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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창시자 세종대왕

오늘의 문화인은 바로 한글의 창시자, 조선조 제4대 임금 세종대왕이다. 세종의 본명은 ‘이도’로, 태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22세의 나이에 태종으로부터 왕위를 양위 받아 즉위한 세종은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여 이상적 유교 정치를 구현하였으며, 측우기와 같은 과학 기구들을 제작하는 등 위대한 업적들을 많이 남겼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으뜸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단연 ‘한글 창제’다.

 

우리나라의 긍지이자 위대한 글자인 한글. 그러나 창시자, 창시 시기, 창시목적까지 세계 유일하게 알려져 있는 한글 창제에는 아직 미스터리가 남아있다. 1443년 12월 30일, 조선왕조실록에는 한글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 나온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만들었다’는 기록인데 이를 통해 한글을 세종대왕이 만들었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한글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전혀 설명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1443년 12월 30일에 이 한글이라는 것은 불쑥 튀어나온다. 세종실록은 매우 방대하고 심지어 기침 소리까지 기록할 정도인데 훈민정음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유를 ‘당시 한글 창제는 비밀스러운 007 프로젝트였다!’는 것으로 조심스레 예상해볼 수 있다.

 

당시 사회는 명과의 사대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때문에 한글 창제일로부터 약 2달 후,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는 한글 사용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린다. 우리가 본래 알고 있듯이 집현전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한글이 창제됐다는 사실과는 상반되게 말이다. 2011년도에 방영됐던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역시 이러한 구도를 잘 표현했는데 드라마는 과연 어디까지가 픽션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이었을까.

 

당시 집현전의 대제학은 정인지였으나 실질적 집현전의 책임자는 부제학인 최만리였다. 당시 최만리의 상소문에는 ‘이번 언문은 새롭고 기이한 한가지 재주에 지나지 못하는 것으로 학문에 방해됨이 있고 정치에 유익함이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옳은 것이 없습니다’ 라고 쓰여 있다. 또한 최만리뿐만 아니라 신석조, 정창손, 하위지 등 많은 집현전 학자들의 한글에 반대했다. 물론 한글 창제 과정에서 집현전 학자들의 도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세종은 반대가 심했던 원로 집현전 학자들은 내버려두고 젊은 학자들에게 한글 창제 원리와 사용 예를 해석하라 명령했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서 오해가 발생한 것이다. 고려부터 조선 성종 때까지 민간풍습이나 역사 등을 쓴 성현의 <용재총화>에 따르면 ‘세종께서 언문청을 설치하여 신고령(신숙주), 성삼문 등에게 명하여 한글을 만들게 하다’는 내용이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지금까지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 창제에 주도적이었고 크나큰 공을 세웠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세종대왕이 창제할 당시에 신숙주는 일본에 가 있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훈민정음 혜례본 제작 작업에 참여한 것을 성현이 오해해서 기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 의견이 크다.

 

한편 세종에 대한 또 다른 비화로는, 만 원권에 그려진 세종대왕의 초상화가 상상화라는 것이다. 만 원권에 나와 있는 세종대왕의 초상화는 김기창 화백이 1979년도에 그린 상상화로, 본인과 닮게 그렸다는 이유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또한 세종대왕의 용안에 관련해서 2014년 9월 4일에 KBS2 ‘여유만만’에 조선의 마지막 황손 이석이 출연한 바 있다. 그는 “광화문에 세종대왕 동상이 있는데, 조각가가 아침 마당에 나오는 내 모습과 관악산 효령대군 동상을 합쳐서 세종대왕 동상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며 “내가 세종대왕의 28대손일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실제 세종대왕의 초상화는 어떻게 된 것일까? 본래 1940년대까지만 해도 제1대 태조부터 25대 철종까지 모든 조선왕들의 어진(초상화)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발발로 인해 세종의 어진을 포함한 다수의 어진이 불타 없어져서 지금은 그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세종대왕이 우리나라 역사에 큰 몫을 해낸 만큼 세종의 실제 얼굴은 오늘날에도 연구가 계속되고 있으나 한글 창제의 주역과 함께 여전히 오늘날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신빛나 기자 sin50050@ch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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