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 넓은 뜻으로는 학(學)을 이르는 ‘과학’. 인간 생활을 편리하게 해 준다는 명목으로, 혹은 더 발전된 사회를 만들겠다는 이름으로 과학기술은 연구된다. 연구가 거듭되며 보편화된 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개인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기술이 진보한 만큼 사회도 진보돼야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퇴보의 길을 걷고 있다. 암호화 기술이 발달하며 대표적인 암호화 메신저가 된 텔레그램. 이는 특정 국가에 서버를 두지 않고 정보 수사 요청에도 비협조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비밀대화 메시지에는 ‘종단간 암호화’ 기술이 적용되는데, 이는 수신자와 발신자 외에는 대화 내용을 알 수 없고 메신저 업체의 서버에도 내용이 남지 않는다. 몇 년 전만 해도 전문적인 기술이 없으면 완벽하게 구현하기 힘들었던 딥페이크 역시 간단한 앱으로도 위화감 없는 영상과 사진을 합성할 수 있게 됐다.

최근 이슈되고 있는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 이는 오픈소스 모바일 메신저인 텔레그램에서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인간 이미지 합성 기술인 딥페이크를 이용해 불법 음란물을 제작유포한 사건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하다. 텔레그램에 자신의 딥페이크 음란 사진이 유포됐다는 것을 알게 된 인하대 졸업생 유 모 씨가 텔레그램의 서버가 해외에 서버가 있다는 이유로 경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자 자신이 직접 추적에 나섰다. 딥페이크가 올라온 방을 찾아 들어갔더니 자신의 음란사진은 물론, ‘주인님’이라는 본인의 음성과 이모티콘까지 공유되고 있었다.

이후 지역,학교별 텔레그램 대화방이 다수 개설되고 ‘겹지(겹치는 지인)방’이란 이름으로 함께 아는 지인의 정보를 공유하며 딥페이크 기술로 성 착취물을 만들어 유포한 것으로 나타나며 사회의 경악을 샀다. 피해 학교의 목록 역시 공개됐는데, 대학교부터 중학교와 고등학교 심지어 스승이어야 할 선생님까지 범죄의 대상이 돼있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피의자 52명의 75%가 10대라고 밝혀졌다. 박고은 한겨례 기자는 “10대 가해자들을 대상으로 상담하는 선생님들과 얘기해 보면, 가해자들은 죄의식을 느끼기보다 오히려 ‘남들 다 하는건데 왜 나한테만 그래요?’라는 식의 반응이 많았다. 이게 범죄고 자신과 관계 있는 지인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또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이 없다”고 했다.

사람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 발전하고 있는 과학기술. 하지만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시민 의식은 퇴보한 사회를 낳는다. ‘N번방’ 사건 역시 텔레그램에서 일어난 범죄다. 이후 텔레그램과 관련된 범죄가 일단락되나 싶었으나 성 범죄에 대한 매마른 시민 감수성과 잘못된 과학기술의 사용으로 또다시 범죄가 발생했다. 비단 시민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부실한 경찰 수사와 부족한 예방책과 부실한 교육 시스템이 낳은 산물이며 인권교육, 성평등 관점에서의 성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성범죄 형량을 강화하고, 위장수사 범위를 확대하는 등 좀 더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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