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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미래와 과거, 북핵 문제
  • 신해원 수습기자
  • 승인 2023.05.29 08:00
  • 호수 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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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분열이나 핵융합으로 생성된 에너지를 사용해 생물을 죽이거나 파괴하는 폭발적인 장치, 핵무기. 재래식 폭탄보다 강력해 크기가 작아도 도시 하나는 거뜬히 파괴하는 핵무기가 세기를 거듭하며 발전해 국제사회에 무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북한은 공식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계속해서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해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있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게 된 역사와 북핵 개발이 국제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자.

 

<핵무기, 누가 만들었나?>
현재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으로 핵을 보유하고 있다고 인정되는 국가는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에 해당하는 P5 국가들이다. P5 국가인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은 공식적로 핵 보유를 인정받고 있지만, 핵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인정받지 못하는 국가들이 있다. 바로 핵확산방지조약(이하 NPT)에 가입하지 않아 핵을 보유한 국가다. 인도, 파키스탄, 북한이 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왜 국제사회는 이러한 국가들의 핵 보유를 제재하려고 할까? 이는 최초로 개발된 핵의 위력과 그 위험성을 통해 알 수 있다.

핵분열의 아버지 ‘오토 한’은 인류의 과학 발전에 공헌한 사실을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으나, 인류의 재앙을 알리는 사신이기도 했다. 핵분열은 자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특히 알파붕괴, 베타붕괴, 감마붕괴와 같은 자연 방사선 붕괴처럼 무거운 원자핵에서의 핵분열은 더욱 그렇다. 그 원리를 알아보자면, 중성자를 우라늄과 같은 무거운 원자핵과 충돌시켰을 때, 중성자는 우라늄 원자핵 속에서 양성자와 중성자를 쪼갬으로써 핵분열이 일어나도록 한다. 외부 입자인 중성자의 존재는 핵분열에 필수적이다. 이러한 핵분열이 일어나면 동시에 몇몇 중성 자가 튀어나오고, 상당한 에너지가 생긴다. 이어서 핵분열 중성자는 다시 다른 원자핵에 충격을 가해 연쇄적인 핵분열을 일으키는, 이른바 핵분열 연쇄 반응을 유발한다.

최초의 핵 개발은 맨해튼 계획에서 이뤄졌다. 맨해튼계획은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진행된 실험으로, 오펜하이머를 중심으로 미국의 과학자들은 물론 나치를 피해 미국에 와있 던 유럽의 과학자들과 동맹국인 영국과 캐나다를 대표하는 과학자들이 참여했다. 이를 개발한 과학자들은 원자 폭탄이 사용되기를 원치 않았으나 개발이 완료된 순간부터 원자폭탄은 과학자의 통제 밖으로 빠져나갔다. 맨해튼계획에서 만들어진 원자폭탄은 위와 같은 원리가 이용됐는데, 이러한 원리로 만들어진 ‘리틀보이’와 ‘핏맨’은 각각 전투기 ‘에놀라 게이’에 나눠 탄 채 일본 상공을 향해 날아갔고 곧바로 투하됐다. 그 즉시 중성자 방출은 급가속으로 증가하고 곧이어 감마선이 지상으로 뻗어 나갔다. 이에 따라 강력한 공기 밀침 현상이 발생하자 다른 쪽에 서는 대기 메움 현상이 발생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버섯 모양의 폭발을 만들어 내며 ‘핵’이라는 이름의 공포를 심었다.

 

<북핵 개발 60년사>

북핵 위기의 시작과 전개는 1980년 북한이 5MWe 원자로의 설계에 착수 해 1987년부터 가동하며 시작됐다. 북한은 1955년 4월 북한과학원 제2차 총회에서 ‘원자 및 핵물리학연구소’를 설 치할 것을 결정하고, 1956년 3월 26일 구소련의 ‘드브나 다국적 연합 핵 연구소’ 창설 시 소련과 체결한 핵협정에 따라 핵 관련 기술자 30여 명을 연수 차 보냈으며, 이때부터 북한에 ‘방사화학 연구소’를 설립했다. 1962년 1월에 는 영변에 핵 개발 단지를 조성하고, 구소련으로부터 IRT-2000 연구용 원 자로를 도입했으며, 이듬해 IRT-2000 연구용 원자로가 가동돼 최초의 핵분열 실험을 실시했다. 1972년 7월에 미국의 ‘로스알라모스 연구소’에서 직접 핵폭탄 제조에 참여한바 있는 캐나다의 유명 핵폭탄 전문가 김경하 박사를 입북시켜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한 시기이기도 하다.

또 무기급 플루토늄 생산에 가장 적합한 영국의 ‘Calder Hall 형 원자로’ 를 모델로 해 1975년부터 원자로 설계를 시작으로 영변 핵 연구 단지 내에 1980년 완공했다. 이 원자로를 가동하면 핵무기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을 포함하고 있는 ‘사용 후 핵연료(이하 SF)'가 생산되는데, 이 원자로에서 1년 간 생산된 SF를 재처리시설에서 화학적으로 재처리하면 핵무기 1~2발을 만들 수 있는 양인 약 7~10kg의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다. 핵 물질을 획득하고 핵폭발 장치로 폭발시켜야만 핵폭발이 일어나는데, 이러한 기폭장 치는 미임계질량 상태에 있는 핵물질 을 초임계 질량으로 만들기 위해 ‘백 만분의 1초’라는 극히 짧은 순간에 이뤄져야 하므로 초당 1,000m 이상의 고속을 낼 수 있는 고성능 폭약을 사용해야 한다. 이처럼 까다로운 조건을 만 족시켜야 하므로 북한은 핵무기 제조의 어려운 부분 중 하나인 기폭장치 제조를 1980년도 말까지 수십 회의 기폭장치 실험을 통해 완성했다. 이후 한국 국방부와 미국, 그리고 모의실험에 참관한 이충국 씨 등 여러 출처로부터의 정보를 종합해 보면 1991년~1993년 사이에 북한은 이미 핵폭발 장치를 완성했고, 완제품 실험까지 완료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마냥 순탄할 것 같았던 북핵 개발에도 위기가 찾아온다. 1993년, 핵무기 개발 의도가 국제사회에 노출된 것 이다. 그러나 북한은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중재자로 활용해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를 맺어 미국을 기만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핵무기 개발을 지속할 수 있었다. 이처럼 북한은 1989년 과 1991년 총 2차례에 걸쳐 획득한 플루토늄으로 핵폭발 장치와 각종 실험을 마치고 적게는 1~3발, 많게는 4~5 발 정도의 최초의 핵무기를 개발했다.

 

<국제사회와 북핵 문제>

북한의 핵 문제는 1차 북핵 위기 이후 국제화됐다. 1990년 2월 일본 도카이대학의 정보기술센터가 북한이 비밀리에 건설 중이던 원자력 발전소와 핵연료 시설 등의 인조 구조물이 담긴 한 장의 인공위성 사진을 공개하며 시작됐다. 불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핵을 개발하는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다. 그렇다면 국제사회는 이러한 북핵 문 제에 대응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

(1) 6자 회담

6자 회담은 2003년 4월 베이징에서 열린 미국, 중국, 북한 간의 3자 회담이 기초가 돼 성립됐다. 6자 회담의 성과로 9.19 공동 성명과 2.13 합의를 이끌었다. 그러나 6자 회담이 계속된 5 년 4개월 동안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의 목표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무기급 플루토늄의 생산을 증가시켰고, 또 우라늄 농축 계획을 비밀리에 진행해 핵 보유국의 길로 가고 있었다. 2003년 8 월 27일, 제1차 6자회담으로 시작된 회담은 2008년 12월 제3차 수석대표 회의를 마지막으로 5년 4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속했으나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

(2) 미국

미국의 대북정책 옵션에는 크게 4가 지가 있다. 첫 번째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것인데, 이는 공식적 으로는 불가능한 선택지다. 이를 인정 하는 순간 일본과 한국의 핵 개발 의지를 자극하고 동맹 체제를 약화해 미국의 핵 관련 아시아 정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대화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북미 간 대화의 목적은 서로 다른 상황이었다. 북한은 대화를 통해 제재 완화를 이루고 싶어 했고, 미국은 북한 비핵화를 원했는데, 상호 이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남은 선택지는 제재와 군사적 옵션이다.

미국은 정부의 성격에 따라서도 서로 다른 대북 정책 기조를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는 ‘최고의 압박과 개입’을 내세웠다. 북한 핵보유국 불인정, 모든 대북 제재와 압박 사용, 북한 정권 교체 미추진, 최종 단계 시 대화로 비핵화 해결이 주요 내용으로 이뤄 졌다. 바이든 행정부의 경우 ‘바텀 업 (Bottom-up) 방식’을 지향하며 김정은과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외교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는 등 단순 외교를 위한 만남은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따라서, 북한이 핵 프로 그램 폐기를 위한 구체적 조치를 취하느냐에 따라 협상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제재의 목적은 북한을 올바른 대화의 틀로 돌아오게 하고 미국의 독자적 협상이 아닌 다자주의 틀 속에서 협상하기 위함이다.

(3) 일본

대부분의 미국 동맹과 같이 일본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확장억제에 의존해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하고 있다. 일본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노출된 이후 부터 ‘적지 공격’ 또는 ‘적기기 공격’이 라는 용어를 통해 핵무기가 사용되기 이전에 제고하는 방안을 논의해 왔다. 억제가 실패할 경우 가용한 대응 방법 중에서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헬기 탑재 호위함 2척을 전투기 이착륙이 가능한 F-35B 42대와 F-34A 105대를 구매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또, 평화헌법의 정신에도 부합되며 선도국인 미국의 장비를 도 입하면 된다는 이유로 일본은 1900년 대부터 미사일 방어 능력을 강화하며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고 있다.

 

<현재, 그리고 미래>

6자 회담을 비롯한 한국과 국제사회의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다. 이것은 한국과 국제사회의 노력 부족이라기보다는 핵무기를 개발하고자하는 북한의 의지가 너무나도 확고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 가운데 한국의 핵 억제전략에서 중요한 것은 자체적인 응징전략과 전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북한의 핵 공격을 확실하게 억제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닐지라도, 한국이 적정한 능력을 갖출 경우 북한이 두려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한국이 취할 수 있는 대비책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1) 현상 유지 보강책

현재의 한미 연합 억제전략(한미 연 합 전력+핵우산)을 보강하는 방책은 북한이 미국의 보복 핵전력에 대한 간접적이고도 가시적 핵 위협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정도로 핵 억제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반도 내에 전술 핵무기의 재배치와 제주도 군항에 미국 핵잠수함의 배치 등이 필요하다. 이는 북한의 도발에 대한 간접적이고 가시적인 핵 억제력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 본토에 대한 위협도 포기시킬 수 있는 강력한 대비책 이 될 수 있다.

(2) 북핵 포기 유도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게 하는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는 대비책이다.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한다는 것은 어려운 선택 중 하나다. 그렇다고 ‘북핵 포기’ 라는 선택지를 포기하기 또한 쉽지 않다. 이는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과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북한이 핵 포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할 때 가능성이 있는 대비책이다. 결코 한 국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3) 핵 개발

마지막은 한국이 독자적인 핵 개발 준비를 갖춰놓고 필요시 최대한 빨리 핵을 보유하는 방법이다. 북한이 핵 포기를 거부하며 우리를 계속 위협하는 상황에서는 가장 확실한 억제 정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NPT에 가입하고 있는 한국으로서 독자적 핵 개발은 어려운 상황이다. 만일 우리가 독자적인 핵 개발을 하게 된다면 국제사회의 반대와 제재, 국제사회와 교역 제한으로 인한 한국 경제의 침체, 원자로의 연료 공급 중단의 위협과 같은 국제적인 문제점과 국민의 의견충돌 등 국내적으로는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외에도 미사일 방어와 선제 타격 SIS, DEMO 등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한다.

 

북핵 폐기를 위해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노력은 필수적이다. 북핵 폐기 문제의 주요 쟁점은 핵 폐기 범위, 핵 폐기 순위, 핵 폐기 방법, 핵 투발 수단과 전략 무기 개발 등이다. 결국,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최종 목표이며, 그 단계는 여러 가지 구성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한국 주도의 북한 비핵화를 최종 달성하기 위해서는 군사력 증강을 통한 안보 정책 추진이 필수적이 다. 국가 전략을 수립해 북한 핵에 대응할 수 있는 핵 균형 정책이 거론될 때, 북핵의 중국 역할론도 작동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북핵에 대한 효과적 제재 전략을 개발하고 당근과 채찍을 통한 안보-평화 프로세스 추진을 통해 남북 합의 제도화와 이에 대한 면밀한 합의 이행의 진행이 필요할 것 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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