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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사정관제의 한계에서 희망을 본다

 2007년에 도입된 입학사정관제는 이를 통해 학생들을 100% 뽑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을 기화로 정부의 대학 지원과 맞물려 이제 대세가 된 듯이 보인다. 2009년 입학사정관제로 뽑은 학생 수가 4500여명 수준이던 것이 2010학년도에는 3만 명에 육박하는 급신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설령 대통령의 말대로 100% 입학사정관제를 통한 선발이 되기는 어렵다고해도 대학들이 이를 다투어 도입하는 상황은 예사롭지만은 않아 보인다. 아직은 대학들이 객관적인 평가기준조차도 갖추지 않은 시도단계에 있는 제도에 대해 그 성패를 가늠하는 것이 물론 시기상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제도를 대입 제도의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양 전개되는 상황을 보면, 그 성공 여부보다는 오히려 과연 우리 교육 현실이 이러한 제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부터 따져보는 게 순서가 아닌가 싶다.

 입학사정관제는 처음 대학입학 제도로 도입된 동기부터가 그리 교육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192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입학사정관제는 애초부터 그 당시 크게 늘어난 동유럽 출신 유태인의 대학 합격 비율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태생적인 불순함에도 불구하고 입학사정관제는 대입제도에서 나름대로 순기능적인 면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바람직한 입학사정관제의 핵심은 우리의 문제풀이식, 암기식 교육으로는 더 이상 우리 교육에 희망도 경쟁력도 없다는 문제의식, 계량화된 점수를 바탕으로 한 변별력 중심의 평가 패러다임에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발상의 전환, 그리고 궁극적으로 입시구조와 공교육 시스템을 일치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잠재력과 창의성 있는 인재를 뽑겠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입학사정관제는 그 근본 취지만을 놓고 본다면 많은 이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공교육 부활제도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과연 그럴까? 크게 두 가지가 우리로 하여금 이 제도의 도입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게 만든다. 먼저 이 제도의 당사자가 될 대학의 자세이다. 이 제도의 도입에 가장 위기의식을 느끼는 이들은 기존의 양적평가, 학업중심, 점수 중심 패러다임의 가장 큰 수혜자이자 이를 공고히 해 왔던 대학들, 그것도 서열화 구조의 상위를 점하는 대학들이라 할 수 있다. 우리 교육 구조의 정점에 서있는 대학들이 자기들의 기득권에 위협이 되는 제도에 맹렬히 저항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애초에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겠다고 나선 정부의 자세다. 우리는 바야흐로 팽창일로에 있는 사교육비의 주된 배경에 영어 교육과 특목고 확대라는 정부의 핵심 정책이 있다는 것을 뼈아프게 목도하고 있따. 우리의 우려는 입학사정관제가 이렇듯 왜곡되고 파괴적인 사교육 시장을 키워 놓은 당사자가 내 놓은 작품이라는 데에 기인한다. 이미 사교육 시장에서 발 빠르게 입학사정관제 대비라는 사업 아이템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이 두 가지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입학사정관제가 지금까지 나왔던 다른 입학제도들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실패한 실험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에 좌절한다.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회의적일 수밖에 없는 입학사정관제에 우리는 좀 색다른 이유로 기대를 걸어볼수도 있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 본다. 이 제도가 대학 입학을 정점으로 한 우리의 교육제도의 근본적인 문제를 보다 극명하게 드러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그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입학사정관제의 순기능들이 우리 교육이 보여주어 왔던 모든 반교육적 행태의 정반대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볼 때, 이 제도마저 실패하고 만다면 그것은 교육 개혁은 대학은 서열화 문제에서 비롯되는 뿌리 깊고 폭넓은 '구조'의 문제라는 엄연한 진실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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