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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그냥 장난이었다 하겠지만,
  • 문자영 기자
  • 승인 2023.03.13 08:00
  • 호수 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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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학교폭력?

우리나라 법은 ‘학교폭력’을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폭행 ▲감금 ▲협박 ▲약취 ▲명예훼손 ▲강제적인 심부름,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폭력 정보 등에 의해 신체, 정신,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그렇다면 현행법은 피해를 입히는 행위의 범위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단순히 동급생을 장난삼아 놀리는 행위도 학교폭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현행법에 학교폭력의 피해 판단 기준은 명시돼있지 않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학교폭력 관련 판례들은 가해행위가 학교폭력인지 아닌지 판단하는데있어 피해 학생의 감정을 주된 기준으로 보고 있다. 법원은 피해 학생이 위협이나 두려움을 느꼈다면 그 행위는 학교폭력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법원은 피해 학생의 신체 상황과 정신연령, 대처 능력에 따라 학교폭력 여부를 사건마다 개별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즉 신체 폭행이나 금품 갈취와 같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폭력 외에 대화, SNS 내 채팅 등 정서적인 부분에서도 장난이었다는 가해학생의 주장과는 관계없이 피해 당사자가 위협으로 느꼈다면 학교폭력으로 인정된다. 장난의 경중에 따르지않고 피해 학생의 감정에 따라 학교 폭력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2015년, 창원지법은 특정 학생을 상대로 의자를 몰래 빼 넘어뜨린 후 외모와 말투를 놀린 사건을 학교폭력으로 인정했다. 가해 학생들은 친구 사이의 장난이었다고 해명했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현행법의 주관적인 학교폭력 범위에 개정이 필요하다는 비판 또한 존재한다. 앞서 볼 수 있듯 현행법에 따라 학교 밖에서 발생한 사건도 학교폭력으로 규정된다. 어린 마음에 친구 간 단순한 다툼을 학교폭력으로 확대해석할 가능성이 있고, 이런 경우 사실관계 확인이 어렵다. 지난 달 5일(일) 정부 운영의 온라인 청원 사이트에 현직 초등교사가 학교 밖 폭력까지 교사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담만 가중할 뿐이고, 오히려 그 사실관계를 가려내느라 본업에 영향이 간다고 올린 글이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처벌vs교화

학교폭력 가해자들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한 경우 가해자를 학교 측과 경찰 측에서 각각 처벌할 수 있다. 학교 측에서는 학교폭력이 신고된 후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학폭위)를 여는 것이 원칙이나, 가해의 수위가 심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선도 조치가 이뤄지기 전 학교장 재량으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때 조치는 가해 학생 부모의 동의 없이 이뤄진다. 가해 학생은 서면사과, 협박 및 보복 행위 금지, 학교 내 봉사, 사회봉사, 전문가와 특별교육 이수, 출석 정지, 학급교체, 전학, 퇴학 총 9개 처분(차례대로 1호~9호) 중 하나 혹은 
동시에 여러 조치를 받는다. 학폭위는 가해자에 대한 조치를 결정할 때 가해 행위의 심각성, 지속성, 고의성, 가해 학생의 반성 정도, 가해자와 피해자 간 화해 정도 총 5가지의 판단 요소를 고려한다. 법원행정 기구가 아닌 학폭위를 따로 운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학교폭력 사건 징계의 목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학교폭력 징계들은 가해 학생의 교화 및 선도, 나아가 학생 간 관계 회복을 목적으로 한다. 징벌 위주의 기계적인 대응으론 학교폭력 근절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한편 경찰 측에 학교폭력으로 고소당하면 가해 학생의 나이에 따라 다른 법을 적용한다. 14세 이상은 형법 혹은 소년법, 10세 이상 14세 이하는 소년법에 따라 처벌을 내리지만 10세 미만의 경우는 형사처벌과 보호처분을 받지 않는다. 형사처벌로 형법을 따를 경우 상해, 폭행, 갈취 등 가해유형에 따라 징역이나 벌금형을 받게 된다. 학교폭력 가해 학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학생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에 남는 기록이다. 가해 학생의 모든 기록은 학생부에 남게 된다. 학생부는 졸업 후 5년 동안 보존되며 고등학교와 대학교 입시 전형 자료로 제공된다. 국내 대학 2024년 대입 전형의 79%는 학생의 학생부를 제공받아 평가에 반영하는 수시 제도로 이뤄진다. 전체 중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수시 모집에 학교폭력 기록은 치명적이다.

하지만 학생부 기록을 반영하지 않는 수능 전형, 즉 정시 모집이라면 학교 폭력 사건의 가해자에게 주어지는 페널티는 전무하다.

 

현실에 복수는 없었다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더 글로리’는 가혹한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결국 고등학교를 중퇴한 주인공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범히 사는 가해자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이다. ‘더 글로리’는 지난 1월 넷플릭스 플랫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TV 프로그램’ 8위로 랭킹에 올랐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한국 고등학교에서 한국 교복을 입고 등장한다. 오롯이 한국의 정서로 만들어진 드라마가 어떻게 전 세계적인 공감을 받았을까?

사실 학교폭력은 한국 사회만의 그림자가 아니다. 태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타이 더 글로리 (Thai The Glory)’ 해시태그를 통해 학교폭력을 당할 때의 감정을 공유하는 글들이 이어졌다. 유명인들의 학교폭력을 고발하는 내용에 유명인들이 직접 사과하기도 했다. 미국은 주법으로 학교폭력 대응 법률을 마련했다. 주마다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무관용 원칙을 고수해 엄중히 벌한다. 미국 위스콘신주에서는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따돌림을 주도한 학생의 부모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프랑스의 경우 만 13세 이상 미성년자가 또래를 괴롭혔을 때 형법에 따라 징역 6개월부터 최대 18개월 및 벌금 7,500유로(한화 약 1,000만 원)에 처한다. 이렇듯 학교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은 세계적으로도 보편적이다.

하지만 무릎 꿇고 속죄하는 가해자는 현실에 없었다. 지난 28일(화)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학폭위에서 심의한 가해자 중 4.7%만이 전학 처분을 받았고 퇴학은 0.2% 수준에서 머물렀다. 심지어 전학 및 퇴학 처분은 2020년 8.6%, 2021년 6.7%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학폭위가 징계 처분을 내리더라도 가해 학생이 집행정지와 행정소송을 제기하면 학교는 이를 바로 집행할 수 없다. 집행정지란 회복이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인정받을 때 처분 효력을 잠시 멈추는 결정이다. 가해자 학생 측이 학교폭력 가해 사실로 향후 학교생활이나 대입에 치명적인 손해를 입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 법원은 집행 정지를 거절할 만한 마땅한 이유가 없는 현실이다. 자녀의 학교폭력 가해 사실로 국가수사본부장에서 사의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도 2018년 전학 처분을 받았으나, 집행정지를 신청하여 2019년 4월 패소하기까지 소송을 끌고 간 바 있다. 가해 학생들이 학폭위로부터 처분 명령이 내려오면 로펌과 변호사를 동원해 일단 처분을 늦추는 방법이 관례처럼 굳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정순신 변호사 낙마 사건으로 알려졌다. 소송을 더 지체한다 해도 기존 판결을 뒤엎고 가해자가 승소할 확률은 낮다. 그럼에도 가해자 학생 측은 결과와 관계없이 소송을 지연시키는 것만으로 변호사에게 사례를 약속한다. 졸업까지 소송을 끌어 학생부에 기록이 남지 않도록 해 입시에 불이익을 받지 않는 꼼수다. 이런 실정에 로펌은 학교폭력 소송 지연을 홍보 문구로 걸고, 소송 지연 전문변호사까지 나오고 있다. 학폭위를 여는 데 성공하더라도 피해 학생들은 소송이 지연되는 동안 가해 학생과 공간적인 분리조차 이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동안 피해 학생 측이 할 수 있는 건 탄원서 제출 정도가 전부다. 

소송을 진행할 때 일부 가해자는 피해자를 거꾸로 가해자로 몰아 신고하며 2차 가해까지 했다. 2차 가해란 피해자의 이차적인 피해를 말하는 것으로 범죄 피해에 대한 책임을 피해자에게 묻는 등 구체적인 피해 상황에 더해 피해자를 모욕하는 행위 등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2차 가해’란 말이 처음 사용된 사건은 2004년 경남 밀양시에서 발생한 집단 성폭행 사건이다. 밀양 지역 남고생 44명이 여중생 1명을 집단 성폭행한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물론, 학교폭력에 속한다. 피해 학생은 사건 이후에도 가해 학생과 그 부모 및 관계자들에게 심적인 가해, 즉 2차 가해를 받았다. 피해자들은 학교폭력 사건에서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단어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성장통

2021년 6월 시행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은 이 법이 학교폭력의 예방과 대책을 규정함으로써 피해 학생의 보호와 가해 학생의 선도, 교육 및 가해 학생 간 분쟁 조정을 통해 학생을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하기 위함이라고 명시돼있다. 그러나 소송 지연이라는 꼼수를 통해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는 가해 학생의 모습에서 선도와 교육은 보이지 않고, 분쟁 조정은커녕 피해 학생은 2차 가해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도 벅차다.

학교폭력 피해자로 인정받은 학생 수가 최근 5년간 13만 명에 육박한다고 교육부는 밝혔다. 코로나 19 여파로 등교 일수가 줄자 학교폭력 신고가 25% 수준으로 줄었으나 정상 등교가 시작되고 반년도 되지 않아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사안이 중대하지 않고 피해 학생과 보호자가 학폭위 개최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 학폭위 없이 학교장이 자체적으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학교장자체해결제가 도입된 2019년부터 학교장이 처리한 학교폭력 사건은 전체 학교 폭력 사건 중 65%를 웃돌고 있다. 학교폭력에 대해 문제를 키우지 말고 학교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의식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행히도 학교 폭력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점차 엄해지고 있다. 톱스타 반열에 오른 연예인도, 구단의 중심이 되는 유명 선수도, 권력을 눈앞에 둔 고위공직자마저도 학교폭력 논란을 안고 가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미국 뉴욕타임스(이하 NYT)는 한국 사회 각계에서 학교폭력에 대한 폭로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고, 그에 따라 가해자가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것을 자업자득으로 보기 때문에 대중적인 지지를 얻는다고 분석했다. NYT는 한국의 학교폭력 처벌은 미국보다 약한 경향을 보인다며, 한국에서 학교폭력에 대한 폭로가 뒤늦게 이뤄지는 이유가 사건 발생 당시 제대로 처벌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덧붙였다. 

사회 전반도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제도를 계속해서 내놓고 있다. 교장은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학교폭력 실태 및 대처방안 교육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기별 1회 이상, 학교폭력 징후 판별법과 가정 인성교육에 관해 학부모와 교직원을 대상으로 학기별 1회 이상 실시하도록 법률로 규정했다. 학교 내 자치 기구로 운영되는 학폭위의 강제력이 모자란다는 비판에 따라 교육청은 교육청이 주관해 심의하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를 개편하겠노라 발표했다. 교육청이 직접 피해자, 가해자, 관련자까지 사정을 청취하고 조사해 조치 결정까지 정확히 판별하겠다는 의지다. 

한 사람의 인격이 완성되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입은 상처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학교폭력을 견디지 못한 피해 학생들은 결국 학교를 떠나거나, 나아가 아예 한국에서 발을 떼기도 한다. 가해 학생의 징계에 주목하느라 피해 학생의 남은 학창 생활은 외면한 게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의 잘못으로부터 사회는 자유로울 수 없음을 명심하고 반짝 이슈가 아닌 꾸준한 정비를 이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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