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담는 텀블러

김  수  윤/사회대·신문방송학과·2020 입학

“그거 하나로 뭐가 달라지겠어요?”

친환경, 환경 정책에 관련된 글이나 영상을 볼 때마다, 꼭 한 번쯤은 찾을 수 있는 의견이다. 어차피 미국에서는 분리수거도 제대로 안 하고, 대기업에서는 온갖 쓰레기를 남발하는데 왜 개인인 내가 불편하게 살아야 하는지 불만을 토로한다. 어쩌면 맞는 말일수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런 날 선의견들은 노력하는 나에게 가시처럼 박힌다. 이 가시들은 나를 성가시고 불편하게 하지만, 굳이 가시를 빼진 않는다. 오히려 이 가시들은 나의 자존심을 긁어, 좋은 느낌의 승부욕을 느끼게 해준다.

우리의 아름답고 푸른 행성 지구는 인류가 아는 유일한 삶의 보금자리이다. 알고 보니 지구는 참으로 작고 연약한 세계이다. 지구는 좀 더 소중히 다루어져야 할 존재인 것이다. 코스모스에서 칼 세이건은 이렇게 말했다. 맞다. 우리는 지구를 소중히 다룰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환경 보호에 대해 배운다. 눈에 띄게 변한 계절의 온도,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북극곰들의 모습은 TV로 흔하게 접하는 장면들이다. 굳이 누군가에게 배우거나 공부하지 않아도 지구 환경 문제에 대해 쉽게 알 수 있다. 우리 학교에서 손꼽을 정도로 유동 인구가 많은 청운지. 그 맞은 편에는 기후 시계가 청운지를 밝혀주고 있다. 조금씩 줄어가는 숫자를 보고 있으면섬뜩하기도 하다. 주변 곳곳에서 우리에게 환경 보호 ‘퀘스트’를던진다. ‘레벨 업’ 같은 보상이 아닌 게임 종료를 막기 위한 경고겸 퀘스트다. 이렇듯 주위를 조금만 살펴도 환경 메시지를 쉽게 알수 있는 세상에서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은 잘 없다. 하지만, 항상 이러한 문제에는 ‘내가 왜?’ 라는 질문이 따라다닌다.

롯데리아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시절, '퀘스트’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현실에서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종이 빨대 제공에 화내는 손님들, 음료를 쏟고 플라스틱 뚜껑이 없어서 쏟았다고 변명하는 손님 등 NPC 아르바이트생들에겐 꽤 힘든 일이었다. 일을 하면서 정부의 일회용품 규제 정책에 반발하던 손님들을 하루에 한 명씩은 꼭 만날 수 있었다. 왜 자신들이 불편함을 느껴야 하는지에 대한 반발이었다. 나 또한 종이 빨대를 선호하지 않아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매번 반복되는 상황들에 권태를 느꼈다.

요즘 나의 외출 필수품은 ‘텀블러’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 엘리베이터 1층까지 내려와도 텀블러를 챙기지 않았다면 다시 집으로 올라간다. 그만큼 요즘의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중한 텀블러는 꽤 귀찮은 것이 사실이다. 가방을 챙기지 않으면 나의 한 손은 텀블러에 묶여쉽게 전화조차 받을 수 없는 불편한 손이 되어 버리고 만다. 가뭄의 단비 같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원하게 흡입하고도 집 밖의 나는 계속해서 빈 텀블러를 챙겨야 한다. 평생 잃어버린 우산만 몇 개던가. 덜렁대는 게 특기인 나는 텀블러조차 잃어버릴까 전전긍긍한다. 또 집에 도착하자마자 설거지를 해야 한다. 다음날도쓰려면 미리 말려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카페인이 필수인 일상에서카페에서 주는 플라스틱 컵을 쓰고, 그 흔한 플라스틱 쓰레기통에 버리기만 하면 될 텐데 나는 오늘도 굳이 굳이 귀찮음을 얻으며 텀블러를 챙긴다.

제로 웨이스트. 일상에서 일회용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거창한 말이 유행인 요즘, 솔직히 나도 처음부터 긍정적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다. 분명 ‘나 하나로 달라지겠어?’ 라고 생각했던 날들이 당장 어제의 이야기만 같다. 편협한 내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는 고작 60초짜리 짧은 영상 하나 때문이다. 그 영상 속 주인공은 자신이 살림하며 제로 웨이스트를 최대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이 왜 실천하고 있는지 이유와 함께 소개하고 있었다. “저는 저를 위해 노력해요. 저를 위해 환경을 생각합니다. 건강한 미래를 살기 위해서요.” 이 짧은 문장은 환경 문제에 대한 오만한 생각을 붕괴시키는 말이었다. 이때까지 환경을 위한 이런저런 이야기, 퀘스트들은 결국 개인에게 책임감을 부여하기 위해 하는 말들 같았다. 그저 우리 자손을 위해, 지구가 아프니까.라는 말들 말이다. 하지만 ‘나를 위해 한다.’는 말은 내가 하는 행동들에 희망을 품게 해주었다. 종이 빨대가 싫은 나를 위해 실리콘 빨대를 쓴다. 나를 위해 배달 음식 대신 건강한 집밥을 해 먹고, 나를 위해 환경 호르몬 걱정을 덜어주는 제품을 사용한다. 왜? 결국 이 땅은 내가 살고, 내가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왜 내가 해야 해? 하는 불평 섞인 질문에 ‘나를 위한 거니까’라는 대답을 한다. 그저 죄책감을 덜기 위해 의무적으로 챙겨 다닌 텀블러는 행복한 나, 건강한 미래의 나를 위한 희망을 담는 텀블러가 되었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바로 이거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열심히 살아가고 꿈꾸며, 내 삶을 가꿀 수 있는 ‘희망’이다. 나 하나 텀블러를 사용하고, 분리수거를 열심히 한다고 지구 오존층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혼자 일회용품을 줄인다고 지구 온도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희망을 품을 뿐이다. 그저 행복한 꿈을 위해, 미래를 위해 귀찮게 사는 것이다. 세상의 날 선 가시 같은 의견들에 굳이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의 의견도 어찌 보면 맞는 말이기에. 하지만 ‘환경 보호’라는 거창한 말 대신 그냥 나를 위해 산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 미래를 위해 텀블러를 쓰며, 환경을 이유로 이용해 먹는다. 내가 영상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나를 보고 누군가 함께 해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으며 살아간다. 나의 텀블러에는 미래를 위한 희망, 미래를 위한 힘이 들어있다. 나는 나를 위해 노력하는 이기적인 환경 지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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