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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회 창원대문학상 소설 장려-붉은 눈물

붉은 눈물

김안나/인문대 국문학과 2학년

 

회색빛 뿌연 연기를 내뿜고 있는 공장 뒤편으로 장난감만한 크기의 집들이 숨 쉴 곳 없이 붙어 있다. 멀리서 이 광경을 바라보면 꼭 모래알이 모여 모래성을 이루는 듯 했다. 조그만 집들은 흩어지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오밀조밀 붙어 햇빛에 닿을 듯이 높았다. 달동네 혹은 판자촌이라 불리는 이 동네는 더 이상 떠날 곳 없는 사람들의 터전이었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공장은 동네를 집어삼킬 기회만을 엿볼 뿐이었다.

동네 입구가 평소와는 다르게 소란스러웠다. 형광색 조끼를 입은 수많은 사람들과 트럭이 마을 앞을 지나다니고 있었다. 어느 봉사단체가 도시에 남은 유일한 판자촌을 불쌍히 여겨 김치 배달을 나온 것이었다. 마을의 하릴없는 노인들은 계단에 앉아 바쁘게 움직이는 봉사자들을 구경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성은이 허리를 꾸벅 숙이며 외쳤다.

“괜찮아. 그나저나 성은양이 늦는 건 처음이네.”

성은의 도착을 체크하며 책임자가 말했다.

“요즘 꼬마아이들 공부도 가르쳐 주고 있거든요. 시간이 좀 겹쳐서요.”

머리를 긁적이며 웃는 성은의 눈 밑으로 조그만 보조개가 생겼다. 사근사근한 성격의 성은은 누구와도 금방 친해졌고 그런 그녀를 모두가 반겼다. 사회 복지가였던 부모님 밑에서 자란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남을 돕는 것을 좋아했다. 얼굴엔 늘 반달 모양 웃음이 가득해 쉽게 보이기도 하지만 고집이 강해 한 번 결심한 것은 계속해서 밀어붙이는 패기도 있었다.

“아이고, 피곤하겠네. 오늘은 사람이 많아서 일도 금방 끝났어. 지금 마무리 배달 중이니까 성은양은 좀 쉬고 있어.”

책임자는 성은을 근처 벤치에 앉히며 말했다.

“그럼 마무리라도 도울 게요. 지금 이 김치 어디로 배달하면 되요?”

성은은 냉큼 트럭으로 뛰어가 마지막 남은 김치 상자를 들고서 외쳤다. 생긋 웃는 그녀와 달리 소란스럽던 주위는 금새 조용해졌다. 누구 하나 주위의 눈치만을 보고 있는 듯했다. 조금은 커진 눈으로 성은이 책임자를 바라보자 책임자 역시 당황스럽다는 듯 그녀의 눈을 피했다. 얼마간의 침묵이 흘렀을까 계단에 앉아 상황을 바라보던 할머니가 고요를 깨고 입을 열었다.

“악마의 집이라. 거긴.”

그 한마디에 말에 정적은 깨지고 다시 소란해지기 시작했다. 집에 대해 무작정 비난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성은에게 가지 말라고 충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성은이 할머니에게 다가가 다시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고개를 돌려 하늘 가까이 닿은 낡은 집을 가르쳤다.

“고등학교 때 사고로 임신하는 바람에 학생 둘이가 결혼을 했어. 여자앤 집에서 거의 쫓겨나다시피 하고서 남자애 집에 들어가 살았으니 결혼도 아니제. 아들 아끼던 애미가 여자앨 가만 냅뒀겠는가. 어린 여자애가 그것도 애까지 배고서 그 고된 시집살이 못견디제. 그라다가 그 집 아들 낳다가 지 엄마 죽어 삐고, 그래도 애랑 같이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 남자애 혼자 막노동판 뛰다가 결국엔 교통사고로 죽었다 아이가. 할매는 아들 잃고 정신 나가서 매일매일 울다가 자살하고. 할매 장례치를 때 그 애는 뭐하고 있었는 줄 아나? 학교 가더라. 그래도 자기 키워준 할맨데 학교 갈꺼라고 가방 매고 있더라. 금마가 그래 독하다. 지 주위 사람 다 죽이고도 어째 그래 아무렇지도 않아보이던지. 그 애는 사람 목숨 먹으면서 사는 악마다.”

할머니의 말에 상자를 쥐고 있던 성은의 손이 움찔거렸다.

“그럼 아이가 혼자 살아요?”

할머니의 말을 가만히 생각해보던 성은이 소리쳤다.

“얼라는 무신…….금마가 이제는 어른이라!”

“성은양 얼른 정리하고 우리도 밥 먹으러 가요. 김치는 집 앞에 두고 그냥 갑시다.”

“김치는 내가 줄 테니께 퍼뜩 가라. 악마랑은 엮이면 좋을 게 없다.”

할머니의 눈매가 매섭고도 차가웠다. 그 기세에 눌린 성은은 사람들 틈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반투명의 흰 상자 속 새빨간 김치가 흐릿하게 보였다.

 

동네 근처 국밥집에서 밥을 먹었다. 몇 없는 테이블은 봉사자들로 꽉 찬지 오래였고 식당 앞 평상에 앉아 배를 채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허겁지겁 손을 움직이는 사람들과 달리 성은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정확히는 국밥과 함께 나온 김치를 보고 있었다.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성은은 무언가 결심한 듯 일어섰다. 갑작스런 성은의 행동에 사람들의 이목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아무래도 김치 배달해야겠어요. 다 똑같은 사람이에요. 악마가 어디 있고, 천사가 어디 있어요. 그런 건 우리가 만들어 낸 거짓된 이름일 뿐인걸요. 먼저 일어날게요.”

성은은 주위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할머니가 있었던 자리로 뛰어갔다. 하지만 이미 할머니는 자리에 없었고 김치 역시 없었다. 계단에 주저앉은 성은의 눈에 노을져가는 해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있으면 감기들텐디?”

소리가 들리는 곳엔 할머니가 서있었다.

“할머니 어디 계셨어요?”

성은이 반가움에 할머니를 향해 달려갔다.

“김치 주고 왔지.”

“할머니 혼자서요? 무거운 데 저 부르시지.”

“겁먹어서 도망간 사람이 누군데.”

“그건 할머니가 겁주시니까......그나저나 집이 입구에선 꽤 먼데 어떻게 전해주셨어요?”

“퇴근할 시간이라 지나갈 때 전해줬지.”

할머니의 대답에 성은의 눈이 커졌다.

“그럼 지금 이 주위에 있겠네요?”

고갤 끄덕이는 할머니에게 감사의 인사만 전한 채 성은은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상상하던 것을 실제로 보고 나면 무서움이 없어지듯 성은 역시 악마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사실은 평범한 사람일 그 “사람“을 보고 싶었다. 타다다닥 뛰어가던 발걸음이 멈췄다. 커다란 키에 비해 조금은 왜소한 악마가 성은의 눈 앞에 있었다. 한 손에는 김치 상자를 들고 느릿느릿 걸어가는 그의 모습에 성은은 되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인기척에 남자가 뒤돌아보았다. 남자와 눈을 마주치자 성은은 입을 다물었다. 봉사를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처음 보는 눈이었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남자의 눈동자는 여태껏 성은이 본 눈과는 달랐다.

 

성은은 마을 입구 계단에 앉아 별을 보고 있었다.

“감기 걸려요.”

“이제 진짜 겨울인가봐요. 전 항상 같은 시간에 현우씨 기다리고 있는데 노을 지던 하늘이 이제는 깜깜한 밤하늘이 되버린 거보면.”

성은이 현우를 바라보며 웃었다. 곱게 파인 보조개를 보며 현우의 입도 움찔거렸다. 꼭 90일 째 되는 날이었다. 성은은 현우를 지겹도록 쫓아다녔다. 처음 한 달은 무시와 욕을 들으며 따라다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점차 그와 가까워지게 되었다.

“참, 이거 할머니가 우리 나눠먹으라고 주셨어요. 현우씨 집에서 먹어도 되죠?”

성은은 페트병에 담긴 매실주를 손에 들고서 말했다.

“허락하는 걸로 알고 먼저 올라갑니다.”

주저하는 현우를 향해 성은은 반달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서둘러 계단을 올랐고 현우 역시 그 뒤를 느릿느릿 따라 올라갔다. 현우의 집이 꼭대기에 있던 터라 성은은 다리가 풀려 방안에 주저앉았다.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고서야 성은은 현우의 집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작긴 했지만 방은 깨끗이 정돈 되어 있었다. 방에는 액자가 걸려 있었는데 거기엔 가족사진도 그림도 아닌 상장이 있었다.

“안주가 이것뿐이네요.”

현우는 할머니에게 받은 매실주와 김 몇 장을 안주 삼아 내어 놓았다.

 

“우리 진실게임 할래요?”

술기운이 오른 성은이 먼저 제안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처음보다 커졌으며 눈가의 꽃도 자주 피었다.

말이 없던 현우가 입을 열었다.

“왜 절 쫓아다녔어요?”

성은은 웃었다. 처음 현우를 보았을 때처럼 피식하고 웃었다.

“악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천사였더라고요. 현우씨 눈 되게 예쁜 거 알아요? 아니 눈매는 차가운 데 그 속에 눈동자가 따뜻하더라고요. 그 때 생각했어요. 내가 증명해보겠다고. 현우씬 악마라고 오해받는 거 답답하고 싫지 않아요?”

성은이 현우를 바라보았다.

“악마......맞아요. 사람들 목숨 먹고 사는 것도 맞구요.”

천천히 말을 마친 현우는 곧장 술잔을 비웠다.

“우리 가족 다 나 때문에 죽었어요. 엄마는 날 낳으시다 돌아가셨고 아빤......”

“교통사고라면서요. 그게 왜 현우씨 탓이에요. 아니에요.”

성은이 서둘러 대답했다.

“12살 때였어요. 그 날은 이상하게 하루 종일 딸기가 먹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아버지한테 떼를 좀 썼죠. 내일 아침에 사다 준다고 말해도 억지 부려서 아버지가 그 밤에 딸기를 사러 나갔어요. 그리고……사고가 난 거죠.그 일 때문에 할머니께서 정신을 놓으셨어요. 그러다 자살하고……그러니까 다 나 땜에 죽은 거 맞아요.”

그녀는 그를 위로하고 싶었다. 자괴감에 빠진 이 남잘 구해주고 싶었다. 처음 성은이 본 현우의 눈동자는 어딘가 슬픔이 가득했다. 도와달라고 말하는 듯 한 그의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지금도 말을 하는 현우의 눈엔 눈물이 가득했다.

“저는 잘 우는데 성은씨는 잘 웃더라구요. 그래서 처음엔 좀 멀리했어요. 나랑 너무 달라서.”

“에이 기뻐도 웃고 슬프면 더 웃어야죠.”

성은이 씨익하고 웃어보지만 현우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당황하는 성은은 화제를 돌리려 애썼다.

“저기 저 상장 말이에요. 개근상? 우와 현우씨 대단하다.”

“아버지가 학교 빠지는 걸 싫어했어요. 그래서 맨날 학교 가니 안가니 다투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막상 돌아가시니까 학교를 못 빠지겠더라구요. 뭐랄까……의무감?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혹시 할머니 장례 치를 때도?”

성은이 조심스레 물었다.

“네. 그 땐 어려서 뭘 몰랐죠. 결석 하고 싶지 않았어요. 단지 그 이유였는데 그 날 이후부터 악마니 저승사자니 그런 소문이 돌았어요. 그래서 놀림도 많이 받고 괴롭힘도 많이 받았는데 꾹 참았어요. 아빠 때문에. 물론 중학교 땐 그렇지 못했지만.”

“울지 말아요. 이젠 울지 마요.”

성은은 늘 같은 자리에서 현우를 기다렸다. 멀리서 현우가 성은을 발견했다. 그도 그녀처럼 웃고 싶었다. 예쁘게 박힌 눈 밑의 보조개가 꽃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입술만 꿈틀거릴 뿐 잘 되지 않았다. 현우는 늘 바보 같은 말만 하는 자신이 미웠다. 그만큼 성은은 현우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자신에게 다가온 유일한 여자였으며 자신을 이해하고 변화시키려 한 유일한 여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웃고 싶었다. 더 이상 울고 싶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그를 악마라 부른다. 늘 환영받던 성은도 이제는 모두에게 환영받진 못한다. 두 사람이 걸어가면 뒤에서 수군거리는 말들이 현우의 귀에 박힌다. 그런 현우와 달리 성은은 주위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재잘재잘 떠들고 있었다.

“미안해요.”

고개를 숙인 채 현우가 말했다.

“뭐가요?”

“나 때문에 성은씨까지 덩달아 안 좋은 소리 듣잖아요.”

현우의 말끝이 흐렸다.

“목소리가 왜 또 그래요? 설마 우는 거 아니죠? 저도 욕 좀 먹어본 사람이에요. 이정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성은이 도리어 크게 웃으며 말했다.

“현우씨 웃어 봐요. 나처럼! 스마일-”

 

“저도 갈게요. 성은씨 하는 봉사......나도 같이 갈래요.”

성은의 봉사활동에 이번엔 현우도 함께 했다. 익숙하게 지나다니는 성은과 달리 현우는 모든 것이 멀게만 느껴졌다. 처음 보는 상황들에 꿈일까 볼을 꼬집어보기도 했다. 소란스런 분위기며 낯선 사람들의 인사에 현우는 자꾸만 뒷걸음질 쳤다.

“현우씨 이거 38-2번지에 가져다 줘요.”

성은이 현우에게 지게에 연탄을 실으며 말했다.

“같이 가주면 안 돼요?”

현우의 말에 성은이 웃으며 말했다.

“안될게 어디 있어요. 가요.”

얼마쯤 계단을 오르니 낡은 녹색 대문이 보였다. 크지 않은 집이었지만 들려오는 소리로 보아 많은 가족이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성은이 익숙한 듯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가족들은 그녀를 반겼다.

“요즘 왜 이렇게 안보였어.”

할머니가 성은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할머니 나 요즘 다른데서 또 봉사 다니잖아.”

성은이 웃자 성은의 보조개도 함께 들어갔다.

“날도 추운데 적당히 하구, 사람들 많이 보고 싶어 하니까 얼굴 좀 자주 비춰라.”

“알았어요. 저 다른 곳에 또 배달가야해서 먼저 가볼게요.”

연탄을 가지러 내려가며 현우가 물었다.

“이런 활동 많이 하나 봐요? “

“부모님이 복지가셔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핏줄은 못 속이나 봐요.”

허허 웃는 성은과 달리 현우의 표정은 굳어갔다.

“현우씨 이번에는 아까보다 좀 더 올라가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성은의 물음에 현우는 아무 말이 없었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미안한데 저 먼저 가볼게요.”

자신을 부르는 성은을 무시한 채 현우는 그 자리를 떠났다.

 

한동안 두 사람은 만날 수 없었다. 아니 일방적으로 만남이 끊겼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그를 기다렸지만 그는 집을 나서지 않았다. 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쳐도 묵묵부답이었다. 성은은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알 수 없는 현우의 모습에 화가 나기보단 안타까웠다. 무엇 때문인지 묻고 싶었지만 묻기는커녕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할머니에게 찾아가 보았지만 답을 얻진 못했다.

“요즘에 사람 된 것 같아 보기 좋드만 뭔 일이 있었는진 몰라도 꼭 지 애비 죽었을 때 맹키로 그런다. 그냥 가만히 집에만 있는 것이 영 맴에 걸린다.”

성은은 마을을 나서다 계단에 주저앉았다. 현우가 변한 것은 연탄 봉사 날이 분명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성은은 알 수 없었다.

현우가 성은을 부른 건 보름째 되는 날이었다.

“성은씨.”

계단에 앉아 있는 성은을 현우가 불렀다. 성은이 현우를 발견하자 다시금 미소가 번졌다.

“그동안 왜 그랬어요.”

성은의 물음에 현우는 고갤 들고 성은을 바라봤다. 참 예쁜 얼굴이었다. 성은의 하얀 피부가 달빛에 반짝이는 듯 했다. 너무나 보고 싶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현우는 무서웠다. 자신만 성은을 그리워하는 것 같아 두려웠다.

“저는 울고 싶지 않아요.”

“네?”

현우의 뜬금없는 말에 성은이 되물었다.

“생각해보면 전 늘 울었어요. 혼자인 게 서럽고 외로워 서요. 그런데 성은씬 아니었어요. 매일 웃었죠. 당신과 함께하고, 나누고 싶어서 전 노력했어요.”

“알아요. 고마워요.”

성은은 현우를 달래듯 말했다.

“저는 당신에게......어떤 사람인가요?”

현우의 물음에 성은은 당황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져 버릴 것 같은 눈망울로 현우는 성은을 바라보았다.

“저도 현우씨와 함께하고 나누고 싶었어요.”

“그럼 당신도 날 사랑하나요?”

현우가 성은의 손을 잡았다.

“그걸 사랑이라고 부른다면 사랑이겠죠. 그렇지만 사랑이라고 해도 그건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에요. 제가 현우씨와 나누고 싶었던 건 기쁨이에요.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기쁨이요. 전 그저 현우씨가 죄책감에서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고 싶었어요. 오해하게 했다면 정말 미안해요.”

성은이 현우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현우의 얼굴에 눈물이 흘렀다.

성은은 다시 활기를 찾았다. 그녀는 더 많은 봉사를 하고 더 많이 웃었다. 시간이 흐르고 그녀의 눈 가에 한 줄기 주름선이 그려졌다. 다시금 가을이 오고 공장의 회색빛 연기도 변함이 없었다. 김치 통을 들고서 계단에 앉자 잊고 지냈던 현우가 떠올랐다. 노을 빛 지는 하늘을 바라보는 성은은 인기척을 느끼고 옆을 돌아봤다.

“할머니!”

“오랜만이여.”

무뚝뚝한 말투지만 성은은 좋았다.

“김치 배달은 진즉에 끝났는디 넌 거기서 뭣하냐?”

할머니가 성은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

“전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요.”

성은이 멋쩍게 미소 지었다.

 

늦은 시각은 아니었지만 해는 빨리 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무심코 연 현관문 앞에 성은이 서 있었다.

“김치 배달이요.”

어색하게 웃고 있는 성은과 달리 현우의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

“거기 두고 가요.”

현우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문을 닫으려 했다.

“잠깐! 이것도......”

성은은 페트병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매실주에요. 할머니가 나눠 먹으래요. 꼭.”

어쩔 수 없다는 듯 현우가 문을 열었다.

“들어와요.”

성은은 예전과 다를 바 없는 집에 묘한 편안함을 느꼈다.

“안주라고 할 만한 게 이런 것뿐이네요.”

현우는 사과를 하나 가져왔다.

“오랜만이에요.”

성은이 조심스레 말했다. 그러나 현우는 대답도 않고 사과를 깎을 뿐이었다. 그의 모습에 성은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현우는 예전으로 돌아갔다. 아니 어쩌면 더욱 외로워졌을지 모른다. 이제 그의 눈에는 과거의 따뜻함조차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미안해요. 정말. 그 날 그렇게 말하고 다시 현우씨 찾아갈 자신이 없었어요.”

성은이 고개를 숙였다. 현우 역시 말이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정적만이 흐르고 그 침묵 위로 사각거리는 칼질의 소리만 울려 퍼졌다.

“이제는 편하게 얼굴 보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무리였나 봐요. 저 먼저 가 볼게요.”

성은이 일어났지만 현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문을 열고 나가려는 성은에게 현우가 따라왔다.

“마지막까지 당신은 웃네요.”

성은이 돌아봤다. 현우는 그녀에게 한걸음 더 다가갔다.

“당신은 나를 이해한다고 했지만 사실 그건 이해가 아니야. 날 이해했다면 그렇게 떠나진 않았을 거야! 당신을 많이 욕했어. 그런데......그런데도 잊히지가 않더라. 보고 싶었어.”

현우가 성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성은의 마음을 두드린다. 늘 웃기만 하던 성은이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현우의 어깨를 꽉 쥐었다.

“그래요. 울어요. 난 당신이 울길 바랬어요. 나처럼. 이제 당신도 진짜 나를 이해하는 거죠?”

성은의 눈물은 턱을 지나 심장에 떨어졌다. 그곳에선 붉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흐흐.”

이상하게도 현우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의 눈에는 눈물 대신 깊은 보조개가 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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