 아침이었다. 어기적거리는 걸음 거리로 화장실로 가 칫솔을 물었다. 아직 잠이 덜 깬 얼굴이 거울에 비춰졌다. 눈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A는 거울 옆에 붙은 찬장을 열어 새 안약을 꺼냈다. 매일 아침 챙겨 가는데도 왜 항상 눈은 저 모양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제와 같은 가방과 의자에 걸어두었던 외투를 다시 챙겨 입었다. 휴대폰 어플로 집 앞 정류장에 올 버스를 계속 확인하면서 급히 운동화를 구겨 신고 집을 나섰다. 아침 바람이 찼다. 시린 아침 바람을 한껏 들이켰다. 아침 냄새가 났다. 오늘은 챙긴 목도리 안으로 얼굴을 묻었다. 아슬아슬하게 탄 버스는 만원이었다. A는 부족한 아침잠을 손잡이에 매달려 눈을 붙이는 것으로 보충하기로 했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 A는 편의점에 들러 어제 저녁 야구 점퍼를 입은 남자가 주었던 초콜릿을 샀다.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그냥 그 초콜릿을 먹고 싶었다. 강의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하나를 까먹었다. 달지 않고 쌉싸름했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면서 천천히 초콜릿을 씹었다. 그 동안 엘리베이터가 내려왔다. A는 엘리베이터에서 초콜릿을 하나 더 까먹었다. 이번에는 씹어 먹지 않고 입 안에서 살살 굴려 녹였다. 여전히 쌉싸름한 맛이었지만 약간 느껴지는 단 맛에 의지해 두 번째 초콜릿을 해치웠다. 언제나처럼 너무 앞은 아니지만 화이트보드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가방에서 챙을 꺼내 오늘 진도에 맞는 페이지를 펼치면서 세 번째 초콜릿을 까먹었다. 이제는 제법 단 맛이 느껴졌다. 입 안에 퍼지는 달짝지근함에 괜히 기분이 살짝 좋아졌다. 남자의 말처럼 정말 도움이 될 것만 같았다.

 

“여러분, 좋은 아침. 다들 일찍 나오느라 고생했어요. 오늘도 힘냅시다!”

초콜릿 맛을 음미하던 A는 수업시간에 딱 맞춰 들어온 강사가 건네는 아침인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떻게 매일 저리도 활기 찰 수 있는지 궁금한 강사는 옆구리에 끼고 온 출석부를 펴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한 명 한 명 이어지던 대답이 중간에 끊겼다. 출석부를 향하고 있던 강사의 눈이 강의실을 쓱 훑었다. 답 없는 이의 이름이 한 번 더 불려졌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오늘은 한 분 결석이네요.”

 

그 말에 A는 뒤를 돌아 강의실을 둘러봤다. 그 남자가 없었다. 야구 점퍼를 입었던 남자. 왜 안 온 거지? A는 빈자리 하나를 쳐다보며 남자의 공백에 대해 궁금증을 던졌다. 별 거 아닌 사소한 이유일 수도 있지만, 아니 설령 사소한 이유가 아니라 하더라도 A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남자의 부재가 궁금했다. A는 그의 빈자리에서 한참동안 눈을 떼지 못 했다. 그 남자와 나란히 서 있는 회색 코트의 남자는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강의는 그의 부재와는 상관없이 시작됐다. A는 화이트보드로 시선을 도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손이 또 바삐 움직여야할 때였다.

끝이 희미하게 써지는 마카펜은 금방 화이트보드를 가득 채워나갔다. 그에 따라 A의 책 역시 빼곡하게 채워지고 있었다. 수업을 들은 시간보다 앞으로 들어야 할 시간이 더 많은데, 벌써부터 눈이 뻑뻑해졌다.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하얀 형광등 불빛 때문일까, 아니면 반사광을 번쩍이는 화이트보드 때문일까. 눈앞이 뿌옇게 될 때까지 눈을 비비면서도 앞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안약. 안약이 생각났다. 안약은 입고 있는 외투 주머니 안에 들어있었다. 꺼내서 넣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이 메마름은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안약을 넣는 동안 놓칠 것들이 아찔했다. A는 어떻게든 눈의 건조한 통증을 참아내려고 노력했다. 아무 것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A는 안약 대신 초콜릿을 하나 더 꺼냈다. 그리곤 눈은 여전히 화이트보드에 고정시킨 채로 손으로 금박껍데기를 까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입 안 가득 단 맛이 퍼졌다. 거짓말처럼 뻑뻑함이 나아지는 것 같았다. A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샤프펜슬을 고쳐 잡았다. 아직 초콜릿은 하나 더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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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회#창원대문학상#소설#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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