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기획
창대실록
  • 박준욱 기자
  • 승인 2015.03.02 23:29
  • 호수 0
  • 댓글 0

옛 조선왕조실록은 25명 왕들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史書)라는 것은 그대도 알 것이오! 이번 대학면은 우리대학판 창대실록이오~ 46년간의 우리 선조... 아니! 선배들의 행적들과 역사들을 함께 살펴 보도록 하오~

 

1960~ 1. 우리대학의 탄생
우리 학교의 탄생은 창원에서 창원대학교로 바로 시작된 건 아니다. 개교는 마산시에서 마산교육대학을 시작으로 교사들을 배출해 냈다. 이후 1970년까지 총 1700여명의 졸업자를 배출했지만, 초등교원 과잉을 방지하기 위해 폐지됐다. 그 후 마산초급대학으로 개편 뒤 마산대학교로 승격됐고, 1983년 현재의 우리대학에 터를 잡고 2년 뒤 창원대학교로 개명됐다. 1991년 종합대학으로 승격 뒤 박남규 총장 취임으로 우리대학이 첫걸음을 떼기 시작한다.

1990~ 2. 태동하는 우리대학
90년도는 학교 탄생의 걸음으로 시설, 설비 면에서 역동하는 시기였다.  지금의 본관과 신축한 동백관, 공학관들 등 벽면 색이 비슷한 건물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지어졌다. 특히 86년도부터 발굴조사를 시작하여  발굴한 12,000여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우리대학 박물관은 동백관 1층으로 위치 이전하게 됐다. 지금의 우리대학커플들의 데이트 코스이자 유치원생들의 산책코스인 청운지도 이 때‘우리학교 학생들의 휴식과 정서생활을 위해’농업용수로 쓰이던 호수를 작게 메꾸어 만들어 지금까지 약 20년간 유지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많은 학과가 신설, 분리됐다. 당시 교육부의 예산부재라는 이유로  기존의 6개 학부체제를 4개 단과대학체제(예술대학을 인문대학으로 편입, 경상대학을 사회과학대학과 통합)로 개편하였다.
특히 인문대와 함께 있던 예술대가 분리 되는데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예술대학은 인문대학에 편입됐고, 이로 인해 학사 운영에 비능률성과 학문의 발전에 한계가 있었다. 이에 예술대학은 1여 년간 끊임없이 서명운동과 교육부에 진정서 제출, 삭발투쟁으로 항의의 소리를 낸 끝에 인문대와 분리됐고 당시‘도내 유일 예술대학’이란 타이틀을 갖게 됐다.
총학생회의 움직임도 눈에 띈다. 당대 사회의 부조리와 대통령의 잘못을 비판하기 위해 다양한 운동을 전개했다. 이때 총학생회 회장이었던 ‘송순호’씨와 ‘홍승준’씨는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경찰에 연행되거나 재판까지 받는 등 사회발전을 위해 희생하기도 했다.

2000~ 3. 빛나라! 우리대학
우리대학을 빛낸 여러 창대인도 있다. 한국체육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실력 있는 우리대학 카누부는 국가대표 선수를 20여명 배출할 정도로 든든한 자랑거리다. 그걸 증명하듯  2009년 아시아 대학 카누 선수권대회에 출전해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 등을 따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금상첨화 탁구부 또한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뒀다. 탁구부는 대학탁구연맹전에서의 단체 3위와 단식 2위, 3위 등을 달성했고, 전국체육대회 여자단체 남자단체 모두 3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현재도 화두가 되고 있는 우리대학과 경상대학교의 통합 논의는 2005년에도 진행됐다. 당시 교육부는 “대학구조개혁으로 50개의 국립 대학교를 35개로 줄이겠다.” 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에 우리대학은 성공적인 구조개혁과 대학의 위상 상승, 연구와 교육의 충실의 이유로 경상대학교와 통합하려 했다. 당시 체육대회도 1년 씩 서로의 대학에서 나눠할 만큼 통합 직전의 분위기였다. 그러나 내부적 행정사항과 교직원의 반발이 심했고, 법적인 이유와 우리대학의 독자적 발전을 강조해 통합은 무산됐다.

2010~ 4. 진행형 우리대학
황금색으로 칠해져 유연한 기럭지를 뽐내는 신도서관은 현대적인 건물 외양에 걸맞게 건축된 지 3년도 채 되지 않았다. 신도서관은 2009년 신도서관 공모를 통해 당선된 설계를 통해 2009년에 착공하여 2012년에 개관했다. 신축도서관은 문화와 학습공간의 공존이라는 슬로건에 맞게 학습·문화적으로 그 시설들이 함께 늘어나게 됐다.
14년 우리 학교는 교육부가 지원하는 지방대학 특성화사업에서 6개 사업단이 선정됐다. 우리대학은 총 108개의 대학 중 13번째로 많은 국고지원금을 받고(5년간 230억), 사업단수로는 8번째로 많이 지정됐다. 또한 총 4개였던 교양과목에서 제 ‘5교양과목’이 추가됐다. 다른 사업단에 포함된 학과끼리 각 과의 특성화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현재 진행중인 특성화 사업은 우리대학의 발전의 중심부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상 창대왕조 실록을 살펴보았소~ 그대들에게 마산초급대학때의 신문내용들을 알리지 못해 심통한 마음이오! 1990년도에 그 신문을 모을려는 시도는 했지만 완벽히 모으진 못했다고 하오!
이번 과거의 신문기사자료를 보면서 난 느낀 게 많다오~ 옛 우리대학의 하나하나의 기록들이 지금 우리들에게 역사가 된 듯, 지금 우리도 한편의 역사를 쓰는 현재를 살고 있는 것이라오~ 고로! 창대인의  성실, 진리, 자유, 창조의 마음을 가지고 즐거운 대학생활을 보내기 바라오!

<저작권자 © 창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준욱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