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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회 창원대문학상 장려-늙은 동네

늙은 동네

김 윤 경/인문대 국문학과 2학년
 

우리 동네의 크기는 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큰 것은 아니다. 우리 집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면 양 끝에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가 있고, 그 사이에 각종 가게와 집, 아파트, 시장이 있다. 집 근처에는 5일 장이 열리는 시장이 있고, 그 옆에는 과일 가게와 병원, 그리고 시장 맞은편에는 슈퍼가 있다. 약 두 시간만 투자하면 온 동네를 걸어서 모두 구경할 수 있는 크기였다. 그래서 오밀조밀 붙어 있는 장사꾼들끼리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했다. 게 중에서도 슈퍼와 마트 경쟁이 가장 치열했다. 고등학교 앞 사거리 쪽의 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50% 세일을 하면 시장 앞의 슈퍼에서도 가격을 내려 팔았다. 그렇게 되면 동네 사람들, 특히 아이스크림을 자주 사 먹는 학생들은 어부지리로 득을 보게 되는 것이다. 마트끼리 경쟁이 붙어 물건을 싸게 팔면 팔수록 우리들에게는 이득이니 동네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주변의 장사꾼들에게는 그러지 않은 모양이었다. 시장에서 야채를 파는 할머니들이나 정육점 아주머니, 과일 가게 할머니, 그리고 신흥상회 할아버지까지. 모두들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수군댔다. 특히 근래에 우리 집 옆에 큰 마트가 하나 더 들어서고 나서는 더 그런 모양이었다.

“그래, 저는 수박 한 통에 얼마 하드노?”

“만 오천 원 하드라. 크기는 별로 안 크든데… 맛은 별로 없긋제?”

“하모, 하모. 맛은 우리 집 끼 최고 아이가.”

과일집과 병원 사이에는 시장으로 통하는 좁은 길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 긴 의자를 하나 두고는 동네 할머니들께서 자주 수다를 떠셨다. 우리 할머니만 해도 그랬다. 과일집 할머니와는 가장 친한 친구 사이였다. 할머니는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입방정을 떨만한 이야깃거리가 생기면 바로 거기로 달려가 과일집 할머니와 조잘거렸다. 마트가 생기고 난 뒤에는 더 자주 놀러 가셨다. 할머니들 대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새로 생긴 마트가 있었다.

우리 집 바로 옆에 새로 생긴 마트는 동네 마트 중에서 가장 큰 곳이다. 그래서 과일이나 정육, 야채 등 다양한 물품들을 팔았다. 덕분에 동네 아줌마들에게는 금의환향한 선비라도 되듯 환영받는 곳이었지만, 상점 주인이나 시장 할머니들에게는 엄청나게 욕을 먹는 곳이었다. 자그마한 새우가 덩치 큰 고래의 싸움에 낄 수는 없으니 뒤에서 수군대는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과일 집 할머니의 부탁으로 마트 내의 물가를 살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일종의 스파이인 셈이다. 주로 확인하는 건 야채와 가일 가격이었다. 하지만 마트의 야채, 과일값이 싸봐야 얼마나 싸겠는가. 할머니들이 시장에서 파는 야채들은 모두 이 동네 외곽의 밭에서 직접 재배하신 것들이다. 그렇기에 유통비가 더 들어가는 마트에 비해 훨씬 싼 값으로 야채를 팔 수가 있었다. 게다가 시골 인심, 재래시장 인심이라는 게 다 무엇이겠는가. 제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자신이 재배한 것들을 사 가는 사람들에게 과일 한 두 개, 야채 몇 그램은 더 얹어주고픈 것이 시장 할머니들의 마음이다. 하물며 그 사람들이 동네 사람이고 모두 아는 사이라 몇 그램 가지고도 부족해 두 배는 더 얹어주는 게 이 동네 시장 할머니들이다. 그런데도 동네 소비자층인 아줌마들은 모두 마트를 더 선호했다. 그것이 야채, 과일의 신선도가 더 좋다거나, 유기농에 이끌리거나,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 때문에 오히려 더 비싼 것을 산다거나 하는 심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 마트가 생긴 이후로 시장에 장을 보러 가는 사람의 수가 급격하게 줄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근데 저놈의 마트는 참말로 뻔뻔한 기, 이사를 왔으모 떡이라도 돌리야 될 낀데, 그것도 아이라. 고마 즈그 집 장사 잘 되게 하는 거만 정신이 팔리가꼬 동네 할매들은 우째 되는가 신경도 안 쓰는 기라. 하이고 내 참, 기가 막히가꼬.”

“맞다, 맞다. 또 을매나 깐깐한지, 아들이 과자 사러 오면은 눈을 여우맨키로 요래 떠가지고 딱 노려본다이가. 그래가꼬 아들이 계산 할라고 돈을 내면 ‘가방에 뭐 없제?’ 이리 물어 보드라. 그라믄서 쫌 마이 사는 아지매들 오면 고마 실실 웃으면서 아부를 하는데, 으찌나 꼴사납던지.”

“하이고, 우리만 손해지 손해야. 뭐 저런 게 이기 굴러 들어와 가꼬 난리를 직이노.”

“맞다. 할배는 요새 좀 어떻노? 몸은 좀 괘안나?”

“우리 할배 저 방에 박히 가지고 꼼짝도 몬 한다. 요새는 잠만 자는데 가끔씩 너무 조용해 가꼬 내가 숨이 막힐 때도 있다. 이제 갈 때가 다 된 기제…….”

과일집 할머니의 낯빛이 이른 시각에 어둠이 내려앉는 겨울밤처럼 갑자기 어두워졌다. 할머니는 과일집 할머니의 손을 한 손으로 꼭 잡아주면서 다른 한 손에 쥐어진 부채를 열심히 팔랑거렸다. 수십 년을 한 곳에서만 살아오셔서 그런지 두 분의 우정은 웬만한 사람들의 우정보다 더 대단했다.

최근 과일집 할아버지의 건강이 갑자기 나빠졌다. 과일집 할아버지와 우리 할아버지도 꽤나 절친한 친구였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를 갔다가 집으로 오는 길이면 늘 할머니들이 수다를 떠는 곳에서 할아버지가 중절모와 모시옷을 입고 앉아 과일집 할아버지와 허허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할아버지의 발길도 완전히 끊어졌다. 우리 할아버지의 건강이 안 좋아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과일집 할아버지께서 아예 일어나시질 못할 정도로 건강이 많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병원은 와 안 가노?”

“병원비가 어딨노. 안 그래도 저노무 마트 때문에 장사가 안 되가꼬 죽겠구만. 가 볼라 캐도 돈이 없고, 가도 소용도 없을 거 같고…….”

“저기 문제네, 저기 문제야.”

결국 할머니들 대화의 화젯거리는 할아버지의 건강에서 또 다시 마트로 옮겨졌다. 아마도 그 마트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은 계속 동네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릴 것이다.

 

할아버지는 종종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내게 담배와 술을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셨다. 집 바로 옆에 마트가 생긴 덕에 할아버지의 술, 담배 심부름은 가까운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을 때였다. 할아버지께서 담배를 한 갑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셨고, 나는 돈을 받아 들고는 집 옆에 있는 마트로 갔다. 하지만 내가 카운터 앞에 서서 우물쭈물하다가 에쎄 라이트 하나요, 라는 말을 내뱉자 마트 주인은 바로 내게 손을 내밀며 신분증을 내놓으라고 했다. 아직 미성년자인 데다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정도로 나이가 차지 않았던 나는 당연히 할아버지 심부름이라는 말을 했지만 주인 아저씨는 완고했다. 미성년자에겐 절대로 담배를 팔지 않겠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새로 생긴 마트에서 퇴짜를 맞고 늘 할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담배를 사러 가던 신흥상회로 갔다.

신흥상회 할아버지는 우리 할아버지와 오랜 친구였다. 할아버지께서 정정하실 때는 늘 신흥상회에서 담배를 샀다. 때문에 신흥상회 할아버지는 내가 심부름을 가면 할아버지가 피우시는 담배를 건네주셨다.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알고 계셨기에 믿고 주시는 것이다.

신흥상회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곧 무너질 것만 같은 평상과 유리로 된 낡은 여닫이문이었다. 여름엔 괜찮았지만 겨울이 되면 닫혀 있는 문을 여는데 항상 삐걱거리는 낡은 쇳소리가 났다. 흡사 날카로운 것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 같았다. 나는 그 소리를 매우 싫어했고, 그래서 신흥상회 문을 열 때는 조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서면 구멍이 뚫려있는 쇠로 된 매대와 도배가 전혀 되지 않은 시멘트 바닥, 그리고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는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깨끗한 흰색 타일로 도배되어 있는 새 마트와는 비교되는 곳이었다. 나는 그 동굴 같은 어두침침한 분위기를 싫어했지만 그것을 안쓰럽게 여기기도 했다. 여기도 조금만 깨끗하고 넓게 만들었으면 이렇게 먼지 쌓인 곳은 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신흥상회 할아버지를 안쓰럽게 생각했지만 한 번도 여기서 과자를 사 먹지는 않았다. 마트는 몇 퍼센트를 할인해서 팔지만, 여기는 원가로 물건을 팔았기 때문이다. 남 걱정도 좋았지만 내 입에 풀칠부터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어, 그래. 왔나?”

내가 할아버지 심부름을 올 때면 항상 인자하게 웃으시며 담배를 건네셨다. 하지만 오늘은 신흥상회 할아버지의 낯빛도 어두웠다.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장사가 안 되는데 바로 앞에 마트가 하나 더 들어서는 바람에 더 장사가 안 되는 것이다. 그의 낯빛을 똑바로 마주하자 방금 그 마트를 다녀온 것이 죄송해졌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시선을 피하고는 돈을 건네 드렸다.

“그래, 느그 할배는 좀 어떻노?”

“집 안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긴 하지만 아직 괜찮아요.”

“느그 할배가 좀 괜찮아지야 할 낀데. 내가 느그 할배한테 할 말이 많다.”

할아버지의 얼굴 위로 드리우는 씁쓸한 그림자에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어정쩡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얼른 할아버지께 담배를 갖다 드려야 하기는 했지만,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할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또 그렇게 냉정해질 수만은 없었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마, 모르긋다. 가게를 내놔야 될 거 긋기도 하고…….”

눈을 지그시 감고 내쉬는 할아버지의 한숨에는 그간의 고생이 그대로 녹아나 있는 것 같았다. 그건 안 된다는 말과 함께 위로해 드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가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할아버지께서 가게를 접지 않았으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할아버지의 가게에서 물건을 살 자신도 없었다. 에어컨이 없어 선풍기와 부채로 여름을 보내는 할아버지가 안쓰러웠다. 땀이 등줄기를 타고 주르륵 흘렀다. 마트의 시원한 공기가 간절해졌다. 모순된 생각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결국 나는 할아버지께 꾸벅 인사를 하고 신흥상회를 나왔다. 신흥상회 바로 앞에 있는 마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누군가가 숨구멍을 손가락으로 막은 것 같은 답답함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과일집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는 시커먼 옷을 입은 문상객들로 붐볐고, 과일집 할머니는 영정 사진 앞에 앉아 세상을 다 잃은 얼굴로 눈물, 콧물을 짜내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런 과일집 할머니를 달래기만 하셨다.

한 쪽에 차려진 테이블에서는 동네 할아버지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동네에서 흔히 입고 다니는 옷을 입고 있었다. 검은 색으로 도배를 한 젊은 사람들과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더운 여름날 검은 옷이 득실거리는 장례식장에서 편안하고 시원한 차림의 옷을 입은 할아버지들을 보니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사실 내가 여기까지 따라올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늘 인사를 하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니 마음이 쓰였다. 나는 할머니 옆에 쭈그려 앉아 과일집 할아버지의 시커먼 영정사진을 쳐다봤다. 벽돌이 심장을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독한 향냄새가 코끝을 찌르는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밖에선 아직도 할아버지들이 소주병을 들고 얼굴이 벌게진 채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가려고 신발을 신는데, 내 발 옆으로 꽤나 비싸 보이는 까만색 구두가 누군가의 발에 의해 벗겨지고 있었다. 위를 올려다보니 마트 주인이었다. 배가 부푼 풍선마냥 둥글게 튀어나와 있었고, 눈은 여우마냥 길게 째져 있었다. 머리숱은 거의 없었고, 머리 한 가운데는 번쩍거리는 길을 내놓고 있었다. 어디서 나쁜 짓 좀 하고 다닌 사람처럼 얍삽하게 생겼다. 나는 신으려던 신발을 도로 벗어 던졌다. 이 아저씨가 여긴 웬일일까? 과일집 할아버지랑은 잘 모르는 사이일 텐데. 그냥 동네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이라서 찾아온 걸까? 오만가지 생각들이 뇌 속에서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마트 주인 아저씨는 영정사진 앞에서 향을 피우고 절을 했다. 나는 왠지 그 모습이 보기 불편해서 미간을 잘게 구겼다. 동네 어르신들의 영향일까, 주인 아저씨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절을 하고 나오는 그는 초식 동물을 잡아먹으러 온 육식 동물처럼 눈을 반짝였다. 그는 곧장 할아버지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는 자리로 갔다. 아무렇게나 입은 할아버지들 틈에서 까만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그의 모습은 단연 튀었다.

“어르신들, 안녕하십니꺼.”

그는 예의를 차려 할아버지들께 고개를 숙였지만, 어쩐지 그 모습마저도 건방져보였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잘 들리는 곳으로 가서 앉았다. 비밀 이야기를 엿듣는 사람마냥 귀를 쫑긋 세우고는 딴 짓을 하기 시작했다.

“어, 어. 그래, 왔나? 한 잔 주까?”

“아이고, 주시면 지야 고맙지예.”

“그래, 여긴 웬 일이고? 죽은 할배랑 잘 아는 사이가?”

“동네 사람 아입니꺼. 그래도 할아버지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데 같은 동네 사는 사람으로서 한 번 와야 안 되겠습니꺼.”

알 듯 말 듯한 미묘한 미소 안에서 나는 가식을 엿보았다. 주인 아저씨는 술을 한 잔 들이켜고 컵을 내려놓았고, 옆에 있던 신흥상회 할아버지가 다시 빈 컵에 술을 따랐다. 그들 사이에 잠깐 동안 침묵과 함께 술병이 오갔고, 다시 신흥상회 할아버지께서 주인 아저씨에게 술을 따를 때, 그가 정말 무미건조하게 입을 열었다.

“어르신, 요새 장사는 잘 됩니꺼?”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아니, 물어봐선 안 되는 질문이었다. 소주잔을 집어 든 신흥상회 할아버지의 손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하지만 뻔뻔하게도 마트 주인 아저씨는 할아버지께서 주신 술을 단번에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문득 저 아저씨는 도대체 얼굴에 철판을 몇 개나 깐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위기가 싸해졌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하던 일에 몰두했지만 동네 할아버지들이 모여 계신 곳은 냉기가 뚝뚝 흘렀다. 병에 담긴 술이 얼 것만 같은 으슬으슬함에 나는 몸을 비볐다. 귓가에 시계소리가 울렸다. 어딘가에 시한폭탄이 숨겨진 거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다. 째깍째깍, 일정하게 들리는 그 소리에 귀를 막아버렸다. 그 숨 막히는 정적을 깬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주인 아저씨였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뜸을 들이더니 곧 입을 열었다.

“요새 장사도 잘 안 되는 거 같던데, 그 땅 지한테 팔 생각 없습니꺼?”

“뭐라카노?”

“할배 그 땅, 지가 사겠심더.”

“이 새끼가 지금 미칬나! 니 그게 할 소리가?”

신흥상회 할아버지가 노했다. 할아버지의 고함소리에 모든 이목이 다 그쪽으로 집중되었다. 우리 할머니와 과일집 할머니도 정신을 차리셨는지 나와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비싸게 쳐 줄게예. 장사도 안 되는데 그 있어서 뭐 할랍니꺼? 고마 지한테 비싸게 팔아뿌고 오데 좀 좋은 데로 이사를 가든가, 아이모 여행을 갔다 오시든가 하이소. 돈 벌이도 안 되는 거, 그기 있어봤자 뭐 하겠습니꺼? 고마 지한테 파는 게 훨씬 돈 되는 일 같십니더.”

“이, 이……!”

술 때문인지, 열 때문인지 할아버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벌건 얼굴로 자신에게 삿대질을 해대자 주인 아저씨는 혹시라도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며 할아버지에게서 멀어졌다. 할아버지는 아저씨를 한 대 치고 싶은데 망설이는 것 같았다. 나이로 보나, 덩치로 보나 주먹질을 한다면 할아버지가 더 손해였다.

할아버지의 고함 소리에 장례식장 안이 술렁였다. 모두들 수군대는 그 모습에 나는 누군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아저씨를 말려주길 바랐다. 하지만 모두들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조잘거리기만 할 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결국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리 할머니가 나서서 할아버지를 말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할배 취했심더. 얼른 앉으이소.”

“내 안 취했다! 할매 좀 나와 보이소! 이 새끼 이거 지금 하는 말이 안 들립니꺼?”

할아버지가 옆에 있는 소주병을 들었다. 술에 취한 데다 화가 많이 나서 그런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조차 인지를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할머니도 더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하고 할아버지에게서 떨어졌다. 주인 아저씨도 조금 겁이 났는지 할아버지가 한 발자국 다가오면 두 발자국 멀어지고 있었다.

“아이고, 할배 참으이소. 여가 어데라고 이랍니꺼. 아이씨, 그짝도 말 좀 가려서 하이소.”

“어르신, 이기 이렇게 화내신다고 될 일이 아입니더. 술병 내려놓으시고 쪼매 진정해보이소.”

결국 같이 술을 마시던 동네 할아버지들이 나서서 말리기 시작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아무도 나서지 않고 슬금슬금 피하기만 했다. 신흥상회 할아버지가 무서워진 나도 구석으로 자리를 피했다. 말리는 할아버지들과 놓으라는 신흥상회 할아버지가 부딪쳤고, 할아버지의 손에 들려있던 소주병이 와장창 소리를 내며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방바닥에 흩어진 병 파편들이 금방이라도 벨 것처럼 날을 세우고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귀를 틀어막고 눈을 꼭 감아버렸다. 장례식장에 흐르는 에어컨의 냉기로는 지금의 이 더위와 공포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새끼 진짜. 하!”

“할배요, 제발 진정 좀 하이소. 와 이랍니꺼?”

신흥상회 할아버지가 씩씩거리며 다시 바닥에 앉았다. 덩달아 다른 동네 할아버지들과 주인 아저씨도 진정하고는 바닥에 앉았다. 할머니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빗자루를 들고 와 소주병 파편들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엔 주인 아저씨의 입에서 나오는 독이 할머니에게 향했다.

“참, 그라고. 할매도 마트 옆에 있는 집 파는 게 어떻습니꺼? 주차장을 만들고 싶은데 공간이 영 짝아스 그 땅을 주차장으로 바깠으면 좋겠는데. 물론 할매 집도 비싸게 쳐서 사겠십니더.”

할머니가 멈칫하며 들고 있던 빗자루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뭐라꼬예?”

“할매 집 비싸게 사겠다고예.”

“이, 이…… 아이씨! 지금 이가 어덴 줄 알아예? 지금 그기 이기서 할 말이라예? 그라고, 내는 그 집 못 팔아예. 내가 그 집에서 몇 년을 산 줄 아십니꺼? 시집 온 이후로 계속 그 집서 살았으예. 근데 지금 그 집을 팔라는 소리가 나와예?”

“할매 전후사정을 제가 어찌 알겠십니꺼. 동네 발전을 위해서라도 그 땅은 파는 게 나을 거 같은데예.”

우리 할머니에게 집을 팔라는 소리에 나도 울컥했지만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어렸고, 비겁했다. 주인 아저씨를 이길 자신이 없었고, 그로부터 집을 지켜낼 자신도 없었다. 아니, 차라리 나는 새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었다. 지금의 우리 집은 너무 좁고 답답했다. 나는 새 것을 원했다. 좀 더 크고 깔끔한 새 집을. 때문에 나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튼, ‘동네 발전을 위해서’라는 콧방귀가 절로 나오는 그의 말은 동네 어르신들을 모두 다시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안 그래도 뒤에서 숙덕거렸는데 다들 기회다 싶어 하나 둘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주인 아저씨가 또 다시 겁을 먹은 표정으로 할아버지들에게 진정하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그의 말에 결국 분을 못 이긴 신흥상회 할아버지가 다시 달려들었다.

“이 개새끼! 마, 니 고마 딴 데로 가라. 그리 땅이 갖고 싶으면 땅 넓은 데로 가라고. 서울로 가든, 부산으로 가든 안 말릴낑께네 딴 데로 가서 장사를 하든 주차장을 파든 니 하고 싶은 거 하라고! 와 이기서 난리고?”

“그런 데 가서 쪼깨난 마트 해봤자 돈이 되겠십니꺼? 그런 데는 대형마트라는 기 골리앗처럼 딱 버티고 스 가지고 쪼깨난 마트는 묵고 살지도 못합니더.”

“그럼 우리는? 우리는 므꼬? 니만 묵고 살면 다가? 어이?”

“그래서 제가 비싸게 준다 안 합니꺼.”

신흥상회 할아버지가 다시 소주병을 집어 들려고 했지만 다른 할아버지들로 인해 저지되었다. 차라리 할아버지가 한 방 시원하게 날려줬으면 했지만 장례식장에서까지 피를 보고 싶지는 않았다.

“얼마면 되겠심꺼? 억 소리 나게 줄까예?”

주인 아저씨가 신흥상회 할아버지와 우리 할머니를 향해 손가락을 하나씩 펴기 시작했다. 손가락은 두 개에서 더 펴지지 않았다. 억 소리가 난다고 했으니 단위는 아마도 억일 것이다. 나는 그의 손가락 끝에서 펼쳐지는 그 어마어마한 숫자에 홀려버렸다. 억이면 당분간 먹고 사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벌레들이 자주 들이대는 그 오래된 집을 벗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그 순간 나는 할머니가 아닌 주인 아저씨를 응원하는 못된 아이가 되어버렸다.

“이 아이씨가 지금 여가 어데라고 그런 말을 해삿노! 빨리 나가이소, 빨리!”

“할매요, 그 집 할배 걱정도 해야되지 않겠십니꺼? 듣자하니 상태가 그리 좋아 비지는 않던데. 그라고 아들래미 장사도 잘 안 된다매? 그럴 바엔 고마 집 팔고 할배 병원도 보내고 아들도 다른 데로 보내는 게 안 낫겠십니꺼?”

도대체 그런 정보는 어디서 들었는지, 주인 아저씨는 우리 할머니의 제일 아픈 곳만 골라서 쿡쿡 찌르고 있었다. 할머니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만 헤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우리 할머니는 돈을 엄청 좋아한다. 만날 입버릇처럼 하시는 이야기가 돈이었다. 숨 쉬는 것도 돈이 없으면 안 된다, 이런 것도 다 돈이니까 아껴 써라, 나중에 다 쓸 일이 있으니까 버리지 마라, 그래서 집에 쌓아놓은 고물만 해도 한 가득이다. 할머니께서는 언젠가 쓸 일이 있을 거라고 쌓아 놓으신 거지만 사실 그 물건들이 쓰일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밥그릇도 반찬통도 깨끗하고 예쁜 것이나 새 것을 쓰지, 낡고 헌 것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끼면 똥 된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 집에는 그런 물건도 한 가득이다. 명절 날 선물은 받아 놓고 쓰지 않는 것이다. 이걸 안 쓰면 무슨 소용이냐고 말을 해도 듣질 않으셨다.

안 그래도 요즘 할아버지 몸 상태나 아빠나 삼촌의 어려운 사정 때문에 직접 돈을 벌어야겠다는 말을 자주 하는 상태인데, 집을 비싸게 사겠다는 말은 상당히 혹할 말이었다. 그 유혹을 뿌리치게 해주는 것이 내 집과의 정이었는데, 가족들의 속사정까지 일일이 나열을 하니 할머니도 상당히 흔들리실 것이다. 축 처진 채로 힘없이 껌뻑이는 눈가의 주름이 골판지보다 더 자글자글해 보였다.

“할매요, 흔들리면 안 됩니더. 이딴 개자슥한테 집 넘길 깁니꺼?”

“할배도 알지예? 우리 할배랑 아들 자슥이 어떤 상태인지. 솔직히 내는 잘 모르겠으예. 그깟 집 한 개 없다고 아예 못 사는 것도 아니고, 다른 데 또 구해가꼬 살아가면 된다 아입니까. 손녀딸은 지 애미도 없이 내한테 붙어서 핵교도 열심히 대이고 있는데 이기 고집 부린다고 될 일도 아인 거 같고…….”

“그라모 그 집 할배는? 할배는 우짤 낍니꺼? 그 집 할배 집이다 아입니꺼.”

“지금 우리 집 할배가 살아봤자 얼마나 더 살겠으예? 고마 앞으로 더 살아야 될 아들한테 짐 남기는 거 보단 낫지 않겠으예? 할배도 잘 생각해 보이소.”

할머니는 이미 마음을 굳히신 것 같았다. 신흥상회 할아버지도 주름살을 축 늘어뜨린 채 말없이 털썩 앉으셨다. 이 싸움은 결국 주인 아저씨의 승리로 돌아간 것 같다. 이쪽을 쳐다보던 문상객들은 다시 자기네들의 이야기 세계로 돌아갔다. 태풍이 휩쓸고 간 것처럼 다시 조용해졌다. 주인 아저씨만이 안도하며 입가에 비린 미소를 띠운 채 남은 술을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

 

몇 개월 후, 우리 동네는 다시 변했다. 마트 옆에 우리 집이 있던 자리에는 주차장이 들어섰고, 신흥상회가 있던 자리에는 24시간 편의점이 들어섰다. 자가용을 타는 사람들의 마트 이용 횟수가 늘었고, 모든 슈퍼들이 문을 닫는 새벽이나 아침 식사를 때우기 위해 편의점을 찾는 사람들도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주인 아저씨의 태도는 여전했다. 아이들을 의심하고 무시하기 일쑤였고, 자신이 무슨 동네 대장이라도 되는 듯 어르신들을 깔보는 태도도 여전했다. 아직도 동네 사람들의 이야깃거리는 마트였다. 동네에는 악랄한 마트 주인이 동네 어른들의 집을 뺏어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마트 주인을 욕하면서도 여전히 물건은 그 마트에서 구입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사람들이었다.

신흥상회 할아버지가 어디로 떠나셨는지는 모른다. 이 동네 어딘가에 숨어 계신다는 말도 있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는 말도 있다. 아무튼 그 일 이후로 신흥상회 할아버지를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할머니와 나는 동네의 중간 지점쯤에 있는 정약국 약사 아저씨 소유의 집으로 이사를 왔다. 가끔씩 할머니는 어디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면 원래 있던 그곳으로 가곤 하셨다. 내가 “할머니, 우리 집 저쪽 방향이다”라고 말을 해야만 그제야 아, 하면서 방향을 틀었다. 꽤 오랫동안 이사한 집에 적응을 못 하시는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된 후에는 옛 집이 있던(이제는 주차장이 되어버린) 곳 앞에 멈춰서 멍하니 서 계시기만 했다. 주차장 위로 원래 있던 우리 집의 모습을 그려 넣으시는 것 같았다. 나는 이사 온 집이 훨씬 더 좋았기에 그런 할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새집에 완전히 적응이 된 후에도 할머니는 예전 집에 미련을 가지신 것 같았다. 최근에는 ‘그 집에서는’이라는 말을 입에 달기 시작했다. 그 집이 도대체 할머니에겐 어떤 의미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가끔씩 그 마트 앞을 지나갈 때마다 우리 집이 있던 터를 보며 왠지 모르게 씁쓸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 집이었으니까. 좋고 싫고를 떠나서 ‘우리 집’이었으니까 애착이 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집은 사라졌고 터는 남았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많이 변한 것 같았다. 하지만 실상은 그것 말곤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그 마트 얘길 자주했고, 동네 어르신들은 그 마트를 싫어했다. 더위는 갈수록 더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태양만이 예전 우리 집과 마트 위에서 더 강한 빛을 내리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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