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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던 날
  • 신혜린 편집국장
  • 승인 2017.03.06 08:00
  • 호수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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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가 이리저리 휘날린다. 바람 부는 날을 썩 좋아하진 않지만 펄럭이며 나부끼는 모습을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아 미소가 지어진다. 아이구 아이구 소리가 울려 퍼졌다던 그 해 1919년, 3월 1일도 꼭 오늘 같은 날이었을까.

지금은 창가에 걸려있지만 그 날은 손에 꼭 쥐어져 있었을 테다. 직접 그린 태극기를 쥐고 거리로 나갔을 테고 그날도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었을 테다. 역사를 앞에 두고 만약에- 라는 말은 덮어두라지만 그래도 이런 날이면 괜스레 만약에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그 시절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툭 하고 던져진 물음은 이리 돌고 저리 돌다 결국 저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지고 만다.

어제 본 기사에선 이름 없이 쓰러져간 애국선열(愛國先烈)의 수가 무려 15만 명에서 30만 명 정도에 육박한다고 했다. 이 중 확인된 수가 겨우 3,315명이라 하니 애국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그런데 오늘날, 애국이라는 단어가 어디서 어떻게 쓰이고 있는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집회 이름이 바로 애국단체다. 같은 애국의 뜻을 가지고 같은 태극기를 흔들고 있지만, 그 의미는 아주 많이 달라 보인다. 태극기와 애국, 모두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 집단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리잡혀선 안 된다. 그 집단이 올바른 방향의 집단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애국단체라는 이름의 관변단체는 그 목적은 물론이고 제시하고 있는 근거조차 명확하지 않다. 가짜뉴스를 배포하며 상대에 대해서는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지만 정작 대통령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해서는 감정에 호소하려 한다.

비판조차 막으려는 이 형태가 과연 애국에 가까운지 나라를 망치는 매국에 가까운지 의심스럽다.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누가 이들에게 태극기를 쥐여주고 거리로 내몰았냐는 것이다. 지난 1919년 그해 태극기를 쥐여준 이들과는 분명 다른 목적임이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올해 삼일절 태극기 게양률이 곤두박질쳤다. 본래도 그리 높은 게양률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더 뚝 떨어졌다. 태극기를 달아 그들과 뜻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우려 때문이다. 매번 태극기 게양 당부는 물론 판매처까지 꼼꼼히 알려주던 우리 아파트 역시 올해는 조용히 다음날을 맞이했다. 그 이유에 대해 물어보진 못했지만 괜스레 마음이 좋지 않다. 몇십 년 간 꾹꾹 눌러 담아온 태극기의 의미가 변색돼버렸다. 더는 이를 지켜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여러 곳에서 문제가 제기되고 있음에도 손 놓고 있다는 것은 결국 의혹을 품을 수밖에 없다.

1919년 3월 1일, 그날 태극기의 모습처럼 우리에게 다시 태극기가 제자리에서 휘날리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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