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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요즘 인성교육이 화두다. 사회에 무례한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마트에 아기 귀저기를 버리고 간다든지, 공공장소인 식당에서 애들이 뛰어놀게 방치한다든지 하는 것들이 무례의 예다. 주변에서 이런 이들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마련이다. 남을 배려하는 것은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아니지만, 나로 인한 타인의 피해를 예방하는 것은 인간으로써의 기본 품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례한 이들을 보고 ‘인간이 덜 됐다’는 표현을 쓴다. 그 결과로 인간이 덜 된 이들을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인성교육’이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인성은 교육 가능한 것일까. 먼저 인간은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에 대한 답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겠다. 성선설이 맞다면 교육은 필요없고, 선악설이 맞다면 교육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고 한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생물은 ‘이기적’존재라고 한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는 심지어 유전자조차도 이기적이라고 한다. 우리는 인간이 선한지 악한지는 아직도 모른다. 다만 우리는 생명체가 이기적이라는 것은 이제 안다. 그렇다면 이기적 존재를 교육을 통해 이타적 존재로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의 교육이 본성을 이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성은 교육될 수 없다.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덜 된 그들을 영원히 포기하고 내버려 둬야 할까. 아니다, 다른 방법이 있다. 인간의 품격을 가르쳐야 한다. 공공장소에서 지켜야할 예의나 인간으로써 살기위해 지켜야할 품격을 가르쳐야 한다. 길을 걸을 때는 오른쪽으로 붙어가야 한다든지 버스를 탈 때는 가방을 손에 쥐어야 한다든지, 주택가나 스쿨존을 지날 때는 기어를 'D'에서 ‘2’로 바꿔야 한다는 것과 같은 선진사회의 기본적인 매너들이다. 내 자유가 소중한 만큼 다른 이들의 자유를 그만큼 존중하는 것이 매너다. 신사, 숙녀들은 매너 없는 사람을 경멸한다. 왜냐하면 매너 없는 행동으로 그들이 이미 타인의 인격과 자유를 짓밟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는 사실 대학생(大學生)이 흔치 않다. 대학이란 소학을 배운 사람이 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소학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인간의 기본 됨됨이, 즉 매너를 가르치는 것이다. 소학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니 대학에서 아무리 학문을 연마해도 깨달음이 있을 리 없다. 인문을 하려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야 하는데, 배려를 해본 적도 받아본 적도 없으니 인문이 될 리가 없다.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다. 안타깝게도 대학에서 매너가 몸에 벤 이를 본 적이 별로 없다. 또 알고 보면 그럴 수 밖에 없다. ‘인성교육’을 하자고 법을 만드는 분들조차 국민의 전당인 국회에 들어가면서 ‘넥타이’조차도 안하는데 누가 누구의 인성을 나무란단 말인가.

인성교육이 아니라 품격교육을 하자. 어느 가정에서고 할 수 있다. 밥상머리(Table)에서도 갖춰야 하는 것이 품격이다. 사람을 만나는 곳에서는 어느 곳이든 매너를 갖춰야 한다. 공공장소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즉 매너를 갖춘 사람들이 갈 수 있다. 아직도 공공장소에 개를 데려오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이들이 있다. 식당에서 제자식이 뛰어다녀 사고가 나면 도리어 화를 내는 부모들도 있다. 공사 구분이 안 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막을 내린 ‘킹스맨’에서 ‘Manners maketh man’이라는 대사가 나오는 장면이 있다. 많은 이들이 이 대사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일상의 무례함에 지쳐있는지 알 수 있다. 더 이상 국민들의 인성을 모욕하지 말자. 인간의 품격을 가르쳐 인간으로, 인간답게 살 기회를 주자.

손경모 기자 remaist@ch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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