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속 대사다. 햄릿을 완독한 사람은 찾기 힘들어도 누구나 이 한 줄은 알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몇 번이나 마주쳤던 문장이지만 오늘에서야 새삼 붙잡아 자답해 본다. 철학적 사유나 깊은 고민 없이 단숨에 얄팍하고 건조한 답이 떠오른다. ‘근데 살아야지 뭐, 그렇다고 죽을 순 없잖아.’ 생과 사. 나는 이 두 글자 앞에 아직 어떤 감정이 울렁거리거나, 사색에 잠기거나, 고뇌하지 못한다. 평면적으로 다가오는 글 앞에 나의 사고는 한없이 하찮고 허술하다. 기껏해야 20여년을 더 산 나에게 삶은 굴곡진 물음표고, 죽음은 아득한 점이다. ‘죽느냐’는 차치하고 이제야 ‘사느냐’ 앞에 멈춰 해설 없는 현대미술을 이해하려는 것처럼 끙끙대며 서 있다. 나에게 삶은 무엇인가?

누군가가 나에게 삶이란 무엇인지 묻는다면 앞선 문장의 다음을 인용할 것이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도 참아야 하는가? 아니면 밀려드는 재앙의 바다에 힘으로 맞서 물리쳐야 하는가?’. ‘사느냐, 죽느냐…’ 뒤로 이어지는 인생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질문이다. 그리고 삶에 대한 나만의 요약이자 현재의 결론이기도 하다. 우리는 고통의 바다인 세상에서 눈금과 숫자가 없는 저울로 어떻게든 헤아리려 한다. 우리는 선택의 연속인 일생에서 극단 사이의 외줄에 올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한다. 운명에 인내할지, 재앙에 맞설지. 나와 타인, 현재와 미래, 이성과 감성, 균형과 굴곡, 수긍과 저항, 태만과 열의, 원망과 용서. 실행은 불가결하고 번복은 불가하다. 사소한 순간부터 결정적인 사건까지 불가피한 택일이 빼곡히 이어진다. ‘그렇다고 죽을 순 없는’ 생이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피를 흘리거나 파도에 휩쓸려야 한다.

삶은 면적뿐만 아니라 밀도까지 있는 구성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가는 차다. 나는 연속성을 가진 생애에서 유영하기보다 연연하며 발버둥 쳐왔다. 이제는 허우적거릴지언정, 서서히 헤쳐 나가기 위해 다음 문장을 찾으려 한다. 나는 내가 선택 앞에 의연해지길, 결과에 매몰되지 않길 기다린다. 운명의 화살을 애써 감당하고, 재앙의 바닷속에서 몸부림치며 분투하길 바란다. 생애 동안 마주치는 것들에 감정이 격해지고, 사색에 잠식되고, 고뇌에 빠지는 경험과 종종 마주하길 빈다. 감각할 수 있는 또 다른 문장을 곱씹길 기대한다. 그 후에, 연필을 붙들고 한 자씩 눌러가며 그다음 문장을 써 내려가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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