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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과 사회적 연대

사회학과 교수 조효래

최근 국민연금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이 벌어지면서, 국민연금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증가하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둘러싼 갈등이 공적연금 강화 문제로 바뀌면서, 연금정치가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정부 고위당국자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보장안에 대해, 미래세대에 대한 세금폭탄, 세대 간의 도적질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격하게 반대했다.

사실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국민연금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 가입하고 싶지 않은 강제저축이라는 불만에서부터 기금 고갈에 대한 불안, 연금액수가 너무 적어 용돈연금에 불과하다는 지적에 이르기까지 이유도 다양하다. 서민들은 노후가 걱정되기는 하지만 당장 내야하는 보험료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다. 중산층은 노후 대비에 턱없이 부족한 국민연금보다는 사적 저축에 의지하고 싶어 한다. 노인세대들은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는 반면, 젊은 세대들은 보험료 부담은 점점 커지는데 기금 고갈로 제대로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을 느끼고 있다. 그리하여 할 수만 있다면 국민연금을 탈퇴하고 싶다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처럼 국민연금 문제는 모두가 이해당사자이면서도 쉽게 해답을 찾기 어려울 만큼 복합적이다. 계층 간, 세대 간 이해관계도 크게 엇갈린다. 국민연금에 대한 이러한 불만들에 공통적인 것은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낸 만큼 언젠가는 돌려받을 수 있다는 믿음, 지금 힘들더라도 연금으로 노후를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다는 신뢰, 결국 국가가 책임져 줄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 정부 스스로 노후는 개인 스스로가 책임져야 하며, 국민연금의 기금은 고갈될 것이고, 미래세대에게는 연금 보험료가 세금폭탄이 될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저출산·고령화가 본격화 하면서, 누구도 노후에 대한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제는 노후에 대한 막연한 걱정을 넘어 공동의 문제에 대한 공동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이 어떠한 성격을 갖는 제도이며, 왜 국가가 관리하는 강제 가입제도로 운영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다 가장 큰 오해는 국민연금을 사적 보험과 동일한 저축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가입한 저축인데, 돈이 없어도 강제로 내야하고, 필요할 때 찾아 쓸 수도 없는 강제저축이라는 인식이다. 기금이 고갈되면 내가 낸 돈도 찾아갈 수 없는 부실저축이라는 불만이 적지 않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개인의 강제저축이 아니다. 우리가 국민연금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사회구성원들의 노후를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도덕적 이유 때문이다. 육아와 노후, 질병, 실업과 같이 살아가는 동안 직면할 모든 위험들을 개개인들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면, 우리는 미래의 불확실성과 삶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국가와 공동체가 구성원들의 삶의 안전을 책임져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오직 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시장에서의 성공여부에 따라 행복한 노후와 비참한 노년으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을 오직 시장에 의존해서만 살아 가야한다면, 우리가 사회적으로 함께 하고 공동체에 헌신해야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개인의 안전과 운명에 대해 공동체가 보호해줄 것이라는 원칙과 신뢰가 있을 때에야, 우리는 국가를 믿고 사회를 신뢰할 수 있게 된다. 공동의 안녕에 대한 공동의 책임, 집합적 연대에 대한 상호신뢰가 없다면, 우리는 정치적 공동체의 시민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공동의 안녕에 대해 공동의 책임을 지는 시민들이야말로 건강한 공동체의 기초이고, 복지국가의 토대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민연금은 시민적 연대를 제도화한 것이다. 그것은 부자가 빈자에 대해 연대하고, 젊은이가 늙은이에 대해 연대하며, 건강한 이가 아픈 이에 대해 연대하는 집합적 책임의 제도이다. 이것은 낸 만큼 돌려받을 수 있는가 하는 합리적 계산의 문제가 아니다. 계층 간의 연대와 세대 간의 연대가 없다면, 공동체는 사라진다. 연금은 우리 모두에 대한 공동체의 보호를 위한 것이고 공동체 구성원의 안녕에 대한 우리 모두의 공동책임을 제도화한 것이다. 이것이 국민연금 논의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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