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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 세월아 가지 말어라, 농군들 다 늙어 가노라

“할 수 없이 (농사) 지으라고 하면 짓지, 그런데 (손자도) 몰라. 그 속을 누가 알겠어, 젊은 사람들? 안 그러면 농사 안 지으려고 해, 다른 것 하려고 하지” (이용구 85세/할아버지)(EBS 지식채널)
가을은 생존이다?
지친 더위를 피하려 밤마다 열어놓은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온 모기들의 말썽으로, 피곤했던 여름이 지나가고 어느덧 쌀쌀해진 가을 날씨에 번데기 마냥 이불에서 나오기가 쉽지 않다. 가을은 붉은 단풍들을 퍼뜨리고 푸른 산을 한순간에 노을빛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감상에 젖게 만든다. 우연히 떨어진 낙엽은 물론 초코송이 과자처럼 붉게 물든 생채기 같은 나무 또한 사람의 감정을 한결 누그러뜨린다. 이렇게 당신은 가을하면 나처럼 가을 풍경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는 시늉을 하는지 모르겠다. 21세기에 태어난 우리가 하루하루 먹는 것,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돼서일까? 내일 입을 옷이 걱정이고, 과제가 걱정이지 생존을 위해 먹는 것을 걱정해본 적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지금이야 시상에 젖게 만드는 것이 가을일지 모르지만, 그리 오래되지 않은 50년대에선, 가을은 생존의 경쟁계절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여름(6~7월)에 벼를 심고, 가을(9~10월)에 벼 베기를 통해 쌀을 수확해왔다. 아마 우리대학 학생 중에서도 벼농사를 하고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그 쌀을 받고 있는 가족도 일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받기만 받았을 뿐 실제로 경험해본 사람은 10명 중 한 명이나 될까?  현재 도심에서 중·고등생이 학교 밖 정원에 벼를 심고 벼 베기 체험을 하고 있다. 이 모습을 보면서 ‘과연 이 학생들이 그때 그 맛을 알면서 벼를 들고 웃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그 맛이란 농부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힘듦을 위로해주기 위해 불렀던 민요인 노동요, 다 함께 벼를 심던 그때 그 모습을 말한다.
“오늘날 이 논배미에 누구누구 모여 싯는고, 일등 농군님이 다 모여 싯네, 한 톨 종자 싹이나서 만곱쟁이 열매 맺는 신기로운 이 농사는 하늘땅의 조화로다” 이는 예전 농부들이 함께 일하며 다 함께 불렀던 민요인 노동요의 한 구절이다. 모든 사람이 작곡가가 되고 모든 사람이 작사가가 되던 그 시대는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진정 일을 즐기며 서로 의지할 수 있었던 날들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이런 노동요를 듣기도 힘들고 직접 쌀을 지어먹는 집은 더더욱 없다. 미국과 FTA협정을 두고 계속해서 외국의 값싼 쌀이 들어오고 우리 쌀을 찾는 이들은 점점 없어지고 있다. 현재 농촌에선 농사를 짓는 여덟 가구에서 아홉 가구 정도 남아있으며, 농촌에 남아있는 노인들이 죽으면 집도 폐가가 되고 논도 팔리게 된다.
학교에서 가끔 선생님이 “저기 촌에 가서 농사짓고 살아볼래?”하며 으름장을 놓은 적이 있다. 그때 아이들은 모두 싫은 표정을 지으며 끔찍하게 촌에 있는 아저씨나 아줌마 되기를 싫어했다. 젊은 사람들은 그렇다. 촌에 살며 문화생활도 즐기지 못하는 평범한 아낙네가 되기 싫고, 조금 더 화려하고 멋진 집에서 살며 좋은 직장을 다니길 꿈꾸며 살아간다. 그게 현재 유일한 희망이고 인생의 낙이다. 그런데 1인당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충분한 문화생활도 즐기면서 각종 여가생활을 즐기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왜 전 세계적으로 낮을까? 학교도 빼먹고 벼를 심으며 짜증을 내도 중참이 참 맛있었던 그때 그 시절은 머나먼 꿈속에 갇혔고, 더불어 사는 삶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삶
작가 이태수(동화 작가)씨가 지은 <바빠요 바빠>라는 책을 통해 상상해 볼 수 있다. “마루는 산골에 살아요. 가을이 오면 모두가 바빠요. 바빠. 할아버지는 옥수수를 말리느라고, 할머니는 참깨를 터느라고 바빠요. 바빠. 들판에 벼 이삭이 출렁이면 벼를 베느라고 마루는 나르느라고 바빠요. 바빠” 과거 50년대로 돌아가보면 그때 그 시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분명 학업에 매진하기 보다는 마루처럼 집안 일을 도와줬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당연하게 여기고 그게 인생의 낙이었을지도 모른다. 50년대는 바빴지만 다함께 일을 했고 그 대가로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나 자신의 일을 모두가 부모처럼 걱정해줬다.
그러나 현대는 바쁘고 모두가 함께 일하지만  옆사람의 이름도 모르고, 상품을 찍어내는 공장의 1인 노동자밖에 안되는 기계적인 사람이 돼 버렸다. 일을 마치고 해질녘 나무아래에 담배 한대 물고 누워 있는 모습은 현대인의 모습에선 찾을 수 없는 행복한 상상이다.
2009년 경제를 내세운 대한민국은 산을 깎아 내리고 노란빛의 논엔 빨간색의 깃발이 꽂혔다. 그렇게 우리에게 식량을 가져다주고 함께 일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그들은 사라지고, 새로 신설된 아파트와 재계발로 인한 공사 현장은 마치 큰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우울해 보인다.
앞으로 몇 십년 후면 벼를 베는 농부는 보기 드물 것이고, 일을 할 때 부르는 노동요도 우리 머리 속에서 잊혀질 것이다. “한 톨 종자 싹이나서 만곱쟁이 열매 맺는 신기로운 이 농사는 하늘땅의 조화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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