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팁, 잊으신 건 아니죠?
  • 문자영 기자
  • 승인 2023.09.18 08:00
  • 호수 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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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캐나다, 유럽 등 서구권으로 여행을 계획한다면 꼭 필요한 준비물이 있다. 바로 여분의 ‘팁(Tip)’이다. 팁 문화가 있는 나라에서 식사를 한다면 팁은 사실상 반강제적이다. 정해진 금액도 없이 ‘적당히’ 주면 된다는 설명에 여행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곤 한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어 낯설기만 한 팁 문화. 그러나 그 팁 문화가 점차 우리 사회에서도 고개를 들고 있다. 말 많고 탈 많은 팁 문화. 새로운 문화의 등장일까, 혹은 또 다른 갈등의 불씨일까?

 

<선택이 아니라 필수>

팁은 서비스를 제공한 사람에게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주는 추가 금액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유난히 친절한 직원을 만나거나 골프장, 카지노 등에서 소위 ‘대박’이 났을 경우 서비스 이용자가 직원에게 보너스를 직접 챙겨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문화로 정착한 팁은 성질이 다르다. 팁 문화권의 사람들은 팁을 마땅히 줘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팁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깜박 잊거나 모른다는 이유로 팁을 지불하지 않으면 직원들이 먼저 팁을 요구하기도 한다. 

팁이 어디서 기원했는지, 어떻게 문화로 정착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있다. 먼저 급행료를 의미하는 ‘To Insure Promptness’의 이니셜을 따왔다는 가설이다. 다른 손님들보다 더 빠른 서비스를 받기 위해 소액의 돈을 더 지불한 데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과거 귀족들이 마차에 탑승하기 전 안전한 통행을 기원하며 길에 동전을 던지던 문화에서 기원했다는 설이다. 마지막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은 손님이 형편이 좋지 않은 직원의 상황을 헤아려 자비를 베풀 듯 음식값보다 더 지급한 돈에서 기원했다는 말이 있다. 세 가지 중 어떤 유래든 팁의 역사는 16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엄밀히 말하면 팁 문화는 유럽에서 시작했으나, 팁 문화의 대표주자로는 미국이 가장 많이 거론된다. 이는 각종 요인으로 미국의 팁 문화가 유난히 강조되기 때문이다. 첫째로는 문화적인 요인이다. 미국에선 서비스업 전반에 팁을 주는 것이 일반적인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식당뿐만 아니라 바, 카페, 호텔에서도 서비스를 제공받았다면 팁을 줘야 한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둘째는 역사적 요인이다. 팁이 시작될 때만 해도 팁은 많이 가진 이가 사회적인 책임을 더 부담한다는 뜻인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강했다. 그런 배경에서 보편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낮았던 서비스 제공자에게 추가 금액을 지급하는 것은 바람직한 행위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1980년대, 남북전쟁으로 주사업가 계층이었던 백인은 그들을 평등하게 대하지만은 않았다. 흑인들이 접객업에 몰리게 되고, 사업가들은 팁을 명분으로 지급해야 할 노동의 대가를 줄였다. 당연히 줘야 하는 돈임에도 팁이라는 이름으로 자비를 베푸는 것처럼 으스대고, 서비스업의 임금은 ‘당신 하는 데 달렸다’고 주장했다. 기존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문화가 변질되기 시작한 때다. 

마지막으로, 경제적인 요인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은 중앙정부가 지정한 연방 최저임금과 각 주가 정하는 주별 최저임금 중 더 높은 임금을 적용하게 돼 있다. 현재 연방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로 약 9,600원이지만, 외식업 및 숙박업 일부 직종의 연방 최저임금은 시간당 2.13달러로 약 2,800원에 불과하다. 애초에 최저임금이 다르게 설정된 이유가 뭘까? 바로 팁 때문이다. 팁이 일반화돼 있기 때문에 팁은 서비스업 종사자의 주요 소득원 중 하나로 여겨지고, 낮은 임금이 용인된다. 고용주가 지급해야 하는 임금의 일부를 손님이 부담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물론 이때 팁은 납세 대상으로, 손님 혹은 노동자 측에서 팁을 임금으로 신고하는 것 또한 일반적이다. 앞선 요인들로 미국은 팁 문화의 시초국이 아님에도 팁의 특수성을 잘 보여주는 대표국으로 손꼽힌다.

 

<한국도 팁 문화권?>

우리나라는 최저임금이 업종과 관계 없이 법적으로 명확히 정해져 있고, 상품 가격 안에 서비스 가격까지 포함해 명시하도록 정해져 있어 팁 문화가 생소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팁은 천천히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처음 불을 지핀 건 택시 호출 플랫폼인 <카카오T>다. 카카오T는 지난 8월 ‘감사 팁 시범 서비스’ 기능을 도입했다. 카카오T로 택시 호출 서비스를 이용하면 택시 이용이 종료된 후 1점부터 5점까지 점수로 서비스 만족도를 평가할 수 있다. 이때 5점을 주게 되면 팁 지불 페이지로 넘어가며 1,000원, 1,500원, 2,000원 가운데 승객이 원하는 만큼 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액수를 고르면 카드 수수료를 제외한 나머지 전액이 택시 기사에게 즉시 전달된다. 카카오T는 ‘팁 서비스를 도입함으로서 택시 기사가 기존보다 더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고 이는 고객들이 더 만족하는 선순환으로 이어져 전체적인 서비스 개선을 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팁을 의식한 택시 기사들이 승객에게 불친절한 언행을 삼가며 기존 승객들의 항의 중 다수를 차지하던 불친절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라는 것이다. 

‘팁’ 글자를 볼 수 있는 건 택시 앱 속에서 뿐만이 아니다. 맛집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아는 서울의 유명한 베이글 베이커리 카페가 있다. 베이커리 카페는 계산대 앞에 ‘베이글이 만족스러웠다면 팁을’이라는 메모를 붙인 유리병, 소위 ‘팁 박스’를 설치했다. 손님이 빵을 고르면 직원이 계산하고 포장해 주는 것이 다인데 왜 팁을 요구하냐는 불만이 이어지자, 베이커리 카페는 ‘인테리어였다’며 팁 박스를 제거했다. 이 외에도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니 팁을 요구하는 메시지가 띄워진 태블릿을 받았다’, ‘식당에 가니 테이블 위에 테이블당 5,000원 이상의 팁을 부탁한다는 안내문이 있었다’, ‘배달 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는데 팁이라는 이름으로 추가금이 붙어있었다’는 등 목격담이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의 반응은 냉담하다. 소비자 데이터 플랫폼 오픈서베이가 실시한 카카오T의 팁 기능 인식 조사에서 ‘팁 기능 도입에 부정적이다’라는 반응이 58.3%로 집계됐다. ‘긍정적’ 답변이 10.5%에 그친 것과 상반된다. 특히, ‘택시 팁 기능 도입이 향후 택시 이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는 의견이 76.2%를 차지했다. ‘이어지는 택시비 인상과 고물가로 인해 부담이 늘어났는데 팁 요구 자체가 물가 상승과 다를 바 없게 느껴진다’, ‘팁을 지불하지 않았을 때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된다’는 의견 또한 많았다. 소비자의 비용 부담이 커질뿐더러 팁 지불은 승객의 자율적인 선택에 맡겨야 하는 데도 택시 기사에게 지불을 강요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 카카오T 측은 팁을 강요한 택시 기사가 있다면 누적 횟수에 따라 경고 및 배차 제한 조치 등을 취하겠다고 전했다. 동시에 한국 택시 요금이 스위스, 일본, 독일 등에 비해 낮을뿐더러 감사 팁 시범 도입 일주일 만에 하루 2,000명의 승객이 팁 지불을 선택했다는 점을 함께 밝혔다. 

 

<법적으로 살펴보기>

상품값과 서비스값, 즉 팁이 구분된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상품값에 서비스값을 포함하도록 식품위생법상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법은 서비스값에 ‘봉사료’라는 말을 쓰고 있다. 법에서 가격은 봉사료, 부가가치세 등 고객이 실제로 내야 하는 모든 금액의 합산이다. 고객이 메뉴판에 기재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내는 상황은 위법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팁 요구는 불법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법으로 처벌하기는 어렵다. 대놓고 메뉴판에 봉사료를 명시하고 상품값과 별도로 계산하게 한다면 엄연히 불법이지만 강제성이 없거나 의무가 아니라면 문제 삼을 수 없다. 결국 팁을 주고 말고는 소비자의 선택에 달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팁은 직원의 월급, 즉 통상임금에 포함될까? 이는 팁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근로기준법 제18조에 따르면 임금이란 사용자가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모든 종류의 금품을 지칭한다. 핵심은 임금을 지급하는 주체인 ‘사용자’와 ‘근로의 대가’다. 팁은 근로의 대가로 받은 금품이지만 사용자가 아닌 고객이 지급하는 금품이기 때문에 임금이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앞선 사례처럼 업장에서 팁 박스 등 제도를 마련한 경우는 다르다. 팁을 업장에서 모아 사용자가 근로자들에게 재분배하는 경우다. 사용자가 손님으로부터 받은 팁을 모은 후 근로자에게 일정히 분배하는 경우, 노사 간 사전에 맺은 단체 협약에 따라 팁을 임금에 포함할 수 있다.

또한 부가가치세법은 분명하게 봉사료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다음 요건을 어기지 않는 이상 탈세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먼저,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팁을 지급하는 경우 관련 내역을 작성하면 부가세 납부에서 벗어난다. 부가가치세법 시행령은 음식, 숙박 등 사업자가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고 따로 봉사료를 지급한 경우 봉사료는 공급액에 포함하지 않는다고 명시한다. 하지만 봉사료를 받았으나 근로자에게 돌려주지 않는다면 사업주의 수입 금액에 포함해 부가세를 납부해야한다. 팁을 받은 후 근로자에게 주지 않고 본인의 매출에 표기하지도 않으면 탈세에 해당한다.
 

<문화 혹은 악순환>

팁 요구가 부정적으로 비치는 현상은 팁 문화가 우리나라에서 낯설기 때문만은 아니다. 팁 문화가 발달한 미국에서도 팁 제도에 대한 반발심이 강해지는 추세다. 코로나 19 팬데믹을 겪기 전까지만 해도 팁은 통상적으로 상품값의 10% 정도였다. 또한 암묵적인 규칙으로 통했기 때문에 고객의 자유 의지에 맡겼다. 그러나 지금은 음식값의 20%를 ‘Tip’이라는 항목으로 애초에 계산서에 청구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미국 언론은 ▲tipflation(팁+인플레이션, 팁 때문에 물가가 오르는 것처럼 느낌) ▲tip fatigue(팁 피로증) ▲tip creep(팁을 기대하는 직원 수의 증가 추세) 등 신조어로 무분별하게 오르는 팁을 비판하기도 했다. 하물며 포장 주문이나 드라이브 스루, 무인 포스기 등 상품을 제외하고 받는 서비스가 딱히 없는 경우에도 팁이 함께 청구되는 사례가 늘어나며 본토에서도 불만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2022년, 크레디트카드 닷컴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팁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응답이 60%에 달했다. 휴대용 태블릿을 통해 팁을 얼마나 줄 지 소비자가 주문과 동시에 결정하게 하는 시스템이 압박으로 느껴진다는 의견은 20%를 차지했다.

팁을 받는 쪽인 근로자의 입장에서도 팁이 악영향을 준다는 분석이 다수다. 어차피 팁이 있기 때문에 사용자가 임금 상승을 고려하지 않는 ‘급여 인상 억제 수단’으로 팁이 악용되고 있다는 뜻이다. 근로자가 임금 인상을 요구해도 사용자는 팁 비율을 올리는 등 간접적으로 개입할 뿐 협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결국 임금에 대한 책임과 갈등을 소비자와 근로자 간의 문제로 떠넘기는 모습이다. 

팁을 요구하는 국내 업장이 많지는 않지만, 등장 자체만으로도 소비자들의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호의로 시작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과거엔 내지 않았지만 지금은 당연시되는 배달비처럼 추가 비용으로 굳어질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또 미국처럼 팁을 전제로 전체 임금 수준 자체가 낮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시되고 있다.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고 즐기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오늘날에도 뜨거운 감자인 팁 문화, 당신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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