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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민의 국장레터] 우리가 원자들로 이뤄진 존재라면 죽음은 해체이고
  • 조수민 편집국장
  • 승인 2024.04.01 08:00
  • 호수 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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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고 있다. 로마의 황제가 전쟁통에 썼던 일기들을 모아놓은 책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그런지 죽음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 내용이 죽음으로 채워져 있지 않더라도, 결론은 꼭 죽음이 엮여 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이유도, 다른 사람들을 사랑해야 할 이유도 죽음이다. 어차피 우린 다 죽으니까,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고, 어차피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목숨 우주의 본성, 즉 이성에 헌신하자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나 또한 평소 대부분 부정적인 생각의 귀결은 죽음이었다. 죽음은 뭘까. 좋은 곳으로 보내드리는 건지, 아니면 가서는 안 될 곳인지 사람들은 내게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내게 죽음은 끊이지 않는 소문이었다. 사람들은 살아야 하는 이유 앞에서 끊임없이 머뭇거렸다.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라는 말은 터널 속에 울리는 공허한 메아리나 질긴 껌처럼 어느 곳에도 와닿지 못했다. 인생은 쾌락과 고통을 번갈아 가며 출력하는 파친코 같았다.
<명상록>은 그런 내 생각 덩어리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내일 밤을 무사히 맞을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은 사람은 삶과 죽음의 경계 앞에서 초연해질 수밖에 없다. 어제 내게 경례를 올렸던 부하가 오늘은 시체로 발견되고, 눈앞에서 사람들이 떼로 죽어 나가는 가운데서 “나는 살아가야 해!”라고 외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명상록이 모두 죽을 것이고 삶에 의미는 없다고 외치는 책은 아니다. 명상록은 죽음 앞에서 삶에 충실할 수 있는 지침이 있다. 내일 죽는다 해도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내 일을 하면서 우주의 본성인 이성을 발휘하는 방법 같은 것이다.
나는 왜 글을 쓰는지, 그리고 글을 왜 이렇게밖에 쓸 수 없는지에 대한 생각이 많아져 그간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대부분의 글은 5줄 이내로 멈췄다. 떠올랐던 생각은 흘려보냈고 글을 쓰다가도 무슨 말을 이어나가야 할지 몰라 다 날려버리기가 부지기수였다. 그럼에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써야겠다고, 투박하더라도, 평생 몇 명만 보더라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죽음에 대해서 길게 고찰해 보면서부터다. 끝없이 우울하고 주변 사람에게 심려만 끼치는 글이더라도 아예 안 쓰는 것보다는 희망적일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것에 대한 작은 변명이라도 되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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