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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소녀상에 깃든 이야기
  • 서영진 기자
  • 승인 2016.10.24 08:00
  • 호수 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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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미처 다 자라지도 못한 소녀들은 전쟁터로 끌려가 군인들의 성노리개가 되어야만 했다. 시간이 흘러 그들의 아픔과 한을 국가가 나서 해결해주리라 기다렸지만 1965년의 한·일 협정과 2015년의 12·28 합의는 어느새 할머니가 된 소녀들의 가슴에 또다시 대못을 박았다.

소녀들의 마음을 위로한 이는 국가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었다. 1992년 1월 8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첫 수요집회가 열렸다. 그리고 지난 2011년 11월 수요집회 1000회를 맞아 시민들의 모금으로 서울시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높이 130cm, 길이가 맞지 않는 짧은 단발머리에 치마저고리를 입고, 두 주먹을 꼭 쥔 채 앉아있다. 언뜻 보기에는 그저 소녀가 앉아있는 모습이다. 바라보고 있으면 어딘가 마음이 먹먹해져오는 그런.

사진출처/김서경 작가

그런데 평화의 소녀상이 처음 기획단계에서는 할머니의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소녀상 제작을 맡은 부부조각가 김운성, 김서경씨가 받은 의뢰는 사실 비석 제작이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비석 설치를 반대하는 것에 격분해 ‘할머니’형상으로 구상을 바꿨다. 그러던 중 당시의 아픔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그 나이대의 소녀라고 판단해 소녀상으로 작업이 시작 된 것이다.

전국에 설치된 소녀상들을 잘 살펴보면 모두 땅에 온전히 닿지 못한 맨발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맨 발에는 해방이후 고향에 돌아왔음에도 환영받지 못하고, 정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서운함이 담겨있다.

고왔던 단발머리는 삐죽 삐쭉한 단발머리로 바뀌어 머리채를 잡혀가며 강제로 끌려갔음을 나타냈다. 꼭 쥔 두 주먹에서는 시간이 흘러감에도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강력히 싸우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한편, 신경 쓰지 않으면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소녀상의 그림자이다. 소녀상의 뒤로 조각난 타일들이 허리를 굽히고 있는 할머니의 형상을 띠고 있다. 깨진 조각들은 그간 할머니들이 겪어온 힘든 삶을 나타내며, 소녀의 그림자가 할머니가 된 것은 진실과 정의 회복을 바란 기다림이 너무도 길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소녀상의 옆에 위치한 빈 의자와 어깨위의 작은 새 한 마리는 먼저 떠난 피해자들을 잊지 말고 문제가 해결될 때 까지 함께 하자는 연대의 의미가 담겨있다.

무심코 지나쳤던 소녀상에는 피해자들의 고통뿐만 아니라 빼앗겼던 우리들의 주권과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어리고 여리지만 결연한 의지가 담긴 소녀의 표정만큼 우리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제대로 된 사과를 받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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