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acher, Michelle teacher!

  내 이름은 Michelle. 1월 3일부터 28일까지 약 한 달간,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Michelle’ 이라는 이름표를 목에 걸고 주위로부터 'Michelle teacher'라고 불린다.

  나는 현재 우리학교에서 진행되는 어린이 영어캠프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다. 나는 총 14개 반 중에서 7반 담당 한국인 교사이며, 수업시간 아이들의 학습을 돕는다. 아이들이 원어민 교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때, 한국어로 설명해 주고, 학습 분위기 조성, 숙제 알려주기, 간식 나눠주기, 매 쉬는 시간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진다. 이 밖에도 학부모 상담전화 돌리기 등의 소소하지만 중요한 업무들이 주어진다.

  매일 아침, 교실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되는 아이들의 수다는 때론 나 혼자서는 감당해내기 버거울 정도로 통제하기 힘들다. 또 때때로 발생하는 사건사고들은 나를 하루에도 수십번 들었다 놓았다 한다. 하지만 매번 나를 이렇게 반겨주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괜히 뿌듯해지기도 한다. 말썽꾸러기가 몇 명 있지만, 어느새 내 옆에서 ‘선생님~’하고 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 화염처럼 솟아오른 나의 화는 어느 정도 누그러드는 것이다.

  점심시간, 아이들을 데리고 밥을 먹다가 꿈이 무엇이냐고 한 명씩 묻기 시작했는데, 한 아이가 꽤 뜸을 들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그 아이는 한쪽 시력이 없는 아이인데 자세히 묻지는 않았지만, 아마 자신처럼 아픈 아이들을 치료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모두의 꿈이 무엇인지 다 듣고 나자 한 아이가 내게 물었다. “선생님의 꿈은 뭐예요?”. “내 꿈은...”. 순간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할이지 막막했다. 꿈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 온지가 꽤 되어서 일까. 그러자 다른 아이가 “선생님은 당연히 선생님이 꿈이겠지! 그러니까 지금 선생님을 하고 계시잖아”.

  내게도 꿈이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까지만 해도 초등학교 때부터 말해오던 선생님이라는 꿈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하지만 성적이 좋지 않았고, 좋은 사범대에 들어가지 못했고, 임용률이 현저히 낮은 이유로 부모님이 반대하셨고, 나 또한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꿈을 접고 말았다. 그 이후 나는 내가 접은 꿈을 다시 뒤 돌아보지 않았는데, 이미 사범대에 들어가지 못한 이상 선생님이라는 꿈을 실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꿈을 접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다.

  아이들과 이야기 하다 보니. ‘과거 내 꿈은 선생님이었고, 나는 지금 선생님이 되어있어’라는 생각이 번뜩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선생님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느낌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아니지만, 나 또한 아이들에게 선생님인데, 왜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날부터 나는 ‘나도 정말 선생님이야’라는 생각으로 이전보다 아이들에게 좀 더 살갑게 굴고, 아이들과 다정하게 지내려 노력하는 등 내가 ‘진짜 선생님’이 된 듯이 행동하려 노력했다.

  할 수만 있다면 진짜 선생님처럼 아이들에게 수업도 하고, 좀 더 즐겁게도 해주고 싶은 마음은 매일 굴뚝같았지만 어느 날 선생님이 되어버린 내가 하루아침에 수년간의 내공이 쌓인 진짜 선생님을 따라 가기엔 역부족인 것은 당연했다.

  이 일이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매 방학 때마다 보았던 풍경 때문이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웬 초등학생 아이들이 식당으로 몰려들어오고 그 주변에 있는 보조교사는 아이들에게 소리치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며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 처음엔 ‘저 아이들이 우리대학에는 왜 온걸까’ 하고 궁금해 여기다가 주변에서 아이들을 통솔하고 함께 식사를 하는 보조교사를 보면서 ‘나도 저일 한번 해보고 싶다’, ‘언젠가 꼭 해봐야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는 그저드는 생각이라고만 여겼는데, 이제 보니 그 생각들은 나의 무의식적인 꿈을 반영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꿈’이란 자신의 현재 상황보다 밝고, 나은 미래를 뜻하고 개인의 소망을 의미하기도 한다. 때문에 꿈이 이루어 졌다는 것은 그것이 어떠한 가치가 있든 간에 개인이 소망하던 것이 이루어 졌다는 점에서 큰 가치와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을 가지고 있으며 꿈을 이루는 꿈을 꾼다. 어떤 이는 부자가 되는 꿈, 어떤 이는 건강해 지는 꿈, 어떤 이는 짝사랑 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꿈, 학창시절에는 보통 미래의 직업을 꿈이라 일컫는다. 하지만 그것을 이뤄내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이일은 지난 날 나의 작은 소망이었으며, 현재 내게 물질적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학창시절 내가 꿈꿔왔던 선생님 이라는 꿈을 실현할 수 있게 해준, 물질적 가치보다 더 많은 것을 내게 준 소중한 기회이자 경험이 되었다. 내 업무와 역할은 분명 수업을 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업무는 아니었지만, 하루 7시간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느낀 행복과 추억들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보조’교사 이기에 누군가는 ‘어떻게 교사에 비할 수 있겠느냐’라고도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 ‘행복은 상대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내가 굳이 교사의 역할을 하지 않고 보조교사에 머물러 있어도 교사만큼의 아이들에 대한 관심, 사랑 그리고 나 스스로의 만족감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1968년 프랑스에서 학생운동이 한 창이었던 시절, 바리케이드 안쪽에 씌어진 여러 낙서 중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고 한다. ‘Ten days of happiness’. 열흘 동안의 행복. ‘Michelle teacher’로 불린지 오늘까지로 17일 째, 이정도면 나는 엄청난 행복을 누리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몸에서 진이 빠져 피곤이 몰려오지만, 내일 다시 시작할 일과들을 생각하면, 두근거리기도 하고 어떤 일이 있을지 기대 되기도 한다.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아서 많이 아쉬워 진다. 'Michelle teacher'로 살아온 이 시간들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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