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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입니까, 아마입니까?
“어머니나 할머니가 해녀가 아닌 분이 없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제주 해녀는 제주 문화 정체성의 아주 중요한 구성요소 중 하나다. 그러나 70년대까지만 해도 14,000여 명에 이르던 제주해녀 수가 지금은 4,000여 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면 역사 속의 기록으로만 남을지도 모르는 제주의 해녀문화. 그 전승·보전을 위해 2006년 제주도에 해녀박물관이 건립됐고, 그 후 지속적으로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최근 일본의 해녀, 아마를 독자적으로 등재하겠다고 밝혀 해녀에 적신호가 켜졌다.

아직 한국이 빠르다
제주도에서 잠시 주춤한 사이 일본은 해녀가 있는 8개의 현이 연합해 ‘아마짱’이라는 드라마와 팸투어, 공동모금회 운영, 관공서 청사 내의 유네스코 무형유산 등재 홍보 포스터, 기념우표발행 등 중앙정부에서 지원을 받아 대중에게 알리고 있고 1월에는 ‘전국해녀 전승보존회’를 발족을 하는 등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진도는 우리나라가 빠르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을 찾은 유네스코의 이리나 보코바 사무총장에게 ‘해녀 등재’를 특별히 부탁하기도 했고 19일 제주해녀문화가 2015년 등재 신청대상에서 한국대표 종목으로 선정됐다. 또 3월 말까지인 신청서 제출기한을 지켜 제출할 계획이다. 반면 일본은 늦게 뛰어든 만큼 제출기한 안에 신청서를 낼 수 없는 상황이다.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선 국가 문화유산으로 먼저 등록해야 하는데 아직 일본은 절차를 밟지 못하고 있어서다.
일정대로라면 제주 해녀의 등재 여부는 내년 말 유네스코 정부 간 위원회에서 결정한다. 문제는 일본이 해녀와 아마의 문화유사성을 내세워 유네스코를 상대로 여론전을 펼칠 경우다. 그렇게 되면 내년 3월까지 일단 등재신청을 한 후 한·일 공동등재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주 해녀 등재 신청서 작성 작업에 참여한 외국어대 박상미 교수는 “그런 여론전이 먹혀 우리 해녀의 등재 결정이 한 해 미뤄져 2016년에 이뤄질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럴 경우 관건은 유네스코 심사위원들이 제주 해녀와 일본 아마의 차이점과 공통점 평가에 달려있다.

결정적으로 다른 아마와 해녀
한국과 일본에만 존재하는 해녀의 기원은 6세기 ‘삼국사기’에 진주를 캤다는 기록과 중국 진수가 쓴 역사서 ‘삼국지’에 3세기 일본에서 바다 깊은 곳 수산물 채취 기록이 있다고 한다. 또 1105년 고려 숙종10 탐라군의 구당사로 부임한 윤응균이 ‘해녀들의 나체 조업을 금한다’는 금지령을 내린 기록과 1629년 이건의 ‘제주풍토기’, ‘규창집’이란 문헌에서 잠녀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직업적 해녀의 출현은 1900년대 초반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해녀와 일본의 아마는 장비·복장에선 큰 차이가 없다. 한국은 테왁, 일본은 이소오케라는 부력 유지 기구가 있다. 작업 도중 올라타 쉬기도 하고 채취한 수산물을 물에 띄워 보관하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물질 방법이 결정적으로 다르다. 일본의 ‘후나도’ 물질은 배를 타고 나가 아마가 물속 작업을 마치면 배 위의 남성이 생명줄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즉 남성도 아마 문화의 한 부분이다. 제주도 해녀는 철저히 여성의 문화다. 과거 남성도 물질에 참여했지만, 조선 조정의 과도한 수산물 진상요구를 견디다 못해 차츰 사라졌다. 또 작업시기가 다르다. 아마는 5~9월까지 작업을 하는 반면 해녀는 사시사철, 겨울에도 작업 한다. 해녀는 여성에게 버거운 노동의 괴로움을 달래기 위해 각종 해녀 노동요가 발달했다. 하지만 아마의 노동요는 대개 축제를 위해 창작된 신민요 성격을 띠고 있다. 그리고 현재 남아있는 해녀 수는 한국은 4500여 명이지만 일본은 그의 절반도 안 되는 2000여 명이다.

해녀, 그 다음은?
아직은 한국이 빠르지만 일본이 언제 어떻게 역공을 펼쳐 상황을 뒤집을지 모르는 일이다. 미래를 보기위해선 과거를 알아야하는 법, 빼앗긴, 빼앗길 뻔한 것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일본은 1993년 일본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에게 기무치를 대접하면서 국제식품규격위원회에 기무치라는 이름을 등록하고 일본이 김치의 종주국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치의 승리로 인해 2001년 일본은 기무치를 수출할 때에도 김치라고 표기하게 됐다. 그러나 일본은 다시 김치의 국제식품규격에 일본의 기무치인 ‘아사즈케(겉절이 채소)’가 포함되어야한다고 주장하는 역공을 펼쳤다. 이에 한국은 젓갈을 넣지 않고 발효시키지 않은 아사즈케를 김치로 인정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며 '김치는 소금에 절인 배추를 주원료로 하여 양념류를 혼합한 후 저온에서 젖산 생성을 통해 발효시킨 제품으로 한다'는 규격안을 제시해 방어했다. 그리고 그 규격안은 결국 2001년에 국제 식품 규격으로 인정을 받아 우리나라는 김치를 지킬 수 있었다.
 2011년 5월, 중국 문화부는 '조선족의 아리랑'을 국가급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중국을 구성하는 55개 소수민족의 문화를 보호하겠다는 정책아래 조선족의 문화 역시 중국의 무형문화로 등록된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에서는 '아리랑'을 뺏길 수 없다는 공분이 일었다. 2005년 한국의 '강릉단오제' 유네스코 등재를 시작으로 중국은 '조선족 농악무'를 유네스코 등재하면서 문화갈등이 야기됐다. 이 후 '동의보감', '농악', '판소리', '가야금'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면서 한중 문화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리랑' 역시 갈등의 여지가 남아있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위기의식을 발판삼아 2012년 6월, 한국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아리랑을 등재했다.
김치, 독도, 간도, 아리랑 등 우리나라는 항상 빼앗길 위기가 되어야만 우리문화를 지키려고 한다. 앞으로 겪을 많은 갈등을 위해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우리문화를 알고 지켜야 한다. 바다를 터전으로 독특한 삶과 생활방식을 이어온 해녀, 강인한 정신과 생활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금 점점 사라져가는 해녀문화, 우리는 지금 해녀문화를 지켜 아마가 아닌 해녀로서 우리 곁에 머물게 해야 하지 않을까.

최진미 기자 chlwlsal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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