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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회 창원대문학상/수필 장려-행복을 찾아서 하하하

행복을 찾아서 ‘하하하’

양 수 현/신문방송학과 3학년 

 

작년 겨울, 친구와 함께 통영으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로부터 믿음을 져버리는 일을 당해 마음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속상하고 우울한 탓에 나에게 연락했던 지인들의 문자나 전화도 다 끊어버리고,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서 밖으로 잘 나가지도 않았다.

그러다 문득 ‘타인의 행복에 시선을 빼앗기지 말고 나만의 행복을 거머쥐자’는 나의 인생 목표와는 먼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됐고, 내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이런 나를 안타깝게 생각한 친구는 하루 동안이라도 좋으니 마음도 정리할 겸 함께 여행을 갔다 오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줬고, 가까우면서도 색다른 여행지를 찾다가 ‘한국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통영으로 훌쩍 떠나게 된 것이다.

부산에 살아서 그동안 바다를 너무 많이 봐왔던 나에게도 통영은 특별한 곳이었다. 가슴이 탁 트이도록 넓고 반짝거리는 통영의 바다를 가만히 마주할 땐 나를 괴롭히던 어지러운 생각들이 전부 잊어버리게 될 정도였고, 아기자기한 동피랑 마을의 동화 같은 벽화들을 보고 있으니 빙그레 미소가 지어지면서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이렇듯 나에게 있어 통영은 굉장히 의미 있고 힐링이 된 장소로 마음속 깊이 간직해왔다.

그로부터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고, 바쁘게 돌아가는 학교생활 탓에 지난 통영에서의 기억도 점차 흐릿해질 무렵이었다. 거실바닥에 누워 리모콘을 손에 쥐고 생각 없이 TV채널만 돌리고 있던 어느 날, 무심코 지나간 영화채널에서 익숙하게 반짝이는 바다의 풍경이 잠깐 스쳐지나갔다. “어? 저기는?!” 마음속으로 ‘혹시 통영이 아닐까’하고 궁금해져 다시 채널을 돌려보니 정말로 내가 생각한 통영앞바다가 맞았다. 반가운 마음에 무작정 보기 시작한 영화는 제목이 참 웃겼다. ‘하하하’. 특이한 제목은 둘 째 치더라도, 나는 통영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영화 <하하하>가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었다. 장면 하나하나마다 눈에 익은 장소들이 보였고, 꾸밈없는 주인공들의 모습도 마치 내 친구들인 것 마냥 친숙한 느낌이었다.

단순한 호기심에 이끌려 얼떨결에 보게 된 <하하하>는 예상치 못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영화를 보는 내내 배우 김상경이 연기한 ‘문경’의 역할에서 자꾸만 내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문경은 한마디로 ‘바보 같은 사람’이었다. 스스로를 영화감독이라 말하지만 정작 일에 대한 열정도 없어 보이고,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서툴고 모자랐으며 다소 어린 아이 같은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문경의 그런 성격이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 문경의 말과 행동에서 드러나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춘기 소년 같은 어른의 모습이 언뜻 보면 나와도 비슷했던 것이다. 캐나다로 떠나지 못하고 사랑을 끝까지 이루지도 못한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결과만 봐도 그렇다. 목표를 제대로 이루지도 못하고 나름대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경은 사실 실패를 일삼기 마련인, 가만 보면 참 답답하고 속 터지는 인물이다. 그래도 문경에게 애착이 갔던 이유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같아 보이면서도, 항상 ‘하하하’하고 넉살좋게 웃으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모습 때문이다.

문경의 대사 중 “저는 좋은 것만 봅니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 말은 문경이 꿈속에서 이순신 장군을 만나 자신의 삶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장면에서 나온 말인데, 이순신 장군은 “슬프고 어두운 것을 조심해라, 그 속에 가장 나쁜 것이 있다.”라고 말하며 항상 ‘좋은 것’을 보기를 강조했다.

사실 좋은 것만 보고 살기란 힘든 일이다. 살아가면서 나쁜 일 보다는 좋은 일이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쁜 일을 전혀 겪지 않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결국 좋은 것과 나쁜 것이라는 걸 억지로 나눠 구분 지을 필요가 없다. 이전엔 좋은 것이라 생각했을지 몰라도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돌아보면 그리 별 것 아닌 일이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이전엔 나쁜 것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결국 나중을 위한 밑거름이 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문경이 얘기한 ‘좋은 것만 본다’는 말은 인생을 너무 삐뚤게 보거나 원망하지 않고, 긍정이든 부정이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자기 나름대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낸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문경의 짧은 대사 한마디는 그동안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하고 고민을 거듭하던 나에게 ‘행복해지려고 애쓰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듯 했다. 문경이 친구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마치 세상만사 별 것 아니라는 듯 ‘하하하’하고 웃어넘겨버렸던 것처럼, 매사에 하나하나 얽매일 필요가 없으면서도 그 자체를 즐기라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나는 안정적이고 익숙한 게 그나마 스트레스도 받지 않으니까 자연스럽게 편하고 쉬운 일만 골라서 행동해왔다. 혹시라도 불편한 일이 생길 것 같으면 덜컥 겁부터 먹고 피해버리기 일쑤였고, 그러다보니 진정으로 내가 원하던 가치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내 삶의 만족감은 점점 떨어져갔던 것이다.

어쩌면 나는 매일같이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바보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내가 나를 억누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완벽하지 못해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은 뜻대로 안 되는 일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속상해하며 자신을 자책할 필요는 없다. 할 수 있는 만큼 하고나서 후회하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면 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행복이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지친 하루를 잘 견디는 일, 그 속에서 의미 있는 것을 찾아내는 일, 기다리던 일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은 하루를 살아가는 일, 사람들이 변해도 나 자신만은 튼튼하게 지켜나가는 일, 그런 게 바로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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