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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회 창원대문학상/소설 당선-팔월 이야기

팔월 이야기

 

국제관계학과 20120743 정소진

한껏 숨을 들이킨다. 풀의 비릿한 향이 촉촉한 콧망울을 파고든다. 후덥지근한 공기를 씻어 내주는 싱그러운 이슬이 꽃잎에 총총 맺혀 있다. 비닐로 된 천장 아래, 여러 갈래의 길이 펼쳐져 있다. 불투명한 채도 낮은 조명 아래 피어 있는 각양각색의 꽃들이 빼곡하게 시선을 채운다. 크고 넓적한 잎들을 펼쳐진 큼직한 화분들이 모여 있는가 하면, 저쪽에는 손톱만한 꽃잎들이 옹기종기 얼굴을 맞대고 있다. 나팔피리를 거꾸로 밖아 논듯 하늘을 향해 솟아올라있는 카라, 주렁주렁 매달린 잎들 사이로 쑥스럽단 듯 고개를 살짝 내밀고 있는 호야, 손잡고 사이좋게 줄지어있는 가랑코에, 홍조를 띄운 신부 손의 축복의 부케를 닮은 수국. 그녀는 종종 내게 종자들의 이름을 또박또박 분명하게 발음해주곤 했다. 파릇한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 찬 이 곳에서, 그녀는 입술을 살짝 휜 채로 정신없이 눈동자를 굴리고 있다. 싱그러운 유혹의 공간에서도 그녀의 시선은 한 곳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맑은 갈색의 동공을 따라가 보면, 둥그스름하고 넓적 뭉툭한 몸뚱이에 고슴도치마냥 날을 세운 가시들을 잔뜩 박은 채로 벌레처럼 웅크린 선인장들이 보인다. 나는 아무리 봐도 맞은편에 활짝 핀 꽃 화분이 더 예뻐 보이지만, 나는 그녀의 취향을 존중한다. 뭐, 이미 나도 이것들과 친해진지는 오래니까. 그녀는 평소와 달리 오랜 고민은 생략하고 단번에 화분을 집어 든다. 저 화분이 우리의 새로운 가족이 되는 순간이다.

“저, 이 선인장 이름은 뭐예요?”

청아한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꼬리를 흔든다.

갓난아기처럼 조심스레 화분을 품에 든 그녀는 귀가하자마자 서둘러 창가 쪽으로 향한다. 단단하게 도드라지는 손등의 푸른 핏줄이 그녀의 손끝에 바짝 힘이 실려 있음을 알린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살짝 훑어 낸 그녀가, 물을 적신 수건을 가지고 온다. 오늘 새로 등장한 화분은 앞줄의 모서리를 차지했다. 사실, 꽉 들어찬 화분들은 이제 더 이상 열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해지긴 한 상태이다. 그녀의 곁에서 화분을 정돈하느라 정신없이 움직이는 손등을 핥던 나는 둥그런 눈을 굴려 주변을 살핀다. 햇빛조차 간신히 틈을 찾아 새어 들어오는 이곳은 그녀의 집이다. 또한 내가 함께 사는 집이기도 하다.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원룸이라고 부르는 공간이다. 말하자면 이 네모난 공간이 그녀의 방이나 다름없는 셈인데, 누가 봐도 그녀는 특별한 사람이다. 자신의 방의 한쪽 공간을 온전히 푸른 식물에게 내 주고 사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그 식물들의 몸은 온통 뾰족하고 날카로운 가시투성이니까. 낡고 작은 티브이라든가, 내 발톱 자국이 군데군데 선명하게 남은 작은 원목 침대만으로도 버거워 보일만큼 작은 공간이다. 창가에 매단 커튼이나, 침대 옆 작은 테이블에서도 여자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꽃무늬나 화사한 색은 찾아볼 수 없다. 단조롭고, 색이 없고, 어두운 그녀의 방.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공간이다.

“이번 건 크리스마스쯤에 꽃이 필거야. 올 해는 첫 눈이 언제쯤 오려나?”

나는 귀를 세우고 잎을 축 늘어뜨린 채 미동도 않는 새로운 가족을 쳐다본다. 저게 정말 예쁜가? 그녀는 계량컵을 위로 들었다 놓았다, 눈을 치켜뜨다 고개를 숙이다가 몸을 엎드려도 보며 컵에 물을 일정하게 따른다. 뒤에서부터 차례대로 정성스레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가 나를 가장 오랜 시간 쳐다보지 않는 순간은 유일하게 이 시간일 것이다. 심술이 나 콧등을 씰룩거리던 나는 그녀를 향해 살포시 발걸음을 떼고, 향긋한 품속을 파고 들어갔다. 한 참 후에야 선인장 화분들에게서 손을 뗀 그녀는, 나를 번쩍 들어 올리고는 욕실로 향한다.

둥글고 긴 용기를 펌프질하니 묽은 액체가 나온다. 신기하게도 이건 꽃이 아닌데 꽃냄새가 난다. 내 몸 구석구석에 꽃이 피는 느낌이다. 촤- 샤워기 부스에서 차가운 물이 쏟아져 나왔다. 끼잉- 대니 그녀가 혀를 삘쭉 내밀고든 미안하다며 수도꼭지를 돌린다. 곧 미지근한 물이 내 몸을 적셨다. 배수구를 향해 허연 거품들이 토네이도를 그리며 빨려 들어간다. 나를 감싸고 있던 거품들을 말끔히 헹궈내고 그녀는 잔뜩 젖은 몸을 수건으로 털어냈다.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그녀를 졸졸 따라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드라이기 코드를 꼽고 강도버튼을 계속 조절해가며 부드러운 솔빗으로 내 털을 정성스레 다듬었다. 샤워를 끝내고 밀려오는 나른함에 하품을 찍하고는 그녀의 가슴팍으로 파고들었다. 역시, 언제나 편안한 품이다.

연인이 있었다. 그들은 쾌쾌한 냄새가나는 동물가게에서, 좁은 유리박스 안에 움츠려있던 갓 태어난 나를 사갔다. 그들과 나는 매일같이 산책을 가고, 종종 소풍도가면서 나름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버려졌다. 그때도 푹푹 찌는 여름 이였다. 숨통 조이는 더위에 잠에서 깨어나니 시커먼 박스 안이었다. 탁한 공기가 가득 들어찬 탓에 숨쉬기가 버거웠다. 아마도 요 며칠 남자와 여자가 다투는 일이 잦아졌는데 입에 발린 듯 지껄이던‘헤어지자’가 행동으로 실현됐나 보다. 그들의‘이별’이 나의‘버림’이 될 줄은 몰랐다.

컴컴하고 답답한 좁은 박스 안에는 덮개의 작은 틈사이로 들어오는 빛줄기만이 유일한 빛 이였다. 갈증에 허덕이고 있을 때 갑자기 온 사방이 빛으로 가득 번졌다. 그리고 내 시야에 들어오는 건 다홍색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곤 나를 멀뚱멀뚱 내려다보는 작은아이. 그것이 우리의 첫 만남 이였다. 그 아이는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왼손 오른손 이리저리 옮기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그냥 냅다 땅에 버리곤 나를 두 손에 에워싸서 달리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하고 나를 씻긴 후 침대에 살포시 올려놓고 얇은 손수건을 덮여주었다. 차차 시간이 흐르면서 긴장이 풀리고 두려움이 어느 정도 가실 때, 나는 밀려오는 잠을 내치지 못했다. 그 후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갑작스런 냉랭함에 잠에서 깨어났다. 중년의 남녀의 딱딱한 어조와 아이의 훌쩍이는 소리, 바람을 휘저으며 찢어질듯 한 살갗의 마찰음만이 이 고요함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귀를 세워보니 아이는 나를 키우게 해달라는 간청 아닌 간청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냉담한 회초리뿐. 매질 소리는 한참이나 계속 됐다.

잠시 모든 소리가 멈추고, 그녀의 엄마가 기계적인 말을 내뱉었다.

"나가봐."

아마도 그 딱딱한 세 글자에 긍정이 내포된 눈치다.

철커덩 문 닫히는 소리가 울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있던 방문이 서서히 열린다. 아이는 다리를 쩔뚝이고 손으로 눈물과 콧물을 연신 닦아대면서 방으로 들어왔다. 아이는 나를 향해 씽긋 웃다가 급히 고개를 하늘로 향해 치켜들었다. 이미 눈가에 차오른 눈물은 아이의 뺨을 미끄럼 탔고, 그 아이는 그렇게 한 참을 숨죽이고 울었다.

아이가 울음이 멎었는지 눈을 반달로 휘면서 나를 쳐다봤다. 그래도 슬픔이 드리운 아이의 얼굴은 거둬지지 않았다. 그 아이는 지금의 그녀보다 더 큰 눈망울을 가지고 있었다.

“음. 이름은…. 그래 팔 월. 우리가 만난 게 팔 월이니까 팔 월. 좋지? 월아 반가워.”

그때부터 내 이름은 월이였다. 팔 월. 몇 년을 그녀와 더 지내고 나서 내 이름이 사람들이 말하는 4계절 중, 여름의 한 달을 일컫는다는 걸 알았다. 시간을 뜻하는 이름이라니. 그녀에게 앞으로 찾아올 여름들엔, 행복만이 찾아오도록 하리라, 나는 그 때 다짐했다.

인간의 망각능력은 24시간이라고 한다. 어떤 일이 있었을 때, 24시간 안에 그 일을 기억해내지 못하면 대부분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TV에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서 주워들은 적이 있다. 대게 사람들은 동물들의 지능이 자신들보다 낮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녀에 관한 기억에서만큼은 그 어떤 사람보다 더 명확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대부분의 기억 속에 그녀는 얼굴에 늘 어색한 웃음을 걸치고 있다. 그마저도 드물다. 주로 그녀의 얼굴엔 그늘이 드리워졌다.

아마, 그때가 늦가을이나 초겨울 쯤 이였을 것이다. 짧은 단발에 단정히 교복을 입은 그녀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손가락들은 가만히 있질 못하고 정신없이 얽히고설키며 서로 만지작대고 있었다. 그녀의 무언의 불안감이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나는 그녀의 다리위로 살며시 올라타 가만히 앉아있었다. 아마도 책상위에 올려져있는 반듯하게 접힌 저 종이가 그녀의 불안의 출처인 것 같다. 불행하게도 예상은 빗나가는 법이 없었고, 그녀의 부모님들은 밤새도록 얼어붙은 언성들로 쉴 새 없이 그녀를 쑤셔댔다. 그녀는 날카롭고 사납기 그지없는 그것들에 마구 베이고 할퀴어졌다. 나중에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외고입시에 낙방을 했다고 한다. 참 인간들이란 알 수 없는 행위들로 내게 혼란을 주곤 했다. 그녀를 통해 인간세상을 어느 정도 익힌 지 오래다. 그녀의 입에서 시작되는 모든 말들은 나의 머리에서 그려진다. 마치 도화지 위를 춤추는 붓처럼.

언젠가부터 그녀는 노래를 들을 때면, 고막이 터질 정도로 음량을 높여 들었다. 그녀는 방에 있고 나는 거실에 있어도 노래가사가 다 들릴 정도였으니까. 월월- 짖어대는 내 소리도 들리지 않는지 내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바지자락을 입에 물고 쭉 늘어뜨렸다. 그때서야 그녀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장담컨대 분명 오늘도 폭풍이 휘몰아 칠 것이다. 그날도 그녀의 책상위에 짜잘한 검은색 잉크가 찍혀있는 반듯한 종이가 보였다. 아마 그녀가 며칠 전부터 내게 말하던 ‘모의고사 성적표’인 것 같았다.

어린 아이가 어엿한 숙녀로 자라기까지, 그녀의 얼굴은 푸석하기 그지없었다. 작은 스탠드 아래에서 수북이 쌓인 책 더미를 옆에 끼고, 얇은 종잇장을 바삐 넘겨대며 펜을 꼭 쥔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기 만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노라면, 말라비틀어진 화분을 보는듯한 측은함이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마른수건으로 선인장을 조심스레 닦고 있던 그녀는 울려대는 핸드폰을 든다.

“네….”

그녀의 목소리가 몇 톤이 낮아진다. 윗니가 입술을 지그시 깨무는걸 보니, 아무래도 그녀의 엄마에게서 전화가 온 모양이다. 나지막이 짧은 한숨이 그녀의 입에서 세어 나왔다. 심장은 지금 불규칙하게 쿵쾅쿵쾅 찧어대고 있을게 뻔하다. 통화너머 그녀를 향한 못질소리는 직접 듣지 않아도 뻔했다. 전화가 끊겼는지 액정을 한 번 지그시 바라본 후 핸드폰을 뒤편에 있던 탁상위에 툭 내려놓는다.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나 화분에 물을 마저 주고 내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선인장가시에 찔렸는지 그녀의 검지 손가락에는 작은 생채기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위로 멀건 핏방울이 맺혀있었다. 그녀의 공허한 시선은 한참이나 손가락에 머물렀다. 그러곤 휴지를 둘러 매 대충 지혈을 하곤, 나와 함께 외출준비를 한다.

그녀는 나를 집 근처의 동물병원에 데려가 정기적으로 영양제니 예방주사니 기타 등등의 건강관리를 해줬다. 저번에는 나의 갑작스런 고열로 인해, 왼 발에는 욕실슬리퍼를 신고 오른 발에는 양말만 신은 채 병원을 향해 정신없이 뛰어간 적도 있다.

“독감예방주사 때문에요.”

그녀는 수의사와 무미건조하게 간단히 요건만 마치고는 진료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네 주인은 죽어도 길게 말 하는 법이 없네.”

처음이사 온 날, 나를 치료해준 수의사다. 깔끔한 스포츠머리에 옅은 속 쌍커풀이 있고 키는 적당히 크다. 분명하건데 이 수의사는 그녀에게 마음이 있나보다. 그래도 밥 한 번 먹자고 말 꺼내기가 어려울 만큼 그녀는 무뚝뚝했다. 내가 십년을 넘게 지켜본 그녀는, 사람을 대하는 법이 낯설어서 수의사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그러는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이렇게 수의사는 나에게 투덜거리며 볼멘소리를 해댔다.

처음 이곳에 이사 오던 날, 그녀는 우리들만의 집이라고 팔을 쭉 뻗어 나를 들어 올리고는 자리에서 한 바퀴 빙 돌았다. 짐정리 탓에 바삐 돌아다니는 그녀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니 지루함이 슬슬 밀려왔다. 거실을 지나 열린 현관 문 사이를 기웃거렸다. 조심스레 걸음을 떼고 집밖을 나서니 쬐는 햇빛에 눈이 따가웠다. 대낮인데 신문이 그대로 꽂혀있는 집도 있고, 개 두 세마리가 나를 향해 짖어대는 집도 있고, 택배기사가 짝 다리를 집곤 왼손으로는 땀을 훔치고 오른손으론 초인종을 누르는 집도 있었다. 생각보다 흥미로운 게 많았다. 좋은 냄새에 이끌려 간 내 앞에는 노란색의 빵집이 있었다. 유리 너머로 하얀 모자를 쓰고 거품기를 돌리는 제빵사의 모습이 보인다. 입에 가득 돈 군침을 삼키고는 다른 냄새를 쫓아 발걸음을 땠다. 어디선가 많이 맡아 본 냄새에 이끌려 내가 멈춘 곳은 서점이었다. 어쩐지 익숙하다 했더니 그녀가 매일 쌓아놓고 보던 책들로 가득 채워진 곳이었다. 나는 약간의 관심도 보이지 않고 점점 크게 나는 도로변 쪽으로 향했다. 어디선가 매콤한 냄새가 콧속에 흘러 들어오는 걸 보니 음식점이 있나보다. 아까부터 점점 배가 고파지려고 한다. 좌우를 느긋하게 살피며 도로 쪽을 향하고 있는데, 그 순간 이였다. 귀가 터질듯 한 클랙슨소리가 미친듯이 울려대고 거대한 트럭이 종이 한 장의 차이로 내 앞을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거대하게 엄습해온 극도의 불안함에 나는 겁에 질려 발광하듯이 짖어대고 뛰어다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 건 이미 길을 잃은 후였다. 낯선 곳, 낯선 건물들, 북적대는 사람들. 큰 사거리가 나있었고 사방으로는 높고 낮은 색색갈의 건물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다. 날은 어둑해져가고 있었고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말소리, 쌩쌩 지나가는 찻소리와 자동차경적소리,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왁자지껄한 음악소리, 정교한 신호등 안내 소리들이 섞여 나를 혼란스럽게 할 뿐이었다. 나는 인간들의 말마따나 길 잃은 개 신세였다. 어쩔 줄 몰라 하며 판단은 서질 않고 마냥 두리번대며 낑낑대고만 있었는데, 지나가던 남자 넷이 다가오더니 나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이미 잔뜩 겁에 질린 나는 콩벌레마냥 더욱 움츠러들었다. 조롱에 가득 찬 걸걸한 웃음소리가 거슬린다. 베이지색 스니커즈 운동화가 내 엉덩이를 계속 툭툭 친다. 으르릉거리며 흰 이빨을 드러내곤 그들을 향해 사납게 짖어댔다. 순간 둔탁한 충돌음과 동시에 내 몸은 콘크리트 벽으로 날라 가고, 뱃가죽은 아스팔트위로 적잖게 쓸렸다. 켁- 퉤. 그러고 그들은 여러 가지 욕지거리와 가래를 내뱉고는 사라졌다. 그러고 얼마 쯤 시간이 흘렀을까. 어디선가 나를 애타게 부르는 그녀의 떨리는 음성이 내 달팽이관을 자극했다.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어디지? 혼란스러움에 왈왈- 짖어댔다. 왼쪽 반대편에서 그녀가 나를 발견하고는 빨간불에도 무작정 나를 향해 뛰어왔다. 높고 낮은 클락션소리와 함께 그녀를 향한 욕지거리가 온 사방에서 난무했다.

그녀는 아랑곳 하지 않고 나를 향해 전력으로 뛰어왔다. 허둥지둥되며 뛰어오던 그녀는 인도 난간에 오른발이 걸려 철퍼덕 앞으로 넘어 졌다. 무릎과 손바닥이 까여서 생채기사이로 붉은 피들이 조금씩 스며 올라오는데,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는지 무작정 내게 뛰어왔다. 눈물로 뒤범벅 된 얼굴을 한 그녀가 나를 가슴팍에 껴안고 울부짖었다. 그녀는 숨도 제대로 못 쉰 채 그 자리에서 그렇게 억수 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어디론가 향해 걸음을 이리저리 옮기던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흘깃대고 지나갔다. 온몸이 땀에 젖어 축축해진 그녀의 몸에서 쉰내가 진동을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향긋한 향기가 내 후각을 자극했다. 나도, 그녀도, 혼자 남는 것이 지독하게 두려운 한 낱 겁쟁이일 뿐이었다. 몇 시간의 긴장이 삽시간에 풀려 녹초가 돼버렸다. 다시는 멀리가지 않겠다는 그녀와의 무언의 약속을 끝으로, 나는 잠들어버렸다.

그녀는 외출 후 귀가를 하고 나서 내게 자신의 일과를 다 말해주곤 한다. 나는 그렇게 그녀가 수업 받는 교실은 어떻고, 도서관은 어떠며, 집에 올 때 타고 오는 버스는 어떨까 온 가지 상상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내가 없는 그녀의 시간들은 어떨까?

오후 나지막이 잠에서 깨어났는데, 텅 비어 공허한 집을 보면 괜히 마음언저리가 이상하다. 그녀의 발소리가 들릴까 현관문 쪽을 한번 기웃거린다. 거실로 돌아가려던 중 신발장 벽면에 붙어있는 거울이 보인다. 정확히 말하면 거울에 비친 내가 보인다.

언젠가 TV에 나오던 윤기가 흐르는 새하얀 털에 조막만한 얼굴, 땡그란 눈을 가진 말티즈란 개종을 보곤, 거울에 비춰진 내 모습에 헤어 나올 수 없는 충격을 먹었던 적이 있다. 까만 털에 밤톨처럼 복슬복슬한 털을 가진, 몸보다 큰 얼굴을 한 내 모습은 실로 충격적 이였다. 아마, 내 종은 포메라니안이라고 했던 것 같다. 거울을 응시했다. 여전히 나는 태워먹은 밤톨처럼 복실복실하고 새까만 털을 가졌다. 처음에는 내 모습이 조금 낯설지만, 이제 익숙해지려고 한다. 거울을 다시 봤다. 양쪽 귀 사이에 빨간 하트모양 핀으로 땡그랑 묶여 있는 머리털이 나름 봐줄만 하다. 눈은 동그랗고 코는 세모다. 혓바닥은 선분홍빛이다. 그녀가 봄이면 바르고 나가는 립스틱색이랑 얼추 비슷한 것 같다. 꼬리는 짜리몽땅한 게 퍽 웃기다. 옆으로 돌아서서 고개들 돌려 거울을 쳐다보고는 꼬리를 흔들어본다. 짜리몽땅한 꼬리가 좌우로 흔들린다. 자세히 보면, 인간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말티즈인가 뭔가 하는 개보다 훨씬 나은 것 같다. 한참이나 거울을 응시하자 슬슬 거울놀이가 질려, 발걸음을 거실로 돌린다. 거실을 지나 베란다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빼곡한 가시밭이 시선을 찔러댄다. 그녀가 고등학생 때 쯤 이였나? 귀가하는 그녀의 손에 노란화분의 동그란 선인장이 들려있었다. 이 뾰족하고 못난 게 뭐가 예쁘다고 할까. 생긴것처럼 성격도 까탈스러워 물을 많이 줘도 죽고, 조금 줘도 죽는다고 한다. 그 며칠간 그녀가 그 못생긴 놈에게만 관심을 쏟아 부어 슬슬 짜증이 치밀어오를 때 쯤 이였다.

“월아. 내가 선인장은 물을 많이 줘도 죽고 조금만 죽는댔지? 통풍이랑 햇빛 받는 양도 잘 조절 해줘야해. 그 만큼 사랑과 애정이 필요한 거래. 너무 과한사랑도 너무 메마른 사랑도 아닌, 꾸준히 적당한 사랑…. 날카롭게 선 이 가시들도 다 초식동물들한테 자기를 보호하는 거래. 기특하지 않아? 자기 힘으로 자기를 보호 하는 게.”

그녀는 찰나의 정적을 깨고 말을 잇는다.

“만약 내가 이 선인장이면, 너무 물을 많이 줘서 이미 뿌리는 썩고, 또 물을 너무 안줘서 다른 곳은 메말라 죽어 버렸겠지? 그래서 보호랍시고 가시를 곧추세우고는 있는데 돌아보니 내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잖아…. 너 말고는.”

그녀는 황폐한 사막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작고 여린 선인장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측은함과 애정이 섞인 눈빛으로 말뚱말뚱 쳐다보았다.

“그래. 괜찮아. 나는 상관없어. 너만 있음 돼.”

그 후였을 것이다. 나도 하나하나 늘어나는 선인장들에게 관심 아닌 관심을 쏟게 된 게. 독립을 하게 된 후부터 본격적으로 그녀의 선인장들은 늘어났다. 그녀는 항상 나를 향해 이 화분은 이름이 뭐고, 성질은 어떻다, 물은 얼마만큼 줘야하고, 이러쿵저러쿵 혼자 떠들곤 한다. 하지만 그 많은 선인장들을 다 기억할리 만무하다. 저게 금호선인장 이였던가? 가시가 황금빛이라서 그렇다고 한 거 같다. 저건 호리케리였나? 호야케리였나? 이름이 헷갈리지만 하트모양의 잎이 자리 잡은 앙증맞은 선인장이라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런지 꽃말도 ‘귀여운 사랑’이라며 눈과 입에 미소를 걸치고 들뜬 목소리로 내게 말하던 그녀가 생각난다. 바로 앞에 있던 이름 모를 선인장을 툭 건드리니 내 살갗을 통해 따가움이 전해졌다. 그 가시만큼이나 뾰족하게 그것을 노려보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눈초리를 거둔다. 쓱 훑어보며 고개를 왼쪽으로 옮기니 눈에 띄인 한 선인장. 크리스마스 캑터스. 이건 확실히 기억난다. 그녀가 최근에 산 화분이다. 성탄절을 중심으로 며칠 잠시 연분홍색의 꽃이 핀다고 하는 선인장. 달걀을 거꾸로 세운 것처럼 긴 타원 모양에, 가장자리에는 한 두 개의 톱니가 있고 그 톱니의 오목한 곳에는 두세 개의 가시가 나있다. 크리스마스는 아직 한참 남았지만, 잎도 늙은이마냥 축 쳐져서 못 생긴 게 꽃이라도 펴서 다행이구나 싶다.

윙윙- 대는 드라이기 소리에 아침 일찍 잠을 깨면 분주하게 치장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거울 앞에 우유처럼 하얀 피부의 얼굴을 대고 반달모양 눈에 얇게 선을 긋고 있었다. 입을 지그시 벌리고, 눈을 까뒤집고는 조심히 속눈썹을 치켜 올리는 그녀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웠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라는 화장품인데, 여자 사람들이란 정말 귀찮고도 희한한 행동을 많이 했다. 처음엔 굳이 자신의 얼굴에 돈을 들여 낙서를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진 않았다. 그녀의 콧등에는 점이 있는데 인간들은 저런 걸 미인점이라 한다고 언젠가 들은 기억이 난다. 마지막으로 코랄 빛 립스틱을 입술에 덧칠한다. 거울을 바라보고 눈을 연신 깜빡대며, 깔끔하게 틀어 올린 머리위로 삐죽 튀어나온 잔머리를 쓸어 넘긴다. 빳빳하게 잘 다려진 소라색 블라우스에 무릎을 반쯤 덮는 치마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며 매무새를 이리저리 정돈하고 현관으로 나왔다. 신발장을 열고는 평소에 잘 신지 않는, 앞코에 리본장식이 박힌 굽 낮은 검은 단화에 발을 밀어 넣는다.

“월아. 나 잘하고 올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게 그녀는 집 밖을 나섰다.

그녀의 이동경로는 학교, 집 딱 이 두 곳이었다. 아 참, 집 근처에 동물병원이랑 꽤 널찍한 그린마트도 종종 가고, 나와 산책을 하러 주변 놀이터나 공원도 들르곤 한다. 각종 중소대기업 회사 면접장과, 공강 시간과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요 앞 편의점도 있다. 뭐 그래도 이동경로가 적은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이동경로만큼이나 그녀의 전화를 깨우는 것에도 불변의 법칙이 작용한다. 어쩌다 벨소리가 울린다면 늘 그녀의 엄마, 아빠였고 예외라면 보험사나 대출전화, 그 정도였다. 그나마 유일무이한 취미는 선인장 키우기였고, 그런데 그 마저도 집안에서 이뤄지는 일이기에 특별한 변수는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무난히 생활하며 학업에 충실했지만 취직난은 피해갈 수 없었다. 부모님의 강요로 높은 학점과 각종 자격증은 닥치는 대로 따고 터득하고 있었지만 생각만큼 ‘취직’이라는 난관을 통과하는 건 쉽지 않았다. 아 물론, 여기서 ‘취직의 난관’이란 그녀의 부모님의 잣대다. 소위말해 대기업 중에서도‘대기업’만이 그들에게 취직이란 단어에 해당사항 이였다. 그 외에 중소기업이나, 중소기업에서는 최종합격을 숱하게 했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애초에 회사원이란 직업 자체를 탐탁치 않아했었다. 명문대법학과를 졸업하고, 사시패스에 연수원 수석졸업, 판검사임명 뭐 이런 모범적이고 순차적인 단계를 바랐기에 그녀가 법학과에 낙방하면서부터 받았던 압박과 고충은 이루 말할 수 가 없다. 몇 년간의 잇따른 강압에 못 이겨 그녀의 최후의 선책은‘거짓말’이였다. 참 감사하게도 그들은 속아 넘어가줬다. 하지만 이따금 사실을 위한 또 다른 거짓을 꾀하는 순간 입술이 벌겋게 달아오를 만큼 깨무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가련했다. 마냥 다행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여태껏 그녀에게 들은 말을 종합해보면, 그녀는 늦둥이로 태어났다고 한다. 그녀의 부모는 늦은 시기에 어렵게 얻은 자식만큼 남부럽지 않게 키우려고 부단히 애쓰셨다고 한다. 물론 그만큼 받는 사랑도 컸다고 했다. 그리고 그 애정이 점점 집착으로 변질했다고 한다.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그녀는 유치원이외의 시간에서는 항상 부모님과 함께 집에 있었다고 한다. 물론 손에는 영어로 된 동화책과, 자막 없는 영어만화를 보여주면서 텔레토비라도 몰래 틀었다 하면은 바로 회초리를 맞았다고 한다. 한글선생님 영어선생님 수학선생님 한자선생님 피아노 선생님이 매일같이 집을 들락날락 거렸고,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9시까지 학원을 다녔다고했다. 아빠는 교장선생님으로 엄마는 교감선생님으로 계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선생님들의 관심 또한 자신에게 쏠렸고, 시험을 치고 난 당일 시험지 자체가 바로 부모님께 넘어가 알고 싶지도 않은 점수를 억지로 보는 게 다반사였다고 한다. 그렇게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엄마 아빠의 귀에 들어갔다고 한다.

여기서부턴 내가 그녀를 직접 본 것들을 종합해본다. 퇴짜를 맞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였기 때문에 생일파티에 초대 받아도 입 밖엘 꺼내질 못하고, 정해진 분량의 숙제를 해야만 회초리를 피할 수 있기 때문에 그녀는 학교에서 줄곧 공부만 해대서 친한 친구 하나 없이 쓸쓸히 학교를 다녔다. 그녀의 부모는 하나부터 열까지 간섭하지 않는 것이 없었고, 그녀는 지시에 따라 맞춰 움직이는 노련한 기계가 돼버렸다. 그녀가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그렇게 해보고 싶었던 게 ‘스티커 옷 입히기’ 라고 했다. 한번은 짝궁과 반 친구들한테 조금씩 얻어왔는데 엄마가 가방을 다 털어버리더니 모조리 쓰레기통으로 직행됐다고 했다.

여전히 현관에 들어서서부터 각종 문양의 도자기와 화려한 미술작품들이 전시 돼있다. 어렸을 때 그녀가 내게 종종 저것들을 건들이지 않도록 조심해라고 신신당부를 한 것이 기억이 난다. 그녀의 독립 후, 처음 발을 들이게 된 이 곳이다. 그녀의 일종의 거짓말이 우리를 이곳까지 끌고 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거짓말에 넘어간 그녀의 엄마가 이곳까지 우리를 끌고 왔다. 집에서도 화장을 짙게 한. 흐트러짐 없는 그녀의 엄마가 보인다. 그 뒤로 별거중이였던 그녀의 아빠의 얼굴도 보인다. 그 여자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는 식탁으로 이끈다. 한 솥 가득에 한우갈비찜, 노릇한 여러 가지 생선구이, 벌겋게 익은 구운 대하와 먹음직스런 전복, 각종 나물과 밑반찬 등 상다리가 부러질 것 같다는 소리가 이런 상황을 눈앞에 놓고 한다는 말인 걸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수저와 밥그릇 옆에 새알이 동동 띄어진 미역국이 보인다. 그녀와 십 여 년의 세월 동안, 처음 본 그녀의 생일상이다. 그녀의 눈망울은 너무도 애처로웠지만, 억지로 뺨을 들쳐 올린다. 간단한 식사가 끝난 후, 한랭한 공기 속에서 그들은 과일과 차를 내 먹던 도중 초인벨소리가 들려서 그녀의 엄마가 나가보니 손님이 들이닥쳤다. 전혀 당황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일종의 예의랍시고 놀라는 척하는 그들이 보였다. 그녀와는 서로 안면이 있는 듯 예의를 갖춰 인사한다. 그녀에게 팔짱을 끼우던 그 여자는 대기업에 다니는 딸이라며, 초봉이 얼마라더라, 오늘 선물까지 사왔더라 등 과시하느라 입을 놀리고 바빴다. 그 여자는 손에는 그녀가 집에 오기 전에 백화점에 들러 산 명품로고가 박힌 종이가방을 들어 보인다. 입이 귀에 걸린 여자와 안색이어두운 그녀의 얼굴이 대조된다.

요새 부쩍 그녀의 핸드폰이 울려댄다. 누군가 집에 찾아오는 일도 잦아졌다.

그녀는 대학등록금과 집전세금, 간단한 용돈 이외는 부탁은 물론 부모님께 손 벌리는 일이 없었다. 평생에 간청을 해도 수락이란 존재하는 법이 없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그녀의 모든 행위는 당연한거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직장이 없으니 일정한 수입이 당연히 없고, 그래서 생계유지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충당하고 필요한 곳에 사용했다. 하지만 일개 아르바이트직의 수입에는 한계가 있는 법. 그녀의 부모에게는 그녀는 대기업직원이다. 거짓취직사실을 전한 후, 이따금 걸려오는 전화에 그녀의 한숨은 한층 더 깊어진다. 초봉이 쌔기로 유명한 대기업에 종사하는 걸로 돼있는 그녀는, 현재 자신에게 그만큼의 돈이 없었고 아르바이트월급을 받으면 금방 갚는다는 생각에 부모의 선물을 살돈은 개의치 않게 빌렸다. 아마도 요 근래 시끄럽게 울려대는 전화벨소리와 초인종소리의 근원은 그 것일 거다. 그녀는 매일을 피가 바싹 말리는 시간을 보냈다.

장마가 계속되고 있던 어느 날, 내 몸이 불덩이처럼 열이 끓었다. 그녀는 거실을 이리저리 배회하며 골똘히 고민하다 그들을 피해 잠시 외출을 시도하려했다. 두둑두둑- 고요한 빗소리가 긴장을 고조시키고, 그녀는 나를 소중히 품에 꼭 껴안은 채 도둑인냥 조심히 문을 열고, 좌우를 두리번 살피고 막 나가려던 차. 그녀의 입에서 외마디비명이 흘러나왔다. 목 때가 덕지덕지 묻은 하얀 와이셔츠에 칙칙하기 그지없는 양복을 입은 남자가 보풀이 일어난 소매 밑에 반짝이는 샛노란 금시계를 찬 손으로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그 옆에는 번질번질 기름기 가득한 얼굴에 눈썹은 대각선으로 역도모양의 피어싱이 박혀 있는 대머리 한 명과, 머리를 어깨까지 축 늘어트려 뒷부분을 땡그랑 묶고 셔츠단추 입이 쩌억 벌어진 배불뚝이 남자가 서 있었다. 쾌쾌하게 찌든 담배냄새가 역하게 코를 타고 올라온다.

집안으로 끌려간 그녀는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그녀를 향해 상스러운 욕을 퍼붓는 동시에, 그녀의 뺨 언저리가 벌겋게 부어오른다. 인정사정 볼 것 없는 구타가 시작됐다. 팍-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입에서 얇은 신음소리가 세어 나왔다. 나는 미친 듯이 그 사람을 향해 돌진하고 닥치는 대로 다리를 물었다. 걸걸한 욕지거리와 누군가의 발에 의해 나는 거실 창가로 날라 갔고, 거기 있던 선인장에 부딪혀 수많은 가시에 찔렸다. 애한에 가득 찬 그녀의 눈이 낑낑거리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절실함이 누군가에게 전해지길 간절히 빈다. 하지만 인간들은 나의 울부짖음을 알아듣지 못한다. 나와 소통이 되는 사람은, 유일하게 그녀이다. 과연 그녀 이외의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바로 이 사람일 것이다! 번뜩 그의 얼굴이 뇌리에 스치자 나는 무작정 그들을 지나쳐 밖으로 뛰쳐나갔다. 주인 버리고 도망가는 배은망덕한 개새끼라는 소리를 뒤로한 채, 네 발을 힘껏 앞으로 내딛고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한다. 등짝에 빗물이 스며들어 통증이 몰려왔다. 그래도 나는 뛴다. 뛰어야 한다. 여름의 무더위를 식히는 장마가 이 체증도 식혀주길 바라며 정신없이 맞은편을 향해 차도로 뛰어든다. 진흙탕이 마구 튀긴다. 내 윤기나는 털과 선홍빛 발바닥은 누런 흙탕물로 범벅이 된지 오래다.

그 사람은 바로 수의사였다. 상황은 그렇게 종료되었고 그들은 욕지거리를 해대며 문을 발로차고 컵과 접시를 던져 깨부수고는 도망치듯이 집을 빠져나갔다. 그녀의 선인장도 여럿 망가지고, 잡다한 것들의 파편이 온 사방으로 튀여 태풍이 몰고 지나간 듯했다. 그들의 찌든 체취가 코를 싸고 맴도는 것 같아 속이 메슥거렸다. 깨진 화분사이로 장마철 습기 탓에 뿌리가 썩은 선인장이 보인다.

수의사는 그녀와 나 모두 다행이도 큰 외상이 없다고 전했다. 비를 맞은 탓인지 내 몸은 아까보다 더 뜨거워졌다. 처음 그는 내 상태를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의 신속한 치료 덕에 열은 내려 미열정도만 남아있었고, 선인장에 부딪히면서 수십 개의 가시가 찔려 욱신거렸던 등짝의 통증도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팔월이가 온몸은 진흙탕 투성이에, 등은 시뻘건 피로 범벅인 채로 저희 병원까지 뛰어왔어요. 문 앞에서 낑낑되고 있던 걸 다행이도 다른 애완견 보호자분이 발견해주셔서 간호사를 통해…….”

어쨌든 다행이다. 그녀의 눈가에 시퍼렇게 든 멍을 혀로 낼름낼름 핥았다. 그녀는 힘이 부치는지 입 꼬리를 천천히 끌어 올렸다. 그러고 그녀는 나를 향해 연신 눈물을 흘려보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나는 무언의 괜찮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밀려오는 잠을 청했다.

그렇게 길고 길던 장마의 끝자락이 마침표를 찍었다.

그 소동이 있고 나서, 그녀가 눈을 감는 걸 본적이 없다. 잠은 물론이고 몇 날 며칠을 식음을 전폐하고 혼 빠진 육체마냥 그저 있었다. 가끔 눈꺼풀을 움직이는 것 말곤 미동도 없었고, 그녀를 올라타거나 그녀의 품을 파고들면 그제야 느릿하게 쓰다듬어주는 것 말곤 다른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아, 나에게 연신 미안하다며 중얼거리는 것을 빼면 말이다. 전등도 키지 않아 쳐놓은 커튼 틈사이로 빛이 스며들어오면 아침이고, 빛이 거둬지면 밤이었다. 한참 후, 그녀는 벌떡 일어서더니 서랍장에 있던 노트북을 꺼내고 다급하게 전원 스위치를 킨다. 파란윈도우배경이 화면을 가득 채워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따닥-거리는 마우스소리와 동시에 인터넷 웹사이트 창이 켜졌다.

타닥 다다닥다닥- 일률적이고 정갈한 타자 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운다.

‘동물보호센터’, ‘유기견 보호센터’, ‘강아지입양’

그녀는 낑낑대는 나를 들어 올려 한참이나 뚫어지게 쳐다봤다. 웃을 여력조차 없었는지 힘겹게 입꼬리를 올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뺨을 풀었다. 그러곤 나를 자신의 다리위에 올려놓고 미세하게나마 떨리는 손으로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천천히 쓰다듬는다. 차갑도록 시린 그녀의 온기가 바짝 선 털을 타고 전해지면서, 내 등은 점점 조금씩 축축하게 젖어가고 있었다.

장마가 막 시작할 때쯤, 그녀가 집을 비웠을 때 할 것 없이 빈둥대다가 나는 TV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네모난 화면에 여러 가지 장면이 가득차고, 소리가 나오는 신비한 물건이, 바로 TV다. 그녀에게 듣기를, 인간들은 이것을 ‘바보박스’라고도 일컫는다고 했다. 나는 화면 바로 아래 있는 작은 전원버튼을 향해 앞발을 치켜세우고 있는 힘껏 애를 썼다. 씨름 끝에 찌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까맣던 화면이 밝아졌다. 환희에 가득 찬 눈으로 나는 화면을 응시했다. 평소 그녀와 내가 자주 보던 화려하고 멋진 사람들이 나오는 미니시리즈가 아니다. 네모난 화면 속에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개들이 보였다. 화면의 좌측 상단에는 ‘애완견, 가족인가 장난감인가’ 라는 기울인 글씨가 써져있다. 낑낑대며 철장을 긁어대는 수십 마리의 개, 정반대로 쇠철장 구석머리에 힘없이 쭈그려 앉아 있는 수십 마리의 개들이 화면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 참혹한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화면 양옆에 스피커에서 적당한 감정을 실은 정교한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국립시설에 맡겨진 애완견들은 대부분 일주일 안으로 입양되는 경우가 적으며 안락사진행이 태반사이고, 사립시설에는 지원이 부족하여 운영에 한계가 있다고 한다. 더 애달픈 사실은 저 들 모두가 버림받은 유기견이라는 것이다. 나도 한 번의 버림을 받았었다. 시설직원과 총 관리자들의 인터뷰가 끝나고는 ‘그들의 말 못하는 고통은 계속된다.’ 라는 문구가 뜨면서 새로운 화재로 전환됐다. 나는 애써 고개를 돌렸다.

어스름한 게 새벽인가 싶었는데 벽면에 있는 시계를 보니 시 바늘은 벌써 8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랜만의 잠이었다. 그동안 그녀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데 나라고 편히 잘 수 없었다. 고개를 치켜 올려 그녀를 쳐다보니 엉거주춤한 자세로 잠들어있었다. 나를 안고 있느라 자세가 엉성하구나. 그래도 그녀가 잠이라는 걸 잤다는 자체로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전화벨소리가 울려댄다. 그녀의 미간이 반복적으로 움찔 움찔하더니 눈이 서서히 떠졌다. 왼손으로는 헝클어져있던 머리를 가볍게 쓸어 올리고, 오른손으로 힘겹게 핸드폰을 가져와 실눈을 뜬 채로 전화를 귀에 가져다 대던 중 그녀가 미끄러지듯이 핸드폰을 놓쳤다. 그 때 버튼이 어디서 눌러졌는지 수화기너머 목소리가 공중에 울린다.

“너 거짓말이 아주 능하더구나.”

“네? 그게 무슨…”

“내일 오후 중으로 아빠랑 올라 갈 거니까 집에 꼼짝 말고 있어.”

통화를 마친 그녀는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을 미동도 없이 가만히, 그저 가만히 있었다. 오늘따라 그 순간이 어찌나 겁나던지 나는 그녀에게 안겼다가 꼬리쳤다가 핥다가 옷을 물어댔다.

“월아. 잠시만. 나 잠시 슈퍼 갔다 올게.”

설마 그녀가 이렇게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게 아닐까 괜한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하지만 다행이도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근심어린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손에 들린 시커먼 작은 봉지는 침대 맞은편 서랍장에 넣고, 울룩불룩 튀어나온 큰 봉지에서 길다란 파와, 동그란 양파, 새빨간 토마토 등을 식탁에 꺼내기 시작했다. 분주히 움직이는 그녀의 모습은 시각을, 탁탁- 야채를 썰이는 소리와 기름에 뭔가 튀기는 소리는 청각을, 싱긋한 토마토 소스냄새는 청각을 한 뜻 자극 하고 있었다. 40분가량의 시간이 흐른 뒤 그녀는 예쁜 접시에 먹음직한 파스타와 포크를 식탁위에 올리고 둘렀던 앞치마를 벗었다. 마침 초인종 벨소리가 울렸다. 나는 또 그들의 폭격인가 싶어 왈왈- 짖어댔는데 그녀는 나를 향해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문을 열었다. 열린 문으로 내 시야에 온건 수의사였다.

“그런 놈들은 상종을 하는 게 아닙니다. 마음 잘 추스르세요. 팔월이가 간절히 바라는 걸 거 에요.”

대답대신 옅은 미소를 머금는 그녀가 보인다. 수의사도 내 핑계를 덧붙인 게 멋쩍은지 뒷머리를 짚는다. 생각보다 그들의 대화는 길어졌고, 나 이외에 누군가와 오랜 시간 대화하는 그녀의 처음 보는 모습이 은근히 낯설었다. 또, 그와 나란히 앉아 나에게 그랬듯 오순도순 선인장들에 대해 설명해주는 그녀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안온해보였다.

수의사가 집을 떠난 후, 집안은 다시 냉랭한 침묵이 찾아왔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침묵을 뚫고 나오는 소리.

“이제 그만 자자. 월아.”

 

식탁위에 올려둔 그녀의 핸드폰의 요란한 진동소리가 고요한 침묵속의 허공을 가득 메운다. 그녀는 전화를 귀에 가져다 댔다. 몇 초 후 그녀가 입을 떼려는 순간 바로 전화가 뚝 끊겼다. 벽걸이시계를 확인하는걸 보니 그녀의 부모들이 얼마 되지 않아 이곳에 올 것인가 보다. 그녀는 한참을 먼 산을 바라만보다가 나에게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나는 그녀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녀의 발걸음엔 보이지 않는 돌덩이들이 수백수천개가 매달려 있는 것 같다. 그녀는 침대 맞은편에 있는 서랍 제일 윗 칸을 열더니 두꺼운 끈을 꺼낸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어제 그녀가 슈퍼를 다녀온 뒤 시커먼 봉지에서 꺼낸 물건이 저 끈인 것 같다. 그러고 좌우를 두리번두리번 거리더니 의자를 딛고 그 위로 올라탔다. 위태롭게 흔들거리는 의자위에서 중심을 잡으려 양손을 뻗고 한 참을 씨름했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어깨언저리에 걸치고 있던 누런 끈을, 천장에 있는 전등보호대 틈 사이로 묶고 고리형식으로 매듭을 졌다. 나는 고개를 든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심조심 다시 한 번 중심을 잡으며 뒤뚱대면서 그녀는 의자에서 침대를 향해 발을 내딛고, 두발 모두 내딛고 난후 침대에서 내려왔다.

“월아. 밥 먹으러 가자.”

내게 뻗는 그녀의 손 마냥, 미세하게 의자가 흔들거렸다.

그녀는 부엌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새하얀 뼈다귀 모양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는 보라색 개밥그릇에 사료를 가득 담고, 식탁에 올려져있던 파란색의 작은 병의 뚜껑을 열더니 멈칫한다. 미세하게 떨리는 그녀의 손이 보인다. 그녀는 입술을 앙다물곤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나와 눈을 맞추더니, 한번 쓱 웃고는 병에 담겨있던 무색의 액체를 한 방울, 두 방울 조심스레 떨어트렸다. 그녀의 눈에서도 무색의 액체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졌다.

그녀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온다. 그녀의 발끝을 따라 시선을 옮겨보니, 내려 쬐는 햇빛아래에 있는 울룩불룩한 선인장들이 보였다. 그녀는 화장실에서 파란색 바가지 두 개에 한 가득 물을 담아 나왔다. 가득 차있는 물들이 찰랑찰랑 거리더니 철썩- 조금씩 바닥에 낙하해 주저앉았다. 그녀는 최대한 흔들림 없이 조심히 베란다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녀는 바가지에 있는 물을 그대로 선인장들에게 들이 부었다. 물이 철철 넘쳐흐를 때까지. 선인장들에게 물을 주고 나니 거실바닥은 이미 흥건히 젖어 있었다.

“진짜 밥 먹으러 가자. 진짜. 진짜로.”

그녀는 나에게 싱긋이 미소를 지어보이며 침대로 올라갔다. 나는 사료가 가득 담긴 밥그릇과 그녀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고 나서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게걸스럽게 먹었다. 정말 맛있게 정말 행복하게. 그녀는 아까 침대위에 받쳐놓았던 의자에 발을 올렸다. 위태로워 보이는 그녀는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노끈을 손으로 잡았다. 천장을 한번바라보고, 창밖의 하늘도 한번 보더니, 주춤거림은 뒤로한 채 누런 노끈의 고리사이로 고개를 집어넣는다. 마지막으로 나를 향해 미소 지으며.

기울어지던 의자가 서서히 침대 밑으로 떨어진다. 텅-. 빈 집안에 둔탁한 굉음이 울려 퍼진다.

쬐는 햇볕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여름의 피날레를 장식이라도 하듯 뙤약볕의 기승은 끝이 없다. 8월의 무더위는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잠이 쏟아진다. 온몸이 나른해진다. 나는 철퍼덕 바닥에 주저 누워 버렸다. 그녀가 보인다. 그녀의 모습 뒤로 지금의 그녀마냥 축 쳐져있는 시퍼런 잎 위로, 연분홍색 꽃이 활짝 핀 크리스마스 캑터스가 보인다.

 

나는 버림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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