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

이규진

하얗고 딱딱한 태양빛 아래

여름날 시체처럼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다

그곳에선 아주 작은 소리마저 소음으로 들리고
책장 넘기는 소리는 날카로운 흉기로 분류된다.

시원한 바깥 겨울 공간과 이질적으로

빡빡하게 난방 되어 소리를 잃어버린 공기가

이곳이 이상한 나라의 영토임을 알린다.

그 곳에서 엄청난 사건이 하나 일어난 적이 있었다.

시체처럼 앉아있던 학생 한명의 휴대폰이 소리 내어 울린 것이다

그 칼날 같은 소리는 흉기로써 여러 명을 상처 입혔고

피해자들은 피처럼 불쾌감을 흘리며

그 고통을 큰 소리로 조용히 노트에 필기했다

몇 분후 이 미치광이 흉악범은 바로 추방되었다.

그의 죄명은 살인 미수죄이었다

그것은 정말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 곳에서 사소한 사건이 하나 일어난 적이 있었다.

시체처럼 앉아있던 학생 한명이 독약으로 자살한 것이다

그 학생은 며칠이고 시체로 앉아 있었고

완전한 침목으로 구원을 소리치던 학생은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못했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나 시체는 부패하고

피처럼 악취가 시끄럽게 흘려 펴지던 날

딱딱하고 시끄러운 시체는 추방되었다.

그의 죄명은 소음 공해죄 이었다

그것은 정말 사소한 사건이었다.

하얗고 딱딱한 태양빛 아래

따닥따닥 모여 배열된 감방 같은 칸막이 속에

오늘도 사람들은 혼자서 앉아있다.

빈집

칼날 같은 바람은 겨울새벽을 순찰하고

초병이고 싶은 나는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딱딱하게 굳은 채로 전방을 주시한다.

바람은 나의 집인 초소를 찌걱찌걱 걷어차고

상처 없이 잘려진 초소 정문으로 바람이 침입한다

하지만 적으로 구분되지 않은 그 녀석은

나에게 재생 버튼을 허락하지 못하고

미친바람은 내 온몸에 생체기를 남기고 있다.

초소가 초병에게 물었다

겨울바람이 춥지 않냐고

초병은 생각한다

겨울바람에 온몸이 잘려나간 것 같아

초병은 말없이 전방을 주시한다.

초소가 다시 초병에게 물었다

아무것도 널 묶고 있지 않는데 왜 도망가지 않냐고

초병은 생각한다

…….

초병은 말없이 전방을 주시한다.

높은 담 넘어서 검은 물체가 넘어온다

소리를 잃어버린 시간은 침입을 허용하고

집 안 사람은 자신의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다.

바로 그때

초병은 재생버튼을 누른 것처럼

달려들며 큰소리로 짖는다

검은 물체는 당황하여 도망가고.

초병은 정지버튼은 누른 것처럼

딱딱하게 굳은 채로 전방을 주시한다.

칼날 같은 바람은 겨울새벽을 순찰하고

앞마당 구석에는 작고 허름한 초소가 놓여있다

멀리서 본 초소는 빈집처럼 조용하다.

풀지 못한 수학 문제집

#나의 이야기

며칠 전 책장에서 툭 튀어나온 책 하날 보았다

벽지 같은 책장에 대못마냥 박힌 문제집

비석처럼 세워진 몇 권의 책 이름들 속에

고등수학OOO이라는 글자가 을씨년스럽게 적혀있다

얼굴이라도 비칠 것 같은 깨끗한 표지

빈틈없이 채워진 275 페이지의 종이

여백의 미를 살린 낙서 하나 없는 내용물

자로 그은 듯 반듯하게 접혔던 표지만이

이 문제집이 나름대로 헌책임을 알린다.

대학생이 된 지금

나에겐 필요가 없어진 문제집 이었다

폐지 상자에 넣고 돌아서던 찰나

길 잃은 아이마냥 버려진 문제집과

나는 실타래처럼 엮여있음을 알았다

문제집은 그 시절 나의 나약함이었고

지금도 나는 나약함과 엮여 있는 것이다

문제집을 가장 잘 보이는 책장에 꽂았다

나의 나약함과 마주하기 위해.

#책의 이야기

태어나 처음으로 본 것은 조용한 어둠이었다

똑같이 생긴 형제들과 햄버거처럼 쌓여있었고

맨 아래 깔려 압력에 괴로워했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곳은 창고라는 지옥이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창고문 사이로 광명의 햇살이 나타나고

천사 같은 사람들은 나를 트럭에 실었다

나는 이리저리 옮겨지며 마침내 한 장소에 다다랐는데

주위 친구들 말로는 서점이라는 노예시장 이였다

나의 역할은 노예였다

만약 팔리게 되면 주인이라는 사람은

펜이라는 흉기로 온몸에 문신 같은 상처를 만들기도 하고

심지어는 찢어서 먹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팔릴 땐 사시나무마냥 떨고 있었다

책장에 꽂혀서 사형수의 기분으로 기다렸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생채기 하나 만들지 않는다

가끔 이리저리 옮겨주면서 바라볼 뿐이다

며칠 전엔 햇빛 잘나드는 자리에 옮겨주고는

부처님 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역시 이 사람은 나의 구원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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