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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사회가 무서워요, 청년은둔족
  • 조수민 수습기자
  • 승인 2023.05.29 08:00
  • 호수 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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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김씨표류기>에는 얼굴 흉터 때문에 심한 괴롭힘을 당했던 ‘여자 김 씨’가 나온다. 그녀는 부모님을 포함한 모든 사람과 접촉을 거부하고 방 안에 쓰레기 더미들과 함께 인터넷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히키코모리’, ‘프리터족’, ‘니트족’이라는 단어로 더욱 익숙한 그들. 어떤 상황과 아픔이 그들이 사회를 거부하도록 만들었나.

1. 은둔? 히키코모리? 고립 청년?

우선, 은둔 청년이나 고립 청년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대해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보사연)에서 발간한 ‘고립·은둔 청년 현황과 지원 방안’은 고립 청년과 은둔 청년을 구분해 정의한다. 고립 청년은 정서적 교감이 필요한 힘든 상황에서 감정적 공감 및 지지를 받고, 사회적 유대 체계를 형성할 ‘사회적 관계 자본’이 부족하거나 결핍돼 외출이 적거나 없는 청년이지만, 은둔 청년은 사회적 관계 자본이 아예 결핍돼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외출하지 않는 청년을 지칭한다.


우리가 좀 더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히키코모리’라는 단어는 ‘틀어박힌다’라는 뜻의 일본어인 ‘히키코모루’에서 유래된 명사형 단어로, 버블 경제 붕괴 후 장기 불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집 안이나 더 좁게는 방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 혹은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르는 단어다. 우리나라에서도 IMF 이후 장기 불황을 거치면서 고립·은둔 인구가 늘어났으나 사회에서 제대로 된 공론화나 연구, 실태조사가 부족했던 탓에 일찍이 논의되지 못했다. 2020년, 코로나 19 상황의 자가격리로 인한 사회적 고립감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고립·은둔 청년이 함께 심각하게 고려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 삼성 사회 정신건강 연구소의 논문에서 ‘은둔형 외톨이’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됐다. 이를 줄여 ‘은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구직단념 청년인 '니트 족’은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의 준말이다. 교육, 훈련, 구직 및 직업 활동을 하지 않는 청년을 두고 이르는 말이지만, 고립·은둔 청년과는 그들의 생활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니트족은 사회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경제적 생산 활동이 부족한 것이고, 고립·은둔 청년은 생산적 활동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 자본까지 부족한 상황을 지칭한다. 우리가 니트족에만 집중해 고립·은둔 청년을 외면하는 것은 고립·은둔 청년의 가장 시끄러운 침묵에 귀를 막아버리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보사연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만 19~34세 청년 인구 중 ‘은톨이’는 5%를 차지한다고 한다. 100명 중 5명이 문턱을 벗어나지 못한 채 좁은 방 안에 머물러 있다. 더 이상 히키코모리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우리 지역의 문제다.

 

2. 사회는 왜 그들을 방으로 밀어냈는가?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은톨이가 됐을까? 경험이란 것이 각자 다양한 만큼, 문턱을 벗어나는 것이 겁나거나 꺼려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2022년, KOSIS(국가통계 포털)에서 공개한 청년 삶 실태조사의 ‘은둔 생활을 하게 된 이유’ 답변에 따르면, 만 19~24세 은둔 청년들이 제일 많이 꼽은 답변은 ‘취업이 잘되지 않아서(22.0%)’다. 한창 사회초년생으로 취업을 준비하고, 생산과 소비를 이끌어나가는 만 25~29세 은둔 청년도 ‘취업이 잘되지 않아서(44.4%)’를 제일 많이 꼽았다. 코로나 19 사태로 인한 국가 경제 불황도 무시할 수 없지만, 일본도 버블 경제 당시 이런 문제를 조치하지 않고 내버려 두다 심각한 사회 문제로 발전한 바 있어, 사전에 이를 예방하고 조치할 필요가 있다.

 

사회를 향하는 문을 잠그는 이유는 실업뿐만이 아니다. 뒤따른 이유로는 ‘학업의 중단’, ‘인간관계가 잘되지 않아서’가 있다. ‘학업의 중단’이라는 답변은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이 전형적으로 이뤄지는 학업 단계에서 탈락하거나 원치 않는 사정으로 그만두면, 청년이 돼도 사회적 지지 체계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하다는 듯 중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에 가고, 이후 대학교에 입학하는 천편일률적인 궤적을 벗어나는 순간, 청년은 은톨이가 될 위험을 내재하게 되는 것이다.

 

또 주목할 것은 ‘인간관계가 잘되지 않아서’라는 답변이다. 얼핏 보면 개인 간의 사소한 가치관 충돌이나 사회에 잘 적응해내지 못한 상황처럼 느껴지겠지만, 은톨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펴 보다 보면 가정폭력이나 학교폭력과 같은 범죄에 노출돼 사회적 지지 체계를 일찍부터 박탈당한 경우가 많다. 보사연에서 진행한 실태조사에서도 2, 30대 남성과 여성 집단 모두 가정 내 갈등이 있었던 경우가 많았다. 더불어 학창 시절 학교 폭력 경험이나 계속된 취업 좌절, 설령 취업이 이뤄지더라도 직장 내 괴롭힘이나 직무 능력이 떨어져 안정적인 경력을 쌓지 못하면서 사회의 외연으로 점점 밀려나게 되고, 이는 은둔과 고립의 방에 청년들을 가둬 버리는 시발점이 됐다.


실제로 사회 문제를 고발하는 유튜브 채널 ‘씨리얼(See real)’에서 제작한 영상 <은둔형 외톨이 청년의 이야기>에 따르면, 한 청년은 사람들과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자 자신을 사회생활에 적합하지 못한 인간상이라 생각해 은둔을 선택했다. 또 다른 청년은 계속해서 가해지는 사회적인 압박에 견디다 못해 자신을 의지박약이라고 밀어붙여 ‘사회적 시체’ 상태에 놓였다. 이렇듯 은둔형 외톨이, 즉 은톨이 문제는 단순히 몇몇 청년이 행하는 반항이나 일탈이 아니라,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던 사회 문제가 곪아 터진 상처다.

 

3. 왜 방 안에만 있으면 안 되나요?

왜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 등이 사회 문제인걸까? 개인이 집 안에만 은둔하는 것은 사회 문제로 보기 힘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범죄의 영역도 아니고, 그가 홀로 프리터족이 돼 근근이 계약직으로 노동해 먹고 살든 말든 그것에 대해서 국가가 개입하는 게 과하다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가 큰 공동체이며 상호 간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우선, 대부분의 은톨이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사보연의 연구에서 고립 청년의 삶의 만족 수준을 묻자 고립 청년들은 ‘보통’ 다음으로 ‘불만족’이라 답했다. 만약 이들이 ‘자발적’ 은톨이라면 괴롭거나 삶에 불만족할 이유가 있을까? 게다가 자신의 삶에 매우 불만족이라고 답한 고립 청년은 17.2%로, 동일한 답변을 한 비고립청년보다 약 3배 정도 많았다. ‘약간 만족’이나 ‘매우 만족’을 모두 포함한 만족 항목은 비고립청년 전체에서 16.3%뿐이었다.
또, 이들 중 절반이 넘는 53.1%는 일정한 소득이 없고, 69.1%는 주관적인 소득수준에서 ‘약간 부족’하거나 ‘매우 부족’하다고 느꼈으며 자신이 살기에 적절한 여유가 있다고 느끼는 고립 청년은 7.0%밖에 없었다. 이를 살펴봤을 때, 고립 청년들은 자발적이지도, 여유 있지도 않은 그야말로 현대 청년 세대의 모습을 본 따 만들어진 형상이라 할 수 있다.

 

은톨이는 청년 고독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정부가 발표한 고독사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고독사 사망자 수는 총 3,378명이다. 이 중 2,30대의 비중은 약 6.3~8.4%를 차지하고 있다. 이 통계를 더 자세히 살펴보면, 19세 이하 고독사의 원인은 100% 모두 자살이며, 2, 30대도 56.6%, 40.2%로 절반 이상이거나 그 수준에 머물렀다.

 

게다가, 전문가들은 은톨이 청년들의 특성상 현재 정부에 집계되지 못한 사각지대에 그 수가 훨씬 많으리라 추정한다. 이렇게 많은 청년이 사회를 못 견디고 방 안에 있다면, 사회적 부나 생산 및 소비는 어떻게 창출해낼 것인가? 사회를 위해서라도 은톨이 청년들을 지원하고 사회로의 문을 활짝 열어줄 필요가 있다.

4. 이제는 사회가 청년을 돌봐야 할 때

우리 사회와 정부는 어떻게 이들을 지원하고 도와야 할까? 우선 무작정 그들을 문 밖으로 끌어내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민간 상담 단체에 의존해 ‘마음만을 살피는’ 정책 시도도 사실상 무용하다. 은톨이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상담의 질이 낮아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하거나, 상담에 지속해서 나가도 도움이 되는 대화보다는 ‘나와서 산책을 해보라’ 권하는 등 터무니없고 실효성 낮은 조언 탓에 마음의 문을 더 굳게 닫는 계기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그들의 상처에 대해 깊은 이해가 있고 질 높은 상담사와의 계속되는 치료가 필수적이다.

 

또, 은톨이 청년들은 일정한 소득이 없어 생활고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은톨이 청년들의 은둔 기간이 길어질 경우, 실무 능력이 점차 떨어지고 스펙에 공백이 생기면서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다. 1~2년만 쉬어도 자신의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한국에서, 변변한 목적도 없이 집에만 기거했다는 사실은 사회적 실격 사유로 여겨지곤 한다. 은둔하던 청년이 바로 실무 현장에 뛰어드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런 점을 고려한 지원 방안으로 서울특별시는 원스톱 지원 체계를 마련해 은둔형 청년들이 일하는 ‘곰손 카페’와 같은 공간을 발굴하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이것이 모든 은톨이 청년의 생활고를 해결해주진 못하겠지만, 직업을 훈련하고 산업 현장에 익숙해진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은톨이 문제는 단순히 그들을 사회로 이끌어낸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계급에 따라 계층이 나눠지는 한국 사회 속에서 경쟁에 밀리지 않기 위해 과잉 스펙을 당연하다는 듯 쌓아 올리는 청년 세대를 제대로 보살피지 않으면, 은톨이를 위한 상담이나 직업 훈련 등의 정책은 실효성 제로, 그야 말로 보여주기식 정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


‘방황하게 되는 건 집이 없어서 혹은 갈 길이 없어서일까?/ 갈 곳은 많아도, 그 어디에도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서일까?’ 힙합 가수 타블로의 ‘Airbag’ 가사 중 일부다. 갈 길이 없어 오늘도 문턱을 벗어나길 주저한다면,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 느껴져 입과 생각을 닫아버렸다면, 이 기사가 당신께 푹신하고 부드럽게 생명을 살리는 에어백이 될 수 있을까? 당신이 용기 내서 디딘 발자국 앞에 언제 그랬냐는 듯 파란 하늘이 맞이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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