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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사이드, 위안부 문제로 살펴본 성 학대의 단편
‘역사란 무엇인가’를 저술한 E.H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오늘, 어제를 기록할 때 어떻게 기록하느냐에 따라 어제는 천국도 될 수 있고, 지옥도 될 수 있다. 하지만 어제의 기록은 오늘, 내일의 역사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역사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다.
21c를 사는 우리에게 20c는 역사인가, 아니면 현재인가. 안타깝게도 20c는 우리에게, 21c인 지금의 우리에게 현실이다. 그 시대를 산 증인들이 여전히 살아 숨쉬고, 그들로부터 역사를 듣고 있다. 또 한편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는 그들을 현대의 잣대로 평가한다. 우리의 지난 역사가 아닌 살아있는 현재의 위안부 문제를 통해 성 학살 문제를 살펴본다.

- 일본에 의한 위안부
위안부 또는 일본군 성노예는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일본군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강제적이거나 집단적, 일본군의 기만에 의해 징용 또는 인신매매범, 매춘업자 등에게 납치, 매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일본군을 대상으로 성적인 행위를 강요받은 여성을 말한다.
위안부는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를 기록하는 관점에서 두 당사국인 일본과 한국의 기록은 판이하다. 현재의 기록이 현재의 국익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일본으로서는 국익에 비추어볼 때 자발적인 매춘 여성이라고 기록하려 한다. 한국으로서는 사실적으로도 민족적으로도 그들이 강제적으로 동원됐다는 사실을 기록한다.
현재 살아있는 분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수 많은 여성들이 납치되어 끔찍한 일을 당하고 살해되곤 했다. 지금도 살아있는 그들의 증언을 사실로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 베트남의 라이따이한
라이따이한은 대한민국이 1964년부터 참전한 베트남 전쟁에서 대한민국 국군 병사와 현지 베트남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2세를 뜻한다. 단어 ‘라이따이한’에서 ‘라이’는 베트남에서 경멸의 의미를 포함한 ‘잡종’을 뜻하며, ‘따이 한’은 ‘대한’을 베트남어식으로 읽은 것이다.
우리도 베트남 전 파병 중에 베트남 여인에게 성을 강요한 경험이 있다. 위안부의 문제와는 다르게 전쟁이 일어난 지역에서 외국인과 사랑에 빠질 수도 있는 일이지만, 강제적 행위를 하고 여성을 학살한 일도 있었다. 또한 한국인들에 의한 무차별적인 학살도 행해졌었다. 벌써 한 세대가 지난 일이지만 그 행위의 결과로 수많은 라이따이한들이 아버지 없이, 또 정체성의 의심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 미군 위안부
주한미군을 상대로 매춘을 한 여성들은 인적사항을 미군과 한국정부에 관리되어, 위안부나 정신대로 불리고 있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도 공무원들은 여성들을 한국 남성과 성매매를 하는 윤락 여성과 구분해 '위안부'라고 불렀다. 또한 다른 말로 애국자, 민간 외교관, 달러를 벌어들이는 애국자, 달러벌이 역군라고도 불리고 있었다. 민간에서는 양색시, 양갈보, 양공주, 유엔마담, 산업의 역군이라는 말로 불렸다. 대한민국과 미군이 직접적으로 미군 위안부들을 교육을 해 오면서 관리했다.
대부분 그녀들은 미군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고 심지어 살해까지 당했던 보호받지 못한 존재였다. 당시는 병사에 살해당하거나 자살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정부에서 관리하던 여성들은 외화벌이 존재일 뿐, 보호받는 주체는 아니었다. 정부는 그들을 사용했을 뿐, 지켜주지는 않았다. 한때는 달러벌이역군이라고도 불렸던 그들이 지난 정부로부터나 지금 정부로부터나 한결같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언제나 약자인 여성과 아이들, 노약자가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다. 특히 앞서 살펴 본 것처럼 전쟁시기에는 여성들의 인권은 공허한 외침이 되고,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힘의 문제로 인해 여성들이 착취당한다. 인류의 반이 학대당하는 현상을 그저 받아들여야만 할 것인가.

성 평등 문제에 앞서 약자가 먼저 당하는 사회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 국제법에서는 평화시에는 최대한의 선을 행하고, 전쟁시에는 최소한의 악을 행할 것을 말하고 있다. 이는 난세에는 약자들이 당하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서이다. 우리나라가 겪은 위안부 문제를 단순히 대한민국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만국의 인권으로 바라봐야 한다. 국제적으로도 국내적으로도 우리의 피해보다 만국인권침해를 주로 바라 봐야한다.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기억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바보처럼 행동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는 현명하게 행동하기 위해서다. 역사를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할 것인가.
그런 점에서 지난 방학동안 국토대장정을 통해 모은 기금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성금을 전달한 우리대학 학생들의 행동은 역사를 바로잡는 실천적 행위로써 매우 칭찬할 만하다. 캠퍼스에서 이런 활동이 지속되길 바란다.     손경모 기자 remaist@ch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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